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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언약-능동순종 위해 칼빈을 인용하지만 칼빈을 왜곡하는 모습이 가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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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언약-능동순종 위해 칼빈을 인용하지만 칼빈을 왜곡하는 모습이 가관이다
  • 정이철
  • 승인 2022.05.27 0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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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언약이란 하나님이 죄인도 아니고, 의인도 아니고, 하나님 백성도 아닌 '어정쩡한 아담'을 창조하셨다는 이론이다.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지는 순간 아담에게 영생을 얻기 위한 율법준수가 부과되었다는 이상한 이단사상이다. 아담이 충실하게 율법의 지배를 받음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창조되고 그 율법이 아담의 본성에 새겨져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단사상이다.

"마이클 브라운(Michael G. Brown)의 행위언약의 성경적 근거는 억지 주장"(크릭)

이전의 글에서 마이크 브라운과 카트 킬이 행위언약의 성경적 근거라고 제시하는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그들이 제시하는 성경 구절들은 행위언약의 성경적 근거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담을 자기의 백성으로, 그리고 영생과 모든 하나님의 복과 은혜 안에서 창조했으므로 행위언약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늘은 마이클 브라운과 자크 킬이 행위언약에 대해 말하는 다른 내용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행위언약에 대한 교리는 훌륭한 계보를 갖고 있다. 행위언약 개념은 이미 아우구티누스(354-430)의 저서들에서 발견되지만, 종교개혁 시대에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1563년)의 작성자들이었던 카라리아스 우르시누스(1534-1583)와 카스파르 올레비아누스(1536-1587) 같은 신학자들이 이 교리를 확고하게 가르쳤다” (브라운 & 킬 2020, 58-59).

행위언약 개념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들 속에서 이미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고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노스에게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책들을 보지 못했으나,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종종 그의 말을 인용하는 것을 보았다.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언급하는 내용을 보면, 아우구스티누는 나중에 등장하는 행위언약 개념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아담이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여 벌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참으로 교만이 모든 악의 처음이었다는 어거스틴의 단정은 옳다. 사람이 자기의 처지에 만족하고 바른 한계를 넘으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태초의 상태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다” (기독교강요, 2.1.4).

칼빈이 아담의 원죄에 대하여 설명할 때,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 이해와 자신의 이해가 동일함을 우회적으로 말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과 자신의 원죄론이 다르면, 칼빈이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의 글을 보면, 칼빈은 아담은 영생 안에서 창조된 후 범죄로 인해 그것을 상실했다고 보았음이 분명하다.

“아담에게서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주지 않으셨을 때에 주께서는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하셨다(창 3:22).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아담이 잃어버린 불멸성을 그 과실이 회복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이 말씀을 다른 말로 옮긴다면, ‘나의 약속의 상징에 집착해서 헛된 확신을 즐기지 못하도록 불멸에 대한 소망을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을 그에게서 빼앗으리라’는 말이 될 것이다” (기독교강요, 4.14.12).

칼빈은 행위언약 이론의 추종자들처럼 아담이 영생의 자격을 얻은 후 생명나무를 먹음으로 영생하게 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창조된 아담에게 처음부터 영생이 주어져 있었고, 생명나무는 아담이 하나님을 섬기는 한 영원한 복과 은혜가 함께한다는 언약의 담보물이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을 배반한 후에는 그것이 의미가 없어졌으므로 타락한 아담이 생명나무에 접급하지 못하게 막으셨다고 칼빈은 해석했다.

“자신의 대교리문답(1562년)에서 우르시누스는 행위언약을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것을 요구하며, 그것을 지키는 자에게 영생을 약속하는’ 율법과 명시적으로 동일시했으며, 은혜언약을 ‘율법이 요구하는 의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며,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그리스도로 인해서 영생을 값없이 약속하는’ 복음과 동일시했다” (브라운 & 킬 2020, 59).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저자 우르시누스가 행위언약을 율법과 동일시했다고 한다. 즉, 하나님이 율법을 지킴으로 아담이 영생을 얻을 수 있게 정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행위언약은 창조와 동시에 발효되었다는 의미에서 '창조언약', 아담이 율법을 지킴으로 영생을 얻게 했다는 의미에서 '율법언약'이라고 불리운다. 모두 잘못된 성경해석이고 인간의 그릇된 상상의 산물이다.

혹 우르시누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동시에 그런 말을 했다고 해도, 하나님의 진리는 전혀 변하지 않는다. 성경 어디에 하나님께서 아담이 율법의 지배를 충실하게 받는 공로에 근거하여 영생을 얻도록 창조했다고 볼 수 있는 내용이 있는가?

아담은 처음부터 영생과 모든 하나님의 은혜와 복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교만해졌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나님께 반역함으로 그 모든 것을 상실하고 죽음에 이르는 형벌을 받았다. 이렇게 해석해야 이후 전개되는 성경 66권의 흐름과 맞다.

범죄 직후 하나님께서 즉시 아담에게 살 방도를 주시고, 다시 자기의 백성으로 회복하려는 작정을 실행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이미 그와 영원한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야 맞다. 하나님이 자기의 인격을 걸고 아담에게 영원히 그의 하나님이 되시기로, 아담도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살기로 서로 인격에 기초하여 언약했던 것이다. 인간은 그 언약을 배반했으나, 신실하신 하나님은 자기의 인격에 기초하여 베푸신 그 언약을 스스로 이루시기 위해 성육신하셔고, 대신 죗값을 갚으심으로 아담과 우리를 구원하셨다. 

“올레비아누스는 1567년에 쓴 <확고한 토대>(Vester Grund)에서 같은 교리를 가르쳤다. 올레비아누스는 인류의 언약적 머리인 아담과의 법적 행위언약에 대해 말했는데, 아담 안에 율법이 ‘인간 본성’으로 ‘심겨졌다’고 말했다” (브라운 & 킬 2020, 59).

올레비아누스도 자기의 책에서 행위언약을 추종하는 미련한 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상상력이 풍부했던 올레비아누스는 아담의 본성 속에 율법이 심겨져 있었다고 했다. 아담의 본성이라함은 곧 하나님의 형상이다. 성경은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인격을 반사하는 존재로 피조되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인격이 곧 율법인가? 올레비아누스는 참 미련한 주장을 했다. 

“1640년대에 행위언약에 대한 교리는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으며,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만든 신앙고백 표준문서들 안에 성문화되었다. 예를 들어,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은 행위언약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은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그와 생명의 언약을 맺었으며, 죽음의 고통을 조건으로하여 선악과 따 먹는 것을 금하셨습니다’(문답 12). 이와 마찬가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인간과 맺은 첫 언약은 행위언약이었으며, 이 언약에서 완전한 개인적 순종을 조건으로 아담에게, 그리고 아담 안에서 후손에게 생명이 약속되었다’(7.2)라고 선언한다” (브라운 & 킬 2020, 59-60).

칼빈이 죽던 무렵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 등에게서 창조언약 개념이 등장했고, 그것이 후에 윌리엄 퍼킨스(1558-1603)를 통해 더 강력한 행위언약으로 제시되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신학을 와해시키는 청교도 신학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청교도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적극적 반응과 참여를 강조하는 신학으로 발전되었고, 그것이 나중에 시민들의 신앙의식을 각성시켜 국교회를 무찌르는 청교도혁명을 초래했다. 청교도혁명의 성공으로 국교회를 옹호하는 찰스 1세의 목을 칠때 청교도들이 작성한 웨신서를 통개 행위언약이 공식화되었다는 내용이다. 단순한 역사에 대한 내용이고 다 사실이다.

“이런 진술들과 일관되게 루이스 벌코프는 행위언약이 언약적 머리로서의 아담에 대한 하나님의 서약이라고 말하는데, 이 서약에서 생명은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하여 금지된 열매를 먹는 불순종에 대해서는 영원한 죽음의 위협이 있다” (브라운 & 킬 2020, 60).

웨신서를 통해 공식화되어 버린 행위언약 개념을 벌코프 등의 신학자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계속 전파하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약을 맺으신 분이며, 창조 때 그렇게 하셨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 속에 있다는 것이다. 창조 때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지키시며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실 것을 자신의 피조물에 분명히 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됨으로써 아담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책무를 지게 된다. 창세기 1장 26절에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만물을 다스리도록 하시는데, 이런 다스림이 책무이다” (브라운 & 킬 2020, 60).

하나님이 창조 때 아담에게 율법을 지켜 스스로 영생을 얻으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지는 순간 그 언약이 성립되었다는 주장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에게 피조 세계를 다스리고 관리하라는 사명을 주셨다는 내용은 성경에 있으나, 율법을 지켜서 영생을 얻으라는 내용은 성경에 없다. 모두 인간이 지어낸 상상의 산물이다.

“언약의 복-상급과 저주-형벌은 성격상 궁극적으로 영원하며 영적인 것이었다. 약속된 생명은 영생이었다. 생명나무는 만약 아담이 순종한다면 그가 영원히 살 것이라고 아담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표였으며 보증이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를 먹고 영생하지 않도록 그것에 접근하는 것을 금하신다 (창 3:22). 존 칼빈은 생명나무의 성례적 성경에 대한 논의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불사의 보증으로 생명나무를 주셨다’고 함으로써 이것을 분명하게 진술한다” (브라운 & 킬 2020, 62).

생명나무에 대해 억지 해석이다. 아담이 율법을 잘 지킨 공로를 인정받았으면, 그 대가로 생명나무를 먹고 영생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라는 헛소리이다. 선악과 속에 사람을 죽이는 성분이 있었던가? 생명나무 수액이 사람을 영생하게 만드는 특효약이었던 것인가? 그런 해석은 디즈니랜드 만화의 소제 감이다. 생명나무와 선악과는 아담의 하나님의 과의 관계, 즉 언약적 상징물이었다고 해석해야 바르다.

칼빈을 인용하였지만, 칼빈을 왜곡하는 모습이 참으로 가관이다. 칼빈은 생명나무를 아담에게 주신 성례, 즉 하나님과의 바른 언약적 관계 안에서 영원히 주어지는 복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칼빈에게 생명나무는 아담이 율법준수로 영생의 자격을 얻은 후에 먹는 물질이 결코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칼빈을 이용하면서 칼빈에게 행위언약-능동순종(수동순종) 등의 용어는 없었을지라도 이미 그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현재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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