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박형룡은 벌코프를 인용하면서 ‘최종으로 그리스도가 만일 사람에게 부과된 형벌을 받으셨을 뿐이면 그의 사역의 열매를 나누어 가진 자들은 아담이 타락되기 전에 있던 바로 그곳에 남아 있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즉 아담의 타락을 치유한 수동적 순종만 있었다면 우리는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상태에 놓이게 되고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행위언약으로서의 율법과 모세 율법과 도덕적 율법을 모두 지켜야 할 의무가 여전히 남아 있게 된다는 말이다.” (정승원 교수)

총신 신대원장 정승원 목사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가 죽으시는 대속적인 사역을 감당하기만 했다면 아담과 우리 모두가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상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정이철 목사님을 통해 알게 되어 충격을 받았습니다. 더 충격을 받은 것은 (고)박형룡 목사와 성경의 저자들과 신학 수준이 거의 동일하다고 한국에 알려진 벌코프도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총신 신대원장 정승원 목사의 신앙은 그리스도가 대속적인 죽으심을 우리 대신 당하시는 것 외에 하나님께 능동적 순종(율법준수, 온전한 순종, 적극적 순종)을 통해 구세주의 완전한 자격을 갖추시는 것이 필요했다는 것이더군요. 그 근거로 히브리서 5:8-9절,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었다”를 제시하는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대속 사역만으로는 타락한 아담과 우리 모두를 천국으로 인도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이런 괴상한 이단 사설을 그 동안 개혁주의 교회 신학자들이 믿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변>
칼빈에 의해 완성된 종교개혁을 바로 그 다음 시대의 신학자들이 일부 망처버렸다고 진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진실된 종교개혁자들의 핏값으로 진리가 회복되었으나, (마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그랬는지 또는 칼빈 이후 개혁자들의 능력이 부족해서 그랬는지 잘 모르겠으나) 다시 성경을 왜곡하는 거짓 신학이 등장했습니다.

1564년에 칼빈이 죽기 2년 전, 1562년에 나온 우루시누스의 대요리문답 36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율법에는 하나님이 창조를 통해 인간과 맺은 자연 언약이 담겨 있으며, 인간은 자연을 통해 그것을 알게 된다.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할 것을 요구하며, 그것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질 것을 약속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형벌이 주어질 것이라고 위협한다” (Ursinus, Larger Catechism, Q. 36. 존 페스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신윤수 역. 부흥과개혁사. 165).

우르시누스의 대요리문답이 나오고 2년 후에 칼빈이 죽었는데, 사실 그때 칼빈은 건강이 나빠 전혀 활동을 못하였습니다. 칼빈의 신학 활동이 마감되었을 때 우르시누스의 대요리문답이 나왔습니다. 우르시누스가 대요리문답 36문에서 쓴 내용을 보니, 창조에 대하여 칼빈과 그 이전의 정통 신학자들이 가르친 내용과 완전히 다른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죄인도 아니고, 의인도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도 아닌 이상한 스타일로 만드셨다는 그릇된 사실을 전제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이 아담에게 구원을 얻기 위해 지켜야 할 율법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아담이 그 율법에 순종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순종하지 않으면 영원한 죽음이 주어진다고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이 아담에게 위협했다고 합니다.

우르시누스가 정말 웃기는 사람 아닌가요? 다른 곳에서 우리의 신앙에 관한 많은 바른 말들을 했을지라도, 여기의 이 내용은 정말 웃기는 내용입니다. 1)아담이 스스로 노력하여 영생을 얻어야 했다는 주장, 2)아담이 스스로 노력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는 백성이 되었어야 했다는 주장, 3)하나님께 무슨 죄를 짓지도 않은 아담이 자연을 통해 제시된 율법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는 주장 ... 우루시누스의 이런 이상한 주장으로 인해 이후 종교개혁 교회들이 아담이 자신에게 구원을 주는 율법 안에서 창조되었다는 이상한 사상을 신봉하는 교회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우르시누스가 (아마) 처음으로 주장하여 종교개혁 교회의 신앙을 망처버린 이 사상을 '창조언약', '자연언약', '율법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청교도 신학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스가 자신의 책 '황금사슬'(1591년)에서 '행위언약'이라는 말로 더 적극적으로 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1640년대의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이 이전의 여러 신학자들이 제시한 내용들을 집대성하여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1647)에 이 내용을 삽입하여 이 사상이 개혁교회의 공식 신앙이 되도록 공식화했습니다.

웨신스민스터 신앙고백이 장로교회를 위해 하늘에서 작성되어 내려온 것이라면서 신성시하는 사람들은 지난 역사와 학문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전의 학자들이 제시한 내용들을 집대성하여 작성된 것이 바로 웨스민스터 신앙고백입니다. 제 말이 아니고 웨신서의 내용을 지극히 존경하는 존 페스코의 말입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을 개혁주의 교리의 총회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로버트 롤록, 토머스 카트라이트, 존 프레스톤, 윌리엄 퍼킨스, 윌리엄 에임스, 존 볼, 에드워드 피셔, 데이비드 딕슨을 포함한 광범위한 신학자들의 견해를 취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존 페스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신윤수 역. 부흥과개혁사. 155).

웨신서 속의 중요한 신학적 자료들을 만들어 내었던 위의 많은 사람들이 모두 신약의 사도들처럼 정확무오한 논문을 썼던 사람들인가요? 절대로 아닙니다. 위의 인물들 가운데 첫 번째로 나오는 롤록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신학자였는데, 나중에 국왕이 강요하는 국교회주의로 넘어가 버린 사람입니다. 퍼킨스는 칼빈의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강조하는 개혁신학이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적극적 반응과 참여로 변질되게 해 버린 신학자입니다.

페스코가 언급하는 인물들 가운데 우르시누스가 가장 먼저 들어갔어야 하는데, 왜 안들어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르시누스는 아담에게 구원이 없었고, 그에게 구원을 주는 율법이 이미 창조 때 자연을 통해 세상에 도입되었다고 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율법, 즉 죄가 들어오고 난 후 죄에 지배되는 인간의 죄성을 지적하고, 대신 죗값을 지불하시는 그리스도를 믿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먼저 율법을 보내셨다는 가르침과 완전히 상반됩니다.

우르시누스가 처음으로 가르친 이상한 율법 사상, 즉 구원이 없는 아담에게 구원을 주려고 처음 창조 때 자연(또는 인간의 본성)을 통해 율법이 주어졌다는 이론은 사실상 율법주의 이단사상입니다. 아담이 율법의 지배를 받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려고 하나님이 아담을 율법 안에서 지었다는 이단신학입니다. 이게 바로 그 무서운 율법주의입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서 그런 내용의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까? 구원도 없고 하나님 백성도 아닌 아담이 무능하여 죽었으면, 그대로 두고 다른 아담을 만드시지 왜 하나님께서 그 아담을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아담을 다시 자기 백성으로 회복했는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승원 교수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선생들이 아무런 비판없이 그런 율법주의 이단사상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정승원 교수의 우르시누스의 하교리 60문에 대한 언급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60문은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가?’ 이에 대답은 다음과 같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다. 비록 나는 슬프게도 모든 하나님의 율법(commandments)에 거슬러 죄를 지었고 그 중 어떤 것도 지키지 못했고 여전히 죄를 지으려 한다고 내 양심이 나를 정죄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공로는 하나 없이 오직 은혜로 그리스도의 완벽한 만족과 의와 거룩을 내게 전가시키신다’” (정승원).

처음부터 하나님이 율법준수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지게 하신 것처럼 말합니다. 인간에게 죄가 들어온 후 죄에 지배되고 있는 인간의 상태를 드러내기 위해 율법이 온 것이 아니라 어정쩡하게 만들어진 인간을 구원에 합당한 바른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창조 때부터 율법이 주어진 것처럼 가르칩니다. 정승원 교수의 이런 사상은 율법론, 구원론, 원죄론 등에서 분명히 비성경적입니다. 참 신앙에 미치는 그 영향의 심각성을 볼 때 분명한 이단사상입니다.

우르시누스와 다른 인간 선생들에게 맞는 부분이 많았으나 종종 심각하게 틀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대의 성경 선생들이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예 보려고 하지를 않았고, 조금이라도 다른 시각을 가지는 개혁신학자가 나오면 이단아 취급 했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로 창조된 아담이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야 했는데 그리하지 못하고 죽었으나, 그리스도께 아담이 지키지 못한 율법을 완전하게 준수하심으로 의를 얻어 우리의 영생의 자격으로 전가하여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별도로 아담이 하나님이 명하신 율법준수를 하지 못한 죄에 대한 형벌을 십자가의 고난으로 감당하셨다”라고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수동적-능동적 순종의 신학이 종교개혁 교회 속에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성경에서 벗어난 심각한 이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태어난 직후에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면 율법주의 공덕이 그리스도에게 없으므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가르치는 적그리스도 이단사상입니다. 정승원 교수 등 그리스도께서 일찍 죽으셨으면 아담이 순종하지 못한 율법을 대신 순종하실 시간이 없었고, 그랬다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구세주의 공로를 쌓지 못했으므로 아담과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주장은 심각한 이단사상입니다.

칼빈은 아담이 처음부터 하나님 백성이었고 영생과 모든 은혜를 가진 사람이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칼빈은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반역하지 않았다면, 이후 영원히 죽지 않으면서 지금까지 하나님 백성들을 생산하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여 벌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참으로 교만이 모든 악의 처음이었다는 어거스틴의 단정은 옳다. 사람이 자기의 처지에 만족하고 바른 한계를 넘으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태초의 상태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다” (기독교강요, 2.1.4).

“그러나 그 후로 야심과 교만이 배은망덕과 함께 생겨났으니, 아담은 받은 것 이상을 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주신 그 위대하고 풍성한 은혜를 파렴치하게 경멸했기 때문이다. 흙의 아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도 또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지 않는 것을 사소한 일로 보았으니 이 얼마나 해괴하고 흉악한 태도였는가!” (기독교강요, 2.1.4).

“아담이 그의 창조주와 연결되어 있던 것이 그에게 영적 생명이 되었던 것과 같이, 창조주에게서 멀어진 것은 곧 영혼의 죽음을 말한다. 아담이 하늘과 땅의 전체적인 자연 질서에 위배했을 때, 그 반역으로 인해서 인류를 파멸에 다다르게 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기독교강요, 2.1.5).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을 풍성하게 받았을 때에 그 은혜를 감사하지 못했으며, 받은 축복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을 잃어버린 지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하나님을 인정하며 적어도 자기의 부족함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2.2.1).

“성례는 우리의 믿음을 더욱더 강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주께서는 어떤 때에는 성례로 약속하신 일을 우리가 믿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성례 자체를 우리에게서 빼앗으신다. 아담에게서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주지 않으셨을 때에 주께서는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하셨다(창 3:22).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아담이 잃어버린 불멸성을 그 과실이 회복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이 말씀을 다른 말로 옮긴다면, ‘나의 약속의 상징에 집착해서 헛된 확신을 즐기지 못하도록 불멸에 대한 소망을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을 그에게서 빼앗으리라’는 말이 될 것이다” (기독교강요, 4.14.12).

칼빈의 신학과 다른내용의 창조론-원죄론이 우르시누스를 통해 (처음으로) 등장했었습니다. 처음의 창조 때, 아담이 자연과 본성을 통해 계시된 율법에 순종함으로 영생을 얻고,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정해졌다는 창조언약(행위언약, 율법언약, 자연언약) 사상을 우르시누스가 자신의 대요리문답(1562년)에서 제시했습니다. 이후 퍼킨스가 더 본격적으로 제시하였고, 웨스트민스터 학자들이 공식화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만 했다면 아담과 우리는 죄용서를 받기는 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별똥 같은 운명에 처해졌을 것이라는 추론이 종교개혁 교회의 교리적 추론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리스도가 일찍 죽지 않으시고 오래 사시면서 아담이 못 지킨 그 율법에게 자신을 완전하게 복종시키어 얻으신 '공덕', 즉 천국 영생의 자역(의)을 만드셨으므로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되었다는 신학이 그렇게 등장했습니다.

대부분의 저명한 사람들이 이 같은 이단사상을 그대로 따랐고, 오히려 성경대로 바르게 믿는 사람들을 교리적인 이단으로 비방하였습니다. 성령에 감동되었던 신약의 사도들 외에 우리시누스 등 다른 탁월한 사람들은 많은 맞는 내용들과 틀린 내용이 혼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 근거하여 분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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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