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이 서요한 교수도 전광훈을 추종하면서 공개적으로 칭송하고 있고, 어떨 때에는 전광훈처럼 욕을 공개적으로 한다고 크게 놀라면서(분노하면서) 영상 하나를 보내셨다.

서요한 교수는 영국에서 청교도신학을 많이 연구한 분이다. 나는 청교도신학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애쓸 때, 청교도들의 시작과 과정과 끝을 보여주는 책이 필요했다. 가장 도움되는 책은 서요한 교수가 쓴 두 권의 책, <언약사상사>, <청교도유산>이었다.

서요한 교수는 두꺼운 이 두 권을 책들을 통해 과거 청교도들이 언제, 무슨 일들을, 어떻게 했었는지에 대해 독자들에게 소상하게 설명하였다. 청교도들이 무슨 일들을 어떻게 했었는지 알기 원하는 사람들은 이 두 권의 책을 참고하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그런데 서요한 교수의 이 두 권의 책은 의외로 한계가 너무 분명한 책이다. 청교도들을 칭송하는 맹목적인 자세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저자의 신학적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청교도들이 몇 년도에, 어디서, 무슨 일을 했고, 또 몇 년도에는 어디서, 무슨 일을 했고, 또 몇 년도에는 어디서, 무슨 일을 했고 ... 이런 내용이 무한히 반복된다.

청교도들이 가졌던 중심 사상과 신학이 성경이 가르치는 기독교 신앙과 얼마나 일치하였는지, 청교도들의 사상과 개혁운동으로 인해 지상의 그리스도의 교회가 얼마나 더 성경에 충실한 신앙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평가하는 내용은 없었다. 그 두꺼운 책 두권 속에 단 한 줄도 그런 내용을 찾을 수가 없다.

서요한 교수는 탁월한 청교도 역사자료 수집의 공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생각된다. 마치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노래를 부르면 하나님이 부흥을 일으켰다고 맹신하는 박용규 교수가 부흥이라고 생각되는 곳(것)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서 모든 자료들을 수집하여 그럴싸하게 나열하는 것과 유사한 일을 영국에서 했다고 생각된다. 

만일 서요한 교수가 청교도들이 했던 일들을 연대기 순으로 나열하는 수준의 역사신학을 뛰어넘어 청교도들의 신학과 사상으로 인해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을 더 잘 믿고 성경적인 신앙을 실천하게 되었는지, 또는 청교도들로 인해 지상 교회가 어떤 나쁜 영향을 받게되었는지에 대해 연구하는 곳까지 나아갔다면, 이미 한국 교회는 그의 청교도 연구를 통해 큰 은혜를 입업을 것이다.

그랬다면 한국 교회는 정이철 목사의 돈키호테 스타일의 문제 제기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청교도들의 핵심적인 신학들, 행위언약, 능동적 순종, 회심준비론 등의 거짓됨을 깨닫고 벗어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서요한 교수의 머릿속에는 그것이 있었는지 몰라도) 서요한 교수가 쓴 두 권의 두꺼운 책들 속에는 청교도들의 핵심적 신학과 사상에 대한 성경적 비판의 관점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서요한 교수가 청교도운동에 대한 연대기적 자료 배열과 집대성으로 인해 후배들이 청교도들의 신앙와 사상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 준 공로는 높이 사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지금까지 한 말은 이전에 대화도 있었고, 청교도운동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준 분을 비판하려니 마음이 편지 않아서 한 말들이다.

오늘 어떤 분이 최근 서요한 교수의 심각한 행동을 보여주는 영상을 보내왔다. 영상을 보니 서요한 교수의 사람들을 미혹하는 어그러진 행동을 도저히 묵인할 수 없어 이 글을 쓴다. 서요한 교수가 전광훈 목사를 어떻게 높이고 칭송하였는지 직접 보자.
 


“지금 여기에 총신대에서 일생 동안 강의하시고 작년에 은퇴하신 우리 (서요한) 박사님을 잠깐 보시겠습니다. 우리 (서요한) 박사님 말씀을 들어보세요. 제가 설명하는 것이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처음이라는 겁니다. ‘기자 여러분! 함께되어 너무나 반갑습니다.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언론은 집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처음에 언론사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오는 동안에 바른 길로 가겠다고 하면서 여기까지 오신 것으로 믿습니다. 그 언론 직분을 믿고 제가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본래 전광훈 목사님이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또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저하고는 스타일이 정 반대입니다. 그러나 3년 전에 한 선배 교수님의 안내로 전 목사님을 소개받고 그 후에 지금까지 목사님을 지근에서 도우며 함께 협력하고 있습니다.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네 가지게 되겠습니다. 첫째로 전 목사님 여러분들이 보시겠지만, 연설이든, 설교든, 세미나든, 원고 하나 없습니다. 3시간 4시간 할 때가 있습니다. 이 사역을 50년 동안 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분은 없습니다. 두 번째로 이 분의 사역은 전적인 헌신입니다. 돈 받고 하신 적 없습니다. 누구 하나 앞에 나서서 하신 일이 없습니다. 세 번째, 이 분이 가르치는 성경의 내용은 제가 영국에서 10년 동안 공부하면서 박사학위를 했는데, 2천 년 교회의 역사에서 이런 탁월한, 영감있는, 도전적인, 실천적인 메시지는 없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이 복음을 애국운동과 관련하여, 자유통일과 연결지어서 하신 분은 세계역사에 없습니다’” (서요한 교수).
 

서요한 교수가 전광훈 목사를 칭송하는 네 가지 이유들을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는 전광훈 목사가 원고 없이 설교, 강의를 잘 한다는 이유이다. 그런데 전광훈 목사보다 원고없이 설교하고 강의를 잘하기로 소문난 더 유명한 사람이 있다. 바로 신사도운동의 사도 변승우 이단 목사이다. 변승우 이단 목사는 처음부터 자신이 원고를 만들지 않고 즉석에서 설교를 하고 강의를 한다고 공개적으로 자랑했다. 자신이 그리할 수 있는 이유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 옆에 붙어서 도왔던 고위직 천사가 자신에게 붙어서 돕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변승우 이단 목사가 열적적이고 웅변적인 목소리로 원고 없이 길게 자신있게 말하는 것에 크게 매료되었다. 그에게 매료된 사람들은 원고를 준비하여 설교하는 정상적인 목사들을 우습게 또는 무능하게 보았다. 그러나 변승우와 그를 추종한 많은 사람들은 결국 어찌되었는가? 한국 교회에서 이단으로 취급되고 있고, 변승우는 할 수만 있으면 자신에게 붙은 이단 딱지를 떼려고 어수룩한 교단들이나 변호사들에게 찾아다니면서 많은 돈을 쓰고 있다고 한다.

나에게도 변승우에 대한 글들을 지워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변승우 교회에 나가는 신자들이 이단 교회에 나간다는 이유로 파혼, 이혼, 퇴직 강요, 왕따 등의 불이익을 받고 있으므로 변승우에 대한 글들을 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부탁과 메일들이 왔었다. 그러나 나는 변승우와 그의 이단 교회의 해악이 너무 크므로 거절했다. 그리고 나 한 사람이 글을 내려준다고 달라질 것도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원고를 준비하고 설교하는지, 원고를 준비하지 않고 설교를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변승우는 악한 영의 감화를 받고 있으므로 거짓된 신학과 사상을 전파하는 그의 설교와 강의가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 솟아는 것 같았다. 그것은 그 자신에게 복이 아니고 저주이다. 나중에 죽으면 불못에 떨어져서 그것으로 지상에서 얻은 사악한 이익에 합당하게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나는 전광훈에게도 비슷한 모습을 보았다. 전광훈은 성령에 대해, 은사에 대해, 기독교 계시에 대해 귀신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자이다. 변승우나 전광훈이 원고 없이 유창하게 설교하고 강의한다는 것은 전혀 칭송할 일이 아니다. 성경의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가벼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이단으로 빠지거나 잘못 가르치지 않기 위해 원고를 준비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고 마땅한 자세이다.

“청교도-거짓 성령의 아버지 전광훈과 그의 아멘 부대의 미국(LA) 수련회” (바른믿음)

최근 전광훈이 미국에서 신사도운동 이단 성령사상을 강의하는 영상을 보았다. 원고 없이 유창하게 하였다. 그러나 성경의 성령을 왜곡하는 이단사상 세미나였다. 사람이 보기에 원고 없이 유창하게 설교하고 강의하는 것은 멋있어 보이나,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목사의 본분이다. 그렇지 못하면 거짓 선생이거나 이단이다.

둘째로, 서요한 교수는 전광훈이 전적으로 헌신하고 있으므로 칭송을 받을만 하다고 했다. 세상 어디에 헌신하지 않는 거짓 선생들과 이단들이 있는가?

셋째로, 서요한 교수는 영국에서 10년 동안 공부하면서 박사학위를 한 자신이 보기에 전광훈 목사는 2천년 교회역사에서 찾을 수 없는 가장 탁월하고, 뛰어나고, 영감이 있는 목사이므로 칭송한다고 했다. 전광훈이 그렇게 영감이 있으므로 세계 제일가는 욕쟁이 되었나? 전광훈이 그렇게 탁월하여 이단시비를 끊임없이 받고 있는가? 0 눈에는 0만 귀하게 보인다고 하는데 ...

넷째로, 서요한 교수는 전광훈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애국운동과 관련하여, 자유통일과 연결지어 설교하고 있으므로 칭송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과 애국운동을 직접 연결시키고, 그리스도의 복음과 자유통일을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변질이다. 정상적 기독교 신앙이 사회에 전파되어 향기를 드러내고 열매를 맺으면 자연히 공산주의는 자리잡지 못하게 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원리이다. 정상적 기독교 신앙이 사회에서 건강하게 자리잡고 전파되면 자연히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하는 자유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건강한 기독교 신앙의 열매로 이루어져야 할 일을 전광훈은 기독교 신앙의 직접적 목표로 삼는다. 그것을 자신이 일거리로 삼아서 '길거리 정치-종교 운동'을 하는 사이비 목사가 되었다. 서요한은 신학자이면서 이런 이치도 모른다. 기독교 신앙의 목표를 좌파적 사회변혁에 두면 민중신학, 해방신학이라는 이단이 나온다. 반대로 기독교 신앙의 목표를 전광훈처럼 애국, 자유통일에 두면 사이비 우파 기독교가 나온다. 둘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이단이고 사이비이다.

기독교는 공산주의를 지지할 수 없는 종교이나, 동시에 기독교는 우익 정치를 직접 목표하는 종교도 아니다. 건강한 기독교 신앙의 열매가 자연히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고 유지하게 만든다. 그러나 전광훈이 하는 일을 또 다른 형태의 기독교 사이비 운동이다.

전광훈을 칭송하는 서요한 교수는 상당히 이단적인 면이 농후한 사람 같다. 천국, 지옥을 보고 간증하는 서사라를 앞장서 두둔한 것을 보면 그렇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자. 서요한 교수를 바른믿음을 주의인물로 분류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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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