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남 목사의 웨민 대요리 문답 강해 1

(임진남 목사가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해설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첫번째 시간입니다. 임진남 목사의 수고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큰 유익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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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문. 인간의 제일 되며 가장 높은 최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답. 인간의 제일 되며 가장 높은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롬11:36, 고전10:31, 시73:24-28, 요17-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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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라는 말은 존재하는 것에 대한 용도를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만한 용도가 있습니다. 인간도 여기에 해당 됩니다. 인간이 존재한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진화론자들은 우연이라고 하는 가설을 전제로 마치 무에서 유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연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학문은 진화론적 사고에 기반을 두고 가르칩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도 진화론적인 가치관입니다. 진화론적 가치관은 점점 발전하고 성장해야 한다고 하는 것을 선으로 판단하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을 살펴보면 진화론적인 사고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모든 피조물들은 어느 정도 자라다가 그 성장을 멈춥니다. 그러나 계속 자란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외적으로 계속 성장한다고 하면 그 사람을 온전한 인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어느 정도 성장한 다음에 인간이 갖는 보편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만약 모든 피조물들이 계속 진화론적인 사고를 통해 계속 성장하고 있다면 모든 피조물들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또한 진화론적인 사고와 가치관에서는 인간이 왜 존재하고 사는지에 대하여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인간은 성공하는 것을 제일 목적으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진화론적인 사고 아래에서 자란 인간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위한 최고의 목적을 가지고 살 수고 없습니다. 그런 목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참된 인간의 행복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거부하며 오히려 적대감을 갖습니다.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어리석은 인간은 자신들의 행복을 이 땅에서만 한정시키고 있습니다.

만약 이 땅에서 인간이 행복해 지거나, 행복을 누리고 있다면 그 시간이야 말로 너무나 짧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인간의 연수가 70이고 강건하면 80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그 축복에 비하면 이 시간은 너무나 짧을 뿐 아니라 눈 깜빡하는 것과 같은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하시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도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창조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반역한 죄로 인해 영원한 삶을 살지 못하고 죽음이라고 하는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오직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대로 살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고통과 질병과 죽음 앞에서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통과 질병과 죽음을 당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라고 묻는다면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고 말을 합니다. 그 말은 이 땅에서 인간은 진정으로 행복해 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상업화되어 있는 이 시대에 인간의 행복이 물질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속임수입니다.

물질의 부요함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계속 땅에서 나는 것을 모으면 행복해 진다고 하는 세속주의에 속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노력으로 그 일을 이루었다고 자랑해도 그것은 행복이 아닙니다. 잠시 자신의 성취감을 맛보는 것이지 그것이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성취감을 맛보았다고 하는 것을 행복으로 착각하는 이 시대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인간이 존재한다는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하여 말한다고 하는 것은 일부 종교인들의 편협적인 사고로 치부합니다. 인간은 부러진 나뭇잎 하나를 연결하여 생명을 유지시키지 못합니다. 인간 안에 수십조의 세포가 있는데 그 세포 하나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들에게 긍정적인 힘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이 피에 있다고 하셨는데 이 피 한 방울을 현대과학은 만들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우주를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교만한 인간들이 자신의 몸에 돌고 있는 피 한 방울을 만들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대면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문과 답에서는 기독교 안에 들어와 있는 유신진화론에 대해서도 부정합니다. 유신진화론도 인간이 긍정적인 힘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유신 진화론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대하여 진화론적인 사고를 부여하여 하나님의 창조능력을 부족한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의 피조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모양과 종류대로 부족함 없이 단번에 창조되었습니다. 원래부터 창조물에 하나님의 능력이 부여되어 존재한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족한 것이 채워지고 확장된 것이 아닙니다. 자연 진화론에 반하여 유신 진화론을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개혁신학자들이 이런 오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아더 핑크도 유신 진화론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개혁신학자들이 완전하다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루터와 칼빈도 그 당시 과학의 한계 때문에 지구가 자전하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유신 진화론을 통해 자연 진화론을 반박한다고 해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성경에 계시하고 있는 그대로 믿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는 이 말에 아주 강한 반감을 갖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가 그만큼 낮아지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르게 믿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바르게 알면 오히려 인간이 얼마나 위대하고 뛰어난 존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더라도 인간은 그 어떤 피조물보다 뛰어나고 위대한 것입니다. 더구나 죄로 인해 모든 인류가 죽음이라고 하는 심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인간을 다시 살리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을 보면 인간을 이렇게 높이 평가한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인본주의는 인간의 존엄을 본유적으로 봅니다. 본유적으로 본다는 것은 쉽게 말해 자연 발생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에 대하여 그렇게 탁월한 가치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의 존엄이 단돈 몇백 원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아니면 동물인 개, 고양이보다 못한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바로 인간의 존엄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는 인본주의 사상 때문입니다.

최근에 어느 TV프로그램에 “개는 훌륭하다”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개가 어떻게 훌륭한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인간만이 가장 탁월하고 훌륭한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인본주의 사상은 모든 피조물이 똑같습니다. 인간도 짐승도, 자연도 다 본유적으로 존엄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존재가 본유적인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진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인간의 존엄은 누군가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게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엄은 의존적입니다. 인본주의는 인간 스스로 존엄하다고 하는 것을 말하지만 성경은 인간의 존엄은 받은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인간의 존엄이 자연 발생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믿습니까? 아니면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고 믿습니까? 만약 전자라고 여긴다면 당신은 자신의 삶에 가장 우선되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인생을 살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제1문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만이 그 목적에 맞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참된 신앙이란 하나님을 온전하게 아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다고 하는 의미를 바르게 알지 못합니다. 안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내가 그 사람에 대하여 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몇 번 얼굴을 보고 만났기 때문에 안다고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때론 이보다 더 못한 경우들도 있습니다. 상대방은 나를 모르는데 내가 그 사람에 대하여 안다고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신적인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연만물을 보고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때도 그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자가 인간의 목적에 맞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직 성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을 알 때 인간은 가장 행복해 질 수 있고 최고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뛰어나고 위대한 삶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시작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 자는 당연히 인간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칼빈이 말한 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안다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바르게 아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교회는 이런 하나님의 참된 지식에 대하여 성도들에게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중세 로마교회가 타락한 이유는 바로 일반 성도들에게 성경의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은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교회가 성도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가르치지 않게 된다면 교회는 반드시 부패라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최고의 행복과 복을 영원토록 주십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서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내세에서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인해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할 것입니다.

제 1문과 답에서 우리는 현세에서만 인간의 참된 행복과 목적을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내세에서도 주어지는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이 포함된 문답입니다. 보통 소요리 문답이나 대요리 문답 그리고 개혁주의 신앙 고백서를 통해 성도들이 배울 때 간과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을 지상에서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원히 살아가는 내세에서도 인간의 목적은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구원받는다고 해서 어떤 신적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다고 해도 여전히 피조물로 우리는 존재합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지만 여전히 삼위일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존재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해지면 질수록 인간은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그 지식이 완전해 지면 피조물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영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는 지식도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완전합니다. 이것을 시편 기자가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다고 하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배워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옛날부터 사도들이 그리고 속사도와 교부들이 이후에는 종교개혁자들과 참 교사들로 하여금 계속 인간이 최고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려고 계속 가르치는 일을 하시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도들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 목사들은 당연히 하나님에 대하여 성도들이 바른 지식을 갖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오직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목사의 임무이고 이것을 배우는 것이 성도들의 의무입니다.

웨스터민스터 대․소요리문답에서 가장 먼저 이 질문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인간의 가장 우선되는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시작하여 인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지체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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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