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교황-다원주의 정도 이기지 못하면 교회 아냐

사도행전 2장에서 보인 교회의 탄생 때부터 콘스탄틴 로마 황제 때까지 초대교회는 적어도 10번 정도의 핍박을 겪었다. 각 황제마다 기독교를 핍박한 이유들이 각각 달랐던 것이 흥미롭다. 예를 들면, 최초의 핍박을 가한 네로황제는 그의 광기(狂氣)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을 “인류의 혐오자들(haters of humankind)”로 간주함으로 기독교를 대단히 마땅치 않게 생각했던 로마 역사가 테시터스의 관찰이다. 네로의 광기가 어떤 수준이었던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정보이다.

트레이전 (98-117), 헤드리언 (117-138), 안토니우스 파어어스 (138-161) 황제 때의 핍박들은 모두 다 로마 제국의 “신들”에게 경배드리는 것을 거부한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었다. 스토아 철학자였으며 명상록(瞑想錄)의 저자이며, 로마의 5대 선군(善君)중 한 사람이었던 마커스 오렐리어스 황제 (161-180)의 핍박은 그리스도인들의 “완고함” 곧 “이성(理性)”을 거스리는 비이성적(非理性的) 신앙심에 대한 징벌로 핍박을 가하였다. 그러나 현대 교회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핍박 사건은 3세기, 4 세기의 데시어스 황체 핍박과, 디오클리션 황제 핍박이었다(250-305).

 

데시어스 황제 핍박 (주후 250 년)

데시어스황제의 핍박은 로마 제국 전 주민들로부터 로마 신들에 대한 경배를 의무화 하는데서 출발하였다. 로마 제국 1,000년 기념을 성대하게 치루기 원했으나 도리어 로마제국 도처에서 침략, 반란, 홍수, 온역으로 나라가 피곤하게 되었을 때, 그는 로마 수호신들에 대한 재 헌신으로 복을 빌고자 했다. 다원주의 신앙에 익숙해 있었던 이방인들은 기꺼이 로마 신들에게 경배를 표했고, 그들의 신앙의 증거로 로마 황제의 상 앞에 향을 살랐다. 그리고 제헌증(祭獻證)을 발급받음으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유일한 거부자들은 오직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들에게는 대 핍박이라는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할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대 핍박의 결과로 순교자들이 생겨났다. 로마의 감독 파비아노, 안디옥 감독 바빌라스, 예루살렘 감독 알렉산더가 순교했다. 씨프리언(Cyprian)은 외국으로 피신하였다. 로마의 신들과 황제의 화상 앞에 분향한 자들도 있었다. 많은 교인들이 투옥되었다. 분향하지 않고 뇌물을 써서 제헌증을 얻어낸 자들 (liberllatici), 즉 변절자들(lapsi)도 생겨났다.

이 문제는 성서적 “교회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들이다.(이하의 부분은 최덕성 교수의 “한국교회 친일파전통” (2000년)에서 많은 부분을 옮겨왔음)

1)우상숭배와 황제숭배를 행한 자들은 징계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교인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2)문제는 제헌증을 구입한 자들을 어떻게 다시 회복할 것이냐는 것이었다.

a)씨프리안응 이렇게 제안하였다

(i)다음 박해 때에 그리스도를 바르게 증거하면 회복한다.

(ii)임종 직전의 신앙고백에 따라 받아드린다.

(iii)변질 성직자는 평신도로 받아드린다.

(iv)일정한 공적(公的) 참회와 권징을 실시한 후에 받아드린다.

 

b)노바투스는 씨프리안의 제안을 거부하였다. 그 이유는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이므로 변절자를 수용할 수 없다. 그들은 분리해 나갔다.

 

디오클리시안 황제의 대 핍박 (305년 286- 313)

기독교인들은 관직을 박탈당하고, 기독교를 비난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노예로 삼았다. 기독교인들은 로마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교회당은 파괴되고, 성경과 기타 기독교 서적들은 소각되었다. 많은 성직자들은 체포되고, 고문을 당하고, 처형되었다. 수많은 순교자들과 배교자들이 생겨났다.

박해 후의 상황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1)우상숭배-황제숭배자들, 배교자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2)문제가 된 자들은 박해를 피하기 위하여 관리에게 성경이나 신앙서적들을 넘겨준 자들(traditores) 에 대한 처리였다

a)씨실리언(Caesilian): 그는 배반행위를 한 칼타고의 감독 멘수리우스에 의해 감독으로 안수를 받았다.

b)도나투스 (Donatus): 씨실리언이 배반자에 의해서 안수받은 자이므로 그가 받은 감독직은 무효라고 주장한 많은 북아프리카 감독들이 마조리누스를 감독으로 선출하였으나 그가 곧 사망하자, 도나투스가 후임 감독으로 선출되었다.

(i)도나투스주의자들은 교회의 도덕적 상태를 중시하면서 순교를 피하기 위해 우상숭배를 강요한 국가에 타협한 감독이 집행한 성례전은 효과가 없다고 보았다.

(ii)씨실리언 파에 속한 자들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고 보았다.

(iii)박해기간 직접 우상숭배-황제숭배를 하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배도의 표시로 성경책과 같은 성물(聖物)을 관리에게 건제 준 자들이 집행한 안수례와 성례는 효용성이 없다고 보았다.(최덕성, 한국교회, p.116)

(iv)박해가 끝난 후에도 도나투스파는 정교(政敎)분리를 주장하였다. 교회가 황제의 지배를 받는 것과, 황제가 돈으로 교회의 환심을 사는 것에 격분했다. 황제가 무력으로 교회일치를 시도하려는 노력을 세속 권력의 교회간섭으로 규정하고 이에 항거하였다. 황제가 황금으로 그들을 설득하려 고 하자 “황제와 교회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라고 외쳤다. 이 명언은 교회와 국가는 영원히 구별되고 상호 독립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표방한 것이다.

도나투스자들은 가톨릭 교회를 황제와 간음을 범한 교회로, 성직자들은 가련한 위선자들이며 황제의 정치적 조직망을 확대하기 위해 고용된 자들로 보았다. 이것은 교권과 속권(俗權)의 혈투로 이어지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중세기 1천년의 불행을 내다보는 선지자적 경고였다.

 

어거스틴 (Augustine)의 견해

(i)침례의 유효성은 (그는 세례(洗禮)를 선호한듯하다) 침례자의 도덕적 순수성에 달린 것이 아니라, 침례에는 침례를 받는 사람, 침례를 베푸는 사람 등이 개입되지만, 침례를 베푸는 자는 인간이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이라고 했다.

(ii)어거스틴은 도나투스파가 북아프리카의 교회 (씨시리언 파)가 참 교회가 아니라고 배척했을 때, 도나투스파의 교회는 오히려 시리아나 로마 등 전역에 산재한 교회를 대표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보편적 교회가 아니라고 보았다.

(iii)“교회의 단일성이란 그리스도의 유일하신 몸에 속한 모든 사람을 결속시키는 사랑의 줄이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통일도 없다. 통일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 따라서 거기에 교회도 없다. 도나투스주의 교회가 분리된 것은 사랑의 부재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거스티의 이론은 이처럼 철저하지 못했다.” (최덕성, 한국교회. p. 487)

(iv) “어거스틴은 교회의 거룩성이 구성원의 거룩성에 있는 것이 아니고, 신적인 기원에 있다고 보았다. 지상 교회는 죄인과 선인이 혼합되어 있는 단체이므로 추수 때까지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있다고 보았다.(강조는 최교수의 것이 아님)

어거스틴의 교회관은 중세 로마가톨릭 교회관을 부추겼고, 교회의 성결성의 중용하다는 생각을 흐려놓았다. 교회가 완벽한 개념의 성결성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교회가 성결성을 간과해도 된다고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어거스틴의 견해는 자칫 교회의 성결성이 간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조장할 수도 있다. 교회를 순결한 창녀(castameretrix)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였다.”(최덕성, 한국교회, p.487).

 

존 칼빈의 견해 (최덕성, 한국교회, p.109-112)

(1) 칼빈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 도리들”을부정하는 신앙공동체는 참 교회가 아니라고 보았다. 칼빈이 로마교회를 거짓교회로 보고 그리스도의 교회로 보지 않은 까닭은 신앙의 보루라고 불리는 핵심 교리들을 온전히 묻혀버렸거나 쫓겨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칼빈은 로마교회가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갔다고 보았다. “교회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보았다. 칼빈은 로마교회를 거짓교회로 보았다. 칼빈은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보면서, 로마교회를 그리스도의 대적, 사악한 인간들의 당파, 더러운 창녀(a foul harlot)라고 했다.(기독교강요, IV.2.4, 5,3,11).

(2)이 같은 극단적인 묘사에도 불구하고 캘빈은 로마교회에 교회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특히 성례는 인간들의 불 경건에도 불구하고 효용성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강요, IV.2.11). 로마교회를 무너진 건물로 비유하면서 무너진 폐허속에도 구원받은 자가 약간 남아있다고 본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로마교회 안에 놀라운 방식으로 남은 자들을 보전했다고 여겼다. “교황의 폭정하에 있는 교회들이 교회로 남아있다”(강요,IV.2.12)고 했다. 교황의 교회는 진정한 교회는 아니지만, 기독교의 근본 도리를 고백하는 신앙고백적 “교회”가 그 기구 속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교회안의 교회”만이 유일한 교회는 아니지만 참 교회의 표지를 갖추지 않은 지역 교회들과 전체로 로마교회는 교회자격을 상실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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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윤 목사는 정태윤 목사는 미국 달라스에 있는 서남침례교회의 목사이다. 정태윤 목사는 현대의 교회들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에서 멀리 벗어났음을 안타까워는 목회자들과 함께 ‘복음주의 형제회’를 조직하여 매년 복음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천주교의 심각한 배도를 설명하는 데이비드 헌트의 책「짐승위에 탄 여자」을 번역하여 국내에 보급하였고, 그 외에도 「진정한 복음」,「참 복음과 거짓복음」, 「로버트 채프만: 사랑의 사도」를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