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성경에서 유대인들은 부정적으로 언급될까? 성경에서 유대인들이 직접 거명되는 내용을 찾아보았다.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살전 2:15,16)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선지자들을 죽였고,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이 영혼들을 구원하시는 일을 직접 대적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유대인들에게 항상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AD 70년 경에 예루살렘이 로마 군대에 의해 함락되어 파괴되었을 때 죽거나 크게 상한 사람이 대략 100만이었다. 그리고 2차 대전 중에 히틀러에 의해 약 600백 만이 죽었다.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약 400백 만 정도가 죽었다고 한다.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에게 닥친 비극은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다. 유대인들이 당한 그런 불행은 사도 바울이 이미 말한 것, 즉 유대인들이 주 예수와 그의 종들을 죽였기 때문이 아닐까? 유대인들은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못하게 하나님을 대적하였고, 그래서 자기의 죄를 스스로 가득 채웠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머물러 있다는 사도 바울은 말했다. 유대인들이 당한 엄청난 비극은 사도 바울의 말과 무관할까? 

초대교회 당시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대적한 세력들 가운데 가장 악날했던 자들은 바로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고후 11:24, 25)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39대씩 맞는 매질을 다섯 번이나 당했고, 어떤 곳에서는 유대인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서 죽은 것 같이 되기도 했다. 대체 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토록 미워했을까? 다음의 성경의 말씀들에 의하면, 그때 유대인들은 사탄에 강하게 붙들려 있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계 2: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계 3:9)

그런데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적하고 그리스도의 종들을 핍박하던 당시 유대인들은 전혀 사탄을 위한다고 표방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까지 바치려는 진지한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강한 군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의 복음을 말살하려고 발악하였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살전 2:15,16)

유대인들이 결국 하나님에게서 심판받게 만든 사탄의 그 미혹이 지금 한국 교회 속에 있다. 유대인 교육을 테마로 삼고 대안교육 사업하는 사람을 보았다. 그리스도가 대신 율법을 지켜서 우리에게 칭의를 주었고 구원 받은 후에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그리스도처럼 율법을 잘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청교도들의 율법주의 목회를 하는 사람을 보았다.

이미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가 머리 위에서 대기하고 있는 불행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보내는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의 작정대로 저주받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구약 시대에도 구원을 위해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가르침이 없었는데, 하물며 신약 시대에 구원이 율법과 연관되겠는가? 구약 시대에도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율법을 지키는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였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사람이 되어 율법을 못 지키는 사람들이 받아야 할 대가를 친히 지불하신 후,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셨다. 성령으로 새로워진 심령으로 이전과 달리 변화된 삶을 살게 하심으로 율법을 지키라는 구약의 요구보다 더 근본적이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하셨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겔 11:19)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 36:26)

이미 그리스도가 오시어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신 성령까지 받은 사람들에게 다시 율법을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령까지 받은 사람들에게 율법을 지키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요구하라고 성경 어디에 나오는가? 유대인 교육과 율법주의 목회에 헌신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갉아서 먹는 마구니의 고양이 아닌가?

구약의 유대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초래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율법으로 대적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율법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약화시키면 그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어느 정도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스스로 초래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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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