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십자가 구속(론)'과 '부활 복음(론)'의 우선순위나 우월성을 두고 서로 치고 박으며 그토록 험악하게 싸울 일인가? 예수는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완전한 제사'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고,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께서 탄생, (공생애)사역, 죽으심,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신 구원의 복음을 온전히 믿을 때, 비로소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다.'고 성경에 이른 그대로 간단히 말하면 되지 않는가.

'십자가 구속'과 '부활 복음'은 모두가 '구원의 전제'로서, 결코 대립되거나 모순일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부활 복음'이라는 말이 부활만을 복음의 전부인 양 왜곡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복음의 완성이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전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구속救贖'은 '대속代贖'과 동의어

구속 없이 구원 없으며, 구원은 반드시 구속을 전제한다. 그러나 사회구원도 결국 개인 구원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된다는 의미에서, 구원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얻는 신앙의 결실이라면 엄밀히 말해서 '구속'과 '구원'은 다르다. 구속의 올바른 정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인류의 죄를 씻었다'는 말이며, 사전적인 의미에서 '구속救贖'은 '대속代贖'과 동의어이다.

자신의 '몸'을 '대속제물'로 바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제사'를 성경은 '완전한 제사'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완전한 제사는 '완전한 구원', 이를테면 예수의 재림과 더불어 개인에게 주어지는 영생의 구원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 구속은 영생의 구원에 이르는 복음의 능력인 동시에,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다. 구속이 그 자체로 구원의 완성이 아니라는 말이다.

결론에 앞서 미리 말하면, 완전한 제사는 구약시대에 짐승을 제물로 바치는 '불완전한 제사'와 구별하는 이름이며, 그것이 '완전한 구원'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대속으로 성소의 휘장이 갈라졌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개개인이 이미 완전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구약시대처럼 제사장의 중재를 거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만인'이 각각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신약시대는 우리들 자신이 이른바 '만인제사장'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과 더불어 휘장이 찢어졌다는 말은, 우리가 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만났고 전적인 구원을 얻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갈라진들,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을 수 있다는 분명한 믿음의 순종, 그리고 개인적인 믿음의 결단이 없다면 성소의 휘장이 갈라졌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20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옛날에, 거기서' 우리의 '구체적인 죄'가 모두 용서받은 것이 아니다. 만약에 대속으로 인해 이미 죄를 용서받고 영생의 구원에 이르렀다면 2000년이 지난 오늘, 새삼 구원을 얻기 위해서 '그리스도 신앙'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없다. 그래도 신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기독교 신앙을 '구원 신앙'이 아니라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는 '철학'에 일치하는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그것은, 대속의 보편적인 은혜를 넘어서, 개별적인 믿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구원에 이르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되지만, 2000년 전의 대속이 그 자체만으로 2000년이 지난 '지금, 여기서' 우리의 완전한 구원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반면에, 부활의 능력이 아무리 위대한들 십자가 대속으로 예수께서 '완전한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면, 그래서 하나님과 죄인인 인류가 '아버지와 아들'로서 온전히 관계를 '회복'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인의 신분으로 감히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다. 죄로 더럽혀진 자가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죽음뿐이다.

구약시대에 속죄제를 드리는 대제사장도 짐승의 피로 자신의 죄를 먼저 속죄한 다음에 성소에 들어가서 백성의 죄를 속죄할 수 있었다. 죄인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를 더럽힐 수 없으며, 성소를 더럽히는 자는 죽을 수밖에 없는 대속제사의 원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관계를 회복하고, 그로 말미암아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로 말미암아 마침내 '영생의 구원', '완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구속과 구원은 불가분의 관계일망정 동의어는 아니라는 말이다.

 

강만원 / '아르케 처치' 대표이며 <뉴스앰> 등에서 활동하는 종교 칼럼니스트이다.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를 저술하였고, <루나의 예언>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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