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기도 광주에서 좋은가족 교회와 유니스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권창규 목사(이후 권창규)의 박사학위 논문의 출판물 <자식농사 주 안에서 마음대로 된다>의 5장의 ‘4)회심’을 살펴보겠습니다.

“회심이란 무엇인가? 회심은 앞에서 언급한 바라, 죄, 십자가, 부활이 삶의 실제로 다가와야 한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지고 깨달아져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가던 길에서 돌아서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분명한 결단과 체험이 자리한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에 대한 깊은 자각 없이 회심은 불가능하며, 이러한 회심 없는 구원은 성경이 지지하지 않는다.” (권창규, 99 페이지)

권창규가 구원의 복음을 알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권창규는 구원을 얻는 것과 사람이 자기의 죄를 알고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임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먼저 죄를 깨닫고, 그리고 죄악된 길을 멈추고 방향을 바꾼 후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감으로 구원이 일어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권창규가 구원을 설명하는 이런 개념이 바로 '회심'입니다. 회심 개념의 특징은 구원을 얻기 전에 죄인이 자기의 죄를 깨닫고 구원을 간절히 갈망하는 단계를 먼저 거치고 난 후 그리스도를 사모하다가 영혼의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회심 개념은 율법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구원을 이해하는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저는 청교도 신학을 연구하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청교도 목사들은 회심준비론 사상(일명 ‘준비교리’, Doctrine of Preparation)으로 목회를 했습니다. 그 핵심은 신자들이 죄를 깨닫고 스스로 자기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 구원을 준비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권창규도 청교도 회심준비론 목회자들과 똑 같은 회심 개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가던 길에서 돌아서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분명한 결단과 체험이 자리한다.” (권창규, 99 페이지)

왜 청교도들과 권창규가 같은 회심 개념을 가르칠까요? 1) 원죄를 하나님 백성 아담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으로 이해하지 않고 피조물의 창조주의 권위, 질서 무시로 이해한다는 점, 2)본래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기준이라고 믿는 점에서 양측이 같기 때문입니다. 권창규의 유대주의 기독교 신앙의 바탕도 율법주의이고 청교도들의 신앙의 바탕도 율법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주의의 특징은 구원을 얻기 위해 율법을 지켜야 하고 구원을 유지시키기 위해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은 사람 대신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킨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열매로서 율법준수가 신자들의 삶에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권창규도 조금 다른 용어로 표현하지만 결국 같은 율법주의 구원론을 가르칩니다.

“진정한 믿음은 ‘바라’하신 하나님을 외면하고 질서를 깨뜨려 죄인 된 인생이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십자가와 부활로 나아와 삶의 방향을 돌이켜, 하나님 아래 내 의지를 죽이고 그 분의 뜻대로 하는 것이다. 오직 나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그 분의 말씀에만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권창규, 100 페이지)

“믿음이란 단어는 믿음의 행위를 포함하고 있다. 믿고 신뢰하려면 그 사람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행위가 따라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만한 믿음을 본적이 없다고 하신 경우는 모두 하나님을 온전한 마음으로 전적으로 신뢰한 자들을 인정하실 때였다 ... 믿음은 고백을 넘어 삶속에 믿음의 태도와 행위의 열매가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권창규, 101 페이지)

권창규에게 구원은 믿고 행함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정상적 신앙고백과 차이가 없어 보이나, 사실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권창규에게 믿음은 창조주의 질서(율법)를 지키지 않았던 아담을 대신하여 율법을 지키셨고 아담이 하나님의 질서를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신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함이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어 시작된 구원을 완성시키는 수단입니다. 율법(회개, 순종)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을 권창규는 행함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고 더불어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강도의 구원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강도는 처음에 십자가에 달린 상태에서 다른 강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조롱했습니다. 전혀 자기의 죄를 깨닫거나, 구원을 받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추고 돌이키거나, 삶의 방향을 바꾸는 회심 과정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성령의 역사하여 자기의 죄를 대신 지고 피 흘리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을 십자가 상에서 얻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간수와 그 가족들의 구원을 생각해 보십시오. 간수는 자신이 잠든 사이 옥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자기의 책임 하에 있었던 죄수(바울 사도)가 탈옥한 것으로 알고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급하게 사도 바울이 만류하였고 주 예수를 믿으라고 권하였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자 간수는 바울 사도를 집으로 모시고 가 온 가족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했고, 즉시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저녁에 투옥되었는데, 새벽이 오고 날이 밝기 전에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대체 언제 간수와 그 가족들이 죄를 깨닫고 구원에 대해 고민하는 회심 과정이 있었습니까? 언제 간수와 그 가족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 삶의 방향을 바꾸었고 그때까지 가던 길을 멈추어 돌아서거 고심하는 회심이 있었습니까?

성경은 죄인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죄용서 복음이 전파되고 성령이 역사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으로 구원이 즉시, 그리고 영원하고 완전하게 일어난다고 가르칩니다. 권창규가 가르치는 것처럼, 먼저 죄를 깨닫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회심의 단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권창규가 가르치는 대로 믿음과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신학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되고 이후 신자의 완전한 율법준수(순종, 회개)로 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무도 완전하게 회개하고 순종하는 삶, 즉 완전한 율법준수를 통해 자기의 구원을 완성하지 못합니다.

정통 교회의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고백과 권창규와 율법주의 자들의 믿음과 행함으로 구원 받는 다는 고백은 같은 뜻처럼 보이나, 사실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구원은 오직 성령이 그리스도를 믿게하심으로 발생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동시에 그 사람에게 임재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그리스도처럼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되어 영원한 구원이 확정됩니다. 그리고 구원의 열매로서 변화된 삶(행함)이 발전되어 갑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이성과 힘으로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 속사람의 변화와 성령의 열매를 통해 구원 받은 사람임을 스스로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진정한 회심은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행함을 동반해야 한다. 마귀와 사탄도 갖고 있는 믿음으로는 부족하다. 삶의 방향과 세계관을 바꾸고 삶을 온전히 주님 앞에 굴복시켜 깨뜨려진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권창규, 99 페이지)

권창규의 이 말은 구원을 받기에 합당한 모든 변화와 조건을 다 구비한 사람에게 구원이 주어진다는 심각한 이단사상입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주의자들이 구원을 설명하는 ‘회심’ 개념의 이단성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사탄의 율법주의 프레임 속에서 나름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것이었을 뿐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기를 바울에게 자기를 나타내시고 전도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구원이 임하였습니다. 그때 바울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을 전도(계시)하였으나, 그것은 특별한 사건입니다. 지금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그 일을 하십니다.

사람이 자기의 죄를 깨달아 알고, 스스로 삶의 방향을 바꾸어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 구원을 받는다는 회심 사상은 거짓 구원론입니다. 회심 사상에 의하면, 우리는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자격과 조건을 스스로 구비한 후에 구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매우 이성적이고 교만하게 만드는 거짓 구원론입니다.

구원은 성령의 전도로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순간에 얻어집니다. 전도를 받고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고백이 나타나는 순간 구원이 임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 받는 사건을 생명 얻는 회개하고 합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행 11:18)
 

칼빈도 구원을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회개로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회개를 한 마디로 중생이라고 해석하는데 회개의 유일한 목적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일그러지고 거의 말살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 안에 회복시키는 것이다." (칼빈, 기독교강요, 3.3.9)

 

서철원 박사도 구원을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회개로 설명합니다.

“복음선포를 들은 사람들에게 성령이 역사하셔서 거듭나게 하신다. 거듭남과 동시적으로 성령의 권면을 따라 주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고백을 하게 된다. 믿음고백과 함께 회개한다. 믿음고백과 회개는 언제든지 같이 가기 때문이다.” (서철원, 구원론, 66)

“하나님에로 돌이킴을 통상적으로 개종 혹은 회심이라고 이름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회심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고 회개라고 해야 한다. 다른 종교를 갖고 있다가 주 예수에게로 돌이킨 경우에도 회심 내지 개종으로 말할 것이 전혀 아니다.” (서철원, 구원론 71)

회심은 구원을 받을 모든 조건과 자격을 사람이 구비한 후에 드디어 구원을 받는 것을 뜻합니다. 회심하여 구원을 얻을 사람은 없습니다. 회심 개념은 사람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지 못하고, 혹 그것을 가지게 할지라도 교만하게 만듭니다. 회심은 권창규와 같은 율법주의자들의 거짓 구원론입니다. 참된 구원은 성령이 복음을 전도하시고 믿게 하심으로 우리의 마음에서 믿음고백이 일어나는 순간 일어납니다.

권창규의 회심 개념을 배우면 사람이 구원에 합당한 모든 조건와 상태를 갖추어야 하므로 영혼에게 쉴 날이 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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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