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이후 정태홍)는 자신의 출판물 <능동적 순종교리: 이단인가?> 310 페이지에서 "성경은 면죄 상태가 의로운 상태라고 말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였다.

정태홍의 이 주장은 기독교를 기독교되게 하는 핵심 진리를 반박한 것이다. 필자는 이 전의 글에서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는 죄의 사면이 우리의 의로움이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음을 성경의 증거들로만 증명하였다. 읽지 않으신 분들은 다음을 크릭하여 읽기 바란다. 

"정태홍 목사가 신학 치매 병에 걸린 것 같다" 

정태홍처럼 능동적 순종 교리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는 죄의 사면 상태는 단지 소극적인 의로움에 불과하다고 한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한다. 정태홍 같은 사람들은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신 공로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가 적극적인 의로움의 상태가 되고, 그래서 천국 영생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신앙이다. 정태홍이 계속 “성경은 면죄 상태가 의로운 상태라고 말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 성경을 대적하고 맞서는 것이고, 그 종착지는 지옥일 수 밖에 없다.

오늘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어지는 죄의 사면이 곧 우리의 완전한 의로움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이 쉽게 이해되도록 보충적인 설명을 하려고 한다. 부디 정태홍이 은혜를 입어 복음을 왜곡하는 이단들의 종착지로 향하는 발걸음을 돌리고 통회자복하기를 바란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필자의 책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의 5장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끌어오는 내용들이다). 정태홍처럼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는 죄의 사면의 결과를 별것이 아닌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모르는 중대한 것 하나가 있다. 그것은 자기 목숨으로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신 그리스도께서 곧 바로 자신과 우리를 연합시켰다는 사실이다.

정태홍처럼 능동적 순종 교리를 죽도록 신봉하는 학자들은 성령이 우리의 죄를 속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속으로 오셨다는 사실의 의미를 모른다. 예수의 영으로 오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의가 나의 의로 인정된다는 사실을 저들은 전혀 모른다. 그러니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가 없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2).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친히 우리 죄인들의 의가 되시려고 사람이 되신 성육신의 신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비밀이다. 하나님이 자기의 거룩하심을 주 무기로 삼아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 또 그것으로 우리를 의인으로 변화시켰다. 구원이 율법이나 우리의 노력의 행위 때문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의’로 된다는 것은 바로 이 뜻이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피 흘리심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죄의 장벽이 사라져 하나님과 하나로 연합되었음을 모르고, 우리에게 적극적인 의가 되어 천국에 가게 한다는 '기괴한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아니다. 그 이유는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공로로 말미암아 나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됨이 우리를 천국 영생에 들어가게 하는 적극적인 의라는 사실을 모르는 정태홍 같은 사람들은 더 이상 성경을 다루는 선생이 되지 말하야 한다. 더 이상 남의 잘못된 신앙에 대해서 비판하는 활동도 중단해야 한다.

능동적 순종 교리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눈을 마귀의 손바닥이 눈을 가리고 있다. 그래서 이 중요한 기독교의 심장을 모른다. 그래서 십자가의 공로 외에 다른 어떤 적극적인 의가 필요하다면서, '괴이한 율법 준수의 의'를 주장하고 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2).

이와 같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선물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빌 3:8). 능동적 순종 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교수들은 왜 이 귀하고 귀한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고 마른 막대기만도 못한 율법의 의를 사랑하는가?

이러니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대적하는 사악한 사탄의 거짓 신학인 것이다. 그래서 서철원 박사는 그리스도께서 율법준수를 통해 우리를 의인 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신학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허무는 이단신학이라고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후기 유대교의 주장과 같다” (서철원, 청교도 능동순종에 대한 합동이대위 세미나, 2021).

서철원 박사가 이 교리를 이처럼 심각하게 비판하는 이유는 능동순종이 그리스도께서 속죄 사역으로 죄의 장벽을 허무시고, 자기의 이름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부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로 연합되게 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복음을 대적하는 거짓 교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우리의 의가 되게 하여주신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파괴하는 악한 교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얻으신 적극적인 율법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했다고 주장하는 정태홍 같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우리에게 적용하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 우리의 연합의 신비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필히 성경적 기독교 신앙과 무관한 인생으로 끝을 보게 된다.

정태홍처럼 능동적 순종 교리에 세뇌되어있는 사람들은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다른 저술들을 정직한 눈으로 찬찬히 다시 읽어야 한다. 칼빈의 신학을 왜곡시키지 말고 정직하게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여 얻으신 율법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여 우리를 의롭게 만들었다는 이론과 칼빈의 신학과 무관한다.

이 교리를 주장하는 많은 학자들이 칼빈이 비록 자신들과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지라도 자신들과 같이 율법주의 신학을 가졌었다고 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그들의 그런 말들은 칼빈에 대한 범죄이고 심각한 명예훼손이다.

칼빈은 그리스도가 율법의 의를 얻어서 우리에게 전가했다고 가르치지 않았고, 반대로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해 죄인이 그리스도에게 신비하게 연합되었다고 강조했다. 그 연합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지니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고 하였다.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내주하심을 간단히 말하면, 신비로운 연합을 우리는 최고로 중요시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소유자가 되심으로써 그가 받은 선물을 우리도 나눠 가지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밖에 계신 그리스도를 멀리서 바라봄으로써 그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옷 입으며 그의 몸에 접붙여지기 때문에, 간단히 말해서 그가 우리를 자기와 하나로 만드시기 때문에 그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 (기독교강요, 3.11.10).

정태홍처럼 능동적 순종 교리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더 이상 칼빈에 대한 명예훼손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에게로 받아들여지고, 그래서 성육신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본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진다는 것이 칼빈의 칭의 신학이다.
 

서철원 박사도 단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이루어진 죄의 용서로만 우리의 칭의를 설명하지 않는다. 죄용서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손바닥의 양면처럼 같이 연동하는 것임을 언제나 설명한다.

"물론 우리가 부름받은 목표점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그러나 연합은 믿음고백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믿음 고백으로 의롭다함과 연합이 이루어진다. 믿음고백 이전에 연합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주장은 부당한 논의이다” (서철원, 구원론, 56).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거듭남과 믿음고백에 이어진다고 할 때에 시간적인 경과를 말하기 어렵다. 그것은 죄용서와 의롭다 하는 선언과 동시적이라고 해야 한다. 시간적인 순서를 말한다면, 믿음고백을 할 때 죄용서가 이루어지고 의롭다 하는 선언이 온다. 믿음고백과 동시에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이루어진다고 해야 정확하고 믿음의 진리와 일치한다” (서철원, 구원론, 159).
 


정태홍처럼 능동적 순종 교리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사람들이 매우 우호적으로 여기는 존 머레이도 같은 방식으로 칭의를 가르쳤다. 머레이는 칭의의 근본 원인을 죄 사함이라고 했다.

죄 사함은 칭의의 필수 북가결한 요소 또는 측면이다. 왜냐하면 죄로 인한 정죄와 저주가 남아 있다면 정죄가 계속된다는 말인데, 정죄는 칭의의 반대이다” (조직신학 2, 박문재 역, 229).

머레이는 우리를 의롭게 만든 것이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얻으신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이고,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의로 인정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없다면 우리가 의인으로 인정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다(소제목) .... 이 의는 우리 자신의 의가 아니며 율법의 의도 아니고 계시된 의이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의라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조직신학 2, 박문재 역, 223).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와 연합하여 이러한 의가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의의 수혜자가 될 뿐만 아니라 이 의의 참여자가 되고 실제적으로 이 의에 의하여 판단된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와 동일시되어 죄를 알지도 못하면서 죄인으로 취급받았듯이, 전적으로 불경건하고 의를 알지도 못하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와 동일시되어 하나님의 의가 된다” (조직신학 2, 박문재 역, 225).

“이것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나오는 필수 불가결한 것들을 의미하고 있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의 참여자가 아니고 그러한 의미에서 그것과 동일시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교리는 희석되고 손상되어 위로와 확신은 말할 것도 없고 의미성과 유효성을 결여하게 될 것이다”  (조직신학 2, 박문재 역, 225).

요약하자면, 성도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죄의 사면으로 완전한 의인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죄의 사면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믿음과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가 자기를 우리에게도 연합시키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하심(의로우심)에 우리가 동참되어지기 때문이다. 이 진리를 거부하고 끝까지 율법의 의를 고집하는 자는 반드시 지옥에 간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거부하고 율법의 의를 추구하는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저주하였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8).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