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뜨림 등의 현상이 나타나는 사람들에게는 비정상적인 성령사상이 있어

그릇된 성령세례 사상을 다루는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안수기도이다. 이미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다시 성령이 반복적으로 임재한다고 가르치는 비성경적인 성령세례 사상을 전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재하도록 유도하는 안수기도를 신봉하는 경향이 있다. 특별부흥회와 각종의 성령을 체험하게 한다는 집회를 열고 사람들에게 성령의 은사와 역사하심이 나타나게 하려고 안수를 시도하는 것이 그쪽 사람들에게는 매우 당연하게 여겨진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를 살펴보면서 그릇된 성령세례 사상을 가진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장경동 목사

개그맨보다 더 사람들을 웃기면서 부흥회를 인도하는 장경동 목사가 지난 해 아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어떤 한인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했다. 그때 장경동 목사는 설교를 마친 후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안수기도를 시행하였다. 나는 오래 전 한국에서 장경동 목사가 사람들에게 안수기도를 해 주는 모습을 보았다. 장경동 목사는 안수를 받으려고 강대상 주변과 복도에 줄을 지어 기다리는 사람들의 머리를 솥뚜껑같이 큰 손바닥으로 탁탁치고 지나갔다.

대체 그런 행동이 어떻게 성령의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 그런 경박스러운 행동과 더불어 나타나는 영적인 일들이 과연 성령의 역사일까? 아리조나주의 그 교회에서는 장경동 목사에게 안수기도를 받은 사람이 바닥에 누워 한 동안 꼼짝하지 못하는 특이한 현상도 나타났다. 어떤 사람은 그곳에 있었으나, 그런 현상이 일어날까 염려하여 일부러 장경동 목사의 안수를 피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장경동 목사에게 안수받고 바닥에 누워 가만히 있었던 사람에게 왜 그대로 누워있었는지 물었더니,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하였다.

안수기도를 받았는데 왜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일까? 과연 그것이 성령의 임재나 성령의 은사가 임하시므로 나타나는 현상일까? 그때 장경동 목사의 안수가 그 사람에게 성령의 충만을 밀어넣어 주었기 때문에, 마치 공중급유기로부터 기름을 보충받는 전투기처럼 그대로 있었던 것일까? 악한 영의 장난 등으로 인한 가위눌림에서 그러한 현상이 동반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는 성령께서도 그러한 일을 하시는 것인가? 대체 장경동 목사와 함께하는 성령은 어디서 온 성령이기에 그런 일을 하는 것일까? 기독교의 성령이 신자들을 강제로 잡아 눕히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성령이라고 성경 어디에서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괴이한 현상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

이런 괴이한 일들이 그릇된 성령세례 사상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성령의 새롭게하심으로 구원받은 신자에게 또 다시 성령이 찾아오신다는 성령세례 이론이 매우 비성경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런 현상이 나타나게 하는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가 아주 불건전하고 위험스럽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장경동 목사도 그릇된 성령세례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장경동 목사가 인천의 복된교회에서 “성령세례를 받으라”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다음과 같이 신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보았다.

“여러분은 죄(장 목사는 ‘자범죄’를 죄라고 표현)를 회개하지 말고 죄인(장 목사는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원죄’를 죄인으로 표현)을 회개해야 합니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스님은 죄는 회개해도 죄인은 회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스님이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죄인은 자범죄이고 죄인은 원죄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에는 그런 용어 자체도 없어요. 그런 코드 자체가 없어요. 자범죄가 죄이고 원죄가 죄인입니다.

자범죄를 회개하려니까 세례(침례)가 필요하고 죄인을 회개하려니까 성령이 필요하고 ... 그래서 (세례요한이)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그는 성령과 불로! ... 그러니까 요한의 관점은 세례만 받아서는 안 된다는 거야! 반드시 성령세례(성령침례)를 받아야 된다 이거야! 아멘?

두 번째, 요한복음 3장 5절로 가면 “진실로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냥 말해도 되는데, ‘진실로 진실로’ 했으니 그건 무지하게 진실이네! 그거는 예수님이 강조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 여태껏 거짓말하다가 지금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없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이겁니다. 물은 아까 누가(세례요한) 예기했지요? 물은 자범죄를 회개한다는 것! 성령은 그 다음에 성령으로 무슨 죄를 해결한다고요?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립니다. 특별한 경우도 있겠지만 일반적 경우로 내가 성령받았다! 성령을 모셨다! 는 말은 곧 내 원죄와 자범죄가 용서받았다라는 증거지요? (청중들 아멘!) 그러면 내가 성령을 못 받았다는 것은 내가 자범죄와 원죄를 용서받지 못했다는 의심을 가지게 하지요? 뒤집으면? 나의 죄 사함의 회개를 통한 물 침례(세례)와 성령침례를 받으므로 내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라 이것이지요 ... 회개도 해야하지만 회개해서 용서받았다는 결정적 증거는 (꼭 맞는 것은 아니지만) 내 안에 성령이 들어오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들어올 수가 없는 것은 내가 마음 문을 열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열어도 들어오지 못함은 죄가 더러움이라! 그러니까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오셨다는 것은 내가 마음을 열었다는 것이고, 죄를 회개했다는 것입니다.”(장경동)

장경동 목사가 인천의 복된교회에서 가르친 이런 그릇된 내용은 CBS 방송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소개되었던 모양이다. 이 내용을 보니, 한국 교회에서 유명해지고 스타가 된다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갖가지 재주있는 자들이 자기 특색을 드러내는 깃발을 들고 다니다 적당한 곳에서 꽂으면 되는 곳이 한국 교회인 것 같다. 장경동 목사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물세례와 성령세례에 대해서 너무도 어이없는 설교를 하였기 때문이다. 기독교 사상과 신학의 기본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엉터리 설교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장경동 목사가 가르친 성령세례에 대한 내용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보자. 성령의 세례와는 전혀 관련도 없이 물세례를 받게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장경동 목사의 성령세례 사상의 핵심이다. 장경동 목사는 물세례는 자범죄를 회개하고 난 후 받는 세례이고, 그 다음에는 원죄를 사해주는 성령의 세례가 있다고 했다. 죄인에게 성령의 임재하심, 즉 성령세례가 임하지 않았음에도 죄에 대해 자각하고 회개하는 죄인이 있을 수 있을까? 죄의 사안에 따라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공자와 맹자의 도덕책을 잃고 부모에게 대들고 구타한 죄,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죄, 골목에 슬쩍 쓰레기를 버린 죄 ... 등을 반성하고 회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만 죄이고 세상 앞에서는 죄라 여겨지지 않는 죄를 성령의 임재하심도 없이 깨닫고 회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연적 죄인들은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그러지 못한다. 하물며 영구히 죽을 죄인이 영원히 살길을 찾기 위해 2,000년 전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가서 구주로 믿는다는 것은 더욱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에덴동산의 옛 언약을 파기한 인간을 죽음에 이르도록 저주하신 하나님이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선악과 범죄를 무효로 만들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달려 대신 죽게하셨다는 사실은 이성으로 알 수 없는 신적인 지식이다. 하나님의 신적 지식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 어디에서도 얻을 수가 없다. 십자가의 비밀은 어떤 책이나 유명한 대학교육으로 얻을 수 없는 신령한 지식이다. 성경은 죄인의 어두운 마음에 진리의 빛으로 조명하시는 성령이 임재하심이 있을 때에만 신적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이미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인 것이다.

“성령으로 아니하고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으니라.”(고전 12:3)

그러나 장경동 목사는 성령의 세례가 없이도 물세례가 가능한 것처럼 가르쳤다. 그러면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기독교의 물세례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신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공표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성령의 임재하심이 없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진실하게 기독교의 물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이미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조금도 의심해서는 안된다. 

장경동 목사는 아마도 그릇된 사람들이 가르치는 괴상한 영의 역사를 체험하였고, 그들에게서 배운 그릇된 성령사상을 마음에 품게된 모양이다. 지금은 다 아는 뵈레아 이단 김기동 목사의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찾아가서 배웠다고 한다. 그들 중에서 훗날 하용조 목사를 비롯하여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유명한 목사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장경동 목사도 그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서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그런지 장경동 목사의 사상과 영적인 성향이 좀 이상한 것 같다. 그가 안수기도하니 사람이 꼼짝 못하고 누워있게 만드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런 괴이한 영의 역사가 나타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그릇된 성령사상이 함께 있다. 위의 내용을 보니 장경동 목사의 성령 사상에서도 그런 성향이 보인다.

이전에 베뢰아 이단 교회의 핵심인물로 일하다 탈퇴하여 바른 신학을 공부하고 현재 건강한 교회의 목사로 사역하고 있는 분에게 장경동 목사가 물세례와 성령세례에 대해 가르친 내용이 혹 이전에 김기동 씨에게서 배운 베뢰아 인단 신학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물었다. 그 분은 믿는 사람이 성령받지 않고 죄를 회개하고 물세례를 받고, 이후 구원받을 때 성령의 세례가 임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베뢰아 창시자 김기동 목사가 사도행전 19장을 그릇되게 해석하면서 가르치는 내용과 동일하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 분은 80년대 중반 매주 1회 출석하는 베뢰아 아카데미 2년 과정을 장경동 목사가 성실하게 수료하였다고 증언해 주었다. 또한 베뢰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반드시 성령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치며, 나중에 성령을 별도로 받아야 진정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하였다. 성령을 받은 사람 중에서 소수의 특별한 사람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성령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고 하였으며, 성령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안수를 주는 일을 남발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장경동 목사가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사람들에게 안수를 주고 물세례와 성령세례에 대한 그릇되게 설교하는 내용은 모두 베뢰아 사상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의 안수를 받은 어떤 사람이 꼼짝 못하고 누워있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어떤 신자가 진실하게 물세례 예식에 이르게 되었다면, 이미 성령의 세례가 먼저 일어났음을 당연시해야 한다. 죄인에게 성령세례가 먼저 주어지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신앙이 발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를 통해 아담에게서 유래한 원죄를 무효로 만드시기로 작정하셨으므로, 반드시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게되는 것이 기독교의 길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만드심이 곧 성령을 부어주시는 성령세례이다. 성령으로 중생하고 난 다음에 죄에 대한 깨달음이 생기고 회개하기를 시작한다. 장경동 목사가 말하는 자범죄를 회개하는 일들은 성령의 세례로 속사람이 거듭난 신자에게서 이후 나타나는 열매이다.

이것을 모르고 목사가 되어 큰 인기와 유명세를 누리면서 여기저기서 설교하는 사람들은 영혼을 저주하는 사탄의 기계들이다. 불행히도 위의 설교를 들으니 장경동 목사도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개념없는 설교를 하며 웃기고 다니는 장경동 목사에게 이런 심각한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오래 방관했던 것이다. 복음을 해치는 사탄의 쓰임을 받는 사람들의 특징은 참으로 다양하고 가지각색인 것 같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므로 결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거나 그릇 가르치지 않는다. 장경동 목사가 자범죄를 회개하여 물세례 받고, 원죄를 용서받은 증거로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가르쳤다는 것은 그에게 진리의 영이 함께하시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어떤 사도도 이미 믿는 사람에게 성령의 충만이나 성령의 은사를 밀어 넣어주기 위해 안수기도를 하지 않았는데, 장경동 목사와 같은 부류들이 그런 일을 하고 다닌다는 것은 그들이 사도들보다 위대서가 아니고, 사도들이 전한 성령과 사도들이 가르친 복음과는 다른 것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장동경 목사와 함께 일하는 아리까리한 영이 사도들과 함께하신 성령이 아니므로 장동경 목사가 사도들이 하지 않았던 성령을 주입하는 안수기도를 하고 다녔고, 사도들에게서 나타나지 않았던 ‘몸이 마비되는 현상’이 그의 안수를 받는 사람에게서 나타났던 것이다. 어찌 이런 일이 단순한 일이라 하겠는가?

장경동 목사의 그릇된 성령세례 사상의 문제는 이것뿐이 아니다. 그는 세례 요한의 물세례와 지금의 물세례를 동일시하였다. 시간적으로 세례 요한의 물세가 먼저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세례가 나중이었고,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실 성령의 세례를 증거하였으므로 지금도 물세례와 성령의 세례는 다르며, 물세례 이후에는 성령의 세례를 기대해야 한다는 식으로 가르쳤다. 장경동 목사는 인천의 복된교회의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그는 성령과 불로! ... 그러니까 요한의 관점은 세례만 받아서는 안 된다는 거야! 반드시 성령세례(성령침례)를 받아야 된다 이거야!”(장경동)

장 목사의 이 말은 세례 요한의 물세례와 지금 교회의 물세례를 동일시하는 관점에서 나온다. 많은 사람이 장 목사와 같이 물세례에 대해 혼동하고 있다. 신약 교회의 물세례가 세례 요한의 물세례를 계승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회개하여 요한이 시작한 물세례를 받았으면, 예수님이 그 이후에 주신 성령의 세례를 받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신약 교회의 물세례 예식은 세례 요한의 물세례와는 다르다. 세례 요한의 회개의 물세례는 임박한 하나님나라와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오시는 하나님나라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백성들 앞으로 드러내기 위한 세례 운동이었다. 하나님나라가 곧 개막되므로 이제부터는 더러운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나라 개국을 위해 오시는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도록 촉구하는 의미의 세례운동이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세례 요한이 했던 세례운동은 다시 반복되지 않았다. 그것은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시는 길을 예비하기 위해 보내심 받은 아주 특별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신약 교회의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가 개국하신 하나님나라의 참 백성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세례이다. 어떤 죄인이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거듭난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교회 앞에서 공표하는 예식이다. 상황이 여의치 못해 물세례를 받지 뭇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하여 구원이 사라지거나 불확실하다고 할 이유가 없다.

지금 교회의 물세례를 세례 요한의 물세례와 기능적으로 일치시키는 주장은 용납될 수 없다. 이런 그릇된 주장은 결국 성령도 없이 인간이 스스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음이 가능하다고 만들어 버린다. 자유의지를 통해 스스로 회개하고,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자력으로 믿은 후 하나님이 그의 노력과 행위를 기뻐하여 그 사람의 원죄를 사하여 주시는 성령의 세례가 나타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위의 장경동 목사의 설교에서 이런 내용들이 나타났다.

그러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성령의 세례가 임할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진다고 할까? 이들에게 성령세례의 증거와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더욱 더 한심한 이야기들이 줄줄 나오기 시작한다. 더욱 더 뜨거운 헌신과 봉사, 변태적 방언현상, 쓰러짐, 이마의 땀방울, 등줄기가 후끈해 지는 것 ... 등의 이야기로 이어져간다. 수 없이 들었던 빤한 이야기들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이론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의 경건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기 위해 감히 안수기도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올바른 신학에 대해 무지하고, 또한 자기에게 무슨 대단한 영적인 힘이 있는 것인양 자기를 자랑하고 드러내려는 교만의 짬뽕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의 안수를 통해 장경동 목사가 어떤 사람을 눕게하고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었던것 같은 괴이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성령의 역사에 관한 비성경적인 이론을 가지게 되면 결국 ‘다른 영’(고후 11:4)이 함께 일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장경동 목사가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사람들에게 안수기도하자 꼼짝하지 못하고 누워있는 현상도 나타났던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장경동 목사에게 능력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와 더불어서 함께 저주를 받을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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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