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신학회 -박상봉 교수 논문 소감 3

 

합신 박상봉 교수(이후 박상봉, 역사신학)가 ‘정암신학회’(21년 11월 16일)에서 발표한 논문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의 전가: 초기 종교개혁자들의 견해 – 루터, 츠빙글리, 칼빈을 중심으로”를 살펴보는 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박상봉이 종교개혁자들의 신학 속에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개념이 이미 존재했다는 자신의 잘못된 주장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성취하신 것과 관련된 능동적 순종은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율법의 요구를 친히 실행하셨음을 강조한 것이며,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것과 관련된 수동적 순종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율법의 저주를 친히 받으셨음을 강조한 것이다.” (박상봉)

박상봉은 능동순종 신학 개념을 잘 모르거나, 또는 일부로 모호하게 말함으로 독자들의 혼선을 유도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능동적 순종은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율법의 요구를 친히 실행하셨음을 강조한 것’이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능동순종 개념에 맞는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의 요구를 친히 실행하셨다는 표현은 죄인은 반드시 죽음으로 죗값을 갚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율법의 의롭고 정당한 요구를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능동순종 주장자들이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저는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능동순종을 반대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 조항들을 사람의 입장에서 완전하게 지키시어 율법이 주는 의를 얻었고, 그것으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 천국에 들어가게 했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능동순종 개념의 핵심입니다.

박상봉이 하나님께 반역한 죄인은 반드시 죽음으로 죗값을 갚아야 한다는 율법의 정당한 요구를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목숨으로 대신 이행했다는 의미로 위의 말을 했다면, 그것은 능동순종 교리의 정확한 개념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물리쳐야 할 능동순종 교리는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 조항들을 완벽하게 실천함으로 우리를 위해 자기에게 없는 의(율법이 주는 의)를 얻었고, 그것이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가 의인되게 했다는 비성경적인 교리입니다.

박상봉이 종교개혁자들에게 이미 능동순종 사상이 있었다는 왜곡된 신학을 어떻게 풀어가는지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마틴 루터>

루터에게도 능동순종 개념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박상봉의 설명을 살펴보겠습니다. 

“루터는 칭의의 근거가 되는 믿음의 의를 수동적 의로 이해했다. 이 수동적 의는 인간이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박상봉)

“결론적으로, 루터가 말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친히 하신다는 의미이다.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에 근거한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이 제공하신다.“ (박상봉)

이런 내용은 루터의 이신칭의 신학에 대한 내용입니다. 루터가 이해하는 이신칭의의 원리, 즉 사람의 공로가 전혀 개입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에 대한 루터의 이해를 설명하는 내용입이다. 루터는 칭의를 얻는 과정에 사람의 공로가 0.1도 개입되지 않고 오직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칭의를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믿음의 의를 수동적 의라고 했습니다.

박상봉은 루터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죄용서를, 모세의 율법 조항들을 준수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의 의(자격)를 만들어 주셨다고 설명하는 내용을 찾아서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면 종교개혁자들도 능동순종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내용이 나오는지 계속 보겠습니다.

“루터의 칭의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과 분리되어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 안에 죄가 잔존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의를 통해 우리는 의롭게 되고 죄에서 구원을 받는다.” (박상봉)

루터의 칭의론에 대한 박상봉의 이 말도 루터의 신학을 능동순종 개념과 억지로 연결시키려는 자신의 시도에 도움이 안되는 내용입니다. 루터의 칭의론이 그리스도의 대속사역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인격을 가지셨고, 죄와 무관하셨고, 완전히 의로우셨던 그리스도가 자신을 우리의 죗값으로 드리심으로 죄의 장벽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죄인이나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니 그리스도의 본래의 의가 우리의 것인 것처럼 인정됨으로 칭의가 일어났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능동순종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강조하는 내용을 박상봉이 말했습니다. 

박상봉이 루터에게 이미 능동순종 개념이 있었다고 주장하려면, 그리스도가 율법준수 또는 극기, 절제, 금욕 생활 등으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기에게 없는율법의 의를 획득하셨다고 말하거나 암시하는 루터의 말을 찾아야 합니다. 박상봉이 루터에 대해 한 말은 루터가 능동순종 개념을 가졌다기보다 오히려 그 반대를 말하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우리의 죗값으로 드리심으로 이루어진 죄용서가 곧 칭의라고 루터가 믿었음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루터는 단순히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만을 강조하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 말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의 개념이 포함된 하나님의 만족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으로 이해한 것이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율법의 순종과 관련된 능동적 순종과도 직접적으로 연관시켰다. 이는 곧 성육신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살면서 율법에 순종하는 삶을 사셨다는 것을 확인하여 준다.” (박상봉)

저나 능동순종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일반 사람들의 방식으로 율법을 지켰고, 그리고 그것으로 의를 얻었다는 비성경적인 주장을 거부할 뿐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도 간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신 것입니까? 그리스도에게 간음하고 싶은 죄악된 욕망이 있었던 것입니까? 그럼에도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간음죄 욕망과 싸워서 이기신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죄인으로 출생하신 것입니다. 우리와 동일한 죄인으로 출생했으나 초인적 능력과 힘으로 간음죄를 이겨내시어 의를 얻으신 것입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의 기독론은 필연적으로 '부처 그리스도론'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신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게는 간음하고 싶은 욕망이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의가 되시고자, 친히 율법의 모든 지시와 정신이 다 이루어진 완전하고 흠이 없는 사람으로 성육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육신자이신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의 의입니다. 그 분이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키심으로 간음죄를 피했고 그래서 의를 얻었다고 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처럼 간음의 성향을 타고 났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단지 우리보다 더 강한 정신의 소유자였고 매일 바늘로 허벅지를 찔러 피를 철철 흘리가시면서 간음의 욕구가 싸워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아담에게서 죄를 물려 받은 죄인으로 출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무죄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능동순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귀히 여기는 것 같으나 사실은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심각하게 욕보입니다. 그들의 신학이 마귀에게서 유래한 거짓 신학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다 지키셨습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우리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율법이 지적하는 죄와 무관한 사람으로 출생하셨습니다. 죄가 없으셨으므로 율법에 걸리는 일을 하시지도 않으시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의로우신 그리스도에게 하나님은 우리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지불하라는 명령을 내리셨고, 그리스도는 그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 런 분에게 감히 율법에 순종하여 율법의 의를 얻었느니 ... 하는 막말을 계속 하는 저 사람들에게 과연 하나님의 저주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키지 않았거나 순종하시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모든 것이 이루어진 사람으로 출생하셨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키는 순종으로 자신에게 없는 의를 얻었고, 그것으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는 사상은 마귀의 교리입니다. 박상봉이 언급한 루터에 대한 말 속에 루터도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었다는 사상을 가졌다고 인정할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루터는 이미 종교개혁 이전 1515년 11월부터 1516년 9월에까지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행한 『로마서 강의』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율법을 성취하셨고,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진노와 죽음을 감내하셨으며, 이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는 것을 분명 밝혔다.” (박상봉)

박상봉은 도움이 안되는 말이라도 많이 하면 자신의 주장이 성립되는 것으로 여기는 모양입니다. 이 말도 그리스도의 능동순종과는 관련이 없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성취하였다는 루터의 말은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 조항들을 완전하게 하나씩 실천하여 율법의 의를 얻었다는 내용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반역죄를 범한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죽음으로 죗값을 갚아야 한다는 율법의 의로운 요구를 그리스도가 자기의 몸으로 대신 감당하셨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박상봉은 ‘진노와 죽음을 감내하셨으며’라는 루터의 말을 언급하면서 그것이 율법의 성취를 말하는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 조항들을 지켜서 의를 얻었다는 능동순종 교리의 근거로 써먹을 수 없는 내용인데 어거지로 써먹은 것입니다. 박상봉에게 바른 신학을 이해하고 전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박상봉은 루터의 빌립보서 2:5-8절 해석을 소개하고 다음과 같이 자기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사람과 같이 되셔서 이 땅에서 행하신 모든 것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임을 알게 한다. 루터에 따르면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순종은 단순히 십자가 사건만이 아니다. 그는 성육신과 함께 이 땅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기까지 행하신 모든 사역이 우리의 구속을 위한 사역이라고 말하고 있다.” (박상봉)

안타깝게도 박상봉의 이 말도 자신의 능동순종 교리 주장에 해가 되는 내용입니다. 능동순종 개념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어리석은 내용을 박상봉이 그대로 따라하였습니다. 능동순종을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 그리스도가 십자가로만 우리를 구원했다고 믿는 사람이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스도는 평생의 순종의 삶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의 죗값을 대신 갚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그리스도는 완전하게 수행하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보다 비교할 수 없는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하셨으나 첫 아담과 달리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완전한 만족을 드리는 삶을 사셨습니다.

모든 멸시와 천대와 수치를 다 참으시면서 오직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수행하셨습니다. 성육신으로부터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하나님께서 실망하실 일을 한 번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것 뿐아니라 그의 삶 자체가 우리의 죄를 속하는 산 제사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36)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엡 5:2)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 조항들에 순종하여 자기에게 없는 의를 얻었고, 그것으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는 이단사상이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완전하게 속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고 또한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이 되라는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는 완벽한 삶을 살았고, 그것으로 우리를 구원했다고 가르칩니다.

능동순종 주장자들이 성경에 반하는 이단적인 가르침을 일삼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를 욕보이기를 멈추지 않으니, 그 죄가 어디로 갈까요? 그럴수록 자신들의 주장이 우스꽝스러워지는 것을 피하지 못합니다. 박상봉도 그렇습니다. 능동순종 주장에 해가 되는 내용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능동순종 교리를 고집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박상봉의 루터에 대한 내용을 더 볼 것이 없어 일찍 접습니다. 쯔빙글리와 칼빈에 대한 내용을 나중에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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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