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아 나와라, 11장

 

부흥이라는 것에 대해서 참 많이 생각을 해 보았다. 부흥, Revival은 결국 다시 사는 것이다. 부활과 같은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부흥은 부활의 삶이 이루어진 역사 전체를 표현하는 느낌이 들어서 참 좋아하는 단어이다.

그런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가운데에, 온전히 부활의 삶이 이루어져서 참 믿음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을 가장 바라시는 분은 결국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믿음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은, 육의 수준의 믿음이 아닌, 육에서 영으로 거듭난, 나를 의지하는 믿음이 아닌, 내가 죽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이며, 그것은 부활이 이루어진 삶에서만 나타나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의 부흥을 바라시고 소원하실지 알기에, 부흥의 역사들에 대해 관심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톨릭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마틴 루터의 삶과 메세지를 자세히 접하고, 역사적으로 예수님이 오셔서 일으키신 부흥 외에 가장 엄청난 부흥의 역사가 바로 이 종교 개혁의 역사인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이때의 부흥을 통해서, 너무나도 많은 하나님을 목숨 다해 사랑하는, 영의 수준의 믿음을 가진 자녀들을 얻으시게 되셨다. 그때의 부흥이 없었다면, 그 많은 영혼들이 ‘이건 아니지 않은가’ 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용감하게 목숨까지 내어놓는 그 다음 단계의 발을 띄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 가톨릭 교회에 속해 있을 때,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었고, 삼위 일체 되심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동정녀에서 주님이 죄없이 나셨음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었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종교로 개종을 하면서 그렇게 엄청난 핍박과 박해를 받은 것이 아니라, 같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켰던 성도들에게는, 하나는 어두움이며 사망이었고, 하나는 빛이며 생명이었던 것이었다.

마틴 루터가 외쳤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말씀 가운데에서의 메세지는, 이 ‘믿음’이 이루어지지 않은 신앙은 아무리 경건과 선함의 모양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생명이 없다는 선포였었던 것이었다.

어두움이 무엇인지를 분별했기 때문에 참 빛을 찾을 수 있었고, 생명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을 했기 때문에 생명으로 거듭나는 엄청난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였었던 것이었다.

사단은 지금도 같은 속임수로 우리를 공격한다. 경건의 모양, 선함의 모양을 갖추어서 분명히 어두움인데 어두움으로 분별이 안 되도록 우리를 속이고 있다. 온전한 빛이라면, 주위에 어두움이 물러가게 되는 능력을 당연히 가지게 된다. 그런데 어떤 어두움을 향한 역사도 없다고 할 때, 우리가 참 빛 가운데에 있는 것인지를 의심해 보는 것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부흥은 하나님의 소원이면서, 하나님께서 직접 감당하시는 구원의 역사이다. 한일서 5장 14절 말씀에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하셨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더라도, 하나님의 뜻과 소원을 향한 확신이 없을 때는 담대히 구하게 되지를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하나님의 소원에 따라서 구할 때는, 들으심을 알기에 담대하게 구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소원이 부흥이다. 그것은, 우리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성경 전체를 통한 메세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담대히 구할 수 있는 조건이 채워진 것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때, 온전히 중심이 상대방으로 향한 사랑을 할 때, 그 상대방의 소원을 알고 그 소원을 이루어 주고자 하는 소망이 생긴다. 우리한테 부흥이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소원은 부흥인데…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실 때,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기도를 사용하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가 아는데…

애타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시도록 해 드리고자 하는 소원이, 우리 마음의 부흥의 소원이었으면 좋겠다. 믿음의 통로, 기도의 통로를 만들어 드려서, 아버지께서 온전히 역사하실 수 있도록 해 드리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소원이고, 목표이고, 사명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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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은 현, Stanton University 부총장
Kadesh Inc. (Puriton) 부사장
Talbot School of Theology (Master of Divinity)
Johns Hopkins University (Master’s in Applied Economics)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Master’s in Political Management
University of Phoenix (Doctor of Management in Organizational Leadersh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