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씨의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사이트를 이용하시는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메일을 나에게 보내주셨다.

“아래는 이인규 씨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카페에 올린 글입니다. 문제의 발단은 그 카페 내의 어떤 회원이 이 동영상의 내용을 가지고 문제를 삼자, 그것을 본 이인규 씨가 이런 글을 올렸는데, 신속하게 목사님께서 변증하는 글을 올리셔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알립니다.

그들은 김성로 목사의 잘못된 부활사상을 문제 삼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문제를 지적하는 정이철 목사님의 약점만을 노리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김성로 목사보다는 어떻게든 목사님을 몰아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듯 보이는데, 아래의 영상을 토대로 꼬투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알려준 내용을 보니, 이인규 씨가 나를 상대로 이단시비 바람을 일으키려고 시도하는 소재로 삼는 영상은 바로 이것이었다. 원래 이 설교는 약 8-9년 쯤 전에 우리 교회에서 했던 설교였고, 이런 일이 있기 전에 먼저 인터콥 사람들이 이 중의 한 문장을 떠서 이단시비를 일으켰던 일이다. 이 영상은 전후 사정을 알도록 2013년에 올려졌던 것이다. 

그 당시 우리 교회에 김기동 계열의 귀신론에 오염되어 감기가 찾아오면 거울 앞에 서서 자기 얼굴과 눈을 보고 “감기를 일으키는 귀신아 물러가라!”라고 명령하는 그릇된 믿음을 가지신 분이 계셨다. 다른 교회에서 그런 가르침을 받았고, 나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신앙과 삶을 하나님과 귀신의 대결 구도로 생각하며, 극단적 전쟁의 관점에서 신앙을 이해하는 분이었다. 지금은 타주로 이사 가시어 소식이 끊겼는데, 당시 이 설교를 할 때에는 그 분이 하나님 절대중심의 성경적 신앙을 이해하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이 작용하였다.

대체 어떤 목회자가 마귀와 귀신들을 하나님이 쓰시는 올바른 사역자들과 같은 차원에서 비교하겠는가? 나름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발악하는 악한 마귀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기독교 세계관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이런 식의 이단시비를 일으킨다면, 그 동안 이인규 씨가 했던 이단시비들이 모두 이런 수준이었다고 평가될 것이다.

이 설교의 관점은 기독교 세계관은 단순 이원론이 아니고 ‘일원론적 이원론’, 즉 사탄이 하나님을 대적할지라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다는 지극히 성경적인 관점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먼저 인터콥 사람들이 이것으로 나에 대한 이단시비를 시도하였으나 통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십자가를 훼손하는 이단성 있는 인물 김성로를 보호하기 위해 이인규 씨가 인터콥의 뒤를 이어 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이인규 씨가 참 안타까울 뿐이다.

나에게 편지를 주신 분은 이인규 씨가 “김성로 목사의 잘못된 부활사상을 문제 삼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문제를 지적하는 정이철 목사님의 약점만을 노리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고, “김성로 목사보다는 어떻게든 (정이철) 목사님을 몰아내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하였다. 불행히도 사실이므로 매우 안타깝다. 특히 이인규 씨가 내가 설교 중 십자가 사건을 설명하면서 대제사장이 하늘 지성소에서 피를 뿌렸다고 하는 내용을 시비하여 “완전한 이단적인 주장”이라고 애써 규정하는 것도 너무나도 억지이고 안타까운 모습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늘 지성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하늘 지성소에 속죄의 피를 뿌리 사건으로 설명한 내용은 지극이 옳으며, 특히 히브리서가 십자가 제사를 설명하는 바로 그 관점이다. 히브리서는 당시 성전에서 진행되던 동물의 피 제사와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를 대조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하늘 지성소에서 이루어진 차원이 다른 제사라고 설명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이 땅의 시간과 공간 내에서 벌어졌다는 면에서는 동물의 제사와 모양이 같을 수 있으나, 그 완전하고 영원한 효력의 측면에서는 전혀 차원이 다른 제사라는 사실이 히브리서에서 강조되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을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심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심을 하늘 지성소에 자기의 피를 드려 영원한 제사를 이루신 것으로 설명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드리신 제사는 곧 하늘 지성소에서 하나님께 속죄의 피를 드려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지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안달을 냈던 사탄의 종 인간 대제사장이 예수님의 하늘 지성소 제사가 성취되도록 앞장섰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설명하면서, 마귀는 결코 하나님을 대적한 진정한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동시에 설명하는 설교였다. 오히려 이인규 씨에게 물어보고 싶다. 뭐가 문제라는 것인가? 대체 뭐가 잘못되었다고 이런 엉뚱한 이단시비를 일으켜 보려고 하는 것인가?

만일 당시에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하늘 지성소라고 설명하지 않고, 김성로 목사처럼 부활 후 하늘에 올라가서 다시 드린 제사가 ‘하늘 지성소 제사’ 또는 ‘영원한 제사’라고 했다면, 나는 십자가의 완전성과 절대성은 능멸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마땅히 수정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회개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미 8-9년 전부터 십자가를 하늘 지성소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하늘 지성소에 뿌리신 영원한 속죄의 피로 설명하는 히브리서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서 설교했으니, 오히려 이인규 씨가 칭찬을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이인규 씨가 신학적으로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서 이단사역한다고 그 동안 용맹을 떨치다보니, 이제 이런 망신과 화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이렇게 터뜨리고 말았으니, 이제 내가 어떻게 이인규 씨를 도울 수가 있겠는가? 내 문제는 아니지만, 나도 남감하다.

▲ 이인규 씨가 수년 전 인터콥 이단성 공청회에서 인터콥을 강력하게 논박하고 있는 모습. 그 당시 인터콥 일부 인물들이 정이철 목사에게 '역이단시비'를 시도했던 내용을 이제는 이인규 씨가 정이철 목사를 상대로 똑 같이 써먹고 있다.

남의 사상도 맘대로 짜집는 이인규 씨!

이인규 씨의 사이트를 이용하시는 분이 보내주신 편지를 보내 이인규 씨는 또 이렇게 억지와 궤변으로 나를 모략하였다.

“부활을 안 믿어도, 심지어 부활을 의심해도 구원을 받는다는 글도 올렸습니다. 구속과 구속사적인 의미가 다른데, 십자가는 구속이고 부활은 구속사적이라는 이상한 궤변까지 주장하면서 부활을 구속적 과정에서 부정해 온 사람이 정이철목사입니다.”(이인규 씨)

이인규 씨는 이성을 찾으시고 참 말을 하시기 바란다. 내가 언제 부활을 의심하고 안 믿어도 구원을 받는다고 하였는가? 내가 언제 이런 내용의 글을 썼다는 것인가? 그것은 <바른믿음>의 한 독자가 쓴 글이고, 십자가의 완전한 속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었으나, 오해와 북작용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 당시 곧 바로 수정하였던 내용이다. 이제 더 이상 찾을 수도 없는 그 내용을 한두 번도 아니고 영구하게 써먹는 다면, 사람들은 이런 방식이 이단연구가 이인규 씨의 주요 전락이고, 또한 이단을 잡아도 제대로 잡는 것이 아님을 다 알게 될 것이다. 

이인규 씨가 '구속', '구속(사)적' 등의 용어를 앞세우며 자꾸 시비를 거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고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용어들에 대한 서로의 느낌과 개념이 다르고, 심지어 학자들과 전문 번역서에서도 통일성 없이 모호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쉬운 말로 해서, 십자가는 우리를 죄에서 건지신 사건(대속, 속죄)이고, 부활은 십자가의 당연한 결과로서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라는 것이 나의 신앙이고 사상이다. 그러나 김성로 목사는 부활도 우리의 죄를 사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하였고, 이인규 씨는 그것의 문제 점을 바로잡기는 커녕 교묘하게 비호하기 때문에 이런 용어의 혼란도 벌어졌다고 생각된다. 서로 각각 다른 느낌과 개념을 담아 쓰고 있는 용어들에 관한 시비는 그만하고 싶다.  

“십자가는 반드시 부활을 동반한다”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나의 사상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진정한 십자가 신앙은 필연적으로 부활을 초래한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부활은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완전속죄의 결과이고,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가 다 사해졌음을 드러내시는 증거로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셨다는 것이 나의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이다. 내가 내 손으로 쓴 다음의 내용을 이인규 씨는 읽어보시기 바란다.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이고 서로 뗄 수가 없다. 그러나 김성로 목사는 이미 십자가와 부활을 분리하였고, 십자가에서 부활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면서 기독교의 핵심을 많이 비틀었다. 이는 김성로 목사가 이미 이단의 길로 들어섰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물론 김성로 목사는 각종의 신비주의, 은사주의, 시한부 종말론 ... 등의 이단에 비하면 더 안정되어 보이고 덜 심각해 보인다. 그러나 구원의 진리를 변개하고 왜곡하면 누구나 이단이고, 저주받을 자(갈 1:9)라는 성경의 말씀을 누가 고치겠는가?”(정이철,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차등하면 부활을 앞세워”)

내가 문제 삼고 대적하는 것은 십자가와 부활 사이를 자르고, 십자가 안에서 부활의 소망을 선전하지 않고, 십자가 중심의 신앙을 죽은 신앙, 우상숭배로 매도하면서 어이없는 부활을 강조하는 김성로 목사의 십자가를 무너뜨리는 비정상적인 부활사상이다. 이인규 씨는 왜 엉뚱한 싸움을 하면서 본질을 오도하는 것인가?

이인규 씨의 사이트를 이용하시는 분이 알려주신 내용에 의하면, 이인규 씨는 또 이렇게 말하면서 마치 내가 엄청난 이단사설을 이야기하기라도 한 것처럼 모략하였다.

“(정이철 목사는) 예수님 자신이 속죄대상이라고 하는 글도 올렸고, 예수님의 시신이 썩고 부패하였는데, 하나님이 죄에서 죽은 자를 자기 백성으로 재창조하기 위한 첫샘플이 예수라고 말하는 황당한 내용까지 있었습니다.”(이인규 씨)

이런 말까지 공개적으로 하면서 나를 이단으로 몰아보려고 하는 것을 보니, 미안하지만 이인규 씨는 더 이상 이단사역자로서 활동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확신이 든다. 이 내용에 대한 나의 평소의 입장과 관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증거들과 함께 설명하여 보겠다.

1)“예수님 자신이 속죄대상이라고 하는 글도 올렸고”(정이철 목사에 대한 이인규 씨의 이단시비 내용)

아마도 이인규 씨는 나의 다음의 말을 문제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구속의 유일한 근거라는 사실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 자신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신의 속죄의 피의 완전한 속죄의 혜택을 가장 먼저 적용받으심이다.”(정이철, “이단옹호자 이인규 씨의 탁월한 게임기술”)

하나님은 죄 없으신 예수님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전가하시었고,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의 대표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죽으실 때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 자기의 영혼과 운명을 의탁하시었다. 우리를 대표하는 죄인의 입장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소망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와 은혜뿐이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눅 23:46)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표하여 죄인의 입장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수난과 속죄의 피에 만족하셨다. 예수님의 보혈의 제사에 만족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대표로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 다시 사신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대표로 죽으셨던 것처럼, 우리 모두의 대표로서 다시 사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의 큰 비밀이다. 장차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부활의 원리이기도 하다.

우리를 대표하여 첫 번째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활이나, 장차 이어질 우리 모두의 부활의 유일한 근거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이다. 이단연구가 이인규 씨가 이런 기본적인 진리를 몰라 이런 어이없는 이단시비를 걸었다면, 이제 앞으로 어디에 가서 이단연구가라며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매우 걱정된다.

2)“예수님의 시신이 섞고 부패하였는데”(정이철 목사에 대한 이인규 씨의 이단시비 내용)

아마 이인규 씨는 나의 다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여서 또 다시 어리석은 이단시비를 걸어보는 것 같다.

“죽어 무덤에서 삼일 동안 부패가 진행된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다시 생명과 생기를 주시어 살게하신 분은 예수님 자신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다. 죽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다시 사셨다는 것은 곧 그의 몸이 다시 지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미 삼일 동안 부패가 진행되었으니 온 몸의 모든 세포들이 다 붕괴되고 해체되는 과정이 깊이 진행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몸을 다시 조성하시어 살게하시므로 부활한 것이다.”(정이철,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차등하면 부활을 앞세워”)

이인규 씨는 죽으신 예수님의 무덤에 계시는 동안 전혀 육신의 부패가 지속되지 않았다고 믿는 모양이다. 하나님께서 죽으신 예수님의 몸을 싱싱하게 보존하셨다가 부활에 이르게 했다고 믿는 것 같다. 예수님의 몸은 우리들의 몸과는 근본적으로 달랐고, 죽어도 부패가 찾아오지 않는 ‘불멸의 몸’이었다고 이인규 씨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인규 씨는 기독교 신앙을 모르는 불신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의 완전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완전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원리이다. 예수님이 중보자 되심은 그가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동시에 죄만 없으신 완전한 사람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와 같은 피, 같은 육체를 가지신 동일한 죄없는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삶을 사셨고,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는 중보자가 되셨다(딤전 2:5).

만일 예수님의 몸이 죽어도 부패가 찾아오지 않는 ‘불멸의 몸’이었다면, 어떻게 그 분이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지신 우리를 대표하는 사람이었다는 기독교의 진리가 설 수가 있다는 것인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는 죄는 없으시나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동일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이시고, 우리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부활의 나중 열매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어떤 나무의 첫 열매와 그 다음의 둘째, 셋째 열매 사이에는 시간의 차이 말고 다른 차이가 없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인규 씨처럼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서 싱싱하게 보존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다음의 말씀이 그 근거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죽음에 영구히 머무르지 않고, 반드시 부활하시어 다시 무덤을 박차고 나오신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내용이다.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행 13:35)

3)“하나님이 죄에서 죽은 자를 자기 백성으로 재창조하기 위한 첫샘플이 예수라고 말하는 황당한 내용”(정이철 목사에 대한 이인규 씨의 이단시비 내용)

아마도 이인규 씨는 내가 설명한 다음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여 이런 어이없는 이단시비를 일으키시는 것 같다.

“기독교의 부활을 이야기할 때에도 언제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부활은 십자가를 통해 이미 죄와 허물로 죽은 자기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조성하여 영구히 자기 백성되게하시는 최고의 사역이다. 부활을 이야기함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시고 대신 십자가에서 사형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다. 예수님의 피의 희생제사를 만족하게 받으신 하나님께서 장차 그를 믿는 우리 모두를 다시 창조하시겠다는 증표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로 가장 먼저 살리셨다.”(정이철,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차등하면 부활을 앞세워”)

“단지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하고, 허파가 호흡하게 만드는 치료 수준이 아니었다. 죽었고 삼일 동안 그 몸이 부패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재 창조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미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자기 백성을 다시 새롭게 조성하여 하나님 백성되게 하시는 재창조의 시작이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 제사의 은혜를 덧 입은 신자들이 이미 죽었던 상태에서 다시 창조(출생)된 것이라 가르쳤다.”(정이철,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차등하면 부활을 앞세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이라는 것은 성경의 내용을 설명하는 지극히 기본적인 신학적 진술이다. 하나님 백성으로 지어진 아담이 언약을 파기하고 하나님께 반역하는 범죄를 저지른 사건은 신학적으로 원래 있었던 하나님 백성이 사라져버린 사건으로 설명될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는 원래 있었으나 죄로 인해 사라진 참 하나님 백성을 다시 만들어 내심이었다. 그래서 성경은 죽었던 하나님 백성들을 다시 십자가 복음으로 살렸다고 말씀한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 2:5)

죄로 인해 없어진 참 하나님 백성을 다시 만들어 내는 사건이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신학적으로 ‘재창조’라고 기술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재창조하심의 시작이었다. 만일 내가 예수님의 부활을 ‘재창조의 sample’이라고 말하여 이인규 씨에게 혼돈이 켰다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이전에 sample이라고 했던 표현을 더 좋은 표현인 '시작'으로 수정하였다)

예수님의 부활은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의 시작’이었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다시 생산된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구원얻지 못한 기존의 인류와 대비되는 ‘새로운 영적인류’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재창조된 백성들 그 자체이다. 이인규 씨에게 이렇게 큰 무안을 준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인규 씨가 먼저 어이없는 일을 벌였으므로 어쩔 수가 없었다. 앞으로는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을 트집 잡아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초래하는 어이없는 이단시비를 공개적으로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인규 씨에게 드리는 제안

지금 우리가 해야 할 더 중대한 일은 십자가를 멸시하면서 십자가 중심의 신앙을 죽은 신앙으로, 십자가 중심의 신앙을 우상과 같은 것으로 매도하면서 비성경적인 부활 강조로 기독교에 다른 복음을 끌고 온 김성로 씨의 이단성을 밝혀 교회를 보호하는 것이다. 김성로의 거짓복음을 물리치기 위해 애쓰는 나의 뒤를 캐고, 실수나 허물을 밝히는 일은 그 다음의 일이다.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이미 교회에 큰 타격을 준 김성로의 십자가의 절대적 진리를 파괴하는 이단사상을 보호하기 위해 나에게 어이없는 이단싸움을 시도하는 이인규 씨는 이미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군대의 특수부대원의 입장에 서 버린 것 같다. 부디 그 저주받을 악마와 동행하는 길을 더 깊이 걸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이인규 씨에게 부탁한다. 나의 싸움의 대상은 ‘부활’이라고 하는 기독교의 중요한 것으로 더 중요한 ‘십자가’를 죽이는 김성로 목사의 악마적 거짓복음이다. 이인규 씨는 왜 남의 거짓복음에 자신의 인생을 것인가? 하나님이 이제 이인규 씨를 죽이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일까? 대체 이런 이상한 일은 왜 벌어지는 것일까? 김성로 목사의 문제를 질문하는 독자의 질문에 내가 단순하게 답변했다고 “당장 글을 내리지 않으면 매장시키겠다! 발도 못 붙이게 하겠다!”고 협박하고, 그 말을 듣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저열한 인신비방의 글을 쓸 때부터 이미 이인규 씨는 귀신에게 끌려다니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오히려 자신이 억울하게 욕설과 인신공격을 당했다고 오도하는 글을 이인규 씨가 잘 쓴다는 말이 들린다. 자신이 나에게 했던 정말 말도 안 되는 무례하고 못된 일들을 잊으셨는가? 나에게 쓴 글을 내리지 않으면, 이단사역 계통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해 주겠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낸 사람이 누구였는지? 왜 그런 내용의 협박을 보냈고, 그 이후에 무슨 일을 더 했는지? 이인규 씨는 생각해 보고 이후 제발 자중하기를 바란다. 

이제 이후로는 김성로 목사의 문제가 마루리 될 때까지 이런 유형의 시비에는 일절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십자가를 파괴하는 거짓 부활이론을 전파하여 한국 교회를 무너뜨린 춘천한마음침례교회 김성로 목사의 이단성에 대한 시비를 가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인규 씨 뿐아니라 다른 분들도 이후 비슷한 이단시비가 또 있을지라도 상대하지 않는 나의 입장을 이해하여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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