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8 12:15 (목)
그대의 넘어짐은 성경 읽지 않고 청교도 책들만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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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넘어짐은 성경 읽지 않고 청교도 책들만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 정이철
  • 승인 2022.03.28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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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성우 목사(이후 정성우)의 <청교도 준비교리란 무엇인가>의 4장 “루터, 칼빈 그리고 멜랑히톤의 율법적 3용도의 동일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율법적 3용도’ 또는 ‘율법의 3용도’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여야 한다. 필자는 이전에 정성우의 ‘율법의 3용도’라는 말을 ‘율법의 1용도’, ‘율법의 2용도’, ‘율법의 3용도’ 가운데 마지막의 율법의 3용도, 즉 ‘율법의 제3 용도’를 뜻하는 것으로 알았다.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정성우가 말하는 율법의 3용도는 율법의 1,2,3 용도 전부를 의미하는 말이다.

4장에서 정성우의 핵심은 청교도들의 준비교리가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친 율법의 세 가지 용도 개념에서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정성우는 이렇게 말했다.

“율법의 3용도(율법의 기능)는 청교도들에게 ‘준비교리’로 발전하였다.” (정성우, 55)

정성우는 자신이 주장하는 청교도 준비교리(회심준비론)가 루터, 칼빈, 멜랑히톤 등의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친 율법의 용도에 대한 신학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주장이 잘못이면 루터, 칼등의 등의 종교개혁자들의 신학도 잘못된 것이라는 말이다.

먼저 율법의 세 가지 용도(3용도)가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자. 다음의 내용은 정성우가 조엘 비키&마크 존스의 책 <청교도 신학의 모든 것>의 내용을 인용함으로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는 내용들이다.

“율법의 첫 번째 용도는 시민적 용도이다. 이것은 국가 당국이 선을 상주고 악을 처벌하는데 율법이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성우, 52)

“율법의 두 번째 용도는 복음적 용도이다. 죄인들이 그들 자신의 의를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하도록 이끈다.” (정성우, 52)

“율법의 세 번째 용도는 교훈적, 규범적 용도이다. 이것은 신자들이 그들의 하나님과 구주를 기쁘시게 하는 길로 인도하는 교훈적인 ‘삶의 규칙’으로 작용한다.” (정성우, 53)
 

 

정성우가 이러한 말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복음보다 죄를 지적하는 율법을 선포하여 성령이 사람에게 죄에 대한 자각을 일으키게 만들어야 하고(영적각성), 죄를 자각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여 구원받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자신의 회심준비론(준비교리)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정성우는 회심준비론이 이단시비를 받고, 자신에 대한 헌의안이 합동 총회에 상정되는 것을 그에 대한 대책으로 이 책을 출판하였다. 그래서 정성우는 자신의 회심준비론이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친 율법의 3용도로부터 발전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구원을 위해 율법을 먼저 선포하여 죄의 각성이 일어나게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성경에 나오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이 정성우가 말한 그런 내용을 가르쳤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만일 성경에 그런 내용이 있다면, 그 다음에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친 ‘율법의 3용도’가 회심준지론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지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한다. 늘 신학자들의 이론으로부터 모든 근거를 찾아서 주장하는 정성우의 습관에 휘말리지 않도록 우리는 무엇이 근본인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정성우가 강조하는 율법은 구약시대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다. 율법의 중요성과 용도가 지금보다 더 강조되었던 구약시대에 과연 구원을 위해 먼저 율법에 기대거나 율법을 통해 구원을 얻어야 한다고 가르친 전례가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구약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율법을 지키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눈을 씻고 찾아보고,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고, 눈을 비비고 다시 찾아보아도 구원을 위해 먼저 율법을 지키라고 요구받은 사람의 사례를 구약 성경에서 찾을 수가 없다.
 

사례 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구원

아브라함이 구원을 받는 과정에서 율법의 기능을 통해 먼저 죄에 대한 자각 단계를 거치게 하셨는가? 전혀 아니다. 아브라함은 아직 율법을 알지 못하던 시대의 사람이고, 그는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롬 4:2,3)
 

사례 2> 이스라엘 민족 교회

율법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시내산에 도달했을 때 모세를 통해 왔다. 정성우의 회심준비론에 의하면,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은 시내산 시점부터 일어나야 한다. 율법의 기능으로 죄를 자각해야 하나님이 구원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때 구원을, 홍해를 건널 때 세례를, 광야에서 떡과 생수를 마심으로 구원을 확인하는 성찬을 받았다고 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전 10:1-4)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애굽에서 구원해 낸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영원히 자기의 백성 삼기로, 그리고 구원 받은 이스라엘은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기로 한 언약체결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시내산에 주어진 율법은 하나님 백성되어 하나님만 섬기기로 언약한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는 '언약의 지침' 또는 '언약 백성의 삶의 원칙'이었다.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출 24:6-8)

훗날의 그리스도의 예표였던 모세의 중재하에 하나님은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이스라엘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로 언약하였다. 그 증거로 모세가 양편에 피를 뿌림으로 양측이 생명을 걸고 언약을 체결하였다.

그 후 셀수없는 많은 율법들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다. 율법은 처음부터 구원의 수단이 아니었다. 구원받은 자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바르게 살도록 가르치는 언약 백성의 신앙과 삶의 원칙이었던 것이다.

지금 이 진리가 정성우에 의해 뒤틀어지고 있다. 율법이 구원을 일으키기 위한 사전 작업, 즉 죄의 자각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수단이라고 왜곡되고 있다. 정성우는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과 진리를 왜곡한다. 하나님을 힘써 믿으나, 하나님에 대한 내용을 바꾸어 믿는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이다 (계 19:20).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짐승의 표’(계 14:9-11)는 하나님을 믿으나 사실 교회와 복음을 왜곡하는 ‘짐승’(계 13:1, 11)으로부터 나오는 거짓 신앙을 전파하는 거짓 선지자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계 19:20)의 영적인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사례 3> 기생 라합의 구원

기생 라합이 죄를 자각시키는 율법의 기능이 먼저 실행된 후 하나님을 믿어 구원을 받았는가? 성경은 기생 라합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구원을 얻었다고 한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히 11:31)

대체 기생으로 살았던 여인이 언제 죄를 자각하게 만드는 율법을 공부하고 지키면서 구원을 받은 준비를 했었는가? 하나님이 라합에게 자기를 믿게 하시는 은혜를 주셨고, 하나님을 믿은 라합이 자기의 생사를 걸고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숨겨 살렸다.

구약성경에서 율법이 사람의 구원을 위해 먼저 중요한 역할(죄 자각)을 했던 사례를 찾을 수 없다. 그런데 루터와 칼빈 등의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친 율법의 1,2,3 용도를 악용하면서 율법이 구원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고 정성우는 왜곡한다. 

율법의 1용도부터 100 용도가지, 모든 율법은 이미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을 섬기기로 언약한 이스라엘 나라 사람들하고만 연관된 것이 아니었나? 하나님의 율법이 선을 장려하고 악을 징계한다는 율법의 1용도가 하나님의 자녀 이스라엘 나라에 밖에서 통했던 적이 있었나? 다곤 신을 섬겼던 블레셋 나라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그러한 역할을 했었나?

죄인들이 자기의 의를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만드는 율법의 2용도가 하나님의 자녀 이스라엘 나라 밖에서 통한 적이 있었나? 앗수르 사람들에게서 율법의 2용도가 작용했었나?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게 만드는 율법의 3용도가 하나님의 자녀 이스라엘 나라 밖에서 통했던 적이 있었나? 바벨론 국민들에게서 율법의 3용도가 먹혔었나?

나는 정성우가 구약을 읽었는지 의심된다. 하물며 신약시대에 사람의 구원을 위해 율법이 죄를 자각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만드는 사전 작업을 한다는 정성우의 주장은 더욱 어설프다. 신약 성경은 구원을 위해 먼저 율법의 기능을 이야기하는 정성우 같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갈 3:11)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갈 3:21)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갈 3:25)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히 7:19)

신약의 성도에게 율법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설명하는데 매우 유익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율법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구원 주시는 것과 직접 관련이 없고 오직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이 일어난다고 사도 바울은 가르쳤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구원을 위해 항상 복음을 전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만일 바울이 율법을 먼저 전하여 사람들에게서 죄의 자각이 일어나게 만들려고 시도했다면, 율법에 미친 유대인들에게 그렇게 미움을 받고 심한 폭행을 당했을까? 그런데 사도 바울도 사람들에게 율법을 이용하여 가르칠 때가 분명히 있었다.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행 28:23)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풍성하게 설명하여 이미 구원 받은 사람들의 신앙을 강화시키려고 할 때에 사도 바울은 모세의 율법을 이용하여 복음을 설명했다. 물론 사도가 구원 이전 단계와 이후 단계를 칼로 자르듯이 구분하여 율법을 사용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성우가 말하는 사람에게 죄를 자각하게 만든다는 율법의 기능을 이용하기 위해 먼저 율법을 전파하는 일은 사도 바울의 신학과 선교에서 전혀 찾을 수 없다.
 

 

구원을 주는 복음과 율법의 관계에 대한 서철원 박사의 말을 들어보자.

“사람으로 회개하게 하려면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복음을 선포하므로 자기가 하나님 앞에 큰 죄인인 줄을 깨닫고 회개하여 믿고 의에 이른다 (롬 4:13-16). 율법은 이미 믿는 자들에게 죄를 알게 하고 피하게 하기 위해서 선포된다.” (교회론, 98)

“복음선포를 들은 사람들에게 성령이 역사하셔서 거듭나게 하신다. 거듭남과 동시적으로 성령의 권면을 따라 주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고백을 하게 된다. 믿음고백과 함께 회개한다. 믿음고백과 회개는 언제든지 같이 가기 때문이다.” (구원론, 66)

청교도 준비교리(회심준비론)가 종교개혁자들의 율법의 1,2,3 용도에서 출발하여 발전되었다는 정성우의 말에 속지 말자! 종교개혁자들이 율법에 대해 뭔 소리를 했던지간에 성경이 우선이다. 그렇다고 종교개혁자들이 정말 정성우가 말하는 사상을 가졌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정성우의 논리에 휘말리지 말자는 것이다. 정성우의 문제는 성경을 읽지 않고 청교도 신학 책들을 많이 보았다는 것이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현재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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