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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는 백성들
정태윤  |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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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30  10: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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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니만의 그리스도인이 아닌 참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소원은 하나님께서 나와 나의 삶을 기뻐하시는데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글을 통하여 그러한 기쁨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보이시고 있습니다. 살전 2:18-20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특히 나 바울은, 한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설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본문의 간략한 배경을 살펴봅시다.

바울은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것이라고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갈 1:8-9; 엡 3:3-4). 심지어는 사도 베드로도 바울의 편지들이 성령의 영감에 의한 “성경”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기다리며 하나님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서기를 힘쓰라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 3:14-16)

바울은 이 편지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대한 그의 “기쁨”을 “우리의 소망”이라고 표현했고, 우리의 “기쁨, 자랑의 면류관”이라고 (‘면류관!’이라고) 극찬했으며, “우리의 영광이요,” 다시, 우리의 “기쁨”이라고 표현합니다. 리온 모리스라는 주석학자는 이를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한 “극렬한 긍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는 바울의 마음을 감동한 “하나님의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기쁨”인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세워짐에 대해서 간략하게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바울의 제 2차 전도여행 중 데살로니가에 들려서 “세 안식일” 동안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17:1 - 18:2). 이 때가 주후 약 49년 말에서 50년 초, 혹은 50-51년 초라고 합니다.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살전 2:9)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자들이 여기에도”왔다고 소동을 일으켜 급히 베뢰아로 떠났습니다(행 17:5,10).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곧 아테네로 향하였습니다. 거기서 디모데를 다시 데살로니가로 보냈습니다(살전 3:2). 실라도 함께 동행한 것 같습니다(행 17:14). 그들을 데살로니가로 보내어 그 곳 형편을 알아보고 오도록 부탁하였습니다. 그 사이 바울은 고린도에 와 있었고, 고린도에서 디모데의 보고를 듣고 “데살로니가 전서”로 알려진 서신을 그들에게 보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고(3주간) 고린도에 와서 편지를 보낸 기간은 “불과 수 주 후”라고 합니다(로버트 H. 건들리, 신약 개론. p. 255).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데살로니가 전서”라고 하는 이 편지를 보낸 “시간 간격”은 대단히 중한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신학적 사고(思考)나,전도 방법, 심지어는 구원론, 성화론 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입니다.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그처럼 기뻐하신 이유는:
바울을 감동하여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기쁨의 내용을 다시 보면, “우리의 소망” 우리의 “기쁨” 우리의 “자랑의 면류관” 심지어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렸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살전 2:13)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살전 1:4-5)

모든 인류에게 복음을 주어서, 오직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기로 정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이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신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권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복음”이라고 말할 때, 그 내용은 “하나님 말씀” 전체와, “예수님 말씀” 전체를 뜻한다는 것을 우리는 필히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5). 

말할 나위 없이 베드로가 인용한 24절 25절의 “주의 말씀”은 이사야서 40:6-8 절에 기록된 “여호와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 “세 이레”동안 성경의 일부 내용만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전체 중에서 모든 주요 내용을 가르친 것입니다. “종말”에 관한 내용까지. 그 증거는? 신약 성경 중 아마 가장 먼저 기록된 데살로니가 전후서는 “종말”에 대해서 고린도 전서 15 장 등 몇 장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이 종말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온전한 복음”을 전한 것이 분명합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역사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경륜 전체를 전한 것입니다.

그 짧은 기간 동안에 바울의 복음을 듣고 즉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라는 참 신앙의 열매를 맺게 된 것은 그들이 바울의 “하나님 말씀 전체”에 대하여 바른 교훈을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책임을 살펴볼 때 복음의 일부만 전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않될 것입니다. 특별히 자신의 교단 교리나 (캘빈 교리, 알리미안 교리 등), 혹은 종말론의 일부 주장만을 전하는 전도는 복음 전파가 아닙니다.

이 짧은 전도 기간에 바울은 “그들이 받을 환난”에 대해서도 언급을 결코 피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살전 1:6).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살전 3:4).

“부드러운 말” 듣기 좋아하는 마음에 만족을 주는 말만 전하면 결국은 그 마음을 영원히 복음에 대하여 닫아버리는 결과가 됩니다(사 30:10절과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십시오). 가려운 귀를 시원하게 해주는 말만 전하는 것은 그 귀를 영원히 복음의 말에 대하여 봉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말씀 전체”를 전하는 “바울 들”을 기뻐하셨고 그 말씀 전체를 다 받아 믿어 “하나님 자녀”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그처럼 기뻐하신 것입니다. “나의 소망이요, 나의 면류관”이라.

바울은 아직 “예수 믿지도 않은” 로마의 이방인들에게 “예수 믿으면 필연적으로 받게되 고난”에 대해서 먼저 말한 것입니다. 기독교 성도들의 고난은 자원해서 행하거나 피할 수 있는 선택의 이슈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렇게 지정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 16:33). 

바울은 예수님 말씀을 따르는 가장 충실한 종이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행 14:22), 디모데를 향해서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명했으며 (딤후 1:8),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딤후3:12).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벧전 4:16).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 즉. . . 하나님께 영광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마땅한데,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나의 영광, 나의 기쁨이라”고 말씀하신 사실을.


참 성도들은 신속하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는 그들이 참된 신자가 되었다는 증거, 곧 참 구원의 열매입니다. 바울은 이들의 참 믿음에 대하여,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살전 1:6). 그들은 사도들을 본받는 자들이 되었을 뿐 아니라, 모든 아가야 교회들에 곧 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살전 1:7).

다시, 꼭 상기해야할 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의 복음전도를 처음 듣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지 불과 “수 주일”이 되지 아니하여 “마게도냐 성과, 아가야 성의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된 것입니다. “수 주일 내에!” 이 점에서, 우리는 조금 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제자 훈련”에 관한 근본적 정신 (혹은 동기, 사고), 구원론, 성화론, 교회론 등 기독교의 가장 기본 교리들에 있어서 재검토 하고 “진정한 회개”에 대하여 성서적으로 재정리해야할 것 같습니다. “본이 되는 것”은 없어도 되고, 있으면 더 나은 선택적 신앙은 아닙니다. 필수적입니다. 아니면, 하나님께서는 왜 적어도 네 번 이상 바울을 통하여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되라”는 요구를 성경에 기록해 두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이나, 세상 사람들에게 본이 되지 못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전혀 성서적이 않습니다. 잘 아는 말씀이라도 행하지 아니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음,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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