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문. 성경은 주로 무엇을 가르칩니까?

답. 성경은 주로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는 의무가 무엇인지를 가르칩니다 (딤후1:13, 신10:12-13, 요20:31, 딤후3:15-17).
 

성경의 기록목적.

우리가 보통 서점에서 책을 사서 읽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책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책을 통해 저자는 무엇을 전해주려고 하는지에 대한 목적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난번에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 자신이라고 하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은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단지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물론 기계적인 도구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저자들의 인격을 사용하여 기록하셨습니다. 하지만 모든 성경의 기록자들이 단 하나의 오류도 없다고 위대한 교부 어거스틴도 인정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성경을 기록하신 것입니까? 성경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라고 다시 질문할 수 있습니다.

제5문에서 가장 먼저 하나님께 대하여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을 언급하는 이 한 가지 가르침을 통해서 결국 성경은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를 믿어야 합니다.

화란의 개혁신학자 헤르만 바빙크는 자신의 책 “하나님의 큰 일”이라고 하는 책에서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구속, 그리고 교회와 영생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모든 내용들을 다 믿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헤르만 바빙크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할 때, 어떤 한 부분만을 믿어서는 안 되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믿어야 한다고 하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질문을 하면 그에 대한 답을 몇 마디로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에 대한 내용, 아니면 모세나 다윗, 솔로몬과 같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좀 더 성경을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성경 전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목적을 정확하게 이해하여 말할 수 있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쉽게 오해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이것입니다. 성경은 오직 단 하나의 목적,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정말이지 가장 귀하고 보배로운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핵심이자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쉽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소홀히 하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문답하고 있는 이 신앙고백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 문답을 통해 후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모든 교리의 소중함과 자신의 삶을 이 신앙 교리 위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에게 왜곡되어 가르쳐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독교는 교리가 아니라 삶” 이라고 주장하는 사상입니다. 언 듯 보면 마치 기독교가 거룩하고 윤리적인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종교임을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독교의 교리를 싫어하거나 교회의 전통 교육이라고 하는 캐터키즘을 가르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바로 이러한 주장입니다.

물론 현대교회가 도덕적으로 바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해서 지탄을 받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이유도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독교는 교리가 아니라 삶”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교묘한 사탄의 선전 문구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이것 아니면 저것”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는 “모두 다”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주변에서 “기독교는 교리가 아니라 삶”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교리가 삶을 대적하며 삶이 교리를 대적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 시대에 팽배해 있는 교리를 혐오하는 사상이 지닌 선입견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의하면 기독교는 교리와 삶의 체계를 동시에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더욱이 교리와 삶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또한 삶은 교리 없이는 존재할 수도, 성장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신앙문답이 바로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교리이며 삶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과 죽음 그리고 구원이 기록되고 또한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실체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모른다면 인간의 행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교리입니다. “기독교는 교리가 아니라 삶”이라고 할 때 이 말은 결국 성경의 전체 내용을 모르고 가르치는 사상입니다. 기독교는 교리이며 삶이기 때문입니다.

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는지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숙고한다면, 결국 교회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교리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의 복음을 선포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만큼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설교와 가르침을 가장 많이 하는 종교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불법과 사회의 모든 문제들 가운데 항상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복음을 선포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복음이 선포되지 않으면 인간은 교만하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의로 살려고 합니다. 여기에 옛사람의 모습들이 죽지 않고 늘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종교 개혁자들이 교회를 개혁하고 바른 신앙으로 성도들을 이끌었던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의 신학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날 교인들이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으로 사는 이유는 성경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교리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행위가 비도덕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교리가 아니라 삶“이라고 하는 가르침은 마귀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기독교는 교리이며 삶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교리와 삶을 가르쳐야 하고 배워야 합니다.

물론 교리는 성경과 비교할 때 절대적이지 않다. 그러나 교리가 성경에서 나왔기 때문에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선진들이 연구해놓은 교리를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현대교회는 반교리적 입장에 서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 이유는 교리는 교회 부흥에 필수가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교회 부흥을 위해서는 성경의 교리 같은 것은 필요 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의 신앙이란 자신들이 느끼는 감정대로 판단하고 행동하고 결국 자신의 결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앙의 개인주의 또는 편협주의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오히려 성경의 교리가 편협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 안다면 이런 주장은 할 수 없습니다. 떠도는 파편적인 지식 몇 개를 가지고 마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전부 아는 것처럼 떠드는 사람은 참으로 교만하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성경의 교리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고 배우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교회가 교리를 가르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이 점점 세속적으로 변해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도는 반드시 성경의 삼위일체 하나님, 그리고 사도신경에 나타난 바른 신앙고백에 대한 내용들과 이웃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말씀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교사된 목사의 본분입니다. 
 

성도는 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고백을 해야 한다.

4세기의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는 교회가 지명한 신학자입니다. 이 위대한 신학자이며 교부가 “성도는 자신이 숨 쉬는 것 보다 더 많이 하나님을 생각해야 한다” 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 가르침이 얼마나 위대한지 우리는 배워야 하지만 더 실재적으로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은 늘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10).

이 말씀에서 사람의 구원이 입으로 고백해야 한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으로 잘못 번역하였습니다. 하지만 구원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를 믿는 것을 입으로 고백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호몰로게오”-시인, 고백, 말하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믿음은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다고 자신의 입으로 순간순간 고백해야 합니다. 또한 성경이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 한 분 하나님으로 존재하신다고 하는 것을 고백해야 하고, 인간은 모두 죄로 인해 죽는다고 하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죄인의 유일한 구원주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성경이 이러한 내용을 목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자는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는 이 내용을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것입니다. 고백한다고 하는 것은 단지 “네” 그렇게 시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백한다고 하는 것은 성경의 모든 내용이 무엇을 위해 기록하고 있는지를 알고 자신의 입으로 그 모든 내용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존재와 인간의 타락과 구원,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구원 사역에 모든 내용들을 자신의 입술로 확증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조상들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 고백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순서를 정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고 있는지? 이것을 배우고 나면 다음부터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가르칩니다. 그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지금 우리들이 문답으로 배우고 있는 이 신앙고백서입니다.
 

인간의 행위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때문에 인정받는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결국 인간의 행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고 행하는 모든 행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이 인간의 행위를 이끌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가 구약 선지자 하박국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행한다고 하는 것,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을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강제로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믿고 알아가면서 자신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면 그 구원의 기쁨이 물밀듯이 계속 일어납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신 성령께서 이 구원의 기쁨을 계속 일으켜 주십니다. 그래서 율법의 행위 아래에서는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율법의 조문 아래에서는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정죄만 항상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이 믿음으로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고 하면 여전히 율법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문답서를 통해 하나님에 대하여 진리를 알고 믿음을 고백하면 분명히 저와 여러분들 안에 참된 구원의 기쁨으로 가득 넘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은 아주 풍성하고 가득 흘러넘치는 풍요로운 구원의 기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친다고 사도 바울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우리 안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고난과 환난을 겪고 슬픔과 눈물을 흘리지만 이 모든 것을 다 넉넉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구원의 기쁨과 위로를 늘 주시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항상 진리를 배우는 것을 즐거워한다.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것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죄로 인해 사망과 고난의 삶을 살아가는 길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이지를 가르쳐 주는 이정표와 같은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길을 걷다가 영생의 길을 가는 이정표를 보고 그 길로 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자일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그 구원의 길에서 살고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해주는 감사의 것들밖에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에게 나와 배우라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리하면 우리 모두에게 쉼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정말이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배우는 것은 진정한 안식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성령과 진리 안에서 참된 예배와 안식을 누립니다. 이 구원의 기쁨이 저와 여러분 안에 항상 흘러 넘쳐 나고 있다는 것을 믿고 감사하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진리를 배우는 것을 기뻐하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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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