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 총장의 꿈을 가지신 박성규 목사님과  다른 목사님들, 교수님들에게 올립니다.

오늘 총신에 대해 저의 가슴이 무너지는 심각한 내용을 담은 제보 받았습니다. 2022년 총신대 일반대학원 조직신학 박사과정 지원자들에게 학교 측에서 미리 제시한 기출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미리 네가지 질문들을 주었고, 학교 측이 기대하는 모범 답안들이 제시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네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active obedience of chirst)에 관해 설명하시오”.

이 질문에 대해 학교 측이 제시한 예시 답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핵심은 ‘하나님의 의’이다. 하나님의 의는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는 인간들에게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개혁주의에서는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와 신자들에게 전가되는 의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해 왔다. 죄를 속량하는 수동적 순종만이 있었다면 타락전 창조 처음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또다시 인간이 행위언약을 성취하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아담의 처음 상태로 회복되는 정도가 아니라 아담이 순종하면 얻을 수 있는 복을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순종하셔서 우리로 누리도록 하셨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바로 하나님의 의인 것이다. 하나님의 의와 사람의 의가 그리스도 순종에서 나타나게 되었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미 우리 합동 총회(2021년, 2022년)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가 성경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는 이대위 보고를 수납하여 교단의 입장으로 정했습니다. 문론 신학부에서 더 논의하도록 조치하였으나, 기존의 결정이 취소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총신 교수들이 그것을 깡그리 무시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저는 정말 놀랬습니다. 
 

능동적 순종에 대한 2021년 총회 보고서
능동적 순종에 대한 2021년 총회 보고서

 

율법이 율법을 지키는 사람에게 영생의 자격을 주도록 하나님이 정하셨다는 내용이 성경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율법과 영생의 자격(칭의)이 전적으로 무관하다는 사실만 말합니다. 사람이나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영생의 자격을 얻는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갈 3:21).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히 7:19).

사람이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지 못하므로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대신 영생의 자격(의)를 얻은 후 자기를 믿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신학은 율법에서 구원이 나온다는 율법주의 이단신학입니다. 그리스도를 살해하는데 앞장선 사람들은 모두 율법으로 구원을 얻고 율법으로 구원을 유지한다는 율법주의 이단종교(유대교)를 신봉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성경적 신앙과 율법주의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구주 예수 그리도스도를 율법주의 이단산맥의 최고봉에 가장 먼저 성공적으로 등반한 이단 교주로 매도하는 것일까요?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 조항들을 착실하게 준수하신 공덕으로 자기를 믿는 사람들과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 칭의(영생의 자격)를 주었다는 신학처럼 극악한 율법주의 이단이 또 있습니까? 

저는 우리의 총신이 이미 신학교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합신의 뒤를 따르고 있는 현실이 정말 슬픕니다. 이런 괴로운 일은 총신 구성원들 다수가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관련된 소수 교수들이 하는 일입니다. 이미 자신들이 가르쳤고, 자신들의 책이나 다른 글을 통해 이미 스스로 주장했던 내용이므로 이 거짓 교리가 총신에 계속 남게 하는 것이 곧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입니다. 총신에서 자신들이 맡은 보직을 최대한 악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몇 교수들이 박사과정 지원자들에게 무슨 답안을 강요했는지 그 심각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시 답안의 내용 1:
“죄를 속량하는 수동적 순종만이 있었다면”

성경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순종을 능동적-수동적 개념으로 가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에서 건지라는 성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순종하셨습니다. 성육신부터 십자가의 죽으심까지 그리스도의 생애를 요약하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순종입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을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한 순종(수동적 순종)영생을 위한 의(자격)를 얻기 위한 순종(능동적 순종)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성경을 왜곡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거룩하신 인격으로 우리의 영생을 위한 의를 만들어 주시기 위해 성육신하시었습니다. 그리스도에게는 처음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충분한 의가 넘쳤습니다. 지상에 사시면서 무슨 의를 만들거나 보충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가 되시기 위해 처음부터 의로운 구세주로 오시었다고 합니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사 53: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렘 23:6).

“그날 그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저의를 실행할 것이라.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 (렘 33:16).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고전 1:30).

그리스도는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하나님의 의(인격)를 가지고 오신 거룩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죄가 속하여지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에 동참함으로 의인이 되고 영생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처음부터 가지신 구원계획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을 죄용서를 위한 수동적 순종으로 개념화시키면, 필연적으로 그리스도가 의를 얻기 위한 어떤 다른 사역을 하신 것으로 귀결됩니다.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기 위해 의로우신 하나님이 친히 성육신하시어 우리 대신 죗값을 갚으시고 자신의 거룩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가 그의 의에 동참되어 의인으로 인정되게 하신 성육신의 진리와 하나님의 복음이 무너집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사도 바울의 이 말은 결코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켜서 얻으신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시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거룩한 사람이 되시어 우리의 죗값을 친히 갚으시고 우리를 자기에게로 연합시켜 자기의 의가 우리의 옷이 되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순종을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으로 가르면, 이 진리가 무너지니 필히 ‘이단 종교’ 또는 ‘다른 종교’가 되어 버립니다.
 

예시 답안의 문구 2:
“죄를 속량하는 수동적 순종만이 있었다면 타락전 창조 처음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또다시 인간이 행위언약을 성취하야 하는 것이다”

총신이 교수(들)는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만 있었다면 우리는 영생을 얻지 못하고 아담의 타락 전 상태로 돌아가기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아담과 우리는 영생 획득을 위해 여전히 율법을 성공적으로 지켜야 하는 의무를 져야한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덧입어도 영생을 주는 행위언약을 각자가 완성해야 천국에 간다는 뜻입니다. 

행위언약 이론은 아담이 범죄하지 않아도 오래 살지 못할 사람으로 창조되었다는 비성경적인 사고에 기반을 두고 있는 비성경적인 개혁주의 신학입니다. 어정쩡한 존재로 창조된 아담이 하나님께서 자기 마음에 기록하여 주신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는 공로를 인정받으면, 타락할 수 없고 유혹받을 수도 없는 하늘의 영생의 몸으로 변화되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 행위언약이 수반하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가 반역죄로 죽은 아담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능동적 순종-수동적 순종, 이 두 방면으로 순종하셨다는 이론은 행위언약에서 출발되었습니다. 수동적 순종으로 아담이 영생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율법준수를 하지 않은 죄를 사하시고, 능동적 순종으로 아담이 성공하지 못한 율법준수를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수동적 순종 교리의 근거는 성경이 아니고 우리가 자세히 읽어보지 않고 맹목적으로 수용한 웨신서에 의해 공식화된 후 개혁신학으로 자리잡아 버린 신학입니다.

이 사상과 성경의 가르침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성경이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었다고 말하는지 보십시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 10:10).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게 하셨느니라” (히 10:14).

“예수도 자기 피로서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 13:12).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찾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갈 1:4-6).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엡 5: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하나님이 그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롬 3: 25,26).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 10:19).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 2:14).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 2:13,14).

웨신서가 공식화하여 개혁신학이 되어 버린 행위언약, 그리고 그리스도를 행위언약의 추종자로 만들어 버리는 능동적 순종 교리가 성경의 가르침과 얼마나 거리가 먼지 우리는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성경 어디에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어 천국에 가게 된 것이 그리스도의 율법준수 때문이라고 나옵니까? 성경 어디에 아담이 율법을 지켜서 자기의 존재를 스스로 완성시켜야 할 어정쩡한 사람으로 창조되었다는 내용이 나옵니까?

총신의 이 교수(들)는 박사과정 지원자들에게 타락한 아담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도 구원받을 수 없다 고백하도록 강요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쓰도록 예시 답안을 주었는데, 그렇게 답하지 않은 학생을 합격시켰을까요? 이제 총신 박사과정의 신학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우리의 구원을 일치시키는 다음의 성경 말씀들은 영원히 지워진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3).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2:2).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고전 2:8).

대체 성경의 핵심 이슈가 무엇입니까? 의로우신 그리스도가 친히 우리의 죗값을 갚으셨고, 자기를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가 자기의 의로우심에 동참되게 하심으로 구원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대체 성경 어디에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들을 지켜서 자신과 우리를 의롭게 만들었고,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사하심으로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내용이 있습니까?

박성규 목사님과 다른 총장 후보들은 총신의 신학은 지금 어디에 와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지금 총신의 신학에 성경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성경에서 벗어난 내용이라는 것이 충분하게 드러났음에도 개혁신학이라며 신봉하는 총신이 언제나 성경으로 돌아가야 함을 모토로 하는 개혁신학 정신과 관련이 있는 학교입니까?

박성규 목사님을 비롯하여 지금 총신의 총장 후보로 거론되는 분들은 이 문제를 고발하는 저의 이 글을 어떻게 해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런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지지를 받아야 총장이 된다는 생각만 하고 계실까요? 그렇다면 오직 자신의 영달을 위해 총장을 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에게도, 총신에게도 좋은 미래가 오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에 총신 박사과정의 질문와 예시 답안의 나머지 부분을 살펴보는 글을 또 올리겠습니다.

미국에서 바른믿음 대표 정이철 목사 (총신대원 8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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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