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성 박사 (브니엘 신학교 총장)
최덕성 박사 (브니엘 신학교 총장)

교회의 적반하장격의 이단 판별과 정죄는 16세기 종교개혁운동 시대와 그 이후에도 계속됐다.

당시 교회는 기득권 보호, 자기 정당화, 파당적 정치적 인본적 동기의 폭력을 계속 보여줬다. 성경과 진리성에 충실한 그리스도의 일꾼들을 이단자로 정죄하고 파면 면직 제명 해임하는 일을 거듭했다.

물론 교회의 이단 정죄가 성경과 진리성에 기초해 이뤄진 정당한 경우가 없지 않았다. 종교개혁운동 후기에 등장한 미카엘 세르베투스는 성경과 진리성 관점에서 볼 때 확실한 이단이다. 법학도이자 의학도인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인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 모두 그를 이단자로 판별했다. 처형은 인도주의적이 아니었지만 이단 판별 자체는 정당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트리엔트공의회(1547)는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를 진리로 믿는 자들에게 저주(anathema)를 선언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가르친 진리 신봉자들을 정죄했다. 오늘날 로마 가톨릭교회는 의화론(칭의론)에 충실하게 신자의 선행으로 의를 완성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로마 가톨릭 당국은 성경과 진리성에 충실한 기독인들을 이단으로 간주했다. 마르틴 루터, 장 칼뱅 등 종교개혁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프로테스탄트들을 저주했다. 자파 또는 자기 집단 보호를 목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신앙으로 의롭다고 하는 법정적 선언을 받는다고 믿는 정통 신앙인들을 이단시한다.

종교개혁신학자 장 칼뱅은 이신칭의 진리를 기독교 신앙의 기초(hinge)로 여기면서 트리엔트공의회의 의화론(칭의론)을 거부했다. 그 핵심들이 성경과 진리성에 충실하지 않다는 까닭이었다. ‘트리엔트공의회 칭의 교령에 대한 해독문(解毒文)’(1547)이라는 비평적 글로 프로테스탄트들이 고백하는 이신칭의가 성경적이고 합리적임을 설파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지금도 트리엔트공의회의가 천명한 의화론을 신봉한다. 고해성사를 지속적으로 하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본다. 근년에 영국에서 시작된 바울의 구원관에 대한 새 관점학파의 주장과 어느 한국인 성서신학자의 ‘유보적 칭의론’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칭의론(의화론)과 동일하다.

영국 종교개혁사는 ‘이단자들’의 수난사이기도 하다. 로마 가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은 서로를 향해 이단자로 정죄했다. 정치적 권력을 쥔 자는 이단 재판과 화형 처벌을 남용했다. 영국의 종교개혁은 기본적으로 국왕의 복잡한 사생활과 정치적 이해관계의 결과이다. 국왕 헨리 8세가 로마 가톨릭교회와 결별한 결과였다. 영국 국교회는 ‘이단의 괴수’로 정죄 되고 화형당한 캔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크랜머(1489~1556)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크랜머는 영국 국교회의 기틀을 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이단자로 정죄돼 화형당했다. 그는 영국의 정치 소용돌이에서 국왕을 도와 영국 교회가 프로테스탄트 노선을 따르게 했다. 그러나 정치적 굴곡이 심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끼어 이단자로 정죄 되고 화형을 당했다. 영국 종교개혁에 기여한 신학자들과 성직자들이 적지 않지만 크랜머에게 견줄만한 인물은 없다.

윌리엄 틴데일은 이단자로 몰려 화형당했다. 그는 중세기 종교개혁가 존 위클리프의 정신을 따라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고 출판한 선각자였다. 프로테스탄트 진압에 앞장선 법률가 토머스 모어도 정치 권력이 바뀌자 이단자로 정죄 되어 처형당했다.

영국 종교개혁기와 그 이후 수많은 영국 기독인들이 이단자로 정죄당했다. 정치권력, 힘, 기득권 등 외적인 요소들이 이단의 판별 주체와 기준으로 작용했다. 정치인들이 교회 개혁을 이끌 때 종교개혁자들은 정치인들을 섬겼다. 이 틈바구니에서 순교 당한 정통 신앙인들이 많다.

영국 종교개혁이 진행될 무렵 영국에는 위클리프의 사상을 따르는 신앙인들이 있었다. 롤라드 신앙인들은 교황이 아니라 성경이 신행(信行)의 최고, 최종, 절대 권위라고 믿었다. 인문주의와 함께 대륙에서 밀어닥친 프로테스탄트 사상이 영향을 미쳤다. 루터의 글은 인기가 있었다. 한 편에서는 널리 읽혔고 다른 한 편에서는 금서로 지정되었다.

윌리엄 틴데일은 대륙에서 신약성경을 영어로 번역해 본국으로 밀수출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이듬해 브뤼셀에서 화형당했다. 예수 구원의 복음 진리는 ‘이단자들’의 범법 행위 덕분에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영국 국교회(성공회)는 세계 여러 곳으로 뻗어 나갔다. 성공회와 그 울타리 안에서 출범한 감리교회 그리고 세계 거의 모든 지역의 교회들은 영국교회의 ‘이단의 괴수’ 크랜머에게 큰 신세를 지고 있다. 영국인 이단자 위클리프와 틴데일에게도 빚을 지고 있다.

영국 청교도 일부는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인 영국 여왕 메리 통치시대에 유럽으로 도피했다가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들은 삶과 예배의 단순성을 회복하고 교회를 신약성경이 제시하는 형태로 개혁하고 싶어 했다. 청교도들은 ‘위대한 이단자’ 크랜머와 기타 영국인 이단자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교회는 종교개혁기와 그 직후에도 정통 신앙인들을 이단자로 몰아 처벌했다. 이렇게 교회는 ‘위대한 이단자’를 양산했다. 이단 판별의 주체와 기준이 정확하지 않은 탓이었다.

 

- 최덕성 박사 (국민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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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성 교수는 고신대학교, 리폼드신학교(M.Div, M.C.ED), 예일대학교(STM), 에모리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고, 고려신학대학원의 교수였고 하버드대학교의 객원교수였으며, 현재는 브니엘신학교의 총장이다. ‘신학자대상작’으로 선정된「한국교회 친일파 전통」과 「개혁주의 신학의 활력」,「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을 비롯한 약 20여권의 귀중한 신학 작품들을 저술하였다. 신학-복음전문방송 <빵티비>(BREADTV)의 대표이며, 온라인 신학저널 <리포르만다>(REFORMANDA)를 운영하며 한국 교회에 개혁신학을 공급하기 위해 정열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