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도 운동의 기원, 발전(4)

4.80년대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

수 십년 동안 소멸되어 잠적했던 늦은 비 운동은 80년대에 캘리포니아에서 또 다른 양상으로 부활하였다. 그것은 존 윔버(John Richard Wimber, 1934 - 1997)가 일으킨 빈야드 부흥운동이었다.

▲ 존 윔버

빈야드 운동을 살펴보기 위해 먼저 그 창시자인 존 윔버 목사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자. 그는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였고 목사가 되기 이전에는 오랫동안 재즈음주단의 키보드 연주자로서 활동하였다고 한다. 1963년에 기독교인으로 개종하였고, 캘리포니아의 Yorba Linda 시에 있었던 신비주의 종파인 퀘이커 교회(Quaker church)에 출석하기 시작하였다. 존 윔버는 특별히 성경공부 그룹을 인도하는데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1970년에 그는 11개의 성경공부 그룹을 인도하고 있었는데 참여하고 있는 전체 인원이 500명이 넘었다. 존 윔버는 빈야드 운동을 일으키기 전에도 나름대로 왕성한 활동을 통하여 그 이름이 상당히 알려져 있었다. 그는 1974년에 또 플러신학교가 창설한 전도와 교회성장을 위한 찰스 플러 재단(Charles E. Fuller Institute of Evangelism and Church Growth)의 교회 성장 디파트먼트의 (Church Growth Department)의 이사직을 맡기도 했다.

1977년부터 존 윔버는 자신의 집에서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성경공부와 예배드리기 시작했다. 작은 개척교회를 시작한 것이다. 존 윔버는 1978년 전도와 교회성장을 위한 찰스 플러 재단의 교회성장 디파트먼트 이사직을 사임하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개척교회에 힘을 쏟았다. 이 교회는 성장하면서 존 윔버 자신이 많은 영향을 받은 퀘이커 교회의 성향과 은사주의 운동(the Charismatic movement)성향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2년 정도 후에는 이 교회가 더 성장하여 인근 고등학교의 체육관을 빌려 예배와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존 윔버의 중심적인 활동무대였고, 빈야드 운동의 중심지였던 애너하임 빈야드 교회(the Anaheim Vineyard Christian Fellowship)은 이렇게 탄생하였다.

이 무렵에 존 윔버는 자신의 그룹을 이끌고 척 스미스(Chuck Smith) 목사가 인도하는 갈보리 채플(Calvary Chaple)로 합류하였다. 그러나 설교 스타일, 성령의 은사, 세대주의 사상 등에 대한 상호간의 현격한 입장 차이로 인하여 1982년 존 윔버는 다시 갈보리 채플에서 탈퇴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소규모 교회들의 연합모임이었던 켄 걸릭슨(Kenn Gulliksen)목사가 이끌고 있던 Vineyard Christian Fellowships으로 합류하였다. 존 윔버가 그때 가입한 Vineyard Christian Fellowships을 중심으로 훗날 전 세계적인 빈야드 운동(Vineyard Movement)이 일어나게 된다.

존 윔버의 빈야드 부흥운동의 특징을 한 단어로 표현하는 용어가 있다. 그것은 “능력전도”(Power Evangelism)라는 말이다. 능력전도라는 말은 존 윔버가 추구했던 가장 중요한 그의 목회사역의 핵심 포인트였다. 존 윔버는 불신자들을 구원하고, 기존의 신자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God's Power)을 그들의 삶의 상황에서 직접 대면(encounter)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존 윔버의 능력전도의 이론과 사역의 특징을 설명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단어들이 있다. 그것은 “기사와 이적”(signs and wonders)라는 단어들이다. 존 윔버는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통로가 기사와 이적이라고 했다. 성령이 일으키시는 각종의 기사와 이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면 그리스도의 복음에 저항하던 사람들의 완고한 마음이 무너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더욱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존 윔버가 강조했던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성령의 기사와 이적은 주로 병고침, 예언,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과 같은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다른 사람의 은밀한 죄를 알아내는 특별한 지식도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성령의 이적이라고 그는 가르쳤다. 하나의 사례를 들자면, 존 윔버는 비행기에서 처음 만난 남자가 부인 몰래 간음의 죄를 즐기고 있는 것을 영감으로 알고서 그에게 그 사실을 은밀하게 말하여 줌으로 그를 심리적으로 압도하여 전도했다는 사례를 그의 책에서 소개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정말 위험스러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숨겨진 죄를 들추거나 특별한 과거사를 알아맞히는 일은 점하는 귀신이 들린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존 윔버는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대면하게 만드는 성령의 기사와 이적이 풍성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들에게로 빨리 전파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현대 서구의 교회에서는 성경공부, 교리, 지식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성령의 기사와 이적을 통한 능력전도가 나타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현대 교회가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이라고 외쳤다.

존 윔버가 이렇게 당당하게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단순했다. 그는 실제로 그러한 방식으로 자신이 개척한 교회를 크게 성장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는 개척 초기부터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치유사역에 대한 내용을 연속으로 설교하면서 예수님이 병자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병든 사람들을 위한 치유기도를 시작했다. 처음 10개월 동안 단 한 건의 치유의 사례도 나타나지 않았고, 부흥이 되기는커녕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 교인 수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고통을 맛보았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치유에 관한 설교를 하였고 병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드디어 10개월째 되던 때에 처음으로 한 여성도에게서 최초의 치유가 일어났다. 그때부터 치유되는 일들이 점점 증가되었고 전도가 왕성해져서 교인의 수도 늘기 시작했고 교인이 6,000명으로 불었다. 이러한 결과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러한 주장을 당당하게 펼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부흥운동에는 성령의 역사라고 볼 수 없는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크게 우려하였다. 그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사람들이 진동하는 현상, 고꾸라지는 현상, 술 취한 듯한 행동, 몸부림치거나 경련을 일으키는 현상, 흐느껴 우는 현상 등의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지만, 그는 계속 그 모든 일이 성령의 임하심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현상들이라고 가르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존 윔버의 사역은 점점 위험스러운 길로 치달았다. 그는 자신의 사역을 성경으로 검증하려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책을 경배하지 말라!”라고 하였고, “그들에게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이 아니라) 성경 하나님이 있다!”라면서 조롱하였다. 그는 어떤 세미나에서 “여러분이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며 규제하는 어떤 것을 교리 뒤로 숨기면 그것은 죄입니다 ... 현재 교회들은 건전한 교리라는 이름으로 죄악을 범하고 있으며 성령의 역사를 소멸시키고 있습니다!”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존 윔버와 매우 친했던 다른 빈야드 운동가는 집회를 인도하면서 “순식간에 나는 성령을 불러 내릴 것입니다 .... 그러면 여러분이 본 적이 없는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 그렇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 또한 여러분이 보게 될 일들을 이성적으로 평가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 부흥을 교리로 시험하게 되면 반드시 불이 꺼지게 될 것입니다”라는 황당한 말을 하여 사람들을 크게 충격받게 하였다. 그리고 존 윔버의 교회의 한 여직원은 예배 중에 일어서서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행하려 하시는 것을 우리의 생각으로 판단하고자 하지 않으며, 당신의 일을 우리의 빈약한 교리로 시험하려 하지도 않습니다!”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성경말씀과 건전한 교리들을 단호하게 내팽개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하였던 것이다. 정말 받을 수 없는 해괴한 논리가 등장하여 교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러한 주장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역시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들의 교회에 모여들었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수와 사람들이 흥분하는 정도가 곧 진리의 척도로 오해되었던 것이다. 성경말씀과 건강한 교리를 무시하면서 다양한 현상을 체험하는 것을 중심으로 일어난 부흥의 실상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빈야드 집회의 실제 영상들이 인터넷 상에 많이 있다.사람들이 개처럼 짓고 바닥을 구르기도 하고 누워서 떨기도 한다. 정말 미친 사람들의 축제였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빈야드 운동에 대한 심각한 논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빈야드 운동을 통하여 다시 살아난 수십 년 간 잠적했던 늦은 비 운동의 요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직접적으로 성령의 은사와 능력이 전달된는 임파테이션(impartation, 능력의 전이) 현상이었다. 임파테이션이란 늦은 비 운동의 핵심사상으로서 다시 등장한 사도와 선지자들이 안수하거나 기도하거나 다른 행동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성령의 능력, 기름부음(?)을 전달하는 행위이다. 이것이 빈야드 운동이 순식간에 전 세계에 확산될 수 있었던 힘이었다. 사람들이 그들의 집회에 참석하여 뭔가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을 경험하였고, 그것을 성령의 기름부으심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쉽사리 인위적으로 그런 체험을 확산시켰다. 성령이 인간에 의해 조정될 수 있다는 비성경적인 사상이므로 우리는 결코 이 사상을 용납할 수 없으며, 실제로 그러나 일이 일어날지라도 그것은 사단의 장난임을 직시하고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빈야드 운동을 창시자 존 윔버의 목회사역에 늦은 비 운동의 임파테이션, 즉 마귀의 거짓 성령의 기름부음의 현상이 본격적으로 개입되기 시작한 때는 1979년 5월의 어느 주일 밤이라고 판단된다. 존 윔버는 자신의 교회의 저녁 예배에서 설교하도록 한 설교자를 초청하였다. 그 설교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없지만, 미국의 대표적인 신사도 운동 연구가인 행크 해너그라프(Hank Hanegraaff)는 그가 동성연애자였으며, 최면술사였고, 1993년에 에즈로 인하여 사망했다고 말한다. 그는 설교를 마치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교회는 너무나 오래 동안 성령을 거슬려 왔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불이 꺼져있습니다. 이제 다시 성령이 오셔서 다스리시도록 성령을 초청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성령님 오시옵소서!”라고 말하였다. 바로 그 순간부터 이전에 본적이 없었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음은 그 날의 체험에 대해서 존 윔버가 직접 남긴 기록이다.

“사람들이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방언을 믿지 않던 사람들이 큰 소리로 방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설교가가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기도를 해 주면 기도를 받은 사람에게 성령이 임해서 즉시 넘어졌습니다.”

존 윔버의 아내 캐롤 윔버도 그 교회에서 이러난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이 경험이 1979년 어머니 날에 일어난 일에 대한 기록인지 또 다른 날에 일어난 일에 대한 기록인지는 불명하다.

“팀이라는 사람이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습니다. 팔을 퍼덕거리다 넘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마이크 스탠드를 팔로 치는 바람에 스탠드와 함께 넘어졌습니다. 그러면서 마이크 줄이 엉키는 바람에 마이크가 침의 입 가짜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때 팀은 방언을 하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마이크를 통해 온 교회에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 젊은 사람들이 몸을 떨면서 우르르 쓰러졌습니다. 마치 전쟁터 같았습니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널브러져서 울고 몸부림치고, 방언하고, 소리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팀은 중앙에서 마이크에 대고 방언을 하고 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존이 피아노를 치며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직원은 두려움에 떨며 화를 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 버렸습니다. 그 후로 화를 내고 나가 버렸던 사람들은 다시는 보지 못했습니다 ....

저는 바닥에 누워 있는 한 소년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지금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니?’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 같아요, 움직일 수가 없어요.’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몸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처음부터 교회를 죽이기 위한 마귀의 거짓 능력이 드러나는 운동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빈야드 운동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한국의 주요 교단들도 이미 소속 교회들과 목회자들에게 엄중히 경계하게 하였다. 장로교 통합교단에는 1995년 81회 총회에서 “도입금지” 결정을 내렸고, 장로교 고신교단에서도 1996년 46회 총회에서 “참여금지” 처분을 내렸고 다시 2007년 57회 총회에서 “빈야드성 유사운동 집회 참여금지” 결정을 내려 경계하게 하였다. 장로교 합동교단에서도 1997년 82회 총회에서 “참여자, 동조자 징계”를 공고하였고 기독교성결교단에서도 1998년 53회 총회에서 “사이비성 있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