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도 운동에 대한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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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도 운동에 대한 결론
  • 정이철
  • 승인 2014.09.22 11:06
  •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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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앙망하는자 2018-09-12 10:40:37
글쎄요....예수님의 12제자도 신학공부 안했고 어부이고 새리이고 민간인이었습니다. 높은 바리새인(지금의 목사님)에게 박해박고 대부분 순교하신걸로 압니다. 성경에도 일부러 하나님은 낮은자를 사용하시고 높은자라면( 모세의 경우)낮추시고 역사하신걸로 압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나를 모독하는 자는 용서를 받을수 있으나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는자는 용서치 않겠다고 하셨으니 함부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했거나 같은 체험이 아닌 다른방식으로 성경적으로 역사한 내용을 비판하면 주님이 용서치 않으시니 기도하면서나가야할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대로 12제자도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고 사회에 놀라움을 주어 바리새인의 질투를 받았고 그러다면 성경적이라는것은 기적이 일어나야 정상인것 같습니다.
나중에 주님이 재림하시면 100%진실을 알겠지만 함부로 판단해서 그때 주님께서 난 너를모른다라는 무서운 선언을 하실지 모르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살기로 했습니다.

기독인 2018-02-02 00:44:54
인터콥에 신사도적인 움직임은 아주 많습니다. 간사님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언을 합니다. 저도 많이 듣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이라는 것이 매우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이었습니다. 그 예언을 듣겠다고 많은 시간을 기다리곤 했지요.

바울처럼 2018-02-01 23:14:59
J. G. 메이첸, 『기독교와 자유주의』, 황영철 역, 복있는사람, 2013.

리디아님께 위의 도서를 읽어보시라고 권장합니다...^^
역사적 사실에 기인하지 않는 종교는 모두 허구입니다.
왜 이상한 글로 기독교를 허구의 종교로 몰고 가시는지,,,ㅡ,.ㅡ

그리고 그도 맞고 나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 성경 어디에 있나요?
님의 그 말씀이 하나님도 옳고 사탄도 옳다는 모순과 무엇이 다른지 궁금합니다.

바울처럼 2018-02-01 19:56:39
안녕하세요, 글읽는자님...^^
참 겸손해 보이는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겸손'이라는 포장지를 뜯으니 그 안에는 '무지'라는 내용물이 들어 있군요...ㅠ

님께서는 고신의 신학적 사상과 신사도운동의 사상을 둘 다 섭렵하며 그 둘을 적절하게 적용한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였습니다.
정말로 고신의 신학을 공부해보니 신사도운동의 사상과 함께 할 수 있던가요?
님께서 정말 두 사상에 대해 깊이 공부하셨다면 둘 중 하나는 버려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으셨을텐데 엉뚱하게 둘 다 끌어안고 가신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것은 마치 한 손에는 예리한 칼의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은 예리한 칼의 칼날을 잡고서 적과 칼싸움을 하기위해 서있는 모습입니다.
그 자세로 적을 상대할 수 있습니까?
적에게 당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예리한 칼날에 의해 자신의 손이 절단나지 않을까요?

바울처럼 2018-02-01 16:00:51
리디아님의 글을 읽으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전형적인 타협주의적 모습이 느껴집니다.
리디아님의 주장이 옳다면 리디아님의 주장처럼 우리 모두는 가말리엘처럼 되어야 할까요?
그러나 우리의 판단은 성경 안에서 답을 얻어야 겠지요?

열매를 보고 나무를 판단하듯 우리는 성경에서 가말리엘의 회심에 대해 아무런 서술이 없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가말리엘은 그 이후로 성경에서 등장하지 않습니다. 즉, 그가 진리를 믿고 회심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리디아님께서는 단지 가말리엘의 제안으로 인해 사도들이 풀려났다는 이유때문에 "혹시 이러한 일들이 하나님의 일일지도 모르니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는 불확실성에 기인한 주장을 하시고 있습니다.
저는 리디아님의 그러한 주장은 확고한 믿음에서 기인한 주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확고한 믿음은 말씀을 묵상할 때 성령님께서 주시는 깨달음에서 온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가말리엘의 주장을 정치, 종교적인 목적으로 보고 싶습니다.
당시 산헤드린 공의회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대립이 있었고 또한 행 5:17에 보다시피 사도들을 옥에 가둔 사건은 사두개파 사람들이 벌인 사건이었습니다.
리디아님께서도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의 신앙이 다른 것은 알고 계시겠지요?
바로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해석의 차이입니다.
바로 이 부활의 문제가 행 4:2에서도 사두개인들이 사도들을 핍박하는 이유로 나옵니다.
만약 이 사건에서 가말리엘이 침묵했다면 그가 속한 바리새파는 죽은 자들의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파의 신앙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상황만큼은 막아야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한 산헤드린 공회 안에서의 정치, 종교적으로 예민한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인격과 신망이 제일 두터웠던 가말리엘의 불안감을 심어주는 제안이 모든 사람들에게 먹힌 것입니다.
물론 그 상황에서 각자의 마음에 불안감을 심어준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결론은 무엇일까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던 가말리엘은, 사두개인들의 주장에 동조할 수 없는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신앙적 이유가 있었으며 당시 상황에서 사두개파의 주장에 동조하는 순간 바리새파의 정치적 위세는 곧 종교적 위세의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어이없게도 사도들의 정죄를 막아야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즉, 사도들의 부활에 대한 주장은 바리새파의 신앙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만약 죽으 자들에 대한 부활을 죄로 정죄한다면 그것은 바리새파 스스로 자신들의 신앙노선에 치명타를 가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가말리엘(바울의 스승)이기에 당연히 사도들의 무죄를 주장해야 할 매우 엄중한 상황이라고 직감했을 것이며 또한 그 문제를 교리적으로 싸운다고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기에 듣는 누구에게나 불안감을 심어주는 저러한 설교로써 (세상적으로 볼 때 상당히)지혜롭게 제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리디아님의 행 5: 35, 39을 인용한 본 주제에 대한 중용적 제안은 확고한 믿음 안에서의 제안이 아니며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에큐메니칼한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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