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목사(김요셉, caleb', 'samuel', 'pastor Kim', 'Truth', '기자석')

들어가며

필자는 최근에 <뉴스 M>에 김한길 목사가 기고한 “정이철 목사의 이단적 주장에 대하여”라는 글을 읽었다. 그 내용은 약간의 손질은 했지만, 이인규 씨가 정이철 목사를 모함하기 위해 조작한 넋두리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었다. 더 이상 읽을 가치가 없는 저급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혹시 그런 글에도 휘둘리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므로 반박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했다.

 

1. 정이철 목사의 “예수님도 자신의 십자가 피에 완전한 속죄 혜택을 받았다”에 대하여

김한길 목사와 이인규 씨의 논리는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신데 어떻게 속죄의 해택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정이철 목사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무시한 이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예수님이 무죄하시다는 사실만 알았지,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죄인으로 죽으셨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문론 예수님은 무죄하신 분이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 있었다. 죄 있는 자가 다른 죄 있는 자들을 대신해 속죄 제물이 될 수는 없다. 성경이 예수의 무죄를 말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그분이 우리를 대신할 대속 제물이 될 자격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무죄하심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에게나 필요한 세례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셨다. 무죄하셨지만 자신을 죄인들과 동일시하시고, 죄인들의 죄를 모두 전가받으신 구세주가 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무죄하셨지만, 우리의 죄를 모두 전가받으신 상태에서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셨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으로, 의인이 아닌 죄인으로 죽으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전가받고 십자가에 달리신 죄인의 대표인 예수를 저주하여 죽이셨다. 만약 하나님께서 죄 없으신 예수를 이유없이 저주하셨다면, 하나님은 공의와 우리의 구원은 성립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죄인의 입장에서 우리의 대표하여 죽으신 예수가 다시 의롭게 되는 일은 우리 모두의 구원과 칭의를 위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를 위해 스스로 죄인이 되시었고, 죄를 짊어지고 저주받아 죽으신 예수가 다시 의인으로 인정되어지는 과정이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기독교의 최고의 진리이다. 그래서 김균진 교수도 ‘부활은 심판을 받은 예수를 하나님이 의롭다 인정하는 사건이며, 예수를 높이시는 영광의 사건이다’라고 말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가장 먼저 부활하시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듯이, 예수님은 죄인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의롭게 되시었고, 모든 죄인들의 의롭다하심의 처음이 되시었다. 이 중요한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속죄의 보혈이었다. 이 원리는 참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의 그림자였던 구약 성전의 대제사장이 속죄소에 들어가는 과정에 그대로 나타났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백성들의 속죄를 위한 피를 들고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자신의 속죄를 위해 피를 들고 지성소에 들어갔다. 그리고 백성들의 속죄를 위해서 황소의 피를 들고 지성소에 들어갔다. 그 피가 하나님께 상달되면 대제사장은 살아서 지성소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참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은 하늘 성소인 십자가에서 피를 뿌리심으로 스스로 죄를 전가받으시어 죄인의 대표가 되신 자신을 위한 속죄와 더불어 모든 하나님 백성들을 위한 속죄를 완수하셨다. 속죄의 제사가 완전히 하나님께 상달된 후(이 모든 것은 하늘 성소인 십자가에서 완전히 이루어진다) 구약의 대제사장들이 지성소에서 제사를 완수하고 살아 나왔던 것 같이 부활하셨다. 예수의 부활은 그의 십자가 피의 제사가 완전히 하나님께 드려졌고 상달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신의 속죄의 피의 완전한 속죄의 혜택을 가장 먼저 적용받으심이다.”(정이철, “이단옹호자 이인규 씨의 탁월한 게임기술”)

정이철 목사의 위 말은 설교나 성경공부에서 자주 언급되지 않는 내용이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해 보일 수 있겠으나, 성경적 사고와 신학을 가진 사람은 오히려 지극히 성경적이고 정확한 내용임을 인정하고 감탄할 것이다. 결국 정이철 목사의 지극히 성경적인 설명을 오히려 이단적인 것으로 모는 이인규 씨와 김한길 목사는 스스로 성경적 신학에 대해 매우 빈약한 사고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2. 정이철 목사의 “예수님의 시체가 썩었다”에 대하여

김한길 목사와 이인규 씨는 예수님의 시체가 삼일 동안 무덤에 계시는 동안 부패가 진행되었다는 정이철 목사의 설명까지도 이단적이라고 매도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를 메시아의 부활을 예언한 시편 16:10 절이라고 한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행 2:27절)

구약의 메시아 예언 구절의 어떤 내용은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시22:18)와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시34:20)같은 경우이다. 십자가 아래서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놓고 제비 뽑았으며(막15:24), 다른 십자가 사형수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실제로 무릎 뼈가 꺾이지 않았다(요19:33). 그러나 구약의 메시아 예언들 중에는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안 되는 내용도 많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시편 16:절과 그것을 재인용한 행 2:27절이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행 2:27)

위 구절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면, 당연히 정이철 목사의 주장은 이단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 내용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아야 한다면, 오히려 김한길 목사와 이인규 씨가 이단적 주장을 내세우며 어이없이 정이철 목사를 모함한 것이 된다. 메시아의 부활을 예언한 시편 16:10절과 그것을 재인용한 사도행전 2:27절의 올바른 해석을 통해, 과연 누가 이단적인 주장을 했는지 살펴보자.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를 무덤에 장사되신 예수님의 몸에 문자적인 적용이 가능하려면, 바로 그 앞의 대등 접속사로 연결된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도 같이 문자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는 예수님에게 문자적으로 적용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 우리의 죄를 정하시고(롬8:3), 우리 대신 예수님의 영혼을 음부에 버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는 고통이 너무 커서, 십자가에서 절규하시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를 외쳤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혼은 영원토록 음부에 버린바 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음부에 버리신 예수님을 “말씀대로” 다시 살리시어 음부에서 이끌어 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는 예수님의 영혼이 삼 일 동안 음부에 버려지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그의 영혼을 음부에서 이끌어 내셨다고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바로 그 앞의 말씀과 대등 접속사로 연결된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는 말씀도 당연히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예언을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서도 전혀 썩지 않았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안 된다.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는 예수님의 영혼이 3일 동안 음부에 버려졌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그의 영혼을 음부에서 이끌어 내셨다고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도 예수님의 죽은 시체가 무덤에 있는 동안 썩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몸을 썩음에 영원토록 버려두지 않으시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살리셨다고 이해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행 2:27절의 말씀을 예수님께 적용하여 바르게 해석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저주하심으로 그의 영혼을 음부에 버리셨지만, 언제까지 음부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삼 일 만에 음부에서 다시 살리시어 이끌어내셨다. 그때 예수님의 몸은 무덤에서 삼 일 동안만큼 썩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몸을 언제까지 썩음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완전한 영광의 몸으로 다시 살리셨다.”

 

예수의 몸이 부패하지 않았다면 부활의 첫 열매가 아니다

만일 김한길 목사와 이인규 씨의 주장대로 예수님의 몸이 정말로 썩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부활이 모든 성도들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도 발생한다. 사실 이보다 더 심각한 망언이 또 어디 있으며, 이보다 더 심각한 말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다행스럽게도 김한길 목사와 이인규 씨의 주장은 허구이다. 인간이신 예수님은 죄 없으신 것 말고는 우리와 성정이 똑같으시다. 무덤에 내려가신 예수님의 몸에서 삼 일 동안만큼 부패가 진행되었음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상하신 그의 몸을 온전한 몸으로 다시 살리셨으니, 우리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이 분명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성도들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이 모든 죽은 성도들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을 믿으니, 사랑하는 성도들과의 헤어짐의 슬픔을 다시 만날 부활의 소망으로 승화시킨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한 나무에서 처음으로 어떤 열매가 달리면, 그 후에는 첫 열매와 똑같은 종류의 열매가 반드시 그 나무에서 계속 달리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한 나무에 처음 달린 열매와 그 다음에 계속 달리는 열매들은 비록 열매가 달리는 시간적 차이는 있지만, 열매의 질적 차이는 전혀 없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의 몸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인간이신 예수님은 죄 없으신 것 말고는 우리와 성정이 똑같으시다)의 몸의 부활은 시간적으로는 성도의 부활보다 앞서지만 질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어야 한다. 만약 질적으로 조금의 차이라도 있다면, 예수님의 몸의 부활은 성도들의 몸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될 수 없게 된다. 그럴 리는 없지만, 한 나무에 달린 처음 열매와 뒤이어 달리는 열매들이 서로 맛이 다르거나 모양이나 색깔이 전혀 다르다면, 같은 나무에 달린 열매들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런 경우에 처음 달린 열매가 뒤이어 달린 다른 열매들의 첫 열매라고 말할 수 없다.

 

▲ 기이협 사무총장 이인규 씨

성경대로라면 이인규 김한길은 예수님의 참 사람되심을 부정하는 적그리스도

따라서 김한길 목사와 이인규 씨의 주장대로 예수님의 몸이 정말로 썩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부활은 죽으면 몸이 썩는 우리들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될 수 없다. 정이철 목사에게 이단시비를 거는 두 사람은 어리석게도 오히려 자신들이 이단시비를 받을 중대한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정이철 목사에게 이단몰리를 하려다가 자기들이 들어갈 무덤을 파버린 격이 되었다. 왜냐하면 김한길 목사와 이인규 씨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동일한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 오심을 부정하고 있고, 성경은 그러한 자들을 적그리스도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요일 1:7).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고전15:42)

이와 같이 성경은 썩을 몸이 죽고 난 후 썩지 않는 몸으로 부활한다고 한다. 예수님의 죽음과 우리들의 죽음은 ‘썩을 것으로 심는 것이고, 예수님의 부활의 장차 우리들의 부활은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예수님의 몸도 죽으신 후 당연히 부패하기 시작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썩지 아니할 영광스런 몸으로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 성도들도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처럼 죽은 후 몸은 흙으로 돌아갈 것이고, 훗날 썩지 아니할 영광스런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주 안에 있는 성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죽은 후 우리의 몸이 썩고 먼지가 되어 다 흩어져 버린다 할지라도, 마지막 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우리의 몸을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처럼 다시 살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필자가 수명이 다해 죽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필자가 죽은 지 삼 일 만에 예수께서 재림하신다면, 필자의 죽은 몸은 당시 무덤에 계셨던 예수님의 몸처럼 삼 일만큼 썩은 상태에서 예수님처럼 다시 온전한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이 필자의 몸의 부활의 첫 열매이기 때문이다.

 

3. 정이철 목사의 “예수님의 부활이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이라는 설명에 대하여

김한길 목사와 이인규 씨는 정이철 목사가 안타깝게도 예수님의 부활을 하나님의 ‘재창조’라는 설명한 내용도 이해하지 못하였다. “어떻게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피조될 수 있느냐?”시비를 걸었고, 더 나아가 이것으로도 정이철 목사를 이단으로 몰았다. 이런 유치한 행동은 김한길, 이인규 씨가 정이철 목사가 말한 ‘재창조’라는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재창조’를 하나님의 또 다른 창조 행위로 이해한 듯하다. 지레짐작으로 ‘재창조’ 앞에다 ‘피조 되어’란 말을 임의로 붙여서 정이철 목사님의 ‘재창조’의 참 의미를 왜곡하였다.

‘재창조’는 천지창조와 같은 성격의 또 다른 창조 행위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피조된 세계가 범죄로 말미암아 망가진 것을 다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재생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정이철 목사가 말한 하나님의 ‘recreation’은 ‘remodeling’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recovery’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정이철 목사는 원래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미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자기 백성을 다시 새롭게 조성하여 하나님 백성되게 하시는 재창조의 시작이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 제사의 은혜를 덧입은 신자들이 이미 죽었던 상태에서 다시 창조(출생)된 것이라 가르쳤다.”(정이철,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차등하면 부활을 앞세워”)

또한 정이철 목사는 이인규 씨의 이단몰이가 시작된 후 이렇게 추가적으로 설명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의 시작’이었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다시 생산된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구원얻지 못한 기존의 인류와 대비되는 ‘새로운 영적인류’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재창조된 백성들 그 자체이다.”(정이철, “이인규씨는 자중하고 바른길 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죄로 죽은 하나님 백성을 다시 되살린다는 관점에서 ‘재창조’라고 말하는 것은 정상적인 신학교에서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말이다. 따라서 신학교에 가지 않고 독학한 이인규 씨는 그렇다 치더라도, 김한길 목사가 이런 어리석은 장단에 맞추어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신학 수준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한길 목사와 이인규 씨의 이단게임은 하나님에 대한 심각한 모욕

김한길, 이인규 씨가 예수님의 몸이 무덤에 계시는 동안 썩지 않았다고 우기며 오히려 정이철 목사를 이단으로 몰려고 시도한 것이 오히려 우리 성도들에게서 부활의 소망을 송두리째 빼앗으려는 심각한 이단적 주장이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이 신학적으로 하나님 백성의 ‘재창조’로 설명될 수 있다는 정이철 목사의 설명을 역으로 이단으로 몰려고 시도했다는 것은 김한길 목사와 이인규 씨에게 정상적인 신앙이해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여 준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감히 김성로 목사 부활복음 이단문제에 깊이 개입하였고, 김성로 목사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고 있으니 매우 우스꽝스럽고 안타까울 뿐이다.

 

4. 정이철 목사의 “마귀도 하나님의 종, 오바마도 하나님의 종, 김정일도 하나님의 종, 정이철도 하나님의 종”이라는 설교 내용에 대하여

이것도 김한길 목사와 이인규 씨의 신학적 수준이 얼마나 유치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이다. 이들은 ‘마귀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이 성경에 없으므로 정이철 목사의 주장이 이단적이라고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수준 낮은 유치함인가? ‘삼위일체’라는 말도 성경에 없다. 이들의 어처구니없는 주장대로라면, ‘삼위일체’를 말하거나, 믿는 사람은 다 이단이 되고 만다.

 

자신들이 공격했던 인터콥 수준으로 전락한 이인규 씨와 김한길 목사

그 설교 영상을 듣는 사람이 고등학생 정도의 이해 수준을 가졌다면, 정이철 목사가 마귀가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다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즉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고 있음을 누구나 쉽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 인터콥 멤버들이 그 영상을 만들어서 정이철 목사를 이단으로 몰려고 했었는데, 지금 김한길 목사와 이인규 씨가 자신들이 비판했던 죽도록 공격했던 인터콥과 동일한 하고 있는 것이다. 김한길 목사와 이인규 씨는 필자가 제시하는 다음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겸손하게 자신의 영적 무지를 깊이 반성했으면 한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대상29:11)

 

5. 정이철 목사가 “부활을 믿지 않아도 십자가 죽음만을 믿으면 구속사역이 완성될 수 있다”고 했다는 것 에 대하여

이인규 씨의 이런 저급한 이단몰이에 대해 정이철 목사는 이미 다음과 같이 이인규 씨를 꾸짖고 나무랬다.

“이인규 씨는 이성을 찾으시고 참 말을 하시기 바란다. 내가 언제 부활을 의심하고 안 믿어도 구원을 받는다고 하였는가? 내가 언제 이런 내용의 글을 썼다는 것인가? 그것은 <바른믿음>의 한 독자가 쓴 글이고, 십자가의 완전한 속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었으나, 오해와 부작용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 당시 곧 바로 수정하였던 내용이다. 이제 더 이상 찾을 수도 없는 그 내용을 한두 번도 아니고 영구하게 써먹는 다면, 사람들은 이런 방식이 이단연구가 이인규 씨의 주요 전락이고, 또한 이단을 잡아도 제대로 잡는 것이 아님을 다 알게 될 것이다.”(정이철, “이인규 씨는 자중하고 바른길 가야한다”)

“십자가는 반드시 부활을 동반한다.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나의 사상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진정한 십자가 신앙은 필연적으로 부활을 초래한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부활은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완전속죄의 결과이고,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가 다 사해졌음을 드러내시는 증거로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셨다는 것이 나의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이다.”(정이철, “이인규 씨는 자중하고 바른길 가야한다”)

정이철 목사는 최근 <뉴스엠>에 기고한 글에서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성경적 기독교 신앙에서 부활에 대한 믿음은 구원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은 십자가의 피로 속죄가 완성되었고,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하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다 해소되었으므로 필연적으로 나타난 일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의 속죄가 완전했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가 진정한 메시야였다는 사실이 부활을 통해 드러났다고 강조했다(고전 15:17). 참 기독교 신앙에서 부활은 이미 십자가 신앙을 통해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된 신자들에게 100% 자동적으로, 절대적으로,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장래의 확실한 소망이며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래서 부활은 구원의 완성이고, 우리는 부활신앙을 힘써 전파해야 한다. 또한 언제나 부활의 영광을 기대하며 살아야 하고,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만 부활의 감격을 설명하여야 한다.“(정이철, “아무도 덮을 수 없는 김성로 목사의 반십자가 사상”)

최근 ‘오직 십자가’라는 닉네임을 쓰는 독자가 <바른믿음>에 “이인규님, 더 망신당하지 말로 물러가세요!”라는 글을 통해 이인규 씨에게 “부활을 안 믿으면 구원을 못받습니까?”, “부활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까?”라고 단도의 직입적으로 질문하였으나, 이인규 씨는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이인규 씨는 무슨 대단한 시비거리를 잡은 것처럼, 정이철 목사를 험담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이것을 써먹다가, 이제 오히려 큰 망신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이인규 씨는 김성로 목사를 옹호하기 위해 부활에 관한 유명한 신학자들의 일반적인 글들을 퍼 나르면서 마치 정이철 목사가 성경과 유명 신학자들이 말하는 부활을 부인하고 있는 것처럼 오도하는 전략을 오래 동안 구사했다. 그러나 정이철 목사는 김성로 목사가 주장하고, 이인규 씨가 비호하고 있는 그릇된 부활복음에 대해 반대할 뿐이다. 정통 신학자들이 말하는 성경적 부활 사상에 대해서는 동일하게 중요하게 여기며 강조하고 있다.

▲ 이창모 목사(제자들 경배와 찬양교회 담임, <방언 그 불편한 진실>의 저자)

 

6. 정이철 목사가 “666을 베리칩으로 가르치며, 음모론을 가르치는 교회에 가서는 세미나를 하였다”는 시비에 대하여

필자는 노우호 목사의 신학 사상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다. 그러나 설령 김한길 목사와 이인규 씨가 주장하는 대로, 문제 있는 목사의 교회에서 정이철 목사가 강의를 했다하다고 하자. 그것으로 정이철 목사를 한두 번도 아니고 이렇게 집요하게 공격하는 것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사실 노우호 목사가 666에 대해 뭐라고 가르치는지, 무슨 음모론을 가르치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정이철 목사가 노우호 목사의 교회를 방문했던 지난 해 말 예장 통합 이대위에서 노우호 목사에 대하 조사하여 발표한 글 속에도 노우호 목사에게 이인규 씨가 말하는 그런 문제점이 있다는 내용이 없었다. 이인규 씨는 “내가 하는 말에 한국 교회 전체가 숨죽이고 따라야 한다!”라는 오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만일 정이철 목사가 노 목사의 문제 있는 신학을 찬양하거나 이단적인 사상을 강의했다면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국교회를 무너뜨리고 있는 거짓 성령운동과 위험스러운 찬양운동에 대해 강의하였으므로 이인규 씨와 김한길 목사의 지나친 공격과 이단몰이는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만일 노우호 목사에게 정말 어떤 문제가 있다면, “이러이러한 위험성이 있으니 앞으로 조심하십시오!”라고 충고해 주면 충분하였을 것이다. 정이철 목사를 잡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비열한 마음이 이인규, 김한길 씨에게 넘치고 있다는 사실이 충분하게 드러났고,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상해 하고 있다는 사실을 두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

 

7. 정이철 목사가 미주 목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김성로 목사 집회 2,000명 목회자 참석자들이 자신의 글로 인해 680명으로 줄어들었다고 거짓말 했다”는 것에 대해여

정이철 목사가 나를 비롯하여 함께 연대하고 있는 진목연 멤버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언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이철 목사는 자신의 말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곧 바로 자신의 착각임을 인정하고 정중하게 잘못을 사과했다. 정이철 목사는 이미 <바른믿음>의 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다시 점검해 보니 이 부분은 나의 명백한 실수였다. 2,000명이 모였다는 집회의 참석자들은 목회자들이 아니고 국내외의 일반 신자들었다. 나는 그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고 2,000여명의 목회자들이 그릇된 부활사상을 전파하는 김성로 목사의 집회에 참석했다고 여러 사람들에게 보낸 메일에 언급했으니 내 잘못이 맞다. 이 일로 공적인 기사이건, 사적인 메일이건 더욱 더 정확한 사실을 이야기하도록 신경을 더 많이 기울여야 하겠다고 반성했다. 그런데 이것을 언급하는 이인규 씨의 태도는 이해할 수가 없다. 평신도들의 집회를 목회자들의 집회였다고 착각하고 내부 소통하는 메일에 언급했던 것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문제 삼고 글을 써서 비방할 일인지 의아스럽다. 이전에도 이인규 씨는 내가 싱가폴의 ‘콩히’ 목사와 싱가폴의 ‘콩’ 목사의 사진을 착각하여 잘못 올렸을 때,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처럼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나를 조소하고 비방하였다.

‘로렌스 콩과 콩히 목사에 대해서 구별도 못하는 한심한 정이철목사는 그의 글에서 로렌스콩을 비판하면서 사진은 콩히 목사의 사진을 실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그것을 알게 되자 허둥지둥 사진을 바꾸는 웃을 수 없는 코메디까지 연출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 밝혔듯이 이단연구가가 아니다. 이단연구가로서 자격이 없다.’(이인규 씨, "정이철 목사는 이단연구를 중지하기 바란다(1)")’(정이철, “사진, 숫자에 더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김한길 목사와 이인규 씨는 정 목사를 험담할 때마다 빼 놓지 않고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정이철 목사가 마치 의도적인 거짓말을 한 것처럼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다. 바르게 말하자면, 정이철 목사의 숫자 착각에 비해 이인규 씨가 말한 “더욱이 김정일도 하나님의 종이라는 주장은 6·25전쟁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인 것이 하나님이 시킨 것이 됩니다.(이인규 평이협 대표)”는 마치 김정일이 6.25사변을 일으킨 장본인인 것처럼 말함으로, 이인규 씨는 한국 역사를 마음대로 바꾸어 버렸다. 이것은 정이철 목사의 숫자 오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말이 되지 않는 오류이다. 그러나 이 오류가 진리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가 아님으로, 관찰력이 뛰어난 정이철 목사라 할지라도 이것을 문제 삼지 않는 것이다.

사실상 아무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인규 씨와 김한길 목사가 자꾸 이러한 시비를 벌이는 것은 정이철 목사가 지적하는 자신의 치명적인 오류들을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려는 연막전술에 불과하다. 세미나에 참석한 숫자에 대한 오류는 진리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이중제사’, ‘신부활론’은 복음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는 오류들이 아니던가?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7:3)

 

글을 닫으며

지금 이인규 씨는 지금 무척이나 당황하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정이철 목사와의 부활복음 논쟁에서 거의 백기를 들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고, 지난 20년 이상 이단전문가 활동을 통해 쌓은 명성이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귀결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정이철 목사는 진리를 주장했고, 이인규 씨는 김성로 목사의 이단적인 사상을 비호했기 때문이다.

이미 사람들은 정이철 목사에게 보낸 이인규 씨의 협박메일의 내용을 다 알고 있다. 김성로 목사에 대한 글을 내리지 않으면 매장시키겠다고 협박하는 메일을 보내는 사람이 어떻게 복음의 진리를 다루는 하나님의 사람일 수가 있겠는가? 최근에는 공개세미나 현장에서 “정이철 목사를 아작을 내고, 호소문에 서명한 사람들까지 작살을 내버리겠다”라고 발언한 사실도 이미 다 알려졌다. 정이철 목사를 아작내는 방법이 이단몰이라는 사실도 다 알려졌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다루는 복음의 사람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인규 씨는 조금이라고 깨닫기를 바란다.

이인규 씨가 운영하는 싸이트에서 ‘caleb’이라는 닉으로 활동하는 김한길 목사의 정이철 목사에 대한 심각한 행동에 대해서 이미 사람들은 눈여겨 보고 있는 중이다. 최근 <뉴스엠>의 기사들의 댓글에서도 혼자서 무료 와이파이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정이철 목사를 조롱하는 댓글을 달고 있으므로 이 분이 하는 일은 하루 종일 정이철 목사 미워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분이 미주 세이연의 상임위원이라는 직함까지 가지고 있으므로 더 혼란스럽다.

그래도 이 두 사람은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단성있는 김성로 목사를 옹호하고 자신들도 위기를 피해 보려고 애쓰는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정이철 목사를 이단으로 모는 작전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김성로 부활복음의 이단성을 지적하는 정이철 목사의 글의 권위를 떨어뜨릴 수 있고, 사람들의 관심을 자신들의 오류와 이단성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다음의 성경 말씀을 눈여겨보기 바란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막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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