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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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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름
  • 이흥수
  • 승인 2015.08.2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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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수 목사(서교장로교회 담임)

성경은 하나님을 향해서 모든 택한 자녀들이 ‘아버지’로 하나님을 인식하고 그렇게 부를 것을 말씀하고 있다. 갓난 아기는 아빠와 엄마를 알아보고 점점 더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제 아빠와 엄마와 관계를 형성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부모에게서 사랑과 신뢰가 충분히 아이에게 전달되고 인식될 때 그 아이는 부모와의 견고한 관계를 바탕으로 건강하게 성장해 나아가게 된다.

복음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신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는 이 복된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부성적 사랑에 대해서 풍성하게 진리 안에서 이를 깨닫고 발견하며 경험하는 것을 바탕으로 그 관계가 발전해 나아갈 때 더욱 견고한 신앙이 우리 안에 뿌리 내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신지를 배우고 깨달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지식이 쌓여 갈 때 하나님을 향한 깊은 경외감을 마음에 품게 되면서 신자는 더욱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아빠의 품에서 나는 체취와 아빠의 음성, 그리고 아빠의 표정과 눈빛 여러가지 아빠의 존재로 인식될 수 있는 수많은 기억과 경험들을 통해서 아빠를 알아감으로 아이에게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아빠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생겨나게 되는 것처럼, 성도 역시 하나님에 대한 정교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제 그 하나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경험해 나아가는 것을 통해서 거듭난 신자 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깊어지는 사랑과 경외심이 자리 잡아가게 된다.

하나님께로 나아가고자 하는 자가 하나님을 가슴으로 느끼며 그 분의 존재하심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런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한 불가지론적인 흔들리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에 대한 아무런 신뢰없이 하나님을 향해서 무엇인가를 간구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부재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을 열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코미디와 같은 일일 것이다.

과거의 아버지들은 가부장적 권위로 가정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버지의 역할의 전부라 여겼다. 그로 인해서 자녀들과 인격적인 교제가 거의 단절된 채로 전혀 아버지에 대한 다양한 친밀한 경험이나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 자녀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버지로서 마땅히 자녀들에게 표현되고 전달되었어야 했을 부성적 사랑이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 자녀들이 성장해야 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러니 자녀가 모두 성장했을 때는 아버지도 외롭고 쓸쓸하고 자녀들도 이제는 연로하신 아버지를 바라보며 가슴에 남은 애증의 앙금 때문에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냉가슴을 앓다가 어느날 그만 아버지를 떠나 보내고 난 이후에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경우들이 다반사였다. 아버지를 잘 모르는 자식과 자식을 잘 모르는 아버지 사이에서 벌어진 이러한 웃지 못할 이야기들을 모두 가슴에 묻고 살아가신 세대들이 바로 우리와 우리의 윗 세대들이이었다.

신앙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 지극히 단편적인 것에 이를데 없고 전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인격적인 감화를 통해서 깊이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하심을 맛본 적이 없다면 그러한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관계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향해서 가슴을 토해놓는 기도가 가능하며 그 품안에서 맛볼 수 있는 지극히 평안함과 감사와 감격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이 형식적이고 피상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기도해야 하다는 것은 알아도 자신안에 전혀 친밀감과 존재감이 없는 하나님을 향해서 무엇을 어떻게 기도할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에 대한 뚜렷한 인식과 그 존재에 대한 견고한 신뢰와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 가운데서 ‘아버지’ 라고 하나님을 부를 때는 바로 이러한 절대적 존재로서의 아버지, 그 사랑하는 자녀에게 지극히 큰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그 신뢰에 있어서 한 번도 우리를 실망시키신 적이 없으신 아버지이심을 믿는 그 믿음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이러한 수많은 인격적인 체험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아버지를 깊이 알아가는 깊은 마음에 감화 없이는 결코 하나님께 나아가 무엇인가를 믿음으로 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신뢰의 존재가 분명할 때 우리는 그 대상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도움을 청하지 않는가. 우리가 무엇인가를 아버지에게 혹은 어머니에게 요청할 때는 결코 자식의 청을 쉬 거절하지 못하는 부모의 속성을 잘 알기에 적극적으로 부모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듯이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께 간구를 드리게 되는 것도 그 존재하심에 대한 확신과 분명한 소망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게 되는 동기는 말씀 안에서 먼저는 우리가 아버지로 부르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충분히 알고 깨닫는 것이 전재 되어야 하는 것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더 본질적인 얘기를 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분명히 회심을 경험한 자만이 그 아들과 더불어 맺은 복된 언약에 근거해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며 그 복되신 은혜를 아는 자들만이 새로운 본성을 좇아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절대 의존적인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회심과 중생의 경험과 확신이 불분명하고 부정확할 때 그만큼 기도에 쏟는 진지함과 노력은 미흡해 질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결코 어떤 느낌의 대상이 아니시다. 음성을 듣거나 손을 잡고 거니는 환상이나 상상 속의 경험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올바른 하나님에 대한 앎도 지식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들에게 무엇을 구하기를 원하시는 지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을 전재로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는 것이며 그러한 기도라야 그 기도 속에서 더 깊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하나님께로 나아가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의 제목을 좇아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견고한 동기는 오랜 시간동안 진지하게 하나님을 진리안에서 알고자 하는 노력과 분명히 비례한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성경을 부지런히 묵상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 속에서 생생하게 하나님을 대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그대가 ‘하나님 아버지’ 라고 외마디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서 하나님을 부를 때 즉각 내게 귀 기울여 주시는,하나님께서는 그런 인자하신 아버지가 되심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경험할 수 있는 첩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기도를 드려도 차가운 거절감과 그리고 기도를 듣기나 하시는 것일까? 마음에 짙은 회의가 몰려 올 수 밖에 없는 것은 아직 아무런 하나님과의 복된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과 우리를 도우시는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진지하지도 지속적이고 간절하지도 않은 간헐적인 무성의한 기도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너희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 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라고 주께서는 말씀하셨다.

오늘도 진심으로 구하는 자에게 그것이 회심의 은혜든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것이든 그것이 우리의 지극히 필요한 것이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지 어떻게 해서든 거절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결코 아니시라는 것을 기억하라. 믿음으로 구하고 그렇게 구한 것은 다 받은 줄 알라고 까닭없이 주께서 말씀하셨겠는가? 믿음이 적은 것이 우리의 안타까움일 뿐이다. 우리 아버지께 가장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언제나 기도할 수 있는 그런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흥수 목사는 종교개혁자들의 정신과 사상을 좇아 성경을 중심한 개혁주의 신학과 청교도의 신앙을 가르치고 양육함을 목회의 가장 중요한 본질적 가치로 여긴다. 유행하는 가치들과 새로운 형태의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소 요리 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 도르트 신조, 벨직 신앙고백서 등을 중시하며, 성경 해석에 기초한 설교, 은혜의 성만찬, 그리고 교리교육에 천착하는 목회를 지향하고 있다. 현재 서울에 있는 서교장로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www.sgreforme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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