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기도 광주에서 좋은가족 교회와 유니스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권창규 목사(이후 권창규)의 박사학위 논문의 출판물 <자식농사 주 안에서 마음대로 된다>의 5장의 "1) ‘온전한 복음-값싼 복음을 물리쳐라"를 살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권창규의 신앙과 사상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는 죄용서의 복음 위에 서 있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죄용서 복음을 붙들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인간의 행위에 기초하는 거짓 구원론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지라도 믿음으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인간의 후속적인 구원에 합당한 행위가 충족되어야만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교리를 추종하게 됩니다. 권창규에게는 그것이 바로 유대인들의 율법 교육입니다.

권창규가 ‘온전한 복음’에 대해서 기술하는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과연 권창규가 말하는 온전한 복음은 무엇일까요?

“리챠드 백스터는 ‘나는 회심했다’는 자기 속임수를 경계하라고 말한다. 또한 마태복음 21장 31절의 ‘세리와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는 말씀으로 큰 죄인들보다 지도자들 자신이 회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미 회심한 것으로 스스로를 속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권창규, 94-95)

권창규가 청교도 리차드 백스터의 말을 인용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의 논리와 이론을 주장하기 위해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의 말이나 학설을 인용하기 때문입니다. 백스터는 율법을 행하라고 강조하는 유대인 교육과 상당히 결이 같았던 사람었습니다. 유대인 교육의 율법주의는 종교개혁의 핵심을 대적하는 이단사상(운동)인데, 라챠드 백스터 또한 그런 부류였습니다. 

백스터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칭의(구원)는 1차적인 것에 불과하고 죽음 이후에 2차적 칭의 심판이 남아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음으로 1차적 칭의를 얻었을지라도 이후 얼마나 철저하게 회개하고 순종하였는지를 살펴보신다고 했습니다. 그것에 근거하여 2차적 칭의 심판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때 불합격되어 다시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백스터의 구원론을 행위구원론, 성화구원론, 유보적 칭의론, 율법주의 구원론, 로마교회 구원론 ... 등 다양한 용어로 부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백스터의 구원론과 권창규의 유대인 교육이 실질적으로 같은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핵심이고 종교개혁의 핵심인 이신칭의를 파괴하는 이단사상입니다. 사람들은 신천지 등 비윤리적 일탈이 심각한 집단에게만 이단이라는 용어를 쓰려고  하고,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신학의 차이'라고 좋게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단 개념의 본질은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에 대한 신앙에서 우리를 이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스터의 구원론은 이단사상입니다. 

이신칭의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완전한 칭의와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는 성경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유대인 교육에 올인하고 있는 권창규에게는 이신칭의 신앙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적 이신칭의 개념이 권창규에게 있다면, 그가 더 이상 유대인 율법 교육을 테마로 하는 대안학교 사업을 할 수 없습니다. 권창규가 자신의 복음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면서 청교도 백스터의 말을 인용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교사와 부모가 부족한 복음에 젖어있거나 변질된 복음을 갖고 있다면 학생이나 자녀들도 동일하게 온전하게 못한 복음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복음은 회심 없는 그리스도인을 양산하고, 나아가 도덕과 윤리, 헌신이 없는 기독교로 전락시킨다. 결국 기독교의 타락을 가져온다.” (권창규, 95)

변질된 복음에 대한 권창규의 말은 일반적으로 맞는 내용이지만,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과정을 ‘회심’이라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려해야 합니다. 구원받는 과정을 회심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을 얻는 것에 대한 인간의 이성의 기능을 비성경적으로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구원을 회심 개념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구원받기 전에 사람이 자신의 죄를 모두 깨달아야 하고, 스스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믿음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구원을 얻은 후에는 율법을 완전하게 실천하는 삶을 살아서 계속 구원을 유지해야 한다고 합니다. 한번 얻은 구원을 영원한 구원이라고 믿는 신앙에 대해서는 이단사상과 비슷한 '구원파적인 믿음'이라고 합니다.

주로 율법주의자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나타나는데, 율법을 중시하는 유대인 교육을 강조하는 권창규와 상당히 연관성이 있습니다. 도덕, 윤리, 헌신이 없는 타락한 기독교가 나타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교인은 많아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희소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많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성령이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는 은혜를 입어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열매, 즉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입니다.

도덕, 윤리, 헌신은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에게서 반드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장기적으로 볼때, 그 열매가 없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죄용서를 적용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구원 받으면 반드시 이전과 다른 새 사람이 됩니다. 

권창규가 ‘도덕, 윤리, 헌신이 없는 거짓 기독교’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유대인 교육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죄용서 복음을 추구해야 합니다. 유대인 교육이 중시하는 율법이 지켜지는 삶은 이제 말씀과 믿음과 성령으로 이루어집니다. 지금도 구약의 방식으로 율법을 교육하면 마귀가 크게 힘을 얻어 영혼들을 집어 삼키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고, 자신이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창조주의 말씀을 무시함으로써 결국 죄 아래 거하게 된다. 아담과 하와 뿐 아니라 지금의 모든 인생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려한다. 인생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고 자기를 창조하신 주님의 뜻을 버리며 자기 뜻대로 살고자 한다.” (권창규, 97)

권창규가 죄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인데, 얼핏 보면 틀린 내용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내용이 없습니다. 인간의 죄의 본질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거역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찬송하는 백성과 나라를 가지기 원하시어 사람과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우주는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살아야 할 아담과 그 후손들의 예배의 무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아담은 피조 세계가 하나님을 예배하게 만드는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으로, 피조물들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관리하고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상을 원했습니다. 마귀의 유혹을 즐겁게 듣고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과 왕이 되려고 선악과를 범했습니다.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참혹한 반역죄를 범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담과 함께 하나님께 범한 죄의 본질입니다. 이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아담과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형벌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이 죄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어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불하심으로 우리에게 죄가 없는 것처럼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권창규에게 인간의 죄는 단지 하나님의 명령,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그 명령을 거역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반역죄가 아니고 피조물이 인정해야 할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한 것입니다. 피조물이 감히 창조주가 세운 질서를 따르지 않고 파괴했다는 것입니다.  

“윤리와 도덕의 죄가 아니라 근본적인 죄,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는 교만이 죄이다. 또한 질서를 깨뜨리는 것 역시 죄이다. 질서를 깨뜨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인간은 피조물인데 피조물이 질서를 깨고 자신이 창조주처럼 행세하려는 것을 말한다.” (권창규, 96-97)

성경에 의하면, 우리의 죄의 핵심은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지어진 우리가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고 스스로 하나님 자리에 앉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죄로 인해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죽었는데,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들의 영원한 죽음을 기뻐하시지 않으시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어 대신 속죄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건져 다시 자기 백성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권창규에게 아담 안에서 우리의 죄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 명령한 창조주의 권위를 무시한 것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가 세운 질서를 파괴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권창규의 신앙에서 구원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피조물이 다시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창조주의 질서를 잘 따르고 지키는 것이겠지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철저히 순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권창규의 유대인 교육의 핵심입니다. 

물론 권창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권창규에게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가 아담 안에서 하나님의 권위에 순복하지 않고 창주주의 질서를 무시한 죗값을 그리스도가 대신 받는 것이었습니다. 권창규가 말하는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의 반역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 칭의, 구원의 증거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의 종결을 의미한다. 또한 부활은 사망을 이기심을 보여주는 기쁜 소식 즉 복음이다 ...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복음이다. 성경대로 죽고 부활하신 역사적인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오직 구원의 길은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은혜이다.” (권창규, 97-98)

권창규는 구원이 우리의 반역죄에 대한 형벌을 그리스도가 대신 받아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이 완성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을지라도 더 중요한 것이 남습니다. 이후 하나님의 말씀(율법)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구원이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은혜’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창조주의 질서를 파괴한 죄에 대한 용서를 받고, 그 이후 말씀(율법)에 순종함으로서 영생으로 들어가는 자격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의 자격이 생기는 것입니다. 권창규의 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구원을 위해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고, 또 하나는 창조주의 질서를 준수하는 삶의 열매의 증거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권창규의 다음의 말을 주의하여 읽어 보십시오.

“죄에서 건져져서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밖에 없다. 이 예수님을 입술로만이 아니라 인격적 관계 안에서 마음으로 믿고 삶의 열매로 믿음의 증거가 나타나야 한다.” (권창규, 98)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아담 안에서 하나님께 범한 질서파괴의 죄를 용서받고, 이후 삶의 열매로 믿음을 증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권창규가 말하는 ‘믿음을 증거하는 삶의 열매’란 당연히 율법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권창규는 율법을 중시하는 유대인 교육을 시행하는 것입니다. 

권창규의 구원론은 심각한 이단사상입니다. 죄용서를 위해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죄용서가 아닙니다. 권창규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아담의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한 죄, 그리고 창조주의 질서를 파괴한 죄를 해소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비록 거짓일라도 권창규는 그것으로 구원이 완성된다고 하지도 않습니다. 이후 삶의 열매로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증거가 나타나야 한다고 합니다. 과연 무엇으로 그 증거라는 것을 판단할까요? 율법준수하는 것입니다. 율법준수가 구원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권창규의 유대인 교육을 테마로 삼는 대안교육은 사탄의 작품이라는 결론을 피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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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