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바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는 사상이라고 우리는 믿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주권이 나타나는 현장은 성도들의 모든 삶이지만, 그 가운데 성도들이 모여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이 가장 강력하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진들께서는 종교개혁의 유산을 이어받아 타락한 로마교회의 예전을 과감하게 버리고 예전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이 드러나기를 아주 심사숙고하여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의 순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엄밀한 개혁교회 및 장로교회를 추구하는 일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은 시편 찬송에 대한 절대적인 신념 때문에 시편 찬송을 부르지 않는 교회를 참된 교회로 보지 않는 극단적인 경향도 보이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종교개혁의 의미를 항상 16세기에 일어난 과거 종교개혁의 교회로만 생각하는 현상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찬송만을 불러야 한다고 가르치고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날 일반적인 장로교회에서 부르는 복음송은 복음주의에서 노래하는 것이므로 성도들의 감정만을 일으켜 세우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절대 불러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어는 정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복음송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만을 노래합니다. 인간의 축복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노래하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은 그분의 공의와 심판 그리고 사랑과 인내, 뿐만 아니라 저주와 형벌까지도 찬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송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의 고백을 찬양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송이 항상 잘못된 것만 또한 아닙니다. 그 가운데는 성경적인 내용의 가르침에 대한 가사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에 사용하는 것은 우리 교단에서도 금지하고 있는데 이것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 언급하려고 하는 것은 시편 찬송만 불러야 하는지? 복음송도 문제가 없다고 하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글의 핵심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전을 통해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하는 요소들이 성경적으로, 그리고 장로교의 교리를 바탕으로 예전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장로교회의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오늘날 장로교회가 예배를 드릴 때 과연 장로교회의 모습으로 예배드리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바로 시편 찬송을 부르지 않는 것보다 더 심각한 예전의 타락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죄 사함에 대한 부분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예배의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성도들의 죄가 사함 받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는 신약의 예배의 형식을 만드는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제공하였고, 이를 교부들과 그리고 속사도들 이후 종교개혁자들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예배의 요소 중에 중요한 부분임을 강조하였습니다. 구약 동물의 피의 제사를 통해 백성의 죄가 사함을 받은 것처럼, 신약의 예배 속에 강조된 것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죄 사함의 선포였습니다.

신학의 배경이 없는 혹자는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는데 왜? 예배 때마다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지 물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단번에 자신의 피로 속죄 사역을 이루신 그리스도께서 이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성령을 통해 자기 백성들에게 날마다 속죄의 사역을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죄 사함에 대한 복음 선포입니다. 강단에서 복음이 선포되면 그때 성도들의 죄가 공식적으로 사함을 받는 은혜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장로교회에서 목사들이 예전에 대한 중요한 것을 인정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죄 사함의 은혜를 성도들이 누리는 것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형식만 내세우는 예배만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예배 가운데 인간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복음송을 사용하고 분별없이 몸을 흔들고 퍼포먼스까지 하는 예배를 장로교회 예배라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중심의 예배를 강조하는 잘못된 복음주의 예전입니다.

그러나 장로교회가 복음송을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장로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드렸듯이 강단에서 목사의 설교가 복음 선포 없이, 그저 목사가 하는 말이 설교라고 하는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 더 악한 행위라고 하는 것입니다. 과연 로마교회에서 드려지는 예전에 단 한 가지라도 성경적인 예배의 요소가 있습니까? 사제들이 전하는 말씀이 과연 성경적인 것이 있는지?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성경을 거짓으로 해석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로마교회를 거짓교회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칼빈은 로마교회를 우상숭배 집단이라정죄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장로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날마다 죄를 사해 주시고 은혜의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로마교회와 무슨 차이가 있으며, 인간의 감정만을 고조시키고 일시적인 흥분만을 주는 타락한 복음주의 계열의 교회들과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장로교회의 예전의 타락은 성도들의 성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릴 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 죄가 공식적인 예배를 통해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는 확신을 갖는다면 성도는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한 반복적인 죄를 다시는 행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질 것이고, 결국에는 언제가 그 죄에 대한 부분에서 승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전의 타락, 즉 예배의 타락은 교회의 타락이며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해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삶에 대한 타락까지도 연결되어 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서 장로교회의 예전을 따라 바르게 예배하는 교회를 찾아보기란 참으로 어려운 실정이 되었습니다.

신학교의 커리큘럼 가운데 장로교 예전에 대한 교육이 없다는 것은 가장 비극 중의 비극입니다.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교리 문답에 대한 가르침이 없다는 것도 장로교 신학교의 아이러니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를 포함한 작금의 목사들은 신학을 공부하면서 장로교 신학의 근간인 이런 신앙고백서에 대하여 신학교에서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다는 사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한국 장로교회의 현실입니다.

 

임진남 목사(한국개혁신학연구원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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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