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윤 목사의 '성서적 교회의 모습'(3회)

4) “그리스도인(人)의 몸이 성별 되었다”는 점에서 교회의 신성이 입증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우리가 영적 싸움을 싸워야할 이유는 우리의 영은 구속을 받았지만 육신은 아직 구속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롬 8:23). 그러나 중생한 자들은 육신에게 저서 육신대로 살지는 않다. 왜냐하면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기 때문이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전 6:9).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몸은 쓸 곳이 성별되어있다. “사나 죽으나 내 몸에서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일”(빌 1:20)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그리스도인들 곧 교회는 그 몸을 하나님께 산제사로 바쳐버린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이와 같이 교회는 신의 성품에 참예한 사람들이다(벧후 1:4).

5)그리스도와 교회, 둘 다 “첫 열매”라는 신분의 표현에서 교회의 신적 성격이 증거된다.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수많은 단어들 중에는 “첫 열매” 혹은 “뿌리”라는 말도 있다(계 5:5; 22:16). 바울은 로마서 11:16 절에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첫 열매의 가루와 떡덩이가 같은 일체이며, 뿌리와 가지가 한 나무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가 영적으로 동질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 신적 성품을 가진 교회가 그 성결의 유지를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할 뿐 아니라,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신적 성품을 가진 교회가 타락하고 부패하고 세속화 되었다는 것은 비성서적이다. 가시적 교회(조직이나 건물) 안에 불신자들이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후에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교회는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들의 모임이다. 

 

6)교회가 현재 있는 곳으로 보아서 교회의 신적 성품이 증거된다.

이미 전술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죄를 씻으시고, 정결케한 후, 새 생명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고, 그 후 이 땅에서는 우리 뜻대로 살게 내 버려두시지는 않는다. 그들을 영적으로 하늘나라로 옮겨버리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영적 현주소는 “하늘”이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 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엡 2:1-6; 골 3:1-3).

하늘에 앉히셨다. 하나님의 보좌 옆에, 그리스도와 함께. 이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사실이다. 이 사실에 근거하면, 교회는 지금 하나님의 보좌 옆,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존재하고 있다. 물론 영적이며, 불가시적 교회를 뜻한다. 거룩하고 정결하고 흠이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지상의 교회는 점이 있고, 부패하고, 타락할 수 있다고 하면 절대 않된다. 지상에서 부패하고 타락한 교회는 절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아니다.

그러나 지상에서 거룩을 향해서 몸부림하며, 세상의 가치와 싸우며, 육신의 정욕을 극복하며, 전심을 다해 주 예수 그리스도만 섬기는 교회가 있다. 이들 만이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이다. 가시적인 모든 교회가 다 성서적 교회는 결코 아니다. 우리는 세상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2).

교회가 거룩하지 않아도 교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마땅히 알아야할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한 탓인 것이다. 교회는 그 탄생의 순간 세상에서 옮겨버린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15:19)

“옮기워 버린 것”(chosen out of the world)이다. “나의 택함을 받아 옮기워 버린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

 

7) 엡 3:10 절 말씀: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교회가 “하늘에 있는”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교회는 “신적존재”이며, 더 이상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교회가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한다”면 이는 당연하고 이상할 것이 조금도 없다. 그러나 교회가 “하늘에 있는” 존재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한다면, 교회는 절대 부패하고, 타락하고, 세속적이고, 배도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

이 내용은 교회의 신적 신분을 결정적으로 입증한다. 교회가 거룩하지 않고 정결하지 않아도 구원받은 교회인지 다음 구절들을 살펴보자.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고전 5:6-13).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 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전 6:9-11). (교회 안에 이러한 자들이 아직도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있을 수 없다는 것인가?)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19-24).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엡 5:3-11).

교회 안에 죄악이 상존(常存) 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 전체를 무효화 한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전 3:16-18).

다음 내용은 "1985 년 The NIV Study Bible” 의 고린도 전서 3장 16절 본문 주석이다.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의 교회이다. 바울은 그의 독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의 전이라는 뜻이 아니다. 각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말씀은 고린도 전서 6장19절에 언급되고 있다.”

그러므로 논리적 결론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성도라고 부른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안에서 거룩하여 졌고, 거룩하여 가고’있기 때문인 것이지 ‘성도’라는 말을 그저 형식으로 혹은 수사학적으로나 상징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장 2절 말씀은 ‘거룩한 교회는 죄짓는 교회’라는 주장은 문제가 된다. 고린도 교회 안에 죄가 상존하고 있음을 (연장으로 현대 교회 안에 죄가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은 고린도전서 6장 9-11절에서 명백하게 입증되고 있다(갈 5:21. 엡 5:5).

그러면 ‘교회’는 완전히 ‘온전’한가? 그렇다. 물론 이 결론은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의 교회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불가시적, 성서적 교회만을 뜻한다. ‘온전’, 이것이 예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 5:48).

다음 내용은 “레위기 주석서”를 저술한 G. J. Wenhem 의 글의 인용이다.

“신약의 신학은 거룩이라는 개념을 완전하게 사용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하다. 대부분의 영어성경은 ‘성도’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고대 이스라엘이 부름받은 것 같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았다(골 1:2; 벧전 1:2; 2:9-10; cf. 출 19:5-6). 그러나 이 거룩의 상태는 거룩한 삶으로 나타나야한다(골 1:22; 벧전 1:15). 성화는 성경교훈의 규범에 대한 순종을 통하여 표현된다(롬 6:17-19). 레위기에서는 율법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난 것과 같다. 베드로는 그의 독자들에게 레위기의 모토를 그들의 모토로 삼을 것을 권고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6). 하나님을 본받는 것이 신구약 성경의 윤리를 일치하게 하는 주제이다(cf. 마 5:48; 고전 11:1).”

주님께서는 “가라, 이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고 하신 것이다. 교회는 마땅히 다른 복음이 아니라, 이 복음을 전해야할 것이다.

 

결 론

 

교회의 신적 신분은 다음의 말씀들로 확인할 수 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 2:9)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 1:4)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그리스도의 머리 아래, 혹은 그리스도의 머리에 연결되어] 재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라”(살전 4:7)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히 12:25-29).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 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히 7:12).

“공존(共存)”이 아니라, 대체(代替) 나 혹은 하나는 완전히 제거되고, 하나는 영원히 남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은 온 우주 가운데 교회만 남는다. 우리가 알건 알지 못하건 간에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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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윤 목사는 정태윤 목사는 미국 달라스에 있는 서남침례교회의 목사이다. 정태윤 목사는 현대의 교회들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에서 멀리 벗어났음을 안타까워는 목회자들과 함께 ‘복음주의 형제회’를 조직하여 매년 복음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천주교의 심각한 배도를 설명하는 데이비드 헌트의 책「짐승위에 탄 여자」을 번역하여 국내에 보급하였고, 그 외에도 「진정한 복음」,「참 복음과 거짓복음」, 「로버트 채프만: 사랑의 사도」를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