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알 수 없음이라”(요 15:5).

하나님의 큰일에 도전하기 위한 큰 믿음의 기초는 무엇일까? 그것은 너무나도 간다하고 평범하다.  평소에 꾸준히 영적인 건강을 유지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운동선수가 중요한 큰 게임이 아직 멀었을지라도 자신의 몸의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탁월한 재능을 가졌어도 몸 관리가 부실하여 근육과 신경이 무디어지면 반드시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이게 된다. 관심이 집중되는 큰 게임에서 팬들에게 선보이는 유명한 운동선수들의 탁월한 기량은 원하는 때마다 총알처럼 자동적으로 발사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은 평소의 연습과 관리를 통하여 몸의 기량이 계속 유지되고 준비 된 만큼 나타난다. 

영적인 실력도 마찬가지이다. 평소의 믿음이 둔해지면 꼭 필요한 중요한 때에 믿음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평소에 잘 연마된 건강한 믿음이어야 중요한 때에 큰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므로 평소에 지속적으로 은혜를 공급 받으면서 믿음을 건강하게 가꾸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큰일을 감당하는 큰 믿음의 사람의 특징이다. 평소에 그 믿음이 시들시들했던 사람이 중대한 상황을 만나자 갑자기 믿음이 벌떡 일어나는 일은 없다. 

큰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남들에게는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번개같은 믿음의 주인공이겠으나, 사실 그 본인에게는 평소 믿음의 연장일 뿐이다. 다윗이 돌을 던져 골리앗의 이마를 깨는 장면을 보라! 다윗이 갑자기 처음으로 돌을 던져서 골리앗의 이마를 깨뜨렸던 것일까? 그는 양들과 함께 들판에 있을 때, 매일 쉬지 않고 돌을 던졌다. 이순신 장군이 활 쏘기를 매일 쉬지 않고 반복했다고 난중일기에 기록했듯이, 다윗도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 매을 돌을 던지면서 기량을 연마했었다. 그러다 진짜 사자와 곰이 나타나는 날이면 제대로 준비된 실력을 발휘해 보았다. 그렇게 준비된 실력과 자신감으로 인해 천하의 거장 골리앗을 향해 돌을 들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삼상 17:36).

오직 평소에 건강한 믿음을 지키고 유지하는 사람이 중요한 때에 큰 믿음의 도구가 된다. 언제나 하나님의 큰일을 행하는 탁월한 믿음의 근원은 그 자신의 착실한 일상에서 시작된다. 매일 매일의 건강한 믿음이 근본이다. 

지상의 모든 것은 유한하다. 모든 사물은 외부로부터 에너지원이 공급되는 동안에만 움직인다. 뜨겁게 타는 불도 더 이상 탈 나무가 없으면 꺼진다. 제 아무리 세계적인 명차라도 기름이 떨어지면 바로 그 순간 멈추어서 주인을 괴롭게하는 물건이 되고 만다. 음식과 멀어지면 모든 육체는 기력을 잃는다. 우리 보기에 태양은 영원히 자가발전하는 것 같지만, 과학자들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태양의 열기도 매년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다.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믿음도 그렇다. 결코 우리의 믿음은 영원하거나 스스로 존재하지 못한다. 죽음 이후에 하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대하는 영원한 하늘의 안식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 땅에서 우리의 믿음은 유한(finite)하다. 또한 세상의 영향을 받아 변하기 쉽고 오염되기도 쉽다. 성경에도 그만 세상의 영향을 받아 믿음이 식어버리고, 변질되어 버린 사람들이 나온다. 바울 사도가 아끼고 사랑하였던 제자 중에도 그러한 사람이 있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딤후 4:10). 

결코 우리의 믿음은 가만 두어도 저절로 유지되고 자라는 것이 아니다. 죽음 이후에 하나님이 성도에게 주시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기까지 우리의 믿음은 자라기 위해 영양분이 필요하다.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 관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돌보심과 공급하시는 은혜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유지와 성장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의존!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이것 없이는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성장하고 유지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알 수 없음이라”(요 15:5).

그만 시험에 들어 믿음을 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다행히 믿음을 버리지는 않지만 제 구실 못하는 나약한 믿음을 간신히 유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시험을 만나서 그렇게 되는것도 평소에 믿음이 건강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지속적으로 공급해주시는 은혜를 매일 체험해야 한다. 무미건조한 교회생활을 지속하면 믿음은 반드시 시들어진다. 예외는 없다. 필요할 때마다 공급받는 은혜가 없으면, 사탄을 이기고 물리칠 수가 없다. 하물며 예기치 않게 사명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큰일을 감당할 가 있는가? 일상에서 공급받는 은혜가 없으면 갑자기 주어지는 하나님의 큰일을 감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쓰실 사람에게 미리 많은 연단을 주시는 것이다. 연단이 없는 사람에게는 쓰실 일도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엘 그레코 작, '눈물 흘리는 베드로'

나는 예배에 늘 지각하는 성도들을 보면 항상 마음이 편치 않다. 기도하지 않고, 기도할 줄도 모르는 성도들을 보면 애처롭다. 10년이 넘도록 교회다니고서 식사기도도 못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으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을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 성도들을 보면 분노한다. 성경을 공부하는 모임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성도들을 보면 참으로 답답하다. 사탄이 자신들을 넘어뜨려죽일 기회만을 엿보고 있는데, 아무런 방비없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성도들은 준비없이 대제사장의 관정까지 따라가서 도리어 큰 시험에 빠져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저주했던 베드로처럼 사탄의 장난감이 되기 쉽다.  


어떻게 은혜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으면서 믿음을 건강하게 지킬 수 있을까? 그것은 매우 평범한 것들이다. 정성으로 준비한 예배, 심령을 살찌우는 건전한 설교, 영혼을 일깨우는 기도회, 신선한 말씀의 양식을 제공하는 성경공부, 안식과 기쁨을 얻는 소그룹 ... 이러한 것들이다. 이 모두가 다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것으로 우리의 믿음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살찌우는 은혜를 늘 공급해 주시고 계신다. 이러한 일상에서 큰 믿음이 준비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이상한 감성주의에 빠져 알 수 없는 기묘한 은혜를 찾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런 분들은 대부분 매우 특이한 감성과 분위기를 나타낸다. 예를 들자면, 한 손을 들고, 턱을 앞으로 내밀고, 눈을 살포시 감고, 묘한 분위기를 이마에 새기면서, 그리고 손으로 우아한 곡선을 만드는 춤을 추기고 하고, 아멘을 해서는 안 될 불건전한 말들에 따발총처럼 아멘! 아멘! ... 이루 말로 다 표현하기가 곤란하다. 그러면서 “주님의 임재”, “기름부음”, “부흥” ... 이런 소리들을 쉬지 않고 반복하는 특징을 보인다. 그런 증상은 빨리 고침받아야 할 큰 병이다. 답답한 것은 그들도 자신들이 모든 예배 때마다 은혜를 공급받는다고 우긴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더 넘치도록 공급받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자부한다.   

큰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참된 은혜를 누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성도들에게 참된 은혜를 매일 공급하신다. 그것을 먹는 자들은 언제나 영혼에 참된 생기가 있고, 큰 게임을 위해 몸을 준비하는 선수처럼 아무 때든지 부르심으로 달려갈 준비가 이루어진다. 큰일을 감당할 하나님의 사람은 바로 그렇게 남이 보지 못하는 숨은 일상에서 준비되는 것이다. 그 비결은 일상에서 공급받는 은혜이다. 어디 특별한 곳으로 찾아갈 필요는 없다. 우리들의 일상의 밭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유지되도록 공급하신다. 

꼭 기억하시라!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성도에게 필요한 은혜를 친히 공급하신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므로 필요한 은혜를 얻기 위해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 그리고 매일 공급하시는 은혜를 누리는 자만이 하나님의 큰일을 위해 준비되는 사람임을 깨달아 알고 늘 자신을 살펴야 한다. 자신의 일상에서 하나님과 거리가 멀면 안 된다. 갑자기 잘해 보려고 용을 써도 큰 믿음의 사람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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