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질문>
정 목사님, 바쁘신 중에도 답글로 답하지 않고 이렇게 자세히 답변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 자리를 빌려 우리가 잘 모르던 신사도 운동이나 능동순종의 문제를 일깨워 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제 질문은 ‘성령님이 예수님 안에 거하시나?’입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예수님이 세례받으실 때, 아버지 하나님은 하늘에 계셨고, 성령님은 하늘에 계시다 내려와서 예수님 위에 머무셨습니다. 예수님 안으로 임하신 게 아니고 밖입니다. 또한 머무르셨다는 표현은 잠시 계셨다가 떠나셨다는 느낌이 듭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성령세례를 받으셨다는 주장은 틀렸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하나님과 성령님이 함께 하신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나아가서,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라는 말씀 또한 성령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거하신다는 증표로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허물어질) 육체 안에 하나님이 거하신다. 즉,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되심을 뜻하지 않는가 생각해 봅니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빌 1:19. “너희의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 (the Spirit of Jesus Christ)께서 공급해 주심을 통해 이것이 나의 구원으로 바뀔 줄 내가 알므로”.

성경의 [성령],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표현은 모두 성령 하나님을 지칭한다고 생각합니다.

벧전 1: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님이 받으실 고난이라는 표현 또한 성령님이 곧 예수님이심을 뜻하고,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신다는 표현 또한, 곧 성령님이 곧 예수님이시다(?).

요10: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계시고 예수님도 하나님 안에 계시다는 말씀은 실질적으로 서로 안에 내주함을 뜻하기보다는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분 하나님이심을 뜻하는 게 아닐까요?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오셔서 내주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보증하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게 인도하시며 우리가 없는 능력을 주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령님의 내주하심과 도움이 필요 없는 예수님 자체가 하나님 되신다고 생각됩니다.
 

 

다시 답변>
“이 자리를 빌려 우리가 잘 모르던 신사도 운동이나 능동순종의 문제를 일깨워 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질문자).

이렇게 말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신사도운동 연구와 비판에 대해 제가 한국 교회의 선두에서 노력했었는데, 그때에도 많은 저항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청교도 신학과 웨스트민스터의 행위언약, 능동적 순종 등에 비하면 약과였습니다. 후자는 지금까지 정통 교회의 정통 신학으로 군림해 왔으므로 처음의 제 모습이 마치 작은 정과 망치 하나로 거대한 쪼개려는 모습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설마 청교도 신학이 잘 못되었겠어? 정이철 목사가 이제 스스로 죽을 구덩이를 파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더군요. 지금까지 정면으로 나서서 반박하는 목사들과 교수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막판에 정태홍 목사가 용감하게 나섰는데, 능동순종을 옹호하는 그 분의 책을 보니 정말 엉터리였고 안쓰러웠습니다.

앞으로 교단들에서 어떤 결정이 나오던지 간에, 이미 하나님의 진리가 저변에 퍼져 더 이상 능동순종, 행위언약, 회심준비, 청교도 목회 등의 위상이 이전과 같지 못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질문에 대해 답해 보겠습니다. 
 

1. 첫째 토론

“예수님이 세례받으실 때, 아버지 하나님은 하늘에 계셨고, 성령님은 하늘에 계시다 내려와서 예수님 위에 머무셨습니다. 예수님 안으로 임하신 게 아니고 밖입니다. 또한 머무르셨다는 표현은 잠시 계셨다가 떠나셨다는 느낌이 듭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성령세례를 받으셨다는 주장은 틀렸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하나님과 성령님이 함께 하신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질문자).

예수님은 ‘모든 의를 이루는 것’(마 3:15)을 위해 세례 요한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명하셨습니다.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성부 하나님이 명하신 모든 일들을 감당하셔야 했습니다. 범죄한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갚으라는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하게 만족시켜 드려야 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고난 받는 종’(사 53:1-9)으로서 예수님이 이루어 내셔야 할 ‘모든 의’였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모든 요구와 지시가 다 이루어진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서 항상 의롭고 거룩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종일관, 그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 죄인들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에게 우리의 죗값을 배상하시는 구속주로서 만족을 드렸습니다. 마지막에는 자기 목숨으로 우리의 죗값을 하나님께 완전하게 갚으심으로 죄를 용납하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하게 충족시켰습니다. 

예수님의 요단강 세례는 그 모든 일들을 이루시는 공생애 사역의 시작을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일종의 출정식을 하신 사건이었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강물 속에 서 계실 때, 성령이 보이는 비둘기 형체로 임하시고,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하늘에서 들려온 것을 그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때 성령이 예수님에게 잠시 왔다가 다시 가신 것으로 보아 예수님에게는 성령의 내주가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 성령이 비둘기 모습으로 잠시 예수님에게 왔다가 갔으므로 예수님 안에는 성령의 내주가 없었다고 보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존재 방식에 대한 오해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신성이십니다. 신성은 자기의 피조물이 있는 곳이라면 아니 계시는 곳이 없습니다. 지금 형제님과 저에게 성령이 내주하시고, 동시에 전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내주하시고, 동시에 천국의 성도들에게도 내주하시고, 동시에 천국과 지옥에도 계십니다.

신성에게는 다함이 없고, 그침이 없고, 한계가 없고, 끝이 없으십니다. 성령이 보이는 비둘기 모습으로 잠기 예수님에게 왔다가 하늘로 가셨다는 사실이 예수님의 육체 속에 성령이 거주하시는 상태가 아니었다고 할 근거는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성자 하나님의 지상 사역의 시작을 축하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가시적인 축하예식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구약 성경이 지상에 오실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자에게 하나님의 기름부음, 즉 성령의 임재가 있을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예언했습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사 6: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라는 내용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에 대한 내용입니다. 구약의 다윗이나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신 것 정도를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사람에게서 떠난 성령이 하나님의 성육신자의 몸 안으로 다시 임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메시야)로 세우셨다는 뜻입니다.

또한 예수님 자신이 이 말씀이 자신에게 응하였다고 직접 증언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4:18).

예수님이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라고 하신 것은 단지 구약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시는 방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육체 안에 성령을 모시는 최초의 사람이 되시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되어 오신 메시야 사역이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보겠습니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육체 안에 처음부터 성령이 거하시는 일이 없었다면, 예수님 믿고 죄용서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의 육체 안으로 성령이 임하시는 일이 가능했을까요? 죄없고 의롭고 거룩하시고 완전한 하나님 백성으로 오신 예수님의 인성을 통해 먼저 이루어진 성전과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의 죽으심의 공로를 덧입은 우리에게로 확산되었습니다.

참 성전과 하나님 나라가 구원받은 우리를 통해서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아담의 죄와 무관한 출생으로 오신 참 하나님 백성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서 먼저 시작된 참 성전과 하나님 나라가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에게로 전파되었습니다. 


2. 둘째 토론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라는 말씀 또한 성령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거하신다는 증표로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허물어질) 육체 안에 하나님이 거하신다. 즉,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되심을 뜻하지 않는가 생각해 봅니다” (질문자).

성도님들에게 예수님의 육체 안에 성령이 처음부터 거주하셨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정말 어려우신 모양입니다. 성령이 예수님의 육체 안에 처음부터 내주하신 사실을 감안하지 않고, 예수님이 자신의 육체를 성전이라고 하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신성은 성부, 성령과 같은 신적 본질을 공유하시는 분입니다. 성자가 계시는 곳에는 반드시 성령과 성부가 떨어지 아니하고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부, 성령과 분리하여 성자이신 예수님 자신을 모시는 육체를 성전이라고 말하신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님의 육체가 예수님의 신성을 모시고 있음으로 예수님의 육체가 성전이 되었다는 것도 맞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는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모시거나, 포함허거나, 종속되는 관계가 아닙니다. 어느 한쪽으로 더 기울어지시는 일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영원히 완전하게 연합되시었습니다. 또한 영원히 서로 분리되거나 혼합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육체가 자기의 신성을 모시고 있으므로 자기 육체를 성전이라고 말하신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를 의식하시고 자기의 육체를 성전이라고 말하시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자기 육체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의식하면서 자기 몸을 성전이라고 말하셨습니다. 요한복음 7:37-39절을 보겠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 7:37-39).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이 자기를 통해 성령을 받아야 할 것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성령이 어디로부터 나온다고 했습니까?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으로부터 나올 것임을 암시했습니다.

자기 백성들에게 성령이 임재하시는 날이 올 것인데, 그 백성들에게 임할 성령은 현재 바로 자기의 육체 속에 거하시고 있음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자기 몸의 죽으심으로 속죄 사역이 완성되고, 부활, 승천하신 후, 현재 자기 육체 안에 거주하는 성령이 죄용서 받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로 확산될 것을 암시하신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 속으로 오신 성령이 먼저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몸을 거처로 삼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몸이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 찢어진 후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로 그리스도의 육체 안에 계섰던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서철원 박사님의 <성령신학>을 읽어보시기를 권장합니다. 저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주시면 그 책의 PDF 파일을 드리겠습니다.
 

 

“계시록이 생명수로 표현한 것은 어린양에게서 흘러나오는 성령을 뜻한다. 그러나 예수에게 내주한 성령이 그의 백성들에게 전달됨에는 속죄 사역이 완성된 부활로서이다. 부활로 예수 안에 담지되어 있던 성령이 방출되었다. 그러므로 부활 전에 예수는 성령담지자이었다. 성령이 예수의 인성으로부터 방출되기 위해서 구속사역의 완성인 부활이 있어야 했다(요 7:39;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서철원, 성령신학, 279)

“우리에게 파송된 성령은 구속 이전의 하나님의 영으로서 오신 것이 아니다. 물론 창조주의 영으로서 하나님의 영은 자연과 인류의 생활에 역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관심하고 있는 영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의해 획득되고 그의 인성에 의해 담지되었다가 우리에게 부어주신 성령이다” (서철원, 성령신학, 286)

“부활 후 우리에게 파송된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으로서(롬 8:9) 그리스도의 인격과 긴밀히 연락된다. 그리스도의 위격은 로고스의 위격으로서가 아니고 신인위격 곧 중보자의 위격을 말한다. 즉 인성을 부착한 그리스도의 위격과 분리불가하게 연결된다. 바로 이 점이 그리스도의 구속 이전의 창조주의 영으로서 성령과 구속 이후의 구속주의 영으로서 그리스도의 영간에(사이에) 구분을 지어주는 점이다. 하나님의 제3위격으로서의 동일 위격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으나 사역면에서 있어서 또 그의 오심의 통로에 있어서 큰 차이를 낸다” (서철원, 성령신학,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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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