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철원 박사의 '개혁주의와 장로교회'(5회)

서철원박사(전,총신신대원장)

종교개혁은 이신칭의 교리를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으로 정하였다. 이신칭의 교리만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교회로 만들었고 만든다. 루터교회는 이신칭의 교리를 시작한 교회이므로 이신칭의 교리에 전적으로 부착한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이신칭의를 불변의 교리로 받지만 성화를 강조하는 자리로 진보하였다. 성화강조에서 율법이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으로 세워졌다.

그런데 성경적인 성화법은 제시하지 못하고 성화를 강조하였다. 단지 옛사람을 죽이면 새사람이 살아나고, 새사람을 살리면 옛사람이 죽는다고 칼빈이 가르쳤다. 이 가르침을 17세기 영국의 청교도들이 그대로 반복하였다. 그리하여 죤 오우언도 그대로 반복할 뿐이었다. 그렇게 성화를 강조하여도 성화를 이루는 법 곧 옛사람을 죽이는 법 혹은 죄의 욕망을 억제하고 소산시키는 법은 말하지 못하였다.

칼빈도 이 부분에서는 한 발자국도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하였다. 성화의 필요성은 강조하면서 죄의 욕망 혹은 육의 욕망을 죽이는 법을 말해주지 못하였다. 종교개혁자들만이 아니라 고대교부들도 성화를 어떻게 이루어내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가르침을 베풀지 못하였다.

한국장로교회에서도 시작단계에서는 성화가 강조되고 엄격하게 주장되어 범죄하면 합당한 권징을 받았다. 그래서 죄의 욕망으로 떨어지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어떤 설교자도 죄의 욕망으로 넘어가지 않는 법을 말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처음 믿을 때 경험한 은혜로 말미안은 구원의 기쁨, 감격, 평안이 믿음 생활이 진행되면서는 점점 사라졌다.

믿는 자로 살기 위해 죄의 욕망과 싸우고 옛사람의 법을 따라 살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 육의 힘만 더 강해져서 속수무책임을 절감한다. 그래도 계속해서 애쓰고 노력하면 옛사람의 욕망을 이겨낼 줄로 알고 열심히 노력하였다. 그러나 죄의 욕망과 대항해서 싸워 죄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죄의 욕망으로 끌려들어가고 거기서 나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믿음생활을 하면서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다 잃어버렸다.

결국 옛사람을 이기는 길이 없음이 판명났다. 내 힘과 노력으로 죄의 욕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고행하고 선행을 많이 해서 옛사람을 죽이는 것이 기독교의 정당한 바른 법으로 알게 되었다. 따라서 로마교회와 웨슬리의 가르침대로 하는 것이 정당한 성화법이라고 인정되었다.

처음 믿을 때는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을 선물로 받아서 기쁘고 즐거웠다. 그러나 믿음의 생활에서는 죄와 싸우느라 기쁨과 평안도 다 없어졌다. 그런 싸움에서 어떤 승리 혹은 이김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소극적이고 뒤로 물러가 피하는 자세를 갖게 되었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율법주의 망령이 되살아나 이길 길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단지 옛사람과 싸워 이기는 법이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았을 뿐이다. 사람이 거룩하게 되는 것은 행함으로 아니고 주의 진리의 말씀으로 이루어진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아버지에게서 온 진리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나타내는 말씀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나타내는 말씀으로 죄의 욕망을 이겨내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2000년의 교회사 기간에 아무도 이 진리를 가르치지 않았다. 사도요한은 죄를 이기는 법을 이렇게 명시한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요일 1:7의 본문은 우리가 지은 죄를 깨끗하게 해 준다고 말하지 않는다. 죄용서와 깨끗하게 됨은 우리가 주 예수를 믿을 때 그의 피로 다 해결되었다. 이 본문이 가르치는 것은 우리가 믿는 자로서 죄의 욕망이 일 때, 주 예수의 피가 나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선언하므로 우리의 죄의 욕망이 다 사라지게 한다는 말씀이다.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들어가지 못하게 깨끗하게 한다는 말씀이다. 죄의 욕망이 일 때, 주 예수의 피가 나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고 선언하면, 이 말씀에 성령이 역사하므로 죄의 욕망이 다 사라진다. 이 방법으로만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다. 주의 말씀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어떤 영웅적인 힘을 가진 사람도 옛사람의 욕망을 이길 길이 없다.

우리는 지난 2천년 동안 우리의 힘으로 옛사람을 이기려고 온갖 발버둥을 쳤다. 그 중에 하나가 세상을 피하고 사막이나 산중 깊은 곳으로 들어가 살면 죄의 욕망을 이길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271년 경 안토니오스는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수도원을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애급의 사막 가운데로 옮겨가서 적막 가운데 죽음과 마주하는 상황에서 죄의 욕망을 벗고 거룩하게 사는 삶을 시작하였다.

이 방식이 합당하고 좋은 방법이라고 판정되어 많은 사람들이 안토니오스를 따랐다. 중세에는 많은 수도원이 생겨났고 종교개혁 후 개신교회에도 이 일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수도원을 산속이나 사막 가운데 세워도 육의 욕망은 없어지지 않고 거기서 수도하는 사람들을 따라다녔다.

육의 욕망을 이기는 길은 아들의 피의 권세를 힘입는 것뿐이다.

바울에게도 비슷한 말씀들이 있다.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죄의 욕망이 강하게 일 때 이 말씀을 선언하므로 욕망이 소산되어 죄짓지 않게 된다. 개혁신학에 성경대로 고칠 부분들이 더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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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 박사는 서울대학,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원(Th.M), 화란의 자유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다. 화란의 자유대학에서 칼 발트의 신학을 지지하는 지도교수 베인호프와 다른 발트의 제자 신학자들과의 토론에서 칼 발트의 신학의 부당성을 증명하였다. 발트의 사상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논문 '그리스도 창조-중보자직'을 관철하여 박사학위를 얻었고, 이 논문이 독일 튀빙겐대학이 선정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 논문 100편에 수록되어 한국 교회의 위상을 드높였다. 총신대 신대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 십년 동안 목회자들을 길러내는 교수사역에 헌신하다 영예롭게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연구하시며 <바른믿음>의 신학자문 역을 맡아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