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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가 따르지 않는 칭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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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가 따르지 않는 칭의는 없어
  • 정태윤
  • 승인 2015.05.1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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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윤 목사의 '성서적 교회의 모습'(2회)

3) 하나님께서 교회를 거룩하게 예정하셨으며, 교회는 거룩케된 무리라는 사실에서 교회의 신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부터 교회의 거룩성을 계획하신 것이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ἐξελέξατο)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엡 1:4-5).

‘택하다’(ἐκλέγομαι)는 말은 요 15:19 절에 이렇게 사용되고 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라는 말은 “세상에서 내가 택하여 내어 옮겼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영어성경은 이 내용을 “I have chosen out of the world.” 혹은 ‘taken out of the world.’ 혹은 ‘picked out of the world’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세상에서 택하여 내어버렸으므로’ 이 ‘세상’에 없다는 뜻이다.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옮겨졌다. 혹은 세상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옮겨져 있다.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는 가라지와는 완전히 분리된 사람들이다(마 13:25, 38). 성별(聖別)된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라고 기록하고 있다(히 2:11-12).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정하셨을 뿐 아니라, 실제로 거룩하게 하셨다. 이렇게 거룩하게 된 무리를 ‘성도(聖徒)’라고 부르신 것이다. ‘거룩하게’ 되지 않았는데도 ‘성도’라고 부른다면, 누군가는 거짓말 하는 자가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거룩하게 된 무리들에게만 영생의 기업을 유업으로 얻게하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부름에 대하여 이를 확실하게 증언하고 있다.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 26:16b-18).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살전 4:7-8).

“저버린다”는 말은 “계명을 버린다(혹은 무효로 만든다)”는 뜻이 있고(막 7:9), ‘폐한다’는 뜻도 있으며 (고전 1:19), 하나님 아버지를 “부인한다”는 뜻도 있다(눅 10:16). 구원을 받았을 때 함께 받은, ‘거룩함’을 저버린다는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 어떠한 사람에게 거룩함이 버려졌다는 것은 그 사람은 처음부터 구원받은 적이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사람이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버린 무수한 사람들이 있었다(예를 들면: 사울 왕, 솔로몬 왕, 여로보암 왕등). 그러나 신약 성도들에게는 “거룩함을 버렸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무효하게’ 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이러한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히12:14).

이는 그리스도의 피의 대속 사역을 무너뜨리는 것이며, 실상은 신구약 성경 전체를 무효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예정해 두신 ‘유월절 어린양’으로 세상에 오셨으며(요 1:36; 고전 5:7), 전 인류의 구속 사역을 예정대로 이루시었는데 창세전부터 계획해 두신 성도들의 거룩케하심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성경 전체의 무효선언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중생한 사람에게 거룩함이 부재(不在)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 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9-11).

‘의롭다함’은 ‘거룩함’과 함께 주어진 것이다. 곧 칭의(稱義)는 ‘성화’와 함께 주어진 것이다. 다른 점은 ‘의롭다함’은 받는 순간 과거에 속한 것이 되고, ‘성화’는 세상 떠나는 날 까지 계속되고 성장해가는 과정에 속한 것이다. 성화가 없다면, 처음부터 칭의는 받은 적이 없다. 반면에, 의롭다함을 받았으면, 필연코 성화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성화 없는 칭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사실에 대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벗어버렸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 3:4-10).

교회란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렸고,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롬 6:6-7).

그러나 ‘거룩함’이 중생한 순간 온전함에 도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온전함’이 분명한 목표이다. 예수님의 말씀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는 말씀이 공허한 제안(提案)에 불과한 것이라면, 다른 말씀도 우리는 그저 우리를 위한 제안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거룩성은 성경 전체에서, 신구약 성경 전체에 걸쳐, 그 주제가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정결케 하시고, 그 이후 그들의 뜻대로 세상에서 살게 방치해 두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 자들을 자녀 삼으신 것이다. 그러나 그냥 자녀 삼으신 것은 아니다.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께서 ‘거룩케’하신 거룩을 지키도록 권세를 주셨고, ‘선한 일을 행하도록 부르신’ 선행을 하도록 권세를 주신 것이다. 이 권세는 세상 영광을 추구하는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하는 능력이다.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고, 마귀와 싸워 이기는 권세를 뜻한다. 육신대로 살지 않게 하는 권세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거룩하게 성별하실 창세전의 계획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창세전에 계획된 그리스도의 구속의 완성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성경 말씀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거룩함의 요구와, 그 성취된 내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거룩성이 확정되면 교회의 타락과 부패는 분명히 비성서적 사실이라는 것이 입증될 것이다. 베드로는 교회의 거룩성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4-16).

사도가 ‘기록되었으되’라고 말하고 있음으로 이는 구약성경에 ‘기록되어’있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교회의 거룩은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이라는 의미도 된다. 모세에게 주신 말씀에 기록되어 있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 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4-45).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

“너희는 스스로 깨끗케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20:7).

그러나 이상의 하나님의 뜻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또 한 편,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지 않고 무익하고 허무하게 되어버린 것은 아니다. 레위기의 말씀은 신약 교회에 성취되었다.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이 성취를 기록하고 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교회가 명심해야할 중요한 사항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죽으면 하늘나라로 데려가는데 중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땅에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상 가운데 사는 거룩한 삶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내주케하신 것이다.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연약을 도우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넉넉히 이기는 것이다. 로마서 8 장에서 우리가 넉넉히 이기는 범위를 보자(롬 8:31-39).

다음 구절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천하 만민 중에서 특별히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또 택함을 받은 아론과 그의 두 아들들이, 에굽의 종신분에서 해방되어 이스라엘백성의 최초의 제사장으로 장립을 받기 위하여, 8일간 준비하고, 최초로 장립 예배를 규례에 따라 드리는 중에 여호와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 나답과 아비후를 태워 죽인 사건을 기록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불을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구별한 성별(聖別)을 무시했기 때문에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한 것이다.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레 10:3).

이 다른 불은 신약 교회에 있어서 “다른 복음” (갈 1:8-9), 혹은 “다른 예수” (고후 11:4) 와 같은 것이다. 성별(聖別)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교회 안에 배도적 메시지가 횡행하고, 총회장 당선을 위해서 금전의 수수가 있며, 도덕적으로 문란한 행위를 한 자가 “누가 누구를 비판할 수 있단 말인가?” 혹은

“털어서 먼지나지 않을 자가 어디 있느냐?”는 등의 말을 하며 소위 목회를 계속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는 있을 수 없다. 그들은 다른 예수 전하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절대로 나답과 아비후들을 용납지 않으신다는 것을 선언하시는 내용이 곧 레위기 10 장의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구속사역으로 성도들의 거룩을 완전케 하신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이것을 사하셨은 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8).

예수님께서 단 한 번의 제사로 죄인들을 영원히 거룩케하셨고 영원히 온전케하셨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교회들이 비록 거룩하지 않고 온전치 아니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영원히 거룩케하셨고, 온전케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거룩케하시고, 온전케하신 하나님의 목표를 향해서 걸어가는 길 외에 다른 길을 걸어가지 아니한 사람들이다.

이 땅에서 거룩함이나 온전히 완성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교회가 거룩하지도 않고 온전하지도 않아도 교회는 교회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 내용은 조금 후에 다루게 될 것이다. 교회의 거룩은 ‘선한 삶’에 그 실체를 입증한다. 교회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 2:14).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 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8-10).

정태윤 목사는 정태윤 목사는 미국 달라스에 있는 서남침례교회의 목사이다. 정태윤 목사는 현대의 교회들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에서 멀리 벗어났음을 안타까워는 목회자들과 함께 ‘복음주의 형제회’를 조직하여 매년 복음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천주교의 심각한 배도를 설명하는 데이비드 헌트의 책「짐승위에 탄 여자」을 번역하여 국내에 보급하였고, 그 외에도 「진정한 복음」,「참 복음과 거짓복음」, 「로버트 채프만: 사랑의 사도」를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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