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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날개 논쟁은 목회자들 대부분의 무지의 증거나눠지지 말자! 통합하자! 품어주자!”는 3류들의 목소리
정대운  |  banneroftr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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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28  09:4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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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박해가 종식되고 4세기에 들어서면서 급격한 숫자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새로운 시련을 겪게 되었다. 이때부터 기독교 세계를 흔든 교리적 싸움 ‘기독론’이 시작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하는 문제였다.

   
 정대운 목사(고양시, 삼송제일교회)

교회의 의견은 분열되었고, 분열을 해결하기 위해 황제들은 주교들을 모아 공의회를 개최하게 하였다. 320년 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사제 아리우스(Arius)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유사한’신성을 가진 피조물”이라고 가르쳤다.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알렉산더(Alexander)와 부제 아타나시우스(Athanasius)가 아리우스의 주장을 반박하므로 그 논쟁을 불 붙었다. 알렉산더와 아타나시우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일한 창조주시며 ‘똑같은’ 신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325년 콘스탄티누스의 소집에 의해 니케아(이즈닉)에서 이 문제는 다시 격론을 일으켰고, 아리우스파에게 이단성이 있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아리우스의 책을 모두 불태우고 추방할 것을 명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된 분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을 가지신 참 하나님이시고 빛 중의 빛이시다” 라는 니케아 신조가 탄생했다.

정통 신조는 세워졌으나, 니케아 공의회 공로자 아타나시우스에게는 이후 혹독한 고난의 계절이 기다리고 있었다. 니케아공회 3년 후인 328년 대주교 알렉산더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서른의 이른 나이에 대주교가 되었다. 이제부터 그 자신이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모든 태풍을 홀로 감당해야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한편 이단으로 규정된 아리우스는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사면해 달라고 청원했다. 설득당한 황제는 대주교 아타나시우스에게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고령인 아리우스를 용납하라고 권하였다. 아타나시우스는 황제의 제안을 단박에 거절하였고, 분노한 황제를 그를 멀리 떨어진 서로마의 트리어로 추방하였다(335년). 황제는 결국 그 다음 해에 아리우스를 알렉산드리아로 귀환하도록 했다. 아타나시우스의 시련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 45년의 대주교 직무수행 기간 동안 무려 다섯 번이나 유배와 망명 생활을 겪어야 했는데, 자그마치 그 세월이 18년이었다.

표면상으로 아타나시우스가 이겼으나, 많은 교회들과 사람들은 진리를 위해 단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자기의 주장만 내 세우는 아타나시우스를 미워하였다. 특히 황제는 ‘자기만 옳다는 아타나시우스’가 아니면 제국을 더 평화롭게 통치될 수 있을 것이므로 고집불통의 아타나시우스에 대해 매우 쿨쾌하게 여겼다.

그렇다면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파의 싸움은 무엇이었을까? 성부와 성자가 완전히 동일하다는 ‘동일본질’이냐? 성자는 성부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서 가장 으뜸되는 신성을 가진 ‘유사본질’이냐? 바로 이것에 대한 논쟁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헬라어 ὁμοοὐσἰοs(호모우시오스, ‘동일본질’) 와 ὁμοιοὐσἰοs(호모이우시오스, ‘유사본질’)의 논쟁이다. ‘ι’(이오타)를 넣느냐? 빼느냐?의 문제로 싸웠기에 이를 ‘이오타전쟁’이라고도 한다. 아타나시우스는 오랜 귀양생활로 몸이 쇠약해 졌고, 병이 깊어졌다. 그의 모습을 본 친구는 다음과 같이 충고하였다.

“아타나시우스, 세상이 자네를 미워하네”

그러자 아타나시우스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도 세상을 미워하네!”

결국 이후 “아타나시우스는 온 세상과 맞섰고, 온 세상도 아타나시우스와 맞섰다!”라는 유명한 말이 남겨지게 된 것이다. 만약 아타나시우스가 교회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 ‘ι’(이오타)를 삽입했다면 이후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알렉산드리아 대주교로 생을 편안하게 마감했을 것이고, 황제에게 호감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교인들의 존경을 받았을 것이고, 천사와 같은 사람이며 평화의 사도라고 칭송을 받으며 살다가 생을 평안하게 마감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그 결과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되었을까? 아타나시우스가 진리를 사수하기 보다는 당시 교회의 분열을 피하기 위해 아리우스파와 연합을 도모했다면, 지금 우리의 믿음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영혼의 구세주가 아니고 이 땅에서 가장 훌륭하게 살다간 인류의 선생이라고 믿게되는 것이다. 그 분의 삶을 따르며, 그 분처럼 고행하며, 그 분처럼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행위구원론’, ‘자력구원론’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릇된 종교인이 되었을 것이다. 즉, 불교인들이 깨달아서 부처가 되듯이, 우리도 수행하여 다른 수준의 예수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되었을 것이다. 

373년 아리우스를 추종하는 물결이 온 세상을 덮어가는 것을 보면서 아타나시우스는 죽었다. 그러나 8년 후(381년) 테오도시우스 대제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통해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축출하였다. 그래서 지금 세계 교회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동일신성을 천명하는 ‘삼위일체’ 교리를 고백하게 되었다. 우리는 아타나시우스와 같이 이단을 용납하지 않고 싸웠던 믿음의 선배들의 발자취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

합신 교단의 금년 총회에서 ‘두날개 이단성’에 대해 논의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아타나시우스와 같은 서슬 퍼런 잣대를 들고 점검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4세기 당시 황제나 보편적인 사제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눠지지 말자! 통합하자! 품어주자!”라는 3류들의 목소리만 크게 울렸다고 하니, 이 나라의 교계가 참으로 한심스럽다. 그 교단에는 교리를 선명히 알며, 자신의 자리조차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진리를 수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종교개혁시대에 쯔빙글리가 재세례파를 너무나 지나치게 탄압하자. 그의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쯔빙글리 자네는 너무 틈도 주지 않고 과격하게 저들을 몰아세우는 것 아닌가?”

그러자 쯔빙글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이게 하나님의 일이 아니고 교리적인 문제가 아니면 나도 이렇게 과격하게 하지 않네!”

지금 한국교회에 이와 같이 진리를 목숨처럼 사수할 목사는 없는 것일까? 필자 또한 두 날개의 모든 과정을 이수하였다. 한참 두 날개가 유행하였을 때, 교회에서 반강제적(?)으로 배워오라 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참석하였으나 장로교 교리를 어느 정도만 알아도 두 날개에서 외치는 것들은 신비주의적이고, 알미니안주의적이고, 교회성장주의고, 목사중심주의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두날개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많은 개혁주의 신학을 추구하는 교단들의 목사들이 “왜 이렇게 두날개에 열광할까?”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개혁주의 교리’에 대해 무지한 자들이라고 생각되었고, 그렇게 많은 장로교 목사들이 그런 치명적인 무지 속에 있다는 것은 ‘큰 재앙’이라고 생각되었다. 개혁신학을 바탕으로 하는 교단 총회에서 두 날개가 이단이 아니라고 통과된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두날개 집중강의에 한번 참석하고 도저히 참석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언젠가는 두 날개에 대한 평가를 쓸 때가 올 것이고, 그 때 “너는 듣지도 않고 비평하냐?”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6차례에 걸쳐 부산까지 내려가 듣게 되었다. 나는 두 날개 집중훈련 수료자다. 사실 “두날개가 이단이냐? 아니냐?”를 토론하는 것 자체가 한국교회 목사들이 전반적으로 교리에 무지하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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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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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날개 2015-10-04 03:52:20

    그렇습니다. 조금만 신학을 가져도 금새 두날개 내용이 이단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합신의 목회자들 가운에 두날개에 대해 지금도 우호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입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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