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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박사의 칭의사상은 행위구원론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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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10  21: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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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김세윤 박사의 칭의신학에 대해 개혁신학 진영의 예리한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김세윤 박사가 최근 동부지역에서 목회자들에게 강의한 약 한시간 분량의 영상을 들어보았다. 영상에서 김세윤 박사는 노골적으로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으나, 기독교 신자들이 처음 믿음을 가질 때 그리스도의 대속 제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칭의가 끝까지 유지되어 확실하게 구원에 이른다고 가르치는 것은 그릇되었다는 식으로 강의했다.

김세윤 박사는 그런 유형의 칭의에 대한 가르침의 부작용으로 인해 이미 한국 교회에 열매없는 죽은 신앙을 가진 신자들이 만연했다고 하였고, 그 근본적인 문제는 바울의 성경의 여러 곳에 표현되어 있는 경고, 즉 구원으로부터 신자들이 탈락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언급을 무시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김세윤 박사는 바울의 칭의를 "이미 ... 그러나 아직"이라는 이중구조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한국에서는 구원파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정통파 목사들이 사실상 구원파 복음을 설교하는 거예요. 한국에서는 장로교 개혁신학이 앞도적이거든! 개혁신학을 잘못 배워가지고 예정론의 의도, 바울이 예정론을 펼치는 intent(의도, 목적)를 살피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신실하게 지켜주신다 라는 위안을 주기 위해서 그래요! 그런데 동시에 바울은 무엇을 경고해요? 헛되이 믿을 수 있다! 고전 15:2절에도 너희들 헛되이 믿을 수 있다! 그리스도 은혜에서 뒷걸음질치면 넘어질 수 있다! 어디서 그랬어요? 고전 10장 10절! 곳곳에 (신자들이 구원에서) 탈락의 위험 가능성을 경고하는데, 이 경고는 듣지 않고 ... 이 구원에서의 탈락의 가능성과 구원의 예정과 성도의 견인, 이 두개를 바울이 함께 펼치고 있는데, 이 두개를 논리적으로 reconcile(조합, 절충)하려고 하지 말고, 논리적으로 reconcile되는 것이 아니예요! "(김세윤 박사)

이와 같은 김세윤 박사의 가르침은 우리가 신앙을 시작할 때 의롭다하심을 얻었을지라도 이후 성화의 열매들로 보증되지 못하면 (김세윤 교수는 비록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으나) 처음에 얻었던 칭의의 효력이 무산될 수 있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는 내용의 가르침이다. 김세윤 박사의 가르침의 핵심은 모든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 다시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그때 비로서 최종적 칭의가 선언된다는 것이다.   

김세윤 교수의 이러한 가르침은 지금 처음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김세윤 교수의 주장은 인간이 타락했을지라도 자신의 구원과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일에 관해 전적으로 무능하지는 않고, 타락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의지와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교회들이 가르치는 행위구원 사상과 상당히 같은 내용이다.

천주교와 웨슬리-알미니안 계열의 교회들은 구원이 오직 택하심과 은혜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이라고 보지 않는다. 구원을 인간이 선택과 결단을 통해 하나님에게 협력하여 얻는 보상이라고 믿는 것이 행위구원론의 핵심이다. 김세윤 교수의 칭의에 대한 강의 내용은 이와 같은 내용을 믿는 로마 천주교와 웨슬리의 사상을 따르는 감리교회의 구원신학과 매우 유사해 보였다.

천주교와 웨슬리의 신학을 따르는 감리교회와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얻은 하나님의 칭의선언으로 영구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난 후 성화된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칭의의 효력이 유지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고 가르친다. 김세윤 박사도 신자가 믿음으로 칭의를 얻어 신앙의 여정을 시작하였을지라도 종말의 최종적 심판의 때에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의롭다고 다시 인정해 주어야만 한다고 하였고, 지금 한국교회의 보수신앙을 추구하는 교회들의 칭의 사상은 성경의 본 뜻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김세윤 박사는 강의 중에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처음 칭의의 은혜를 입고 구원받은 기독교 신자라도 이후의 삶에서 성화의 열매가 동반되지 못하면 다시 칭의를 상실하여 지옥에 떨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비성경적인 천주교와 웨슬리-알미니안 계열의 구원론을 지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천주교의 행위구원론과 김세윤 박사의 칭의론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믿지 않는 로마천주교는 한번 얻은 칭의와 구원이 끝까지 지속된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부정한다. 부정하는 정도를 넘어 그렇게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트랜트 종교회의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고, 지금까지도 천주교는 공식적으로 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누구든 경건하지 아니한 자가 오직 믿음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말하는 자는 … 저주를 받을지어다.”

로마천주교는 신자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것을 매우 불경스럽게 여긴다. 구원에 관하여 천주교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적합한 신앙행위’이다. 천주교는 인간이 하나님께 적합한 신앙행위를 통해 스스로 구원의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구원을 주신다고 믿는다. 천주교에서는 인간이 적합한 신앙상태를 갖추면 원죄를 제거하는 세례를 베풀어 칭의의 은총이 신자에게 주입한다. 원죄를 제거하는 칭의의 은총을 주입하는 세례는 신자들이 스스로의 노력과 적합한 신앙 행위를 통해 세례받기에 합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때 신부에 의해 시행된다.

그렇다고 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의 구원이 단단한 반석위에 영구하게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후의 삶에서 적합한 행위와 성화의 열매가 지속적으로 동반되지 못하면, 처음에 얻은 칭의의 효력이 상실된다고 가르친다. 칭의가 상실되게 만들지는 않는 소죄들을 범하면 신부의 지도를 받아 회개하여야 하고, 심각한 대죄들을 범하면 칭의는 상실되고 그 상태로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정죄받는다고 한다. 

처음 믿을 때 얻은 칭의가 끝까지 지속되지 않고, 종말의 심판의 때에 하나님이 다시 조사하고 판정하여 의롭다고 선언해 주셔야만 영원한 구원에 이른다는 김세윤 교수의 칭의사상은 로마 천주교의 구원론과 궤를 같이하는 매우 심각한 이단사상이다. 종교개혁을 통해 다시 회복된 성경적 칭의 신앙을 추구하는 참된 교회들은 김세윤 박사의 칭의사상을 결코 수용하지 않는다. 

   


웨슬리-알미니안의 행위구원론과 김세윤 교수의 칭의론

하나님의 신자들에 대한 최종적 칭의선언이 종말의 심판의 때로 미루어졌다는 김세윤 교수의 사상은 개혁교회가 이미 정죄한 웨슬리-알미니안 교회들의 행위구원론과 거의 같은 내용이다. 웨슬리-알미니안 교회들도 인간의 전적타락과 구원에 관한 전적무능을 믿지 않는다. 이쪽 계열의 신학도 인간이 타락했을지라도 자신의 구원과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일들을 향한 이성의 힘과 기능이 남아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반응과 협력이 구원에 이르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인정되는 것이다.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하는 칭의도  아무 소망없는 죄인에게 부어주시는 은혜로 말미암는다고 보지 않고, 대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자발적 응답과 협동으로 말미암는다고 한다.

로마 천주교와 마찬가지로 웨슬리-알미니안 교회들도 신자들이 신앙의 여정을 시작할 때, 십자가를 믿음으로 얻은 의롭다 선언하심이 영구하게 보장된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의 죄를 전가받으시고 대신 죄의 저주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법정적 칭의’를 근본적으로 배격하고, 대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반응과 협력의 열매로 나타나는 실제적 성화를 칭의의 근거로 보는 ‘실질적 칭의’를 고집한다. 이것은 인간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필요한 신앙을 준비하는 것을 보시는 하나님도 협력하시어 그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행위구원론이다.  

오직 십자가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법정적 칭의'의 은혜를 거부하면 반드시 그 결과는 인간이 자신을 구원에 이르게 할 실질적인 자질을 만들어 내려는 몸부림이다. 성화된 실제의 삶을 근거로 의롣하심을 얻는다는 '실질적 칭의'를 믿는 웨슬리-알미니안주의자들은 구원 이후에도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지 않으려고 쉬지 않고 회개하고, 자신의 성화를 지속적으로 진전시키는 것에 신앙의 사활을 걸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지금 잘되어 가다가도 나중에 칭의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세윤 박사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을지라도 마지막 종말의 심판대에서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다시 의롭다고 선언하여 주시지 않으면 신앙이 도로묵된다는 칭의사상도 결국 웨슬리-알미니안들이 믿는 구원론과 같다. 이미 구원을 얻은 신자라도 다시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천주교인들과 웨슬리안들은 김세윤 교수의 주장을 틀림없이 환영할 것이다. 또한 김세윤 교수와 저들은 그 사상에 동조하지 않는 우리 올바른 신자들을 이미 구원을 얻었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며 무슨 짓이든지 다 하는 또 다른 종류의 구원파라고 할 것이다.  

김세윤 교수는 한국 교회를 종교개판으로 만들고 있는 많은 개독교 목회자들과 신자들의 심각한 영적실상을 설명하는 방법도 오직 자신이 주장하는 이중적 칭의론이라고 할 것이다. 십자가를 믿음으로 칭의를 얻었을지라도 이후 부적합한 삶의 내용 때문에 다시 칭의가 소실되어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되다는 자신의 유보적 칭의사상이 아니면 현재의 한국과 세계의 개독교회들의 증상을 설명할 수가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김세윤 교수가 복음의 원리를 모르고, 복음을 조명하여 주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세계적 수준의 신학지식을 연구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 흉칙한 개독교회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너무도 많은 것이 처음 십자가를 믿어 얻은 의롭다하심이 영구하게 지속되어 반드시 구원에 이른다는 개혁교회들의 가르침 때문에 그들의 신앙이 게으르고 나태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김세윤 박사의 탁월한 사변적 신학진단이라 할 수 있다. 

성령이 복음으로 참 하나님 백성을 일으키심

개혁신학을 한다는 교회들과 일반 교회들이 복음을 복음되게 선포하지 못했으므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 날의 개독교 증상이 나타났다고 진단해야 맞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르게 선포되면, 하나님은 반드시 복음을 통해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세상에서 불러 내시어 하나님 백성되어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조금도 소망이 없는 죄인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하나님 백성으로 재탄생되는 기적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노력과 결단으로 만들어 내는 성화에 의해 얻어지는 칭의로 하나님 백성되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으니,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고 선언하여 주신다. 그 순간부터 성령이 그 사람에게 영구적으로 내주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만드신다. 어떤 목회자에게 사람을 대하는 종교적 기술과 교회를 경영하는 태크닉이 넘칠지라도 정작 그 자신에게 성화의 열매가 없다면, 그 이유는 그 자신이 애시당초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성령이 죄인에게 임재하시면 하나님 백성으로서 재창조가 시작된다. 이전까지 마귀의 흑암에 잡혔있었던 사람이 하나님의 빛의 세계로 이동되고, 이전까지 마귀의 죄의 권세에 눌려있었던 사람이 하나님의 의의 통치를 받는 사람으로 변한다. 죄를 안 지을 수 없었던 사람이 죄를 이길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는 그냥 단순한 칭의가 아니다. 반드시 이후의 필연적 삶의 변화, 즉 성화를 열매를 동반하게 된다. 아브라함, 야곱 등의 수 많은 성경의 사람들과 바울, 어거스틴 등의 기독교의 역사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살았던 생이 이 진리를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다. 

지금 한국과 세계에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개판목사들과 신자들이 바글거리는 이유는 개혁교회들이 한번 얻은 칭의로 영권한 구원이 보장되었다는 칭의론을 가르쳤기 때문이 아니고, 한국 교회가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온전하게 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령이 역사할 수 없는 오염된 복음과 각종 귀신들의 이론으로 각색된 거짓복음으로 불량한 영혼들이 무더기로 생산되었고, 그 자신들과 세상이 그 사람들을 하나님 백성이라고 여기는 것이 문제이다. 

복음과 성령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목회자가 되고, 또한 다수의 교회를 구성하는 신자들이 되었다. 그러니 무슨 선한 열매가 있을 수가 없었고, 그러니 개독교회라는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김세윤 박사가 우려하는 대로 세계 교회에 성화의 열매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근본적인 이유는 복음을 바르게 증거하여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는 토양을 만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절대로 교회들이 신자들에게 칭의와 구원에 대한 긴장과 스트레스를 주지 않아서 이 지경이 된 것이 아니다. 

김세윤 교수는 교회들이 성경적 칭의신앙을 고집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이 벌어졌다고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성령의 역사를 따라 복음을 온전하게 전파하지 못하였으로 하나님 백성 아닌 영혼들이 아무 불편없이 교회에 유입되었고, 복음과 무관한 백성들이 모든 교회에 자연스럽게 대량으로 서식하며 교회 내부의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렀다. 김세윤 교수의 주장대로 그들에게 다시 칭의를 재고받는 심판을 받는 날이 오고 있다고 가르치면, 그들은 두려워하면서 행실을 고치고 성화를 스스로 이루어 갈 수 있을까? 김세윤 교수는 과연 순진한 것인가? 복음과 죄인의 성향에 대해서 모르는 것인가?

야곱이 애서보다 자질과 성품이 더 낳으므로 선택하신 적이 없으시다. 무조건 야곱을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은혜를 부어주셨다. 처음에는 지렁이 같았던 야곱은 서서히 변하였고 종국에는 부끄러울 것이 없는 하나님 백성의 자태를 가지게 되었음을 성경이 말씀한다. 그것은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지 야곱에게 달랑거리는 구원에 대한 긴장감과 불안감을 하나님이 주시면서 성회되라고 겁박했기 때문이 아니다.

과연 훗날 다시 최종적 칭의 심판을 받는 날이 있다는 두려움과 스트레스 때문에 신자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김세윤 교수는 생각하는 것인가? 복음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칭의를 얻어 하나님 백성된 죄인들에게서 궁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나중에는 반드시 하나님 백성의 아름다운 품격을 갖추게 된다는 진리를 왜 김세윤 박사는 모를까? 

단번에 영구히 구원하는 복음의 은혜

성경은 오직 하나님이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로 단번에 영구하게 구원하셨다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아무 소망없는 죄인들 가운데 일부를 자기 백성으로 택하셨다. 죽어야 할 택하심 받은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자기 백성으로 회복시키실 계획을 세우셨다.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속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대신 죄값을 지불하셨다. 택하신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은혜를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여 그에게 붙이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로 ‘옛언약’을 파기하여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된 원죄의 효력을 무효로 만드셨다. 죄의 저주에서 해방된 자기 백성들에게 성령을 부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게 하셨다. 십자가로 완전히 성공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증거삼아 죽음을 가져온 ‘옛언약’을 대체하는 ‘새언약’을 반포하여 하나님 백성들의 영원한 구원을 확정하셨다.

우리의 구원을 설명하는 이 진리들 중 어느 사이에 칭의를 얻은 인간도 이후 행위를 통해 의롭하심을 조속되게 만들 신앙의 선행을 유지해야 하고, 그리고 최종적으로 예수의 재림 때에 칭의를 다시 확인받아야 한다는 김세윤 박사의 이중적 칭의론 주장이 끼어들 자리가 있을까? 믿음에 근거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칭의의 선물은 영원한 것이지 나중에 다시 재평가되는 하나님의 변덕스러운 선물이 아니다. 김세윤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성령을 통해 배운 신학자가 아닌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람의 복음으로 변질시켜 헛되이 전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야곱같이 변화되는 신실한 하나님 백성이 나타나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한국 교회에 복음과 무관한 거짓 백성들이 많아졌고, 그들 중에서 세상도 다 알아주는 유명한 목사들도 나타나고, 다수의 교회들이 그런 영혼들로 채워지는 역병이 깊이 자라잡았음로 김세윤 박사께서 이러한 걱정을 많이하였고, 그러다가 그만 신자들의 행위를 최종적 칭의의 근거로 강조하는 우를 범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김세윤 박사의 고민과 우려는 다 이해할 수 있으나, 최근에 그가 설파한 이중적 칭의사상은 바울이 이미 갈라디아서를 통해 배격해 버린 "믿음 + 행위 = 구원"이라는 잘못된 곳으로 교회들을 인도할 위험성이 높다.

우리는 더 일찍 오직 성령으로만 진리의 복음을 전했어야 했다. 복음이 바르게 선포되면 반드시 성령이 일하시어 참 하나님 백성이 나타난다는 진리를 더 강력하게 붙들었어야 했다. 그리고 복음과 성령으로 양산된 진실된 하나님 백성의 가치는 양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질에 있다는 것도 더 일찍 깨달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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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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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로 2016-05-11 14:28:48

    그렇다면 목사님께 묻습니다. 믿음으로만 구원 받은 성도가 그의 삶에 열매가 없고 여전히 죄악 가운데 있다면 그는 성령에 의한 구원 받음이 아니고 가짜 복음에 의해 구원 받았다는 말씀인가요? 아니면 언젠가 그도 다시 회개하고 결국은 구원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인가요? 그 구원 받음을 누가 어떻게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요? 그것도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이므로 아무도 모른다는 것인가요? 믿고 구원 받았다는 사람의 표지는 결국 선행과 경건생활로 들어나는 것 아닌가요? 구원(영생)은 믿음으로 받는 선물이라는 것은 불변의 성경말씀이므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지만 오늘날 이 땅의 성도들을(아니 나를) 보면 모순 덩어리 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재림시 최후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양과 염소를 구분한다는 말씀과, 두 사람이 맷돌을 갈고 있으나 한 사람은 남겨지고, 두 사람이 밭을 갈다가 한 사람은 남겨진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요? 믿고 구원 받음의 효력은 영원하다는 말씀인가요? 죽기 전에 타락하거나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인가요?신고 | 삭제

  • 구원과 행위 2016-05-12 04:25:42

    그냥 믿는다고 칭의받고 천국간다고 윗 글이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부르신 사람에게 믿음을 주시어 의롭다고 하시면, 이후에 반드시 변화돤 삶이 동반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변화된 삶이 죽을 때까지 없으면, 의롭다고 하신 적도 없는 것입니다.신고 | 삭제

  • 성경대로 2016-05-21 01:41:38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사실은 성도의 견인과 '일시적인' 구원의 상실은 성경 모두가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구원'개념은 정확히 똑같지 않습니다. 즉 법정 선언적 칭의가 포함된 성도의 견인으로서의 구원은 엡2 :8이 말하는구원에 무게 중심이 있다면, 웨슬리안-알미니안 교회들 그리고 혹시 김세윤 교수님이 말하는 그 구원도 벧전 1:9가 말하는 구원(믿음의 결국 곧 혼의 구원을 받음이라)에 무게중심을 둔 개념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교계 특히 한글 킹제임스 진영 쪽이 이 벧전 1:9의 '혼의 구원'을 구령 즉 불신자 구원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 앞 뒤 문맥은 여기서 말하는 '너희'는 이미 거듭난 믿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신고 | 삭제

  • 성경대로 2016-05-21 01:50:30

    성경은 구원을 말할 때 세가지 시재로 말하고 있습니다.
    1. 과거 시재-엡2:8(구원 받았다)
    2. 현재시재(진행):-빌2:12(구원을이루어내라)
    3. 미래시재-롬13:11(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웠다.)

    혹자는 이것을 1은 사람의 영의 구원(즉 거듭남, 요3:6), 2는 사람의 혼의 구원(변화, 고후3:18), 3은 사람의 몸의 구원(변형, 구속 롬8:23)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처럼 다양한 단계의 구원을 말하고 있는데 어떤 단체는 이것을 1번만으로 구원을 정의하고, 또 어떤 단체는 2번을 중심으로 주로 설명한다면 불가피하게 충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1번의 구원 개념만으로는 고전3:15가 말하는 '불을 통과하여 받는 구원'은 설명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66권 전체를 믿어야 하며 특정 교단 교리를 고수하기위하여 성경의 한 아이오타도 감할 수 없습니다.신고 | 삭제

  • 성화란 2016-06-15 18:49:19

    믿음과 행함을 분리해서 보면 이와 같은 비판이 가능할 것입니다.
    웨슬리 알미니안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것은 이것을 분리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김세윤 성화는 믿음과 행함을 분리해서 보지 않고, 믿음이란 큰 틀 속에 행함이라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고 보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그래서 행함을 잃어버리면 그것은 믿음을 잃어버린 것과 같이 되지요.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믿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믿노라 하면서 믿지 못하는 사람, 믿노라 하면서 믿음없는 사람을 향한 성화의 외침이 아닐런지요신고 | 삭제

  • 어렵습니다. 2016-06-24 14:43:39

    믿음과 행함을 분리하는 것과 하나로 보는것 어느 쪽이나 약간의 혼란이 있습니다.
    믿음이 시작으로 완성까지 유효 한것이냐 아니면 유효하지 않은 것이냐를 성경이 섞어 쓰고 있다는겁니다.
    물론 그 혼란을 많은 목회자 분들이 똑같이 주장 하고 있는듯 보이구요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하면 믿는다 하면서 믿지 않는 자보다 더 악한 사람의 모습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은게 걸리구요,
    구원 받아도 제대로 행위가 없으면 안받은 것과 같다는 말씀은 결국 처음 구원은 큰 의미가 없고 내 삶을 통해 구원 받을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라 라는 말로 들립니다.
    물론 이것 보다는 더 많은 논란이 있겠습니다 만 저 같은 일반 성도는 늘 고민 스럽습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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