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
정대운 목사(삼송제일교회)가 총신 이상웅 교수를 강사로 모시고 에드워즈 세미나를 열었어요. 정이철 목사님이 에드워즈에 대해 다시 또 한마디 해주셔야지요. 

답변>
에드워즈는 여러 면에서 이단성이 농후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에드워즈를 말하면서 무슨 대단한 신학의 아이콘을 붙들고 있는 것처럼 행세하고, 에드워즈의 무엇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네!... 하는 일이 통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렇게 두지 말아야 합니다. 대략 에드워즈의 문제들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1) 에드워즈의 신비주의 명상

에드워즈는 홀로 숲으로 가서 또는 집에서 기도인지 명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시간을 자주 가졌습니다. 그리스도와 성령 그 자체를 달콤하게 체험하거나, 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보는 등의 신비적인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에드워즈에게서 나타난 그런 일들을 중세의 신비주의 명상의 대가 버나드가 매우 추구했던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버나드는 일생에 그런 일 한 두 번 체험하는 것이 수도사들에게는 최고의 복된 일이라고 했습니다. 에드워즈 자신이 남긴 글을 직접 보겠습니다.

“Once, as I rid out into the woods for my health, anno 1737” (1737년 경 하루는 나의 건강을 위해 말을 타고 숲으로 들어갔었는데)

“and having lit from my horse in retired place, as my manner commonly has been to walk for divine contemplation and prayer; I had a view, that for me was extraordinary, of the glory of the Son of God” (조용한 곳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평소에 하던 방식대로 묵상과 기도를 위해 걷기 시작할 때,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이 나에게 나타나는 특별한 환상을 보았다.)

“The person of Christ appeared ineffably excellent, with an excellency great enough to swallow up all thought and concept.” (삼위일체의 그리스도의 위격(또는 인성)이 나에게 나타났는데, 그 모습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는 광경이었고, 인간의 모든 사상과 사고를 초라하게 만드는 참으로 장엄한 모습이었다.)

“about an hour; which kept me, the bigger part of the time, in a flood tears, and weeping aloud.” (그 환상은 약 한 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눈물이 강을 이루는 가운데 나는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이처럼 에드워즈는 기도인지 명상인지 알 수 없는 것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위격를 환상으로 보는 등 괴이한 일들을 체험했는데, 이것은 중세의 수도사들이 신인합일로 이해하였던 신비주의 영성의 모습니다. 쉽게 말하면, 신비주의 영성를 탐하는 이단의 모습이었습니다. 에드워즈의 신비주의 이단성을 설명하는 다른 증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백금산, 이상웅 등의 에드워즈 신봉자들이 에드워즈의 그런 모습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기독교 역사의 최고의 영적 거장’이라고 에드워즈를 추앙한다는 것입니다.
 


2) 에드워즈의 회심준비론

회심준비론은 율법주의 기독교의 대표적인 신학입니다. 원래 율법을 지키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는 전제 하에, 사람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 먼저 율법을 지키도록 요구하는 것이 회심준비론의 요지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고 지옥에 가야만 하는 자신의 슬픈 운명을 직시하면서 비통해할 때까지 계속 율법의 저주로 사람의 정신을 압박합니다. 그러다가 좋은 때가 이르렀다 싶으면 목사는 사람을 대신하여 모든 율법을 다 지키신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행위언약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사상을 정설로 여겼던 잘못된 종교개혁 교회들과 특히 회중주의 청교도들이 주도적으로 발전시킨 목회사상입니다.

에드워즈의 목회는 회심준비론 목회였고, 그의 부흥도 회심준비론 부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신자들의 정신적 파탄이었습니다. 신자들에게 구원을 얻기 위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율법을 지키면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니, 정신이 미약한 신자들에게서 우울증이 심해지고 결국 자살에 이르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것은 한국교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이상웅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출판물(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론, 부개사, 82)에도 그 내용이 살짝 지나가는데, 에드워즈의 회심준비론 목회와 정신이 미약한 신자들의 우울증과 자살이 어떤 연관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에드워즈의 첫 번째 부흥은 회심준비론 부흥이었고, 그 결과는 신자들에게서 나타난 우울증과 자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상웅 교수의 전체적인 논조는 회심준비론이 좋은 신학이라는 것입니다.
 

3) 에드워즈의 성화론

에드워즈의 성화에 대한 이해도 신비주의와 관련이 많았습니다. 에드워즈의 영적인 상태가 바르지 않았으므로 그의 집회를 통해 영향을 받는 신자들에게도 건강하지 못한 영적인 상태가 나타났습니다. 에드워즈의 영적인 상태가 바르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신비주의 명상, 복음을 왜곡하는 회심준비론 목회에서 충분히 드러납니다.

에드워즈를 통해 사람들에게서 괴이한 신체적 특징을 드러내는 거짓 성령의 역사가 많이 나타났습니다. 특이한 감정 상태 유발, 그리고 드러누워서 일어나지 못하고 환각(?) 상태를 지속하는 등 요즘 신사도 운동 집회에서 나타나는 기름부음이라는 것과 유사했습니다. 환상과 입신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에드워즈는 그런 것을 성령의 성화체험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우울증 기질이 있었고 입신에 자주 빠졌던 자기 부인 사라를 성령의 성화체험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습니다.

이상웅 교수의 논문에서도 이런 내용이 소개되었으나 비판하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이상웅 교수에게서도 올바른 신앙 개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4) 에드워즈의 성령론

에드워즈는 성령이 매시대마다 하늘에서 부어진다는 사상을 가진 일종의 성령론 이단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더욱 획기적으로 성령이 부어졌고,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언제나 성령이 하늘에서 부어졌다고 했습니다. 필연적으로 귀신들의 준동을 일으키게 되는 이단사상입니다. 에드워즈는 자신의 부흥이 일어난 뉴잉글랜드에도 성령이 많이 부어졌다고 했습니다.

성경적 기독교에서 지상에 성령의 부어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구속사역을 적용하는 차원에서 단회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승천 이후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지상 교회에 적용하기 위해 성부께서 성령을 성자의 이름으로 지상에 부으셨습니다.

에드워즈처럼 언제나 성령이 지상에 부어진다는 사상이 곧 오순절주의이고 신사도주의입니다. 에드워즈의 성령론에 빠지면 신사도주의와 다를 것이 없어집니다.

이상웅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에서도 에드워즈의 이런 내용이 소개되었는데, 전혀 이상웅 교수는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에드워즈의 성령 이론이 신주단지나 되는 것처럼 에드워즈는 그랬다! 이랬다!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 정도의 연구로 박사학위 받는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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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