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굮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말할 때 ‘죽음(십자가)와 부활’이라고 단순하게 규정하는 모습을 본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총제이다. 카알 발트는 은혜의 선택을 복음의 총화라고 했다 (CD., II/2, 3ff). 복음은 죄사함 그리고 하나님과 화해이다. 성자 하나님께서 영원한 구원 경륜(pactum salutis)를 이루는 중보자로서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시며 중보하시며 마지막 날에 심판하시고 영원한 중보자로서 택자에게 영원한 경배와 찬양을 받으신다.

‘오순절’을 강조하며 체계화한 것이 오순절주의이다. 오순절주의는 성경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종교체험에서 시작해서 사도행전 2장 등에서 등장하는 방언을 붙여서 체계화했다. 자기 경험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오순절주의는 세계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신사도 운동까지 연결되고 있다.

‘십자가’만을 강조하며 십자가 정신, 십자가 죽음, 헌신, 순교 등을 강조하는 형태는 인터콥, 복음학교 등이라 생각한다. ‘십자가’를 함께 죽음을 불사한 순교 각오로 사지(死地)와 오지(奧地)로 들어가야 한다는 프론티어 정신까지 연결시켰다. 그러나 복음의 헌신, 열정을 강조하며, 선교를 강조하지만, 십자가 구속의 의미는 외면한다. ‘십자가’란 이름으로 십자가 구속 의미를 제거하고 단순하게 죽음에 이르는 종교적 헌신과 선교를 하게하는 기폭제로 사용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

‘부활’을 강조한다는 김성로 목사(춘천 한마음교회)가 있다. 김 목사는 ‘바른 부활 개념’을 개조하여 ‘만들어낸 부활 개념’으로 체계화했다. 김 목사은 부활을 하늘 성소에서 행할 완전한 제사를 위한 단계로 전락시켰으면서, 부활 신앙이라고 이름 붙여 자랑한다. ‘바른 부활’의 가르침은 ‘부활의 주’께서 ‘첫열매’로서 ‘모든 택자가 가질 부활의 소망과 능력’이다.

김 목사의 견해처럼 ‘하늘 성소 제사로 가는 일련의 과정’이 아니다. 김 목사는 ‘부활 복음’이 아니라 ‘하늘성소에 완전제사’를 자랑해야 좀 더 합리적인 체계일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전체를 한 경륜으로 이해하지 않고 각각 구별하여 차등을 두었다. 이러한 내용은 전자의 경우에도 유사한 경우이다. 부활 신앙을 강조한다고 하면서 거짓된 부활 내용으로 십자가 구속을 폄훼한다. 이러한 경향은 자유주의와 현대신학 사조에서도 등장한다. 더 새로운 것이 옛 것보다 더 우월하다는 논리이다. 복음은 모든 과정이 동일하게 중요하며 진리이다.

‘십자가 복음’이란 이름으로 십자가 구속의 큰 의미는 제거한 체 희생과 고난만을 강조하여 어떤 목적을 이루는 것은 단순한 종교적 열정에 불과하다. ‘부활 신앙’이란 이름으로 부활의 참된 의미를 제거하고 ‘만들어낸 부활 목적’으로 ‘부활 신앙’을 강조한 위장한 가르침이다.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복음 전체 도식에서 중요한 일부이다. 일부 복음만으로 충분한 복음이고 모든 복음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동일한 이름 안에 틀린 내용으로 주입하여 위장시켜 주장하며 고집하면 미혹하려는 목적 밖에 찾을 수 없다.

복음은 항상 전 체계와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전체 복음을 듣고 전체 복음으로 산다. 설교자는 복음 전체를 전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3주(3번 설교)했는데 재림 신앙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한 교회이다. 사도 바울이 죽음과 부활만 전한 것이 아니었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복음 전체를 정확하게 증거하였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재림 신앙을 정확하게 믿었고, 과도하게 집착해서 바르지 못한 믿음의 모습까지 나타났다.

한국 교회가 지금도 복음을 ‘죽음과 부활’이라고 쉽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며, 중보자께서 죄사함과 화해를 이루신다. 예수는 지금과 영원토록 중보 사역을 이루는 신자의 주(主)이시다. 다른 복음과 부분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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