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익명의 독자가 <바른믿음>의 '독마마당'에 올리신 글이다). 십자가는 성경의 중심이며 복음의 핵심입니다. 십자가가 없었다면 기독교는 아예 존재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었다면 죄 사함도, 구원도 없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목표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가로 막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를 대적하기 위해 예수가 오시자마자 아기 때 죽이려다 실패했습니다. 마귀는 훗날 예수를 십자가에서 처형하는데 결국 성공했으나 오히려 십자가에서 구원사역을 이루시고 승천하심으로 마귀는 또 실패했습니다. 연거푸 실패한 마귀는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분노하며 우는 사자같이 한 영혼이라도 더 멸망시키려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훼방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마지막 때에 구속사역을 막는 방법은 십자가를 훼방하는 것 입니다. 십자가 대속의 진리를 믿게 되면 더 이상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구원의 문인 십자가로의 접근을 차단하기위해 온갖 계교를 총 동원하고 있습니다.

춘천 한마음침례교회 김성로목사는 복음으로 복음을 가로막는 희한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십자가를 훼방하고 있습니다. 혹자들은 김성로 목사가 부활을 강조하는 것은 복음을 강조하는 것인데 뭐가 잘못된 것이냐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김성로 목사가 부활을 강조하는 숨은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김성로목사는 부활의 소망을 주기위해 부활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불손하게도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부활하신 예수”를 차별하기 위해 부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의 죽은 예수”와 “부활하신 예수”를 구별하고 한마음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 교회라는 것을 부각시킬 목적으로 부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김성로목사는 자신이 세운 엉터리 부활신학의 체계를 갖추기 위해 십자가에서 머무르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만 믿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주장하고 십자가를 지나 부활의 예수께 나가야한다고 가르칩니다. 즉 부활에 까지 나아가야만 완전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얼핏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은 십자가대속의 완전성을 뒤엎는 선언입니다. 십자가의 완전성을 부정하는 것은 기독교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김성로 목사는 자신의 부활신학의 명분을 세우기 위해 부활이 나오는 성경구절들의 원뜻도 교묘하게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한마음교회 간증자들은 부활에도 대속의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만 믿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며 십자가를 지나서 부활하신 예수를 믿어야한다는 것은 십자가를 약화시키고 건너뛰게 하려는 마귀의 미혹이며 계략입니다. 이걸 모르는 한마음교회 교인들은 징검다리로 십자가를 건너뛰고 부활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고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부활은 십자가 대속의 열매이자 영광입니다.우리가 천국을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없듯 마찬가지로 부활을 믿고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김성로 목사는 부활에도 구원의 능력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마귀는 이러한 김성로 목사의 교활함을 심히 기뻐하며 힘써 돕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마음교회 간증 팀들을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증자들은 하나같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변화되었다고 말합니다. 십자가를 건너 뛴 간증자들을 누가 변화시켰을까요?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도들은 부활의 증인이 되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것을 찬성한 유대인들을 회개시켰습니다. 그러나 한마음교회 간증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무덤 근처에도 가본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마음교회 간증팀들은 마치 자신들이 부활을 목격한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 변화(?)되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김성로 목사의 트릭에 세뇌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간증의 이면에는 타 교회는 죽은 예수를 믿는 교회라고 매도하고 한마음교회만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 교회라고 차별화시키려는 전략이 숨어있음을 젊은 간증자들은 알지 못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믿고 예수께서 부활하셨음을 믿고 있습니다. 또 우리가 부르는 "예수"라는 호칭에는 그분의 모든 것이 포함된 이름입니다. 그러나 살아난 예수와 죽은 예수를 차별하기 위하여 호칭 앞에 “부활”을 붙이는 것은 매우 간교하고 교활한 행위입니다. 이 지혜를 누가 주었을까요?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성경을 살펴봅니다.

<십자가에 대하여>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한 죄로 인하여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영원한 멸망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에게 하나님께 돌아 갈수 있는 길을 성경을 통하여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메시아를 믿고 그 분의 대속을 믿는 것입니다. 메시아의 대속은 부활이 아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아닌 부활로 대속할 수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훨씬 더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아들을 죽이실 필요 없이 부활체만 보여주시면 되니까 얼마나 좋아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것은 부활이 아니라 십자가 죽음 외에는 없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공의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율법의 본질입니다. 따라서 율법의 요구에 따라 죄인은 반드시 죽어야하며 이를 면하려면 대속제물이 있어야했습니다.그래서 성경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온통 대속의 십자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벨도 메시아의 대속을 믿고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으며,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아브라함도 모리아산에서 이삭대신 준비된 양을 보고 메시아의 대속을 믿었습니다..(요8:56) 이삭도 이를 믿었으며 야곱이 꿈에서 본 하늘로 연결된 사닥다리도 십자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대속의 십자가사닥다리를 통해서만 하나님나라에 올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요1:51 창28:12) 또 출애굽의 유월절 어린양도 예수의 살과 피를 나타낸 것이며 레위기의 모든 피 뿌리는 제사도 예수의 대속을 예고한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 제자들에게 떼어준 떡과 포도주는 예수의 못 박혀 찢어지는 살과 그 틈에서 흐르는 보혈을 상징한 것이었습니다.예수께서 흘리신 대속의 보혈이 없으면 결단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즉,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도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대속의 십자가에 중심이 모아진 책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사이에 가로막힌 담은 죄입니다. 이 죄의 담을 허물기 위해 하나님이시며 또한 참 인간이셨던 예수께서 친히 죄인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긴 시간 고난 받으셨습니다. 짧은 시간에 죽으실 수도 있으셨겠지만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느라 6시간이나 처절한 고통을 감당하셨습니다. 산채로 못 박혀 매달린 고통은 우린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이 고통과 함께 우리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이 십자가대속을 믿는 것이 진리입니다. 십자가 안에 생명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김성로목사의 주장대로 십자가는 죽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오신 성령께서는 먼저 죄를 깨닫게 하시고 십자가로 인도하셔서 십자가에서 나오는 대속의 진리를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죄사함과 새 생명을 얻는 기쁨을 깨닫게 하십니다. 십자가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가 생수 되어 마르지 않고 넘치도록 흘러나오는 곳입니다. 즉 죄의 노예에서 해방된 자유와 기쁨과 은혜의 생수가 마르지 않고 흐르는 곳이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를 머무르지 말고 지나치라고 가르치는 김성로 목사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자입니다.

십자가복음을 훼손하는 김성로목사.

성령의 인도로 십자가진리를 깨닫게 되면 예수의 큰 사랑에 압도되어 큰 감격에 휩싸이게 됩니다. 성령이 없이는 예수십자가의 큰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로 예수의 사랑을 깨달은 제자들이 순교신앙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십자가진리를 맛 본 그리스도인은 평생 십자가사랑 안에서 머무르게 됩니다.

김성로목사가 십자가의 진리를 1%만 깨달았다면, 아니, 단 0.1%만이라도 느껴봤다면 십자가에 머무는 것은 죽은 믿음이라는 망발은 감히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 십자가복음과 “부활의 복음”을 동전의 양면 같다는 등의 궤변을 담은 칼럼도 감히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체를 보고 순교신앙으로 변화되었다는 거짓말도 지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단언컨대 김성로목사는 십자가복음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십자가복음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며 성령께서 열어주시지 않으면 십자가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고난이 담긴 십자가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죄송하고 송구하여 감히 입 밖으로 나올 수 없는 말입니다.

<부활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부활에 대하여 “요나의 표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많은 기적과 표적을 보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이 메시아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자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게는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서 니느웨 백성들에게 심판을 외쳤듯이 예수께서 무덤에서 나오셔서 부활하신 것을 보이신 것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심판주가 되심을 보이신 것입니다.

 

결 론

김성로 목사는 고전 15:17절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라는 구절의 원뜻을 왜곡시켜 부활을 믿어야 구원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기독교의 기둥인 십자가를 부정하고 훼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이단들일지라도 감히 십자가를 직접적으로 훼손하는 이단은 없었습니다. 십자가는 기둥이요 초석이기 때문입니다. 춘천 한마음침례교회 김성로목사는 십자가만 믿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며 담대하게도 정면으로 십자가의 완전성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아무도 김성로목사의 이단성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저 단순히 부활을 강조하는 교회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 김성로 목사의 이단성을 들추어내고 계십니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한국교회는 십자가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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