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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경 말씀의 편식을 경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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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경 말씀의 편식을 경계 한다
  • 정양호
  • 승인 2015.11.10 16:21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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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전체 주석 설교를 하라!
정양호 선교사(아프리카 우간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매주 목사님의 설교를 노트에 받아 적기 시작하였다. 성경 말씀은 영의 양식, 생명의 양식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기억하고 간직하기 위해서였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설교의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적으면 1년에 3~4권의 노트가 되었다. 고3 때 주일 낮예배를 출석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대학입학 예비고사를 준비해야했기 때문이었다. 50여명 모이는 시골교회 토요 밤 학생 집회에는 담당 장로님이 돌보셨는데 자주 결석을 하였고 목사님은 주일 설교준비로 많이 바쁘신 듯 자주 빠지셨다.

거의 반년 이상을 학생회장의 임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설교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지난주 목사님 설교 메모 노트를 읽으면서 나름대로 QT 설교를 하였다. 너무 많이 부족했겠지만 후에 안 것은 담임 목사님께서 지난 주 자기가 했던 설교를 그대로 반복하여 QT하는 것이 엿보시고는 너무 대견하여 그냥 두고 지켜보셨다고 하셨다. 대학 때 세 가정이 중심이 되어 시골 교회를 개척할 때 목회자를 모실 형편이 못되어 학교를 다니면서 1년간 설교를 하였다.

이 때 박윤선 목사님 주석 전체를 통독하는 계기가 되었었다. 신학교의 설교학 교과 과제로 1,2학년 때는 남의 설교를 메모하여 제출하여 검사를 받았었다. 3학년 때는 매주 설교를 한 편 씩 작성하여 실제 강단에 올라가 교수와 학생들 앞에서 설교를 하고 평가를 받았다. 주경야독 때문에 도서관을 이용하기 힘들었던 사정으로 그 주간에 주어진 장에 대한 설교 준비를 위해 도서관에 있는 관계 서적을 몽 땅 구입하여 읽곤 하였다.

다른 학생들은 교수가 쓴 강해 설교 집을 거의 그대로 베껴 설교 작성을 쉽게 하는 대도 왜 베꼈는지 나무라지 않고 점수를 잘 주는 것 같았다. 성도들을 위해 영의 양식을 준비하는데 교수님 설교보다 더 잘해야겠다는 욕심 때문에 설교집 같은 것은 참고로만 할 뿐 내 자신의 설교를 고집하였는데 마지막 설교 실습 세 번을 모두 A+를 주셨다. 선교지에 와서도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성경 장별 시리즈 강해 설교를 하긴 하는데 목사들이 보통 하는 대로 유명 구절을 따라 설교를 하였다. 준비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유명 구절들은 인터넷에 이미 많은 자료가 널려 있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나의 설교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설교에 대한 특별한 스토리를 이야기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2013년3월 17일 주일 설교 준비를 할 때였다. 사도행전 7장 스데반의 설교로 유명한 강해 설교를 준비하려고 여느 때처럼 월요일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다. 성경을 읽으면서 ‘왜 성령 충만한 스데반이 한번 설교를 하고 돌에 맞아 죽었는가?’ ‘스데반 그는 누구였나?’ ‘그의 설교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의 메시지의 방법론은 어떠했는가?’ ‘스데반의 설교와 나의 설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등등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의문 속에 ‘그렇다면 1절부터 한번 파헤쳐보자’라는 생각이 스쳤다.

스데반의 설교의 실제 자료는 다름 아닌 유대인들이 끔찍하게 신앙하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실, 즉 구약에서 창세기(아브라함, 요셉)와 출애굽기(모세)에서 “ 이스라엘 너희 역사를 보라. 이스라엘이 거역하고 또 거역했던 역사를 주목하라”고 외친다. “ 너희들이 여전히 역사적 우리 조상들처럼 외적 육체적 할례를 받았다고 하면서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않고 성령을 거역하고 있다”고 저들의 신앙과 인간적인 자부심을 정면으로 박살내버렸든 것이다. 성경을 관통하는 그의 설교는 평소 성경을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설교를 준비하는 내내 엄청난 충격 그 자체였다. 진리에 의한 그의 변증 설교에 놀라고 놀랐었다.

평소 다른 목사님들처럼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장별 설교를 나름대로 성실하게 한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스데반의 설교에 비교한다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수준 이하의 설교로 자책하였고, 설교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그 후 매주 성경 한 장 전체 주석 설교(영문)로 힘겨운 씨름을 하면서도 성경 공부 그 자체에 너무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선교사역을 하면서 틈틈이 밤늦게까지 설교를 완성하는데 거의 한 주가 걸린다. 설교를 준비하는 시간은 개인적으로 마치 혼자 말씀 부흥회 시간이다. 한번 설교 내용으로 1절부터 끝 절까지 모두 주석 설교를 한다. 그 맛이 얼마나 단지 꿀맛은 비교가 안 된다. 다 준비를 마치면 설교를 나누기 위해 불로그에 올려놓고 설교할 내용을 서론부터 요약하여 모두 암기를 한다. 잊어먹을 것을 대비하여 유인물도 준비하고 핸드폰에 저장도 한다. 성경 매장 전체 주석 설교(expository sermon)를 하면서 인터넷의 자료를 뒤지게 되는데 어떤 장은 거의 설교 자료가 없는 장도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설교자의 성경 말씀 편식 설교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전문의가 아니라도 하나님이 주신 음식을 맛이 있든 없든 감사함으로 골고루 먹는 것이 육적 건강의 기본 요소이다. 특히 편식은 어린 아이 때 고치지 않으면 평생 갈 가능성이 많고 그런 습관은 결국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가로 막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가 성경 66권의 기록된 말씀 전체를 골고루 먹는 것은 영적 건강의 ABC이다.

예컨데 “믿는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불가능이란 없다”“Yes, You Can!"는 긍정적 적극적 사고 방식이 신앙인의 해답인 것처럼 떠벌리고 중독되어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아무런 분별없이 이 비성경적 번영신학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삶을 허비하고 있는가? 이것은 단지 그 한 예일 뿐이다.

항간에 “부활 신앙 간증”이라면서 “와 보라”고 늘 말하는 교회가 있다고 한다. 어린 아이 신앙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성경 전체의 사실(Fact)에 그 뿌리를 두고 기적이 있든 없는, 느낌이 있든 없든, 다니엘처럼 “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리스도의 푯대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다. 성도들이 왜 영적 편식을 하게 될까?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가르치는 목사가 자기 나름의 자기 목적을 위한 편식 설교를 하기 때문이다. “전교인을 복음을 증거하는 설교자로 만들겠다!” 는 각오로 성경 각 장 전체를 주석 설교하노라면 군더더기 예화를 할 시간이 있을 수 없다. 주석 설교, 좀 딱딱 할지 몰라도 목사나 전 교인들을 그 말씀으로 무장시킬 수 있는 좋은 방안으로 적극 권하고 싶다.

정양호 선교사는 고신에서 공부하고 안수받았으며, 현재 KPM(고신총회세계선교회)와 NGO Good Partners(김인중 목사, 이사장)의 파송을 받아 우간다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천주교와 오순절 운동 신학 류에 오염되지 않은 순결한 성경적 복음을 우간다의 원주민들에게 전하고자 애쓴다. 우간다의 낙후된 여러 지역들을 순회하면서 복음과 함께 의료 봉사로 영혼들을 섬기고 있고, 늘 기독교의 세계적 동향을 살피고 연구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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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2015-11-11 11:59:37
이글은 정목사님의 "한마음침례교회의 부활신앙 성경적인가요?
-부활 하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비성경적 신앙이해"를 읽으면서 과거 20대 때 한때는 무교회주의에 빠졌었고, 한때는 적극적 긍정적 신앙에 빠져 여러경험들을 하였으나 마침내 성경을 읽다가 깨닫고 그런 책들을 모두 불태워버린 것이 생각나 쓴 글입니다. 요는 목사가 성경66권을 가르치는 교사로 바로 서 있지 못하고 어떤 성경의 한 부분에 치우친 메시지의 위험성을 말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66권의 성경을 왜 주셨을까요? 죄에 부패한 인간의 속성이 어떤 특별한 맛을 보면 그것에 푹 빠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부활신앙을 깊이 간직하고 살아가면 되는데 마치 특정 어느교회가, 어느 목사의 메시지가, 어느 프로그램이 특별한 양 프로파겐다하는 것은 신앙적 겸손의 열매가 아니라 성령의 욕망을 가장한 육의 욕망에 이미 빠져 있을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 복음 전파 2015-11-10 18:33:40
복음을 전파하지 않는 것, 복음의 요소의 한 부분만을 극히 강조하는 것 중의 어느 것이 더 위험할까요?
요즘 춘천의 어떤 교회가 예수님의 부활만을 강조하며 현혹하고, 신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만 만났다고 일관되게 간증하여 논란이 크게 되고 있습니다.

조영호 2016-02-25 15:56:14
한 주제에 천착해서 죽을 때까지 가르치고 주장하는 교회가 부흥하고 그런 목사님이 유명하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은 여러가지 의미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중심 주제를 확정하고 모든 것을 거기에다가 맞추는 것입니다. 이것은 작위적일 수 있고, 또 무리가 따르지만 선명성과 교육적이 효과가 증대되고 모든 것을 하나로 몰아가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오늘이나 나의 생각이나 가치로 전락 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을 다 말한다는 것은 나타나는 주제 모든 것을 다 말한다는 다소 혼란스럽고 비교육적인 면과 또 인간의 생각이나 결정을 거부하는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말하던지 결국 예수님이 핵심이되고, 구원이 목적이 되는 것이 옳은 성경 가르침이겠지요.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눈앞에 사람들에게 적용이되고 또 실천하고 살 수 있는 현장성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설교는 설교자와 청중을 존재하게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현재화입니다. -좋은 글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작성자 2016-05-07 01:53:35
성경말씀의 편식이 아니라, 이어령 비어령적 해석은 어떻게 하나요? 결국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가는 것, 제자된 삶을 사는 길이 옳은 길 아닌가요? 간디가 그러지요. 예수는 존경하는데 기독교인은 싫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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