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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가 난무하는 거짓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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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가 난무하는 거짓의 시대
  • 정이철
  • 승인 2015.05.31 11:4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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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의 '제3의 물결'(5회)
제3의 물결의 대표신학자 피터 와그너

피터 와그너는 제 3의 물결 시대가 도래하며 배운적 없는 외국어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사하며 복음을 설명하였던 성경의 방언이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책 「The Third Wave of Holy Spirit」의 8장 ‘God's Gift Revived’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외국어를 구사하는 성령의 은사가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들이 기사와 이적을 일으키면서 세계의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나님은 많은 종류의 은사를 우리들에게 주신다. 치유와 축사의 이적은 더 이상 오순절 운동과 은사 운동에서만 일어난 현상들이 아니다. 이러한 일들이 이전의 과거의 시대에만 국한되었었다고도 할 수 없다. 그리고 다른 많은 종류의 성령의 은사들이 다시 재현(revived)되고 있으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실제로 주어지고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기적적인 은사를 주시면서 복음전파의 사역에 힘을 더하여 주시는지 몇 가시 사례를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언어의 은사(The gift of Language)

오순절 날 ‘성령으로 충만한’ 제자들이 다락방에서 내려와 예루살렘 거리로 나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행 2:4) 말하기 시작했다. 다른 방언을 말하는 사도들과 제자들은 무역을 위해 필요한 헬라어를 조금 구사할 수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아람어만을 구사하는 갈릴리 사람들이었으나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실제 언어를 구사하였기 듣는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중략) 성령께서 지금 우리를 복음전파자로 보내신다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인가?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전혀 배운 적이 없는 오늘 날의 다양한 언어들로 복음이 소통될 수 있을까?”(피터 와그너)

 

성경의 외국어 방언의 부활

전혀 배운적없는 외국어를 자유로이 구사하게 하는 성령의 외국어 은사가 다시 나타난다는 피터 와그너의 주장은 외국에서 선교하는 몇 사람의 말에 근거하여 전개되어졌다. 피터 와그너가 외국어 방언이 나타난다고 주장하면서 제시하는 첫 번째 사례 하나만 살펴보면서 과연 그의 주장이 어느 정도까지 수용될 수 있을지 살펴보자.

피터 와그너는 아르핸티나(Argentina)의 선교사였던 제임스(Jams)와 그의 아내 제이미(Jaime)에게서 외국어를 구사하는 성경의 방언이 나타났다고 하였다. 제임스는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스페인어를 잠시 공부하였으나 성적이 좋지 못하여 일찍 포기하였고, 그의 아내는 아르핸티나에 가기 전에 스페인어를 전혀 공부한 적이 없었다. 이 부부가 정확하게 아르핸티나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에 관하여 알 수 있는 정보는 소개되지 않았다.

이 부부는 아르핸티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자 아르핸티나로 이주한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힘을 다하여 현지의 언어인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 기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교사를 고용하거나, 스페인어를 교육하는 학원 같은 곳에 나갔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나라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하루 하루 생존하는 과정 그 자체가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과정이었다. 제임스는 자신의 영어 설교를 스페인으로 통역하여 주는 사람을 활용하며 현지 교회를 개척하는 선교사였다. 그때 제임스가 개척한 교회의 교인의 수가 약 150명 정도 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현지에서 선교를 시작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났던 것 같다. 제임스는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밴 소토(Ben Soto) 목사를 자신의 교회에 초청하여 설교하게 하였다. 한참 설교하던 소토가 갑자기 설교를 멈추고 잠시 침묵하더니 갑자기 제임스와 제이미를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당신들에게 스페인어 은사를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하고서 소토는 거의 반 강제적으로 제임스에게 설교를 이어가라고 요청하였다. 제임스 선교사는 무척 당황하였으나 결국 더듬거리는 스페인어를 구사하면서 설교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스페인어로 설교를 잘하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 이 상황이 피터 와그너가 제 3의 물결 시대에 다시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근거이다. 그 외에도 다른 나라의 선교들에게서 벌어진 비슷한 두 가지 사례가 더 소개되어 있으나, 그 내용이 더 짧고 객관적인 정황과 증거가 될 수 있는 자료들이 더 부족하였다. 과연 아르핸티나 선교사 제임스가 현지인들의 언어인 스페인어 설교를 잘 하게 된 그 일이 성경의 외국어 방언이 다시 부활한다는 제3의 물결 이론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제임스 선교사의 스페인어 설교의 사례는 성경의 외국어 방언의 은사와 같은 것이라고 볼 수가 없다.

첫째, 제임스는 이미 아르핸티나 현지에 도착하기 전에 스페인어를 조금이라고 배운 경험이 있었다. 비록 짧았지만 고등학교 시절에 스페인어를 접하였다. 그러나 사도들과 제자들은 전혀 배우지 않은 지중해 세계의 다양한 실제 외국어를 성령의 역사를 따라 완벽하게 구사하였다. 외국어 방언을 말한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제자들은 그 시대의 국제 공용어 헬라어를 조금이라도 배웠었을 수는 있으나 지중해 인근의 여러 나라들에는 한 번도 가 본적도 없고, 그곳의 언어를 실제로 경험한 적도 없었다. 

둘째, 제임스 선교사는 스페인어 설교의 진보를 경험하기까지 아르핸티나 현지에서 이미 상당기간 살았다. 이미 많은 시간 현지인들의 언어와 문화를 경험하며 언어 습득을 위해 다양한 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오지인 갈릴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다.

성경의 외국어 방언은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나타났다고 확신할 수 있으나 제임스 선교사의 경우는 후천적인 학습과정으로 인하여 나타난 언어능력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더욱 진보된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제임스 선교사에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이미 학습한 현지의 언어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설교할 수 있도록 지혜와 총명함을 주셨고,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도록 담대함을 주셨다고 보아야 할 일이다.

셋째, 성경의 외국어 방언은 오직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말하였던 현상이었다. 그 나라의 언어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갖추고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성경의 방언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로이 구사하는 완전한 언어의 능력이 아니었다. 성령의 역사로 낯설은 외국어를 말하는 자신도 무슨 뜻인지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성령의 방언을 말하는 그 자신이 방언의 뜻을 통역하지도 못했고, 자신이 방언을 말하면서 스스로 통역까지 하였다는 사례가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다. 성경의 외국어 방언의 주체는 오직 하나님이었고, 사람은 단지 하나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사람들이 듣도록 말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통역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따로 있었다.

그러나 제임스 선교사의 경우는 다르다. 자신이 전하고 싶은 내용을 자신의 터득한 스페인 언어 능력을 활용하여 스스로 구사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내용의 의미를 전달하는 일반 언어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었다. 하나님이 직집 그의 입을 사용하셔서 메시지를 전하시는 성경의 방언 현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가 학습하여 알게 된 현지 언어를 최대한 이용하여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신 것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제임스 선교사의 현지 언어에 대한 이해와 구사 능력이 더욱 증진된 것이다.

이러한 일은 이전부터 지금까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어떤 학생이 수학이나 다른 학문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함으로 하나님께 지혜와 총명을 구하여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왜 불가능한 일이겠는가? 하나님께서 제임스 선교사에게 지혜와 명철을 주셨던 것으로 이해하면 될 일을 가지고서 배운 적이 없는 외국어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외국어 방언이 나타났다고 피터 와그너는 그릇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근거없는 외국어 방언에 대한 뜬 소문들

주변에서 외국어 방언에 관한 과장된 풍설이 자주 들려온다. 수년 전에 미시간 앤아버의 어떤 한인교회에서 부흥회를 하였는데, 그 교회의 어떤 사람에게서 히브리어 방언이 나타났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전해 준 분에게 결코 히브리어 방언이라고 쉽게 말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단지 히브리어 단어와 유사한 사운드일 뿐이고, 섣불리 그 소리현상을 가지고 히브리어 방언이라고 말하면 많은 오해와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 소리를 녹음하여 히브리어에 훈련된 다수의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금방 진위를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얼마 후 그 사람에게 임했던 히브리어 방언이 사라졌다고 하였다. 요즘의 거짓 방언 현상에는 이러한 일들이 많다. 

지금 중국말 방언, 인도어 방언, 프랑스어 방언, 일본어 방언 ... 등의 실제 외국어 같은 비슷한 사운드가 나오는 거짓 방언 사례들은 수도 없이 많다. 어떤 목사는 나에게 자신이 6개 나라의 방언을 한다고 하였고, 또 어떤 사모는 8개 나라의 방언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소리현상을 실제로 써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 본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소리들을 통해 무슨 신앙의 유익을 누리고 있는지 물어 볼 필요도 없었다.

지금 실제 외국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소리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결코 그 나라의 실제 언어는 전혀 아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함부로 자신에게서, 또는 주변의 누구에게서 성경의 외국어 방언이 다시 나타났다고 함부로 말하면 무책임한 일이고, 큰 오해를 유발하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비슷한 소리현상이 나오는 것일까? 아무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성경에 나타난 기독교의 방언은 지금 어디에서도 나타났다고 정확한 근거와 함께 보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전혀 배우지 않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실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성경의 방언이다.


성경의 방언은 십자가 복음에 대한 하나님의 확증 

“배우면 누구나 말 할 수 있는 지구상의 어떤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 성령의 은사라고요?”

이해력이 부족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하면서 기독교의 방언은 당연히 하늘의 신비한 언어이어야 한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정말 무지하고 안타까운 현상이다. 정확하게 뜻을 전달할 수 있는 정도로 배우지 않은 남의 나라의 말을 구사한다는 것은 사람의 일반 능력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언어를 지으신 창주의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성경의 방언이 초대교회를 설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성경의 방언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는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달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확증하신다는 싸인이었다. 사도들과 제자들의 복음선포의 현장에서 배운적 없는 이방인의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설명되는 외국어 방언이 나타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도 그 현장에서 친히 함께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친히 증거하신다는 중요한 싸인이었다.

사도행전 2장의 최초의 방언 상황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세계 여러 곳에서 살다가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온 유대교 유대인들은 사도들과 제자들이 자신들의 현지어로 ‘하나님의 큰 일’(행 2:11)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사건을 전하는 성령의 방언 현상을 목도하였다. 그들 대부분이 미개한 갈릴리 출신들이고 평생 동안 외국 구경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을 자신들이 현지에서 늘 사용하는 언어로 설명한다는 것은 그들 속에서 역사하는 분이 자신들이 믿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 그 분이 십자가에 못 밖아 살해된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보내셨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은 유대인들의 숫자가 3천명이나 되었다.

기독교에서 방언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할 문제가 아니다. 기독교의 방언은 하나님의 최종적 구원계시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의도된 작품이니 누구든지 구원받기를 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하나님 자신의 복음선포였다. 그 언어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습득하여 상대방과 대화하듯이 구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말하게 하시는 대로만 구사하는 성령의 은사로서의 특별한 이적이었다. 그 나라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즉시로 알아들었고,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통역을 통해서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1900년대 초 미국의 이단들이 먼저 시작하여 전 세계에 퍼진 오늘 날의 거짓 방언은 아무런 뜻이 없는 현란하고 그럴싸한 소리에 불과하다. 그런 소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누구도 잘 설명하지 못한다. 오날 날의 방언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대략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어떤 조건으로 말미암아 평소에 쓰지 않는 성대의 신경과 근육이 자극받음으로 특이한 발성이 시작된다는 이론도 있고, 2)미혹하는 영이 영혼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 내는 정교한 장난이라고 보기도 한다.

어떠한 경우이건 성경에 나타난 그 방언이 아니면 굳이 지속해야할 이유가 없다. 그것을 받기 위해 크고 작은 소나무들을 몇 차례 뽑았을지라도 좋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만일 그것이 사탄의 영이 일으키는 지상 최대의 정교한 미혹이라면 귀신에게 속고 있는 것이고, 그것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있다는 것, 즉 사탄숭배의 일상화, 사탄과 짝하면서 놀아나는 영적인 간음에 해당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방언문제는 고민에 고민을 더해도 지나치다 할 문제가 아니다. 문론 성경의 방언이 지금 나타나지 않는다고 100% 단정해 버리는 것도 옳지 않은 자세이다. 성경에 기독교의 방언이 언제부터는 명확하게 사라질 것이라고 한 적이 없으니, 언제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한 방언을 주시면 감사하며 바르게 활용하겠다는 마음만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

여하간 작고 사소한 어떤 현상을 가지고 성경의 외국어 방언이 지금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성경의 방언은 배우지 않은 외국말을 하나님이 말하게 하시는 대로 완벽하게 구사하여 복음의 내용을 증거하는 방언이다. 그 나라의 사람들은 정확하게 이해하였다. 몇 개의 외국어 단어, 또는 더듬거리는 한 두 개의 문장이 아니었다. 바로의 술사들이 하나님의 참된 이적을 어느 정도 모방했던 것처럼 사탄도 미약하지만 성경의 진짜 방언을 조금 모방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제 3의 물결 이론으로 복음을 혼란하게 만든 피터 와그너처럼 별 내용도 없이 지금 어디에서 외국어 방언이 다시 부활하였다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피터 와그너 자신도 외국어 방언이 지금 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객관성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끝에 가서는 다음과 같은 얼버무렸다.

“나는 타문화권의 선교사들 99.9%가 일반적인 인간의 방법으로 언어를 배워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플러신학교에서는 어떻게 언어를 배우는지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고, 그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이들의 모든 사역의 영역에서 그러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에 대해서 마음을 열어야 하고, 그러한 기적들이 나타날 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피터 와그너)
 

계시를 수반하는 예언, 방언과 방언통역 은사

피터 와그너는 외국어 방언이 다시 등장하였다는 주장 외에도 일반적인 방언과 방언통역에 대한 비성경적인 주장을 많이 하였다. 다음의 내용은 피터 와그너의 책「Your Spiritual Gift Can Help Your Church Growth」라는 책에서 나타나는 방언과 방언통역에 관한 내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방언과 방언통역은 외국어 방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 외국어라고 주장되지도 않는 오늘 날의 흔한 특이한 소리를 내는 현상으로서의 방언을 말한다. 사실은 방언이라고 불러서는 안 되는 것인데, 오순절 운동의 확산으로 말미암아 이헌 거짓된 현상이 기독교의 방언이라고 오해되면서 전 세계에 확산되었다. 방언과 방언통역에 관하여 피터 와그너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예언, 방언, 방언 통역의 은사는 자연적으로 한 그룹으로 모아진다. 왜냐하면 다른 은사들과는 달리 이 은사들은 계시적인 은사로 불리우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정보(information)들이 계시적인 은사를 가진 사람들을 통하여 인간에게 직접 전달되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일련의 계시들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피터 와그너)

제3의 물결을 주장하는 피터 와그너는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가 지금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방언과 방언통역, 예언의 은사를 ‘계시적인 은사들’(revelatory gifts)이라고 규정했다. ‘계시적’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계시를 수반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계시적인 은사들’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은사라는 뜻이고, 지금도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은사들을 통해 정보가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통하여 주어진 계시, 즉 완성된 성경 외에 또 다른 계시가 주어진다고 하는 주장은 예외 없이 이단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성경에 기초하는 참된 교회들과는 결코 동행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아주 극악한 일부 이단이 아닌 이상 성경 수준의 정확하고 권위있는 계시가 자신들을 통하여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예언자들을 육성하여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쉽게 예언 서비스를 제공하는 IHOP의 마이크 비클도 성경 수준의 계시를 받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예언운동가들도 성경 수준의 계시를 받아오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피터 와그너도 조금 완곡한 노선에서 예언과 계시를 주장하고 있다. 그는 예언, 방언과 방언통역을 통하여 주어지는 계시는 성경에 기록된 계시의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 예언, 방언과 방언통역을 통해 주어지는 계시는 불완전하고 그 은사를 발휘하는 사람의 실수와 오류도 함께 나타난다고 한다. 피터 와그너의 이런 말은 매우 그럴싸하다.

피터 와그너는 반대로 이미 성경에 기록된 계시는 완전하고 정확하다고 강조했다. 예언,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를 통하여 나타나는 현대의 계시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이 아니고 ‘상대적인 하나님의 말씀’(a Word of God)이라고 하였다.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를 통하여 얻은 하나님의 계시는 반드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조명과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이와 같은 피터 와그너의 가르침은 매우 조심성이 있고 우리의 신앙에 해를 초래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피터 와그너가 예언, 방언과 방언통역으로 얻을 수 있는 계시의 권위에 절대성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하여 우리가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결국 피터 와그너의 주장과 가르침은 교회와 성도의 신앙에 엄청난 혼란을 주게 되어있다. 실제로 지금도 예언, 방언과 방언통역을 통해 하나님의 상대적인 계시가 나타나고 있다는 그의 주장과 가르침을 통해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등장하여 교회를 망쳤다. 거짓 계시 수납자들(예언자들)의 허황된 예언이나 그럴싸한 방언과 방언 통역을 통해 얻는 계시를 추종하다가 망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도 많다.

조용기 목사가 한창 잘 나갈 때 수 많은 신자들 앞에서 아주 신령한체 하면서 비밀의 방언이라는 소리를 내고 또 자신이 직접 통역하여 하나님의 직통계시를 뽑아내는 오래전의 장면을 보자. 기도 좀 한다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우롱하는 이런 망령된 일을 거침없이 하려고 한다. 조용기 목사과 같이 이런 종교적인 속임수와 사기를 벌이면서 유명해지고 우매한 대중들을 후리는 유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 소원하는 사람들의 기세가 지금 한국 교회 안에 우후죽순이다.  

방언 통역으로 하나님의 직통의 말씀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예언, 방언, 방언 통역에 대해서 조용기 목사처럼 자신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용기 목사는 한국 뿐아니라 온 세계를 그런 것으로 주름잡은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처럼 하나님과 직통으로 교통하면서 국수 가락뽑듯이 계시를 저리도 쉽게 얻는 영적 거장인데, 어찌하여 인생의 끝이 그 어떤 선지자나 사도와 닮은 구석이 없을까? 하나님의 사람은 무결점이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진짜 방언을 말하고 진짜 방언 통역을 하는 성령의 사람이라면, 그 인생이 성령에 붙들린 사람으로서의 특징이 마땅히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는 심각한 사실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조용기 목사의 방언이 진짜 하나님의 방언이고 그의 방언 통역이 진짜 성령의 역사라면, 성령이 쓰시는 사람인 조용기 목사가 이와 같을 수가 없다.  

조욕기 목사의 저 방언을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통역하는 또 다른 사람이 과연 지구상에 있을까? 조용기 목사는 하나님이 기필코 영광을 보여주신다고 통역하였는데, 아무리 보아도 조용기 목사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고 볼 일이 없어 보인다. 조용기 목사의 저 방언과 방언 통역도 그 자신에게 두고 두고 망신을 주었다. 모든 현대의 방언 통역이 저런 식이다.

왜 예언이나 방언 통역을 통해 나오는 내용을 믿고 행동하면 반드시 낭패를 보게되는 것일까? 피터 와그너는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현대의 예언, 방언과 방언통역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와 음성을 듣는 것이 가능하나, 동시에 그 속에 그 은사자들의 실수와 오류가 있으므로 조심하고 분별해야 한다고 빠져나갈 구멍을 크게 파 놓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기 위해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이 어찌 동시에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의 진위를 판단할수가 있겠는가? 영혼들을 속이기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현대의 예언, 방언과 방언 통역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독교의 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마귀의 속임수에서 시작된 일을 버리지 않고 수용하면서 무슨 좋은 것을 얻을 수가 있겠는가? 현대의 방언과 방언 통역으로 계시를 얻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현대의 거짓 방언 현상은 성경에 나타난 기독교의 방언과 아무 연관이 없는 소리현상일 뿐이다. 그 사람이 자신에게 뭔가 있는 체 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낼 수도 있고, 마귀가 그 사람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서 주는 것일 수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이 주시는 소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의 방언은 하나님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사람에게 말하는 방언이었으나, 지금 대부분의 방언은 하나님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나님께 비밀스럽게 기도하여 사람들과 마귀를 따돌린다는 방언이다. 그러면서도 그 비밀을 통역하여 사람들과 마귀에게 알리는 그 위험한 일을 하겠다고 모순된 일을 벌이는 요지경 방언이다.

둘째, 현대의 방언통역은 시도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변화무쌍하고 신묘막측한 통역이다. 통역하는 사람의 느낌에 그 뜻이 달라지고, 녹음된 동일한 방언이나 뜻이 시시각각으로 또 변하고 달라진다. 누군가 옹알거리는 그런 소리를 일부러 만들어 녹음하여 통역하는 은사를 가졌다는 사람에게 통역을 요청하면 재미있는 현상이 계속 벌어진다. 근거없는 모함이라 여겨지면 당장 또 해 보면 된다. 녹음된 동일한 방언이라는 소리를 거의 비슷하게라도 통역해 내는 두 사람을 지구상에서 찾을 수가 없다. 현대의 방언과 그것의 뜻을 알려준다는 방언통역은 그 사람들의 문장력과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평소 설교 등을 익숙해진 단어들과 어휘들을 즉석에서 나열하고 조합하는 순발력의 문제이다.

점하는 귀신의 역사를 따라 나타나는 진짜 신통한 귀신의 방언과 그것에 대한 귀신의 통역도 있다. 귀신의 방언과 통역의 특징은 처음에는 신기하게 잘 맞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이없는 소리가 많아지며 유치해지는 귀신의 한계가 나타난다. 그래서 그것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우스워지고 망하게 만드는 사악한 귀신의 속성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결국 귀신의 방언과 귀신의 그 통역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크게 손해와 낭패를 당하고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는 일들이 이미 많이 벌어졌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현재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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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2015-07-05 22:16:07
저급한 댓글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창모 2015-06-01 13:20:36
귀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새삼스럽게 이들이 외국어 방언이 나타났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들의 거짓방언(영음방언)도 성령의 은사임을 간접적으로 주장하는, 잔머리 굴린 계략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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