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분별 다비드라는 익명의 독자께서 '독자마당'에 '바른믿음에 드리는 부탁의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올리신 글의 일부이다. 원글의 분량이 많아 나누어 소개하려고 한다. 익명의 독자들이 '독자마당'에 올리는 글에는 때로 <바른믿음>이 견지하는 노선과 약간의 차이가 있는 내용이 있기도 하나, 가급적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더 많은 분들이 읽도록 소개하려고 한다)

우리 성도들은 터 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각기 쌓은 공적이 어떠한지 불로써 드러날 터인데(고전3:12) 인정되지 않는 공적은 불타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성도의 믿음은 믿음의 창시자이신 예수그리스도께로부터 온 것이고, 이 믿음은 아시다시피 은혜에 속하며 하나님의 선물이고,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이 믿음에 의해 자신의 자율의지를 사용하여 행함으로 쌓은 공적은 냉수 한 사발 같더라도 짚과 풀처럼 불에 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에 의해 하루 이십사시간 내내 자신의 자율의지를 사용하여 행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의 현실이고, 그럼에도 이미 성도들이기에 있는 믿음을 의지하여 온전히 하나님아버지의 도우심을 구하면 돌아온 탕자도 외면치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행하는 행함이 이십사시간 전체에까지 미치도록 도우시고 인도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서두를 시작함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하는 성도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성경말씀이 선포하시는 기본적인 기준과 분별을 제시하는 것이 인터넷 신문사 <바른믿음> 세워진 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2,000여개의 도시에서 찾아보고 있는 <바른믿음>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성도들에게 가져야만 하는 기본적 입장은 수많은 교파와 교단을 달리하는 독자들 앞에서 명확합니다. 개신교가 공통분모로 가지는 기초교리를 중심으로 사용하며 그 외의 부분은 오직 성경말씀이 기준이 된 <바른믿음>의 입장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수많은 교파와 교단을 달리하는 독자들 앞에서 중심이 잡힌 <바른믿음>의 입장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을 바른믿음이 성도들 앞에 실제적으로 적용함에 있어 최근에 <바른믿음>이 다루고 있는 이슈를 이용해 의견을 제시해 보려 합니다.

▲ 거짓 부활복음 창안자 김성로 씨(춘천한마음교회 담임목사)

 

춘천한마음교회(김성로 목사)에 대하여

부활복음 논란이 일고 있는 한마음교회는 십자가와 부활을 분리한 것으로 인하여 여러 논란이 양산되었습니다. 우선 하늘성소 제사와 관련된 논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제사에 관한 성경적 해석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잘 아시다시피 십자가가 곧 하늘성소의 제사이며 우리의 죄를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대속하셨으며 성소 휘장이신(히10:20) 예수님의 육체로 우리에게 살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이것은 다 아실 내용이니 짧게 넘어가고,

두 번째, 구약시대 대제사장이 제물을 잡고 그 피를 성소에 뿌림으로 완성된 제사를 비교한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 해석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분명한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속죄 즉, 대속이 완성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때에 지성소 휘장이 찢어져 열리며 대속으로 인한 인류와 하나님과의 화목의 물꼬가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타나심으로 이때 모든 인류가 아닌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의 공식적인 되찾음(redemption)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지금 이십일세기에도 믿음으로 예수님의 보배피를 의지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들이 중보자 되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안에서 되찾음(redemption)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 나타나심은(요20:17;요20:27;히9:12) 성경해석 범주 안에 있는 해석입니다.

분명한 것은 영원한 한 제사는 십자가에서부터 자기 피를 힘입어(히9:12) 하나님 앞에 나타나심까지입니다. 거기까지가 한 번의 제사입니다. 이 한 제사에 대해 성경이 정의한 선포는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고전2:2)입니다.(십자가에 달리심부터 승천하심까지를 한 제사의 과정으로 보는 이 견해에 대해 바른믿음은 동의하지 않는다. 완전한 하늘의 제사는 그리스도가 지상의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완성되었었다(요 19:30). 이후 '하나님 앞에 나타나심'(히 9:24)은 지상에서 속죄제사를 완수하신 그리스도가 본래의 자리에 복귀하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십자가의 흔적있는 몸을 보이시며 속죄가 완성되었음을 보고하심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편집자 주) 

그런데 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님은 십자가로는 부족하고 하늘성소에서 다시 제사를 드려야한다고 여러 번 표현하므로 두 번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확인해보았지만 분명히 ‘다시’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표현상의 실수라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입니다.

기독교이단대책협회에서 김성로 목사에게 드리는 제언에서 기독교이단대책협회는 대속과 구속의 개념과 대속과 구속이 단 한 번의 제사로 이루어짐을 알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김성로 목사는 답변서에서 단 한 번의 제사를 인정하면서도 더해서 여전히 십자가제사에서 부활과 구속이 없음을 강조해 십자가제사 범위를 오해할 수 있는 표현을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 전체가 복음이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심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 복음의 핵심부분에 속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말씀이신 성자하나님을 성육신하게 하셔서 참인간이 되게 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게 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믿는 산자들을 구속하시는 주가 되게 하신 사실을 성경말씀이 축약하여 무어라고 선포하시는지 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6:14)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선포하시고 있습니다. 다른 구절 말씀도 반드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고전2:2;엡 2:16;골 2:15) 성경말씀이 그렇게 개념을 정의하시고 그렇게 선포하시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을 얻었으며 이뿐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에서 ‘십자가’로 선포되는 사건과 개념 속에 부속되는 사건이며 부속되는 개념인 것입니다. 

이 십자가와 부활을 분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보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로 믿고 영접할 때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내용을 다 믿고 영접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말씀이신 성자하나님을 성육신으로 참인간이 되게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믿는 산자들을 구속하시는 주가 되게 하신 사실을 모두 믿고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며 구주로 영접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참인간으로 죽으시고 참인간으로 부활하셔서 우리들의 주가 되신 사실을 믿지 않고 부인한 상태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받는 일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고 성도라 칭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 중에는 복음의 핵심부분의 사실을 하나라도 믿지 않고 구원받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부활이 확실한 증거이며 믿을만한 증거인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부활만이 확실한 증거이며 부활만이 믿을만한 증거일까요? 확실히 아닙니다. 예수님의 성육신도 동정녀 탄생하심도 확실한 증거에 속합니다. 그 외에 다른 증거들도요.

예수님의 하나님이시며 구주가 되심의 증거는 오직 믿음 안에서만 효력이 가능한 증거입니다. 분명히 밝혀놓지만 지적동의는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말씀은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죽은 자가 부활하여 전하면 믿을 것이라며 간청했던 부자에게 나사로를 품고 있던 아브라함은 단언합니다. 모세와 선지자의 글, 바로 성경말씀을 전해도 믿지 않는 자는 죽은 자가 부활하여도 믿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아무리 부활 자체가 지적동의 할 수밖에 없어도 성경말씀을 전했을 때 끝까지 믿음을 거부한 자는 부활이란 증거가 있어도 역시 믿지 않는다는 성경말씀의 선포인 것입니다.

사실은 이 부활만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복음의 핵심부분 전체를 모두 다 전할 때보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믿을 수 있는 기회의 폭을 인위적으로 제한하여 제한된 복음전도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며 보통의 복음전도보다 사실상 뛰어난 복음전도 방법도 아닌 것입니다. 또한, 행여라도 부활전도로 얼마든지 사람들을 구원시킬 수 있다고 가르쳤거나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잘못되게 믿기라도 한다면 ‘유사행위구원’으로 빗나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행여라도 이렇게 가르쳤거나 적어도 구원시킬 수 있다는 잘못된 분위기로 팽배하게 만들었다면 사과와 함께 반드시 고쳐야 됩니다.

성도에게 부활이 갖는 성경적 의미는 김성로 목사의 주장과는 조금 다릅니다. 성부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참 인간이 되시고 우리를 위하셔서 참인간으로서 죽으신 성자하나님을 참인간으로서 살리신 이유를 성경에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기까지 낮아지시고 죽으시기까지 순종하셨기 때문이라고 증거합니다.

무명의 논객 Titus Kim님이 예전에 언급하셨던 것처럼, 칼빈은 이를 가리켜 예수님의 의로우심의 증거로, 헤르만 바빙크는 예수님에게 주어진 산헤드린공회와 빌라도의 정죄 선고에 대한 하나님의 선고파기로 표현했습니다. 이 예수님의 부활은 죄와 죽음의 세력에 대한 승리와 예수님께 대한 하나님 편에서의 의의 선포임과 더불어 장차 우리 부활에 대한 보증이라는 차원에서 강조돼야 함이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이시기에 그에게 붙은 모든 성도들 역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예수님의 의로우심과 죽음에 대한 정복, 모든 신자의 부활의 보증이라는 차원에서 강조돼야 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복음의 핵심 부분이 되는 사실을 모두 믿고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며 구원받습니다. 부활을 빼고 믿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또한 앞서 말씀드렸듯이 부활은 십자가 사건과 개념에 부속되는 사건과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부활을 통해서도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며 깊어지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성도들에게 부활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친히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증거하심도, 예수님께서 친히 하나님께서 친아버지이심을 선포하신 것도(요5:18)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임을 친히 선포하심도(요2:22) 그밖에 여러 증거들도 모두 사실임을 ‘재확인’ 시켜줌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구주로 더욱 믿게 하는데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쓰실 수 있으신 도구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부활을 통해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분께 피조물인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충성함이 합당함을 믿게 되어도 이는 아직도 깊고 성숙한 믿음에 이르기까지 자라가야 될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십자가에 머물지 말고 부활에까지 나와야 한다”는 김성로 목사의 주장은 성경도 하나님의 뜻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망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을 성육신으로 참인간이 되게 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산자들을 구원하신 주가 되게 하신 사실을 모두 믿습니다. 즉, 우리의 믿음의 핵심부분이며 시작 속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성도의 믿음 속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말씀과 삶을 통해서 성경말씀 그대로이시며 성경말씀을 절대로 어기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알아가게 될 때에, 우리의 믿음이 전인격적으로 깊어가며 자라가게 되며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도 함께 깊어가고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아버지께 옳다 인정받는 믿음인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갈5:6) 전인격적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뿌리가 깊어야 하듯 이 믿음은 복음의 핵심이고 우리 믿음의 시작이며 뿌리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고전2:2)을 깊이 알수록 깊이 있고 균형 있게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무한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참인간이 되시기까지 낮아지신 이유도, 피조물 그것도 타락해버린 피조물인 우리를 위해 죽으신 이유도(요3:16) 십자가를 앎이 없이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즉, 십자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십자가에서 확실하게 증명해주신 사랑이(롬5:8) 실제로 어떠한 것인지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성경에서 선포한 정의대로 구원이며 우리를 구원케 하신 사랑을 아는 열쇠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한사람을 찾아봅시다. 마가는 아시다시피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직접 증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1차 전도여행을 떠날 정도로 열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1차 전도여행 중의 마가는, 세상 입장에서는 세상이 마가를 감당치 못하기에는 마가는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마가 입장에서는 1차 전도여행 중에 마가가 만난 세상은 마가가 이기기에는 그의 믿음은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이는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고 갈라서는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가를 포기하시지 않으셨고, 바나바를 통해서 양육시키시고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의 사람으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도 말년에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며 마가를 찾았으며 베드로에게 아들이라 칭함 받는 동역자가 되었고 마가복음의 기록자로 사용되었습니다.

마가도 성화의 과정을 거쳐 갔고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는 바울의 고백과 같이 복음의 핵심이고 우리 믿음의 뿌리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갈6:14)를 깊이 알게 됨으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갈5:6) 세상을 이기도록  온전한 성화를 이루어 갔음을 성경에 기록된 마가의 삶으로 능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십자가를 알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온전한 성화를 이루어 가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은 요원한 것이 됩니다.(요14:21;요일4:20;요일3:16;롬5:8;요13:34;갈5:6). 그러므로 “죽은 십자가에 머물지 말고 부활에까지 나와야 한다”는 주장은 성경도 하나님의 뜻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온전한 성화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망언인 것입니다.

이렇게 한마음교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바른믿음이 해야 될 일은 한마음교회와 김성로 목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서 자신이 속해 있는 정통침례교단의 신앙고백을 전적으로 인정하며 따르고 수용하는지를 먼저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정통침례교단의 신앙고백을 인정하고 따르면, 그 동안 김성로 목사가 잘못 가르친 다음의 내용들:

1)
‘다시’ 제사 드린다고 표현하여 두 번 제사로 오해할 수 있게 가르치고 주장한 것(김성로 씨는 실제로 두 번의 제사 이론을 주장하였음, 편집자 주) 
2)하늘에 오르셔서 드린 제사만이 영원한 한제사로 오해할 수 있게 가르치고 주장한 것(김성로 씨는 실제로 하늘에서 드린 두 번째 제사가 완전한 제사라고 가르쳤음, 편집자 주) 
3)부활은 십자가에 부속된 사건이며 개념으로 성경이 정의하며 선포하시는데 이를 무리하게 분리한 것
4)
부활이 믿을만한 확실한 증거라며 믿음의 속성을 간과하고 오히려 복음 전도를 제한한 것
5)
믿음의 속성을 간과하고 자칫 유사행위구원으로 빗나갈 수 있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
6)
예수님의 의로우심과 죽음에 대한 정복, 모든 신자의 부활의 보증이라는 차원에서 강조돼야 하는 부활의 본래의 의미를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과 구원의 주축되는 증거로만 강조한 것
7)
세상을 이긴 믿음과 온전한 성화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결국 성경도 하나님의 뜻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죽은 십자가에 머물지 말고 부활에까지 나와야 한다”는 망언을 주장한 것
8)
부활은 성경에서 정의하고 선포한대로 십자가에 부속되는 사건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이해해야만 되는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공표해야 하며, 문제들을 모두 수정할 것을 요청해야 합니다
이단정죄는 그 이후의 수정결과에 따라서 결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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