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구원론, 하나님 은혜 부정하는 궤변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

예수를 온전히 믿는다면, 그리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당연한 진리를 믿는다면 예수의 부활은 전혀 놀라운 기적이 아니다. 놀라기는커녕,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결코 죽으실 수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예수의 부활은 특별한 '신비'가 아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예수는 이미 '내가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불가능한 기적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내재적인 능력인 동시에 믿는 자의 구원을 가리키는 '온전한 계시'이기 때문이다.

'부활구원론'이라는 지금까지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던 새로운(?) 구원론이 제법 가파른 속도로 세상에 전파되고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십자가의 죽음만으로 완전하지 않으며 부활을 통해서 비로소 완전해졌다는, 구원을 위한 '십자가 복음'의 완전성을 훼손하는 비성경적인 주장이다.

바울은 일찌감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며, 헬라인에는 미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은, 그리고 십자가의 대속이 제시하는 복음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자들은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능력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밝히 드러내신 하나님의 분명한 계시를 깨닫지 못했다는 말이며,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비로소 십자가는 완전한 구원의 능력이라는 말이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1:22-25)

십자가의 능력에 관한 바울의 주장은 간단명료하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새로운 이론인 양 '부활구원론'을 내세우며 십자가 복음으로는 구원이 완전하지 않다는 주장은 결국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의 생명을 바친 십자가 대속이 불완전하다는 말이며, 그것은 유월절의 어린 양이신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을 바친 제사가 구약시대 짐승제물을 바쳤던 유대 제사처럼 '불완전'하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십자가는 죽음이며 부활이 영원한 생명이다. 따라서 십자가로는 완전하지 않고, 부활을 통해서 비로소 영원한 생명의 구원이 완성된다."는 주장은 한 마디로 십자가에서 숨을 거주시며 '모두 이루었다'고 선언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희생과 대속을 통한 구원의 전적인 능력을 왜곡하는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예수의 십자가를 온전히 믿지 못하는 자는 사실상 부활 또한 온전히 믿지 못한다.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리라"(마17:22)고 말씀하신 예수의 십자가는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제삼일'의 부활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죽음이며, 부활이 생명이다"는 주장은 예수를 온전히 믿지 않는 자, 이른바 구원의 표적을 구하는 자가 십자가의 죽음을 가시적 현상으로 바라볼 뿐, 구원의 영적 계시로 깨닫지 못하는 치명적인 무지이다.

'절반의 완성'에 지나지 않는 십자가의 불완전한 구원을 채우기 위해서 '부활'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예수의 대속제사로서 십자가의 희생이 지니는 의미를 바르게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한 신성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십자가의 완전한 능력을 증거하고,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온전한 '계시'를 세상에 밝히 드러내시기 위해서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이다. 이를테면,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대속과 신약시대 '새 언약'을 통해서 구원을 받으며, 부활을 통해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거하고 계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신앙에서 '부활'이 지니는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부정하거나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바울이 말하듯이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영생의 구원에 이르는 전적인 능력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하신 특별하며 완전한 계시라는 것이다. 요컨대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으로서 더 없이 중요한 진리이지만, 부활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불완전한 복음을 입에 담지 말라는 말이다.

요컨대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으며, 십자가 없는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총체적인 복음'으로, 부활에서 벗어난 다른 무엇이 아니며 그 안에 부활의 의미와 능력을 오롯이 담고 있다. 십자가를 죽음의 수난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해석한 요한 사도의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1)

신비주의적 표적과 인간의 지혜를 구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께서 자기 생명을 바치시며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십자가는 그들이 섣불리 주장하듯이 '죽음의 십자가'가 아니라 죽음을 거쳐 부활에 이르는 '생명의 십자가'라는 진리를 훼손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복음을 믿지 않는 자인 동시에 그의 거룩한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대속 제물로 죽으셨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피는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며 새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반면에 부활은 예수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시며 신성을 지니신 '존재자'(I am)이라는 사실을 확증한 것이다.

십자가는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을 계시한 것이며, 부활은 예수가 하나님이 '보낸 자', 곧 그리스도로서 우리의 구원자라는 진리를 역사적인 사실로 증명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로 온전한 구원을 얻으며, 부활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12:32)

'땅에서 들린다.'는 말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신다는 말이며,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는 말은 십자가 대속을 믿는 우리 모두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말이다. 이렇게 예수께서 친히 십자가의 완전한 복음을 선언하셨는데, 더 이상 무슨 사족이 필요한가.

십자가의 대속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랑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지극하신 은혜다. '하나님의 계시자'이신 예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극한 사랑으로 우리를 대속하셨으며, '전능하신' 하나님은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셨다.

부활은 생명의 창조로서, 창조주 하나님의 당연하며 내재적인 권세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면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는 말이다.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거룩한 사랑을 제멋대로 비틀어 부활의 능력을 십자가의 '보완재'로 강조하는 것은 신약시대, 다시 말해 '새 언약' 시대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특별한 신성을 오롯이 깨닫지 못한 영적 무지이며 오류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는 전지전능의 초월적인 신성에 앞서, 절대 사랑의 '특별한 신성'을 보이기 위해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셨다. 그리스도 신앙은 십자가에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사랑의 계명, 구원의 은혜, 부활의 능력을 십자가에 모두 담지하고 있기 때문에 십자가를 말할 때 우리는 단순히 예수의 '죽음과 수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능력과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를 동시에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예정론(은혜구원론)에 맞서 이분법적 사고에 따른 '행위구원론'이 창궐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훼손했던 것처럼, 십자가 구원에 맞서 부활구원론을 마치 '완성된 구원론'인 양 섣불리 들먹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훼손하는 배역이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족하며, 십자가의 대속으로 구원을 얻은 자에게 부활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당연한 결실이다.

영생의 구원, 이른바 '부활'에 이르지 못하는 무능한 십자가를 입에 담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생명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올곧게 믿지 못하는 것이며, 예수의 대속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하는 궤변이다. 바울 사도의 말을 빌려 십자가의 능력을 다시 강조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뉴스앰 / 강만원(mw144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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