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성경적인 '부활복음'으로 미혹하는 춘천 한마음침례교회 김성로 목사

춘천 한마음침례교회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다른 복음”들 중 가장 진화된 형태의 것으로 여겨진다. 금가루, 금이빨, 거짓방언 등은 십자가와 상관없는 것임을 비교적 어렵지 않게 분별할 수 있지만, 김 목사의 “부활복음”은 자주자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표현되기 때문에, 이를 듣는 사람들은 전혀 의심 없이 “부활복음”을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쉽게 믿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목사가 전하는 “부활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다른 복음이다. 왜 그런지는 그가 2013년 11월13일 대전의 '늘 사랑 교회'의 전도부흥회 첫날 설교 내용을 잠시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김성로 목사는 목회를 시작하면서 온갖 것을 다 해보았다고 했다. 신학교 때 늘 마음에 품었던 십자가 사랑으로, 또 성령의 능력, 신유, 방언 등의 방법으로 목회를 했지만 다 실패했다고 한다. 그러나 십자가에 눌려서 부활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십자가를 지나 부활 앞에 섰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활복음을 깨닫고 그것으로 하니까 목회가 잘 되더라는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참 목회가 무엇인지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단지 성공하려고 발버둥 치며 이런 것 저런 것 다해보다가 어쩌다가 “부활복음”이라는 상품을 만들어 냄으로 그의 목회가 겉보기에는 성공한 듯 보인다. 그런데 그의 부활복음이 심각하게 보이는 것은 그것을 만들어낸 김 목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예 만나보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심 때문이다.

그는 설교 중에 십자가 사랑으로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려고 애를 썼고, 신자들도 그렇게 하려고 애를 썼지만 전혀 되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김 목사 자신은 대표적인 행위구원론자 찰스 피니 등의 책을 읽고, 회개하려고 덤벼들다가 5년이라는 세월을 날렸다고 했다. 그리고 2001년에 와서 깨달음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자신의 신앙 포인트가 십자가에서 부활로 역전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깨달음의 부활 포인트를 목회에 적용하기 시작하니까 비로소 교회가 놀랍게 부흥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설교에서 계속 “부활 표적밖에 없음을 믿습니다”를 반복했다.

김 목사의 이런 태도는 이전에는 십자가의 능력이 최고의 능력인 줄 알았다가 부활의 능력을 발견하고 나서는 부활의 능력이 더 세다는 것을 알았다는 데 기인한다. 그래서 이때부터 자신의 신앙 포인트가 십자가에서 부활로 역전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십자가와 부활을 대립시켜 놓고, 그 중에 더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부활을 선택한 것이다.

1. 김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 본적이 없는 것으로 의심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은, 죽을 죄인이 그 십자가 앞에 서면(물론 이것은 성령이 역사하셔야 가능하다. 그래서 김 목사는 십자가 앞에 서지 않은 것으로 의심된다는 말이다.),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충격적인 사실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처참하게 짐승처럼 피 흘려 죽으신 십자가 앞에 서면, 하나님께서 죄를 얼마나 싫어하시는지를 적나라하게 만날 수 있다. 그는 전능자이시므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그냥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도 있으셨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자신의 독생자에게 대신 죄를 뒤집어 씌어 십자가에 매 다시고 그를 심판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십자가 앞에 서면 하나님은 반드시 죄를 심판하시는 두려운 분이심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든지 십자가 앞에 서면, 또한 버러지 같은 나를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게 된다. 예수께서 처참하게 비병을 지르시며, 비참하게 짐승처럼 죽으신 그 자리는 바로 내가 그렇게 죽어야 할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나대신 처참하게 비명을 지르게 하시고, 비참하게 짐승처럼 죽이셨다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게 된다.

“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대신 십자가에서 이렇게 비참하게 죽으셨구나!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의인이심에도 불구하고 나대신 죄인으로 죽으셨으므로 죄인인 내가 의인으로 살아났구나!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짐승처럼 죽으셨으므로 짐승 같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났구나!”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를 만난 사람들에게는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구원의 역사다. 그런데 어째서 김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아담이 지은 죄의 영향 아래 태어난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나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믿는 자들에게 전가하여 주신다는 진리조차도 부정했던 찰스 피니의 책을 읽으며 회개를 하려고 덤벼들었으며, 그것을 놓고 5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고 말하고 있는가?

이것은 김 목사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그는 단지 신학교에서 배우고 스스로 생각한 자신의 십자가 앞에서 찰스 피니의 책을 읽으며 사람이 회개하는 노력으로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했을 뿐이다. 그러니 아무 것도 얻지 못했음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인간의 노력으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의 십자가 앞에 서면, 성령의 역사하심에 따라 구원에 이르는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김 목사는 하나님이 세우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회개하려고 노력하며, 찰스 피니의 책에까지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가 정말로 십자가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가 전하는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오는 능력의 결과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그에게는 십자가가 복음이 아니라 부활 그 자체가 복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2. 김 목사의 “부활복음”의 배경

그러면 어떻게 김 목사에게서 다른복음인 “부활복음”이 나오게 되었을까? 그것은 신학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데서 나오는 어설픈 성경 해석에서 비롯된 듯하다. 그는 행2:37에서 베드로가 전한 예수의 부활이 사람들로 하여금 ‘어찌할꼬’를 유발시킨 능력이라고 말한다. 또 행4:33에서 사도들이 전하는 부활로 인해 무리가 큰 은혜를 입었다고 말하므로 ‘부활’이야말로 초대교회를 변화시킨 복음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초대교회의 정황과는 상관없는 지극히 자의적인 해석이다. 예루살렘 초대교회 당시 예수님이 유대 당국자들에 의해 로마제국의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이었다. 단지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몰랐을 뿐이다.

그래서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함으로써,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선포했다. 마찬가지로 행2:37에서 베드로가 전한 예수의 부활 소식을 접한 자들은 자기들이 죽인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당황해서 ‘어찌할꼬’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부활 때문에 그들이 ‘어찌할꼬’ 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예수를 매달아 죽인 그 십자가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임을 깨닫고 ‘어찌할꼬’ 했던 것이다. 또 행4:33에서 사도들이 전하는 부활로 인해 무리가 큰 은혜를 입은 것은, 부활 자체 때문이 아니라, 사도가 제시한 부활로 인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가 진짜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그 십자가를 믿는 자신들이 구원받았음을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김성로 목사의 어설픈 자의적 성경 해석이 교묘하게 십자가를 감추는 사탄의 도구 노릇을 하고 있다.

3.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는 이유

그러면, 왜 “부활복음”이 “다른복음”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일까? 혹자는 많은 사람들의 환호가 김 목사의 “부활복음”이 “다른복음”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다른복음”이 갖고 있는 당연한 이상(異常) 능력이다.

“부활복음”에 사람들이 환호하는 이유는 거기에 피 묻은 처절한 십자가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자기 부인’도, ‘자기 십자가’도, 주를 따르는 고난도 없다. “부활복음”에는 좁은 문, 좁은 길이 없다. 거기에는 신바람 나는 넓은 길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그 길을 가고 있다.

간증자 이상희씨가 김 목사가 전하는 “부활복음”을 만나고 나서 신바람 나는 삶을 살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그녀는 부활이라고 하는 확실한 증거를 접하고 “부활복음”을 믿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의 믿음은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믿음이 아님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녀가 믿음을 갖게 된 것은 부활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보고 이것이 맞다고 판단해서 스스로 믿기로 결정한 계산된 결과이지 성령으로부터 오는 믿음이 아니다.

십자가 없는 복음은 사탄이 애용하는 미혹 전매 수법이다. 이 수법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공생애를 시작하시려는 예수님에게 써먹은 수법이기도 하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며 제시한 3가지 복음은 하나같이 피 흘려야 하는 처절한 십자가를 지지 않고 왕이 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기쁜 소식”이다. 비록 ‘다른복음’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때 사탄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십자가 없는 복음을 예수께 제시했다.

동일하게 김성로 목사는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십자가 없는 복음을 사람들에게 제시한다. 예수님은 십자가 없는 왕의 길을 거절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지만, 불행하게도 한마음교회는 십자가 없는 “부활복음”을 받아들여 신바람 나게 살면서 매일 신바람 나게 간증하고 다닌다. 그들이 신바람 나게 간증하는 사례들이 사실일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십자가를 감추려는 사탄의 역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4. 결 론

이 시대의 세속적인 교회들은 부끄러운 십자가를 버리고 신기한 기적과 방언, 넘어짐, 금이빨, 두 날개, 그리고 신바람 나는 “부활복음”을 택했다. 세속적인 교회들은 기업이 되어 이런 것들을 상품으로 출시하고 큰 성공을 거두고, 타락한 교회들은 극장이 되어 이런 것들을 영화로 내 걸어 흥행에 성공해 많은 손님들과 부를 거머쥐고 있다.

김성로 목사 또한 “부활복음”이라는 상품을 출시해서 히트 상품이 되게 했다. 그래서 멀리 부산에서까지 불원천리 그 상품을 사려고 한마음교회에 오기도 한다. 이렇게 “부활복음”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상품에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피가 묻어있지 않다. 따라서 “부활복음”은 금이빨, 금가루, 긍정의 힘, 두 날개 등과 다르지 않는 “다른복음”일 뿐이다.

“부활복음”을 따르거나 동조하는 형제들에게 다시 한 번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피 묻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힘주어 말하고 싶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하나님께서 아무 기적도 행하지 않으신 것은, 기적 없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우리에게 구원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추한 우리를 위해 기적 없이 죽으셨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기적은 없다. 이 기적을 만난 사람은 다른 기적을 붙잡지 않는다. 그것이 구원을 주는 진짜 기적d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으신 십자가의 놀라운 기적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마술사 시몬처럼 다른 기적들을 찾는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참 구원의 능력인 십자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죄인은 누구라도 피 묻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나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7-18)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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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모 목사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한국 교회를 신물 나게 체험하며 갈등하다 하나님을 향해 살아 있는 교회를 꿈꾸며 1999년 김천에서 ‘제자들 경배와 찬양교회’를 개척하였다. 이창모 목사는 한국교회를 죽음에 이르게 한 병이 단지 성공주의, 황금만능주의, 도덕적 윤리적 타락 등이 아니고 이미 한국교회에 만연된 잘못된 신학에 있음을 확신하고서 무엇이 바른믿음인지 신학적으로 깊이 고민하는 목사이다. 이창모 목사는 자신이 중2때 수련회에서 방언을 받았고, 대부분의 목사들이 그것을 ‘영의 기도의 언어’라고 가르치므로 의심없이 수 십년 동안 옹알거리는 방언현상으로 기도(?)하였던 대표적인 방언기도자였다. 김우현, 김동수 등이 저술한 거짓 방언을 미화하는 한심한 서적들을 접한 후 방언에 관한 깊은 신학적인 성찰을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오늘 날 방언이라고 알려진 소리현상과 성경의 참된 방언은 무관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되었다. 이전의 자신처럼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다른 목회자들과 신자들을 진정한 복음으로 돌이키기 위해 <방언, 그 불편한 진실>(밴드오부퓨리탄,2014)을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