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능동순종에 대한 이슈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아담의 창조시에 대한 인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언급하며 아담의 가변적 상태를 주장하는 신학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아담의 상태에 대해 칼빈의 신학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과연 칼빈에게 태초의 아담은 가변적 존재인가? 아니면 영생으로 창조된 완전한 탁월성을 가진 존재인가?

이 글은 칼빈의 기독교강요 1권 15장을 기반으로 요약하여 기술한 것이다. 먼저, 칼빈은 인간이 자신 스스로에 대한 지식을 가질 때 두 가지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우리 자신을 아는 이 지식은 두 가지이다. 곧 우리가 처음 창조 되었을 때에 우리가 과연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대한 지식과 또한 아담의 타락 이후 우리의 상태가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한 지식이 그것이다” (기독교강요 1.15.1).

칼빈은 “원시의 의 상태에 있는 우리의 본성에 대해서만 살펴보기로 하자. 사실 분명히 말하자면 사람이 현재 속하여 있는 그 비참한 처지를 살펴보기 앞서서 먼저 처음 창조되었을 때의 사람의 모습을 아는 것이 매우 가치 있는 일인 것이다” (Ibid). 라고 하면서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의 상태에 대해 가르친다.

칼빈은 아담의 처음 창조시 영혼의 불멸성을 가장 먼저 언급한다. “영혼이라는 것은 불멸하나 창조된 본질로서 사람의 구성요소 중 더 고상한 부분이다” (기독교강요1.15.2). 영혼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체이다.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영혼이다. “지성의 좌소가 영혼인 것이 틀림이 없다”. “자, 영혼이 육체와 구별되는 것으로 무언가 실체를 지닌 것이 아니라면, 성경은 우리가 흙집에 거하며(욥 4:19) 죽을 때에 육체의 장막을 떠나고 썩을 것을 버리고서, 육체에 있을 때에 우리 각자가 행한 바대로 마지막 날에 상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이 구절들을 비롯하여 여러 비슷한 구절들은 영혼을 육체와 분명히 구별지을 뿐만 아니라 영혼을 가리켜 ‘사람’이라고 부름으로써 영혼이 사람의 주된 부분임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Ibid).

칼빈은 인간의 주된 부분에서 영혼이 사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가르친다. 결국 영혼은 불멸하는 존재이다. 물론 하나님만이 영원한 불멸의 존재이지만 인간의 영혼이 불멸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진 영원한 불멸성을 가진 것처럼 그런 존재가 아닌 하나님에 의해서 피조된 불멸성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되었다고 하는 말씀에 대해서도 어디까지나 영적인 점으로 확장된 원리로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땅에 것과 혼합시켜 어지럽게 만드는 오시안더의 주장을 일축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아담에게 부여되어 있던 순전함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의 좌소는 물론 아담의 정신과 마음, 혹은 영혼과 그 기능들에 있었지만 사람의 모든 부분 가운데-심지어 육체조차도-그 형상이 어느 정도라도 미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1.15.3).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계속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이 “영적인 영원한 생명”과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칼빈은 사도 요한의 표현을 가지고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 안에 있었던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요1:4). 요한의 의도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찬송하는데 있었다. 사람이 그 은혜로 말미암아 다른 생물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나게 되었고, 지성의 빛과 결합된 특별한 생명을 얻었음으로 무수한 다른 모든 것들과 구별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결국 이 말씀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자, 하나님의 형상은 바로 타락 이전 아담에게서 드러난 인간 본성의 완전한 탁월함이다” (기독교강요 1.15.4).

칼빈이 말하는 인간 본성의 완전한 탁월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기독교강요1.15.8에서 기술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사람의 영혼에 지성을 주셔서 그것으로 선과 악을, 옳고 그름을 분멸하게 하셨고, 또한 이성의 빛을 안내자로 주셔서 우리가 피해야 할 것과 좇아야 할 것을 구별하게 하셨다. ... 또한 하나님은 여기에 의지를 결합 시켜주셔서 선택을 좌우하게 하셨다. 최초의 상태에서는 사람에게서 이 탁월한 기능들이 뛰어나게 능력을 발휘하였고, 그리하여 그의 이성, 지성, 분별, 판단 등이 이 땅의 삶의 방향을 위해 충족했음은 물론 그것들을 통해서 하나님과 영원한 복락에까지 올라가기가지 했던 것이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사람에게 인내를 주셔서 본래의 상태대로 유지되게 하실 수 있었는데도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속에 감추어져 있다. 우리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탐구하기를 절제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사일 것이다” (기독교강요 1.15.8).

우리는 칼빈의 신학에서 사람이 타락이전에 어떤 상태로 창조되었는지 쉽게, 그리고 충분히 바른 신학을 배울 수 있다. 사람은 영원한 생명으로 창조되었다. 만약 가변적이라고 하는 것을 주장하게 되면 사람의 영혼도 가변적이어야 한다. 영원히 불멸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하는 것을 통해 아담의 가변적 상태는 바른 신학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담의 가변적 상태는 타락 이후 구원에 대한 개념으로 개진할 수 있지만, 아담은 타락 이전의 완전한 탁월성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영생을 주는 기간으로 “수습기간”을 두었다고 하는 것은 완전한 사변신학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도 인간의 창조에 대해 영혼의 불멸을 언급하고 있다. 영혼은 개혁자들의 가르침대로 사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영혼이 영생하는 존재로, 실체로 창조되었고 아담은 선악과 명령을 통해 계속 자신의 상태를 본래의 상태대로 유지되게 하며 살 수 있었다고 하는 칼빈의 신학을 바르게 배우기를 바란다.

바른 개혁신학을 연구하고 추구하는 자들에게 있어 필요한 신학적 자세는 바로 자신이 주장한 것만 답이라고 하는 교만을 버리는 것이다. 이 글이 능동순종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도전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해 또 다른 도전하는 변론의 자료가 되길 바란다. 우리의 신학은 계속 발전해야 하고 연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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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