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6 15:32 (월)
능동순종 고집하며 성경적 칭의 신학에 도전하는 청교도 개혁주의
상태바
능동순종 고집하며 성경적 칭의 신학에 도전하는 청교도 개혁주의
  • 정이철
  • 승인 2022.03.10 12: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재성 교수(이후 김재성)는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 조항들을 완벽하게 실천하여 얻으신 의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는 거짓 신학에 깊이 빠져있다. 그래서 합동 이대위 조사 대상이 되었다. 능동순종 교리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자 김재성은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주장하기 위해 정대운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2021년)을 출판하였다. 이 책으로 인해 김재성은 큰 낭패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오늘은 이 책의 941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의를 실천하는 기준이 율법 안에서 제시되었기에 종교개혁자들은 율법의 기능들을 강조하였다 ... (중략). 칼빈은 이것을 받아들여서 구약의 율법들이 감당해온 기능들 중에서 ‘제3용법’ 지속적으로 수행한다고 해석했다. 율법의 제3용법이란, 감사의 규범, 혹은 복음에 대한 반응의 용도이다. 죄인들에게 율법이 선포되면, 성령이 율법을 사용해서 중생케 하고, 회개하게 만든다. 기독신자의 생활 속에서 율법은 지속적으로 죄악된 욕망들에 대한 권징을 하며, 매일 회개를 촉구하고, 죄악된 미혹과 함께 날마다 씨름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루터에게는 율법이 매우 부정적인 기능만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칼빈은 매우 다르게 율법의 긍정적인 기능을 강조하였다.” (김재성, 94)

김재성은 의를 실천하는 기준이 율법 안에서 제시되었다고 했다. 율법 조항들을 실천하는 것이 곧 의를 얻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김재성은 종교개혁자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의를 얻는 길이므로 율법의 기능들을 강조하였다고 했다.

의를 실천하는 기준이 율법 안에서 제시되었다는 내용은 한편으로 맞고, 또 한편으로 틀리다.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더 누리게 하는 의 또는 사람의 윤리적인 의를 의미한다면 맞고, 영생을 얻기 위한 의를 의미한다면 틀리다. 성경은 죄인으로 태어난 사람에게 영생을 주는 의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것 뿐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빌 3:4-6)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 3:9)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율법의 의가 넘쳤으나 그것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으므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의만 자랑했다. 율법의 의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신학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칼빈은 만일 완전한 율법준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율법을 공경하지 않거나 그 훌륭한 우월성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우리의 의지가 율법에 순종할 태세가 완전히 준비되어 있으면 율법을 알기만 해도 구원을 얻기에 충분할 것이다.” (기독교강요, 2.7.7)

칼빈이 만일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정말 믿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칼빈이 그런 뜻으로 한 말이면, 율법에 대한 다음의 성경의 가르침과 칼빈의 율법에 대한 신학은 달랐다.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갈 3:21)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 2:21)

만일 율법을 완전하게 지킴으로 구원이 가능하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우리에게 율법을 더 잘 지킬 수 있는 비결을 가르치셨을 것이다. 신약의 사도들과 제자들은 한결 같이 율법 준수의 의로는 구원이 불가능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로 구원을 얻는다고 처음부터 전파하였다.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행 13:39)

그렇다면 사람이 율법을 지킴으로 얻을 수 있는 의는 없는 것인가? 율법을 지키는 사람의 삶을 하나님께서 무가치하게 보시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는 일이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일이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여 그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그를 섬길찌니라.” (수 22:5)

여호수아는 죽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율법준수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은혜로 구원받은 구약의 사람들이 이후 율법을 준수하면서 살면 하나님이 은혜와 복을 더하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이었고, 하나님 백성다운 삶이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 18:5)

많은 성경학자들이 이 말씀의 해석에서 크게 실수하였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는 사람에게 영생의 의를 주신다는 것으로 오판하였다.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를 그렇게 해석하였다. 레위기 18장은 은혜로 가나안 땅을 차지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전의 가나안 거민들의 죄악을 답습하지 말도록 경고하는 내용이다. 동성애, 짐승과 성행위, 친족과 성행위 등 입에 담지 못할 그 이전 거민들의 죄악을 답습하면, 그들에게 내리셨던 저주와 심판을 내리시지 않고 은혜를 계속 더 하신다는 내용이다.

“모세가 기록하여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롬 10:5)

로마서 10장 5절은 레위기 18장 5절을 인용한 내용이다. 사도 바울도 율법을 완전하게 준수하는 사람에게 영생의 의(자격)가 주어진다고 가르친 것처럼 보이는 말씀이다. 이 말씀에 대해 잘못 해석하면서 처음부터 기독교 속에 율법준수에 근거하는 칭의 신학이 있었던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김재성을 비롯한 능동순종 교리 주장자들은 보통 사람들이 못하는 완전한 율법 준수를 그리스도께서 대신 성공하여 율법의 의를 얻었고, 그것으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0장 4-5절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들이 의에 이르도록 하시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고 하셨다.” (김재성, 91)

“로마서 전체를 통해서 바울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의로움’이라는 것은 율법에 대해서 순종하여만 얻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순종하심으로 율법을 성취하셨다.” (김재성, 92)

김재성의 칭의 신학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이미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 율법준수를 잘함으로 얻는 의, 즉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더 누리게 하는 의를 '영생의 자격이 되는 의'라고 둘러치기 하는 것이다.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율법준수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더 얻는 사람은 불신자가 아니라 이미 구원을 얻은 성도라는 사실이다. 구약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불신자(이방인)에게 율법준수를 시키시고, 그 결과에 근거하여 영생의 자격을 인정하신 사례가 없다. 구약에서 율법준수를 요구받은 사람들은 전부 하나님을 믿어 구원받은 성도들이었다. 그들이 율법준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더 누렸다. 반대로 율법준수에 반하는 삶을 살았을 때에는 징계를 받았다.

김재성을 비롯한 능동순종 주장자들의 신학은 너무도 무개념이다. 율법을 지켜서 영생의 의를 얻을 수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대체 성경 어디에 있는가? 김재성과 그들이 가장 심각하게 악용하는 로마서 10장 5절, “모세가 기록하여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도 율법준수로 영생의 의(자격)를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다. 로마서 10장의 핵심은 행위로 말미암는 의로 구원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사도 바울의 결론은 9절,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이다.

김재성은 이와 같은 성경의 핵심 진리를 모르고 있다. 칼빈에 대해서도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한다. 김재성의 말을 다시 보자.

“의를 실천하는 기준이 율법 안에서 제시되었기에 종교개혁자들은 율법의 기능들을 강조하였다 ... (중략). 칼빈은 이것을 받아들여서 구약의 율법들이 감당해온 기능들 중에서 ‘제3용법’ 지속적으로 수행한다고 해석했다.” (김재성, 94)

율법 속에 의를 실천하는 기준이 있다는 것은 곧 율법을 실첨함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도 의를 얻게 하는 율법의 기능을 강조했다고 한다. 대체 어느 종교개혁자가 율법을 실천함으로 의를 얻는다고 가르쳤는가?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김재성은 칼빈이 율법의 제3용법이라는 명칭 하에 그런 내용을 가르쳤다고 한다. 사실이 아니다. 김재성은 칼빈을 왜곡하고 있다.

“율법의 제3용법이란, 감사의 규범, 혹은 복음에 대한 반응의 용도이다. 죄인들에게 율법이 선포되면, 성령이 율법을 사용해서 중생케 하고, 회개하게 만든다. 기독신자의 생활 속에서 율법은 지속적으로 죄악된 욕망들에 대한 권징을 하며, 매일 회개를 촉구하고, 죄악된 미혹과 함께 날마다 씨름을 제공한다.” (김재성, 94)

김재성은 칼빈이 율법의 제3 용법이라는 명칭 하에 율법선포로 사람에게 중생과 회개를 유도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율법의 제3용법에 대해 칼빈이 가르친 내용이 무엇인지 직접 확인해 보자. 칼빈은 기독교강요 2권 7장 12절에서 율법의 제3 용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2. 믿는 자라 할지라도 율법이 필요하다(소제목). 셋째 용도는 가장 중요한 것이며, 율법의 본래의 목적에 더욱 가까운 것이다. 이 용도는 하나님의 영이 이미 그 영혼 속에 사시며 주관하시는 신자들 사이에서 발견된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율법이 기록되고 새겨져 있지만 (렘 31:33; 히 10:16), 다시 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영의 감동과 격려로 하나님께 복종하겠다는 열심이 있지만, 역시 두 가지 방면에서 율법의 혜택을 입는다.” (기독교강요 2.7.12)

칼빈은 이미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 받은 신자와 구약의 율법의 관계를 율법의 제3 용도라고 가르쳤다. 구약의 율법이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신자에게 아직 남은 죄를 단순하게 지적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 칼빈이 말하는 율법의 제3용도이다. 그런데 김재성은 율법이 사람을 중생시키고 회개하게 만들고 죄악된 욕망을 다스리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칼빈이 가르쳤다고 왜곡했다.

중생의 역사와 회개와 죄와 싸우도록 인도하는 것은 복음(말씀)과 성령의 사역이다. 율법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과 성령의 역사로 구약의 율법이 요구하고 지시하는 것들이 신약의 성도 안에서 더 아름답게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 (in the new way of the Spiri)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롬 7:6)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롬 8: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2)

김재성은 능동순종을 주장하다가 자신의 신학의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김재성은 칭의의 원리를 모르는 엉터리 개혁신학자이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현재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