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0 12:01 (금)
근래의 찬양,찬양리더들은 지나치게 감성에 의지
상태바
근래의 찬양,찬양리더들은 지나치게 감성에 의지
  • 정이철
  • 승인 2015.07.08 01: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감성,인기,히트,명예,수익이 현대 CCM의 중심에 있어

페이스 북을 시작한지 6개월 정도 지났고, 매일 페이스 북을 통해 유익한 정보들을 많이 접하고 있다. 나에게 페이스 북은 연구, 신앙, 사상 등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매우 유용한 통로이다. 동시에 페이스 북은 지금 한국 교회가 돌아가는 정황을 쉽게 파악하게 만들어 준다. 친구되자고 요청해 주시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이 올려주시는 많은 정보들을 통해 꼭 알아야 할 것과 내가 모르는 것들을 많이 접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페이스 북에서 매우 특별한 글 하나를 보았다.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는 몇 사람들이 현대의 그릇된 찬양 운동에 대해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는 내용이었다. 자세히 보니 이전에 내가 <바른믿음>과 나의 페이스 북에 올렸던 글을 읽고서 하는 말들이었다. 그 내용은 현대의 그릇된 CCM 운동, 현대교회를 장악하고 있는 그릇된 찬양운동의 문제를 지적하는 나의 글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내용이었다.

“찬양사역자들의 위험스러운 신앙 노선”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233

바로 이 글이었다. 원래 이 글은 나의 책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의 “제3의 물결의 찬양”이라는 파트에 수록된 제법 긴 내용의 일부이다. <바른믿음>에 ‘제 3의 물결’의 특징을 기술하는 시리즈 글들을 연재하면서 분량이 많은 그 내용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하였다. 나누어서 연재할 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최근의 상황과 관련된 몇 가지를 영상 등을 추가하였다.

나는 현대 교회를 짓 누르고 있는 사탄의 어둠에서 건져내기 위해 꼭 해야 할 가장 어렵고도 기본적인 일이 거짓 방언을 걷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온갖 불건전과 신비주의의 온상이 되는 거짓 방언, 즉 옹알거리는 현상을 교회로부터 걷어내지 않고서는 다른 무슨 일을 해도 교회를 복음으로 돌아오게 만들기 어렵다.

처음에는 거짓 방언을 주로 ‘옹알거림’이라고 표현하였으나 최근에는 ‘변태 방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이 지으신 ‘결혼과 성’을 마귀의 유혹을 받은 인간이 타락하고 변질되고, 마귀가 지배권을 행사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왜곡하는 ‘변태적인 결혼과 성’(sex)이 등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마귀는 현대의 교회에 성경의 방언을 왜곡하는 변태적인 방언을 풀어 놓았다. 현대의 거짓 변태 방언은 사탄의 미혹은 받은 1900년대 초의 미국의 이단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세상에 퍼졌다. 

거짓 방언의 정체를 드러내는 일은 계속 줄기차게 진행되고 있는 중이고,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전에는 감히(?) 현대의 교회들을 장악하고 있는 비성경적인 방언을 향해 ‘거짓 방언’이라고 표현하는 것 조차가 어려운 일이었고, 더욱이 ‘옹알거림’이라고 비하시키는 표현을 동원한다는 것은 더욱 시도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일이 상당히 자연스러워졌다. 그 만큼 현대의 비성경적인 방언 현상에 대한 그릇된 믿음과 환상이 깨어졌음을 의미하는 현상이다. 앞으로 ‘변태 방언’이라는 용어까지 유행하도록 만들어서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정착되게 되면 현대 교회의 거짓 방언은 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거짓 방언을 물리치는 것 외에 또 한 편으로 늘 마음에 부담이 되는 것이 또 있었다.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미명하게 사람의 부패한 쾌락을 부채질하고, 술과 마약으로 일으킬 수 있는 감정 흥분을 조장하여 술 냄새나지 않고 깔끔하게 흥청거리면서 성경의 참 하나님을 배격하고 사탄으로 그 자리를 대체시키는 그릇된 현대의 CCM 운동의 실상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릇된 CCM의 문제도 변태 방언의 문제와 거의 비슷하다. 교회에 나와서 그런 유형의 찬양을 부르는 사람이라면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해졌고,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의 관계를 영구하게 고착하는 새 언약의 백성들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미 성령의 인치심과 성령의 영원한 임재의 복을 누리고 사는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CCM의 가사들은 하나님에게 노래부르는 자신들에게로 지금 오시라고 간청한다. 많은 CCM 곡들의 가사는 그 노래를 부를 때에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기를 호소하는 내용이다. 감정을 실고, 적합한 분위기와 조명까지 동원하고, 그리고 찬양 인도자의 적절한 멘트가 조합되면서 그런 노래를 부르면 그 노래를 보르는 사람들에게로 하나님이 땡겨 오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런 노래를 부르면서 분위기를 잡으면 하나님이 더 결국에는 더 강렬하게 임재하시는 것으로 믿고, 또한 이해하도록 분위기를 잘 조장하고 있다. 찾아오시는 하나님이 빈 손으로 오시지 않고 신령한 은사들을 주시고, 또한 기름부음(?)을 주신다고 믿으면서 그런 노래를 부른다. 

이런 유형의 CCM 곡들으로 유명해지고 부를 얻고 인기를 누리는 소위 찬양사역자들은 대부분 현대의 교회의 당골래들이다. 자기들의 목소리와 노래와 분위기와 감정 조장질을 통해 하나님(?)이 땡겨오는 신기한 재주를 잘 부리는 것은 사실인데, 문제는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주는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가 않다는것이다. 그러므로 기타를 메고서 설치는 당골래들이라는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다. 많은 당골래들이 기타를 치면서 마이크를 잡고 '하나님의 임재', '성령의 임재' 등의 그럴싸한 교회 용어들을 남발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인도해 가면 결국 그곳의 분위기에 젖어드는 모두가 당골래 집의 손님들이 되어버린다. 이것이 타락해가는 현대 교회의 거짓된 찬양의 문제이다. 

참된 성도에게는 이미 영원한 하나님의 임재가 실현되었다.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로 맺어진 새 언약의 효력의 영원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 신자들에게 이미 넘치고 있고 영원하게 보장되었다. 그것을 더욱 누리고 확인하는 방법은 그것을 증거하는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더 읽고 배우고 확인하는 것이다. 그 어떤 노래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끌어온다는 것은 당골래들과 이방 종교인들의 신념이지 결코 기독교의 사상이 아니다. 

기독교의 찬송은 하나님의 임재를 만들어 내기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를 씻으시고, 친히 영구히 임재(내주)하시고, 스스로 십자가로 맺어진 새 언약의 당사자로서 우리 신자들과 영원히 함께하시고, 언제나 동행하시면서 지키시며 돌보아 주시는 은혜를 송축하는 찬송이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유행하는 CCM 곡들은 대부분 하ㅏ님보고 자기들에게 오라고 초청하는 내용들이다. 이미 믿는 자들을 불러모아 그럴싸한 분위기를 잡으면서 산 기슭의 안개를 타고 임재하는 산 신령과 같이 다가오는 하나님보고 자기에게 오라고 간구하는 노래는 기독교에서 있을 수 없다. 대부분 예배 시작 직전에 그런 노래들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 깊이 몰입하여 부르면, 그 교회는 결국 귀신이 드나드는 당골래집과 같은 곳으로 변질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그런 노래를 즐거이 매일 부르는 교회들에게서 미혹의 영의 역사가 많다는 것은 이미 드러난 사실이다.  

현대의 유행하는 찬양을 부르는 사람들이 정말 그리스도인이 맞고, 새 언약 백성이 맞다면, 그들에게 무슨 하나님의 임재가 또 일어나겠는가? 언제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고 떠나시기라고 했다는 것인가? 그 노래를 분위기 잡아 가면서 자꾸 불러재낀다고 하나님이 그 사람들에게 또 임하신다는 것은 이방 종교의 관점이고, 당골래들의 신학일 뿐이다. 그런데 요즘 찬양곡들은 대부분 그런 사상을 노래하고 있고, 그런 노래를 부르면서 무슨 기름부음(?)이 자꾸 부어지는 것처럼 분위기를 조장한다. 

유행하는 모든 CCM 곡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현대의 유행하는 CCM의 주된 특징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기독교 신앙에 맞지 않는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사탄에게 그런 노래를 부르는 영혼들의 두뇌가 뚫리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거기에 현란한 조명과 엄청난 박자와 리듬과 인도자의 호소력 넘치튼 굉장한 멘트가 가미되므로 사탄의 영혼사냥은 더욱 더 쉽게 대량으로 벌어지게 된다.

또한 이미 마귀에게 크게 미혹된 악한 영성을 가진 자들이 교묘하게 자신들의 사악한 사상을 담아서 가사를 만들어 지은 노래들이 많이 보급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교회들은 느낌이 좋으므로 그냥 따라서 부르기만 힘썼지, 아무도 그런 가사들의 내용이 과연 성경과 일치되는 사상인가? 에 대해서는 연구해 보지도 않았다.

아무리 가사가 성경적이고 건전해도, 그 가사가 입으로 노래가 되어 나오게 만드는 리듬과 악기의 성향이 사탄을 돕는 구조이면 또 그 결과는 예상 밖이다. 전혀 다른 음악적, 감정적 메시지를 제공하는 노래가 되어 버린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입니다”라는 가사에 적합한 유형의 리듬이 적용되면 훌륭한 찬송가로 쓰여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사탄이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건드리기에 좋도록 돕는 성향의 악기와 박자를 적용하면 또 달라진다. 겉으로는 찬송가 곡이나 실제로는 전혀 다른 성향의 노래가 되어 버린다. 음침한 카바레에서 부둥켜안고 춤을 추는 타락한 불륜남녀의 관능적 쾌락의 촉진하기에 좋은 카바레 노래가 될 수도 있다. 교회에서 흔히 부르는 찬송가를 다른 방식으로 연주하면서 사람들의 영혼을 녹여 귀신들에게 놀림받게 하는 이단 집단의 방식을 보여주는 영상들이 많이 있으니 참고하면 좋겠다.

예배에서 음악과 찬양이 차지하는 비중은 정말 크다. 결코 음악을 무시하거나 없애자고 할 일은 아니다. 음악을 분별하고 바르게 사용해야만 예배와 신앙이 성경적이고 건강해진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현대 교회의 중요한 찬양과 음악에 대한 이런 복잡하고도 중요한 사실에 대해 이해하고 경각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마침 오늘 아침 페이스 북에서 그런 사실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지고 있는 귀한 분들이 의견을 나누는 것을 보았고, 너무 반가웠다. 그 분들이 나누는 말들 속에서 배울 점들이 매우 많았다. <바른믿음>의 독자들에게도 그 소개하고 싶다. 이런 내용을 나눔으로 앞으로 현대의 찬양운동에 대해서 더 깊이 고민하며 바르게 찬양하는 풍토와 지식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다음은 이월근 님이 “한번쯤 생각해 봅시다! 데이비드 루이스의 찬양 연주와 그 외세 편의 비디오를 보니 마치 나이트클럽과 무당들의 푸닥거리가 연상됩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페이스 북에 나의 “찬양사역자들의 위험스러운 신앙 노선”이라는 글을 소개하는 공간에서 몇 사람이 남기신 의견들이다. 개인적인 친분이 없어 사전에 양해를 구하지는 못했으나,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실 것으로 믿는다.   

 

Sang Hoon Lee(페이북 네임)

“제가 모 교회에서 찬양선교단 활동을 할 때 저희 팀은 모이면 두 시간 중 한 시간 기도회를 갖고, 30분 말씀을 나누고, 나머지 30분간 곡을 연습했지요. 근래들어 찬양사역자들의 이런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노래에 치중한다는 증거지요. 예나영 님이 지적하신대로 근래의 찬양곡과 리더자들의 가장 큰문제의 하나가 지나치게 감성에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뉴에이지입니다. 쥐어짜내는 방편. 또 한 가지는 인기라는 부분입니다. 스스로가 연예인이 되기위해 어떻게든 꾸며간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청중의 마음을 쥐어짜내고 어떻게 하면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딜레마에 빠져있습니다.

연예인들처럼 이들을 움직이는 기획사가 있고, 메니져들이 따라 붙어 다닙니다. CCM이 수익창출을 위한 하나의 문화 콘텐츠가 되어가고 있단 것도 자각해야합니다. CCM과 가스펠도 구분하지 못하는 뮤지션들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스펠뮤지션들도 스스로 CCM뮤지션이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대중을 의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CCM작곡자들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표적인 한 작곡자가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싱어라이트로도 활동하며 히트라는 단어에 상당히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가 작곡한 모든 극들은 비성경적이며 모두가 감성위주입니다. 그자는 제가 제일 격멸하는 뮤지션입니다. 이것이 작금의 소위 찬양사역자들의 모습입니다. 감성과 인기, 히트, 명예와 수익, 이것이 지금 그들을 잡고 있는 요소들입니다. 찬양사역자는 기도와 말씀, 특히 예배에 소홀해서는 안 됩니다.

안성진이라는 뮤지션이 있었습니다. CCM ROCKER입니다. 그가 투어콘서트를 시작하는 첫날 무대 뒤에 '안성진 투어콘서트'란 타이틀을 네온으로 큼직막하게 걸어두었는데 콘서트 시작 10분전인가에 그것이 떨어졌다 합니다. 모든 이들이 당황하며 다시 걸려고 분주히 움직일 때, 그것을 바라보던 안성진 지체는 깊은 묵상을 하고난 후 다시 걸지 말라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이 콘서트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어야 하고, 자신이 절대 들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중심이 지금 이 시대 사역자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 모든 젊은 크리스쳔들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 분별입니다.”(Sang Hoon Lee)

장현종(페이북네임)

“찬양은 감성에 의한 입으로 또는 행위로 표현 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대한 감사와 감격, 성령님의 임재로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입을 통하여 고백 되어져야지 함성을 지르고 뛰고 날 뛴다고 해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흐느끼는 신음으로 드려지는 찬양이라도 그 안에 내가 죄인임을 진심으로 고백 되어져야 하겠죠.”(장현종)

“이 시간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회개합니다. 10년 전에 교회에서 “주의 자비가 내려와 봄비같이~~~” 찬양 인도자가 부르면 함께 따라서 불렀고 쉽게 배울 수 있어 자주 불렀으며, 인터콥에서는 찬양 인도하는 자매가 새벽에 찬양 인도할 때, "창조의 아버지 그 섭리 보이사 택하신 백성들 일으키사 ~~~” 계속 부르고 있어 쉽게 따라 불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찬양 이라 생각하고 불렀지 루시퍼가 계획적으로 만든 곡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신사도 운동가와 영지주의 사상으로 이곡을 만든 작곡자에 대하여 알게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요즘은 예수님의 보혈 찬송과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 찬송, 전능하신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드리는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서향기)

“저도 예배에 대한 목마름이 많은 사람입니다. 주님의 임재와 사랑 안에서 그 분이 제 삶 가운데 행하신 놀라운 역사를 인식하게 되면,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기보다 그 주님만 높여 드리기를 소원하지요. 그러다보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감격함과 감사함에 의해 가슴이 벅차올라서 소리도 지르고 또, 앞으로도 행하실 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승리의 함성도 지르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 예배가운데 제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제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에 의한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가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분위기에서는 좀처럼 주님만을 높여드리는 온전한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대상이 누구인지만 분명히 알아도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무분별하게 절제함없이 그대로 드러내며, 주님을 예배한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방법이 아니요, 온전히 주님과의 관계안에서 나와져야 하는 것들이지요. 우리가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서 이루신 일들에 대한 감사가 있고, 또 앞으로 행하실 일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면, 그러한 모든 요소들이 예배가운데에서도 나타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교회들가운데서 우리들의 모습에서 예배가 너무나도 매말라 있습니다. 아무 감격도 감사도 사랑의 고백도 담겨져 있지 않은 그저 형식적인 노래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 많이 있음을 보고 안타까울 때가 많이 있지요.”(이선화)

“시편에는 모든 악기들도 동원해서 찬양하라 했지요. 실제 구약시대 예배는 진정 그런 감격이 있었습니다. 해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모두가 선체로 오직 하나님만 경배했습니다. 불과 십여 년 전 동일한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었습니다. 올네이션스에서 주최하는 수련회에서 주최측에서는 잠자리에 들 것을 권면했지만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밤이 새도록 목이 쉬도록 찬양하며 기도하기를 그치지 못했습니다.

그 후 그 모든 것이 변질된 것은 소위 말하는 경배와 찬양 신드롬이 일어나면서 였습니다. 큰 교회건 작은 교회건 막말로 개나 소나 갑자기 악기들을 구입하고 찬양사역자를 세우고 그들을 통해 노래를 하게 했습니다. 왜일까요?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ANM에 몰려드는 청년들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노래가 그들을 모았다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모여서 그저 노래만 불렀다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찬양이 시사하는 바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노래를 잘하면 부흥할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각종 팀들, 좀 더 강렬한 비트에 마음을 쥐어짜는 만들어진 감정들이 난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찬양의 의미가 퇴색된 것은 이때부터입니다. 이런 상황에 어떤 목사님이 일침을 가합니다. 노래로 부흥될 것 같은가? 였습니다. 지금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찬양집회는 그저 라이브콘서트에 지나지 않습니다. 교회는 오직 말씀과 기도로 부흥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흥하는 교회에서만이 진정한 찬양이 일어납니다. 바로 예배의 회복입니다.

ANM의 하스데반 선교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느헤미야의 성벽 수축의 역사를 말하면서 이제는 우리가 인내와 기도로 허물어진 이 땅의 교회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흥에 겨워 날뛰는 노래가 아닌 진정한 예배로써의 찬양이 회복되어야합니다. 비단 이들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모든 문제가 이와 같음을 우리가 인식해야합니다.

지금은 춤추며 노래할 때가 아닙니다. 애통하고 통곡해야할 때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치부를 들어내고 진정 회개하며 땅을 치고 애통해야할 때입니다. 영적분별이 사라진 이때 우리의 지체들을 살려낼 방법은 오직 이것뿐입니다. 지금 중동을 보십시오. 그곳에선 예수를 믿는 이유로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 비참하게 순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아도취에 빠져 광란을 즐기고 있는 그 시간에도 그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회개해야합니다.”(Sang Hoon Lee)

“예! 너무 감정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고, 반주가 문제 있어요.”(예나영)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도 수학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