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신학회 - 김병훈 교수의 논문 소감 1

 

지난 해 합동 총회가 1년 넘게 연구한 후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에 대한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최종 결론을 내리고, 그것을 합동의 신학적 입장으로 삼았습니다. 합동은 이 문제를 야기한 김병훈 교수(이후 김병훈)에 대해서는 소속 교단 합신이 자체적으로 처리하도록 권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김병훈은 합신의 ‘정암신학회’(2-21년 11월 16일)를 통해 여전히 능동순종 교리를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의 전가: 역사적 개관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라는 제목의 논문이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중요한 부분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최근에 한국 교회 안에 의롭다 함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순종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옳은가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이 논의는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에 의한 의만이 전가되며, 능동적 순종에 의한 의의 전가란 성경과 개혁신학의 본래적 ­ 이를테면 칼빈의 ­ 신학에 어긋난다는 주장으로 인하여 여러 모양으로 확장되고 있다.” (김병훈)

김병훈은 본질을 흐리고 있습니다. 마치 능동순종이 칼빈의 신학과 맞느냐 안 맞느냐의 문제인 것으로 축소하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의 본질은 김병훈이 구원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인정하느냐, 또는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을 위해 성경과 다른 구원론을 끝까지 고집하느냐 입니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칭의를 얻는 이유를 성경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그리스도가 자기의 몸과 생명으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셨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여기시고 동시에 의롭다고 선언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롬 3: 25,26)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엡 5:2)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시는 이유가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공로를 전가 받아서가 아니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의 장벽을 허무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시어 얻으신 의 때문에 우리가 의롭다하심을 얻는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은 수동적 순종이니 능동적 순종이니 하는 용어는 문론이고 그런 개념 조차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요구하신 순종은 죄인들이 예수님을 믿도록 만들기 위해 주어진 율법에 대한 순종이 아니었습니다. 죄인들이 감당해야 할 저주와 형벌을 대신 받으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요 1:29, 36)으로서의 순종을 하나님이 바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온전하게 받을 수 있는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 (엡 5:2)이 되라는 요구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왜곡하기를 여전히 주저하는 않는 김병훈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세의 율법에 순종하여 우리를 구원하라는 가르침이 있는 것처럼 고집부리고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에 대한 진리를 왜곡하기를 고집하면 결국 이단입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하여 죄인이 의롭다함을 받는 은혜가 주어진다는 교리는 종교개혁 신학의 핵심적인 토대이다.” (김병훈)

김병훈은 마치 종교개혁자들이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를 확립하기 위해 수고했던 것처럼 속이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핵심 논쟁은 칭의가 ‘믿음’ 때문인가, ‘믿음과 행위’ 때문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오직 믿음으로’ 칭의를 얻는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회복했습니다.

1500년대의 종교개혁 시대에는 그리스도를 믿으면 칭의가 주어지는 이유에 대해 깊은 논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당연히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매를 맞고 수치와 모욕을 당하시고 결국 죽으셨기 때문에 칭의를 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에게 칭의가 주어지는 구체적인 이유를 정립하려는 시도는 1600년대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에 완벽하게 순종하심으로 의롬다고 인정되었고, 그것이 믿는 사람에게 전가되어 의인을 생산한다는 비성경적인 능동순종 개념은 1600년 이후에 생겨났습니다. 그 전에는 전혀 그런 시도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개념과 1500년대의 종교개혁은 전적으로 무관합니다. 루터와 칼빈 등 1500년대의 저명한 종교개혁자들은 율법 앞에서 흠이 없고 의로우신 그리스도가 율법의 정죄 하에 신음하는 죄인들의 죗값, 즉 율법의 요구를 대신 받아서 죽으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믿는 자에게 죄용서와 칭의가 주어진다고 당연하게 믿고 가르쳤습니다. 1564년에 죽은 칼빈의 말을 보십시오.
 

“그리스도는 복종(순종)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는 이를 위해 평생 동안 복종(순종)을 실행하셨다(소제목). 그런데, 어떤 사람은 묻기를 그리스도는 어떻게 죄를 없애 버리며,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간격을 없애며, 의를 얻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하여 은혜와 친절을 품으시게 만드셨느냐고 한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일반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데 곧 그의 복종 생활 전체에 의하여 우리를 위해 이 일을 성취하셨다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2.16.5)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갚으라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철저하게 순종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가르쳤습니다. 종교개혁을 완성한 칼빈에게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에 순종하여 칭의를 만들어 냈다는 이단적인 사상이 전혀 없었습니다. 김병훈은 자신이 주장하는 이단적인 구원론(능동순종)이 마치 종교개혁자들의 핵심 사상인 것처럼 속이고 있습니다.
 

서철원 박사도 그리스도가 대신 죗값을 갚으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가르칩니다.  

"그는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아담의 불순종을 속상하여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만들었다 (5:17-19) 그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사망에서 돌이켜 생명 곧 영생에 이르렀다 (5:21). 하나님의 뜻을 순종함이 의이기 때문이다." (서철원, 그리스도론, 165)

 

“피스카토르는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만이 전가된 의라고 주장하면서 능동적 순종을 포함하는 그리스도의 순종 모두가 전가된다는 것을 반대하였다. 이러한 피스카토르의 주장은 널리 공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결과로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신학 토론 이 일어났다 ... (중략) 피스카토르의 견해에 대한 비판의 경계는 프랑스 개혁파 교회 안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김병훈)

“17세기 초 프랑스 개혁교회는 피스카토르의 주장에 대해 확실하게 거리를 두었다.” (김병훈)

피스카토르에 의해 능동순종에 대한 반대 주장이 표면화되고 촉발되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피스카토르는 잘못된 신학을 가진 사람이었고, 비성경적이 신앙 이해 안에서 능동순종 교리를 반대했던 사람입니다. 피스카토르는 우리 각 사람이 칭의를 얻기 위해서 율법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대표로 율법에 순종하신 것으로 칭의가 주어진다는 능동순종 교리에 반대했습니다. 이후에 등장한 웨슬리(안)와 비슷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비성경적인 능동순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능동순종을 반대하고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피스카토르 유형이라고 매도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김병훈도 같은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저와 서철원 박사님이 능동순종을 반대하는 이유는 우리 각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고 또한 율법을 실천함으로 칭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 친히 죄인의 의가 되어주시고자 죄를 지적하는 율법 앞에서 전혀 흠이 없고 완전하고 거룩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죄인들이 받아야 할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라는 하나님의 뜻에 평생 완전하게 순종하시어 자신을 우리의 죗값으로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이루어진 죄용서가 곧 우리의 칭의라고 믿습니다. 피스카토르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저와 서철원 박사님은 오직 성경대로 믿습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 2:14)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 2:13,14)
 

계속해서 김병훈의 핵심 주장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바로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의 전가 교리에 관한 논점의 핵심 사항 중의 하나는 죄인이 의롭다함을 받는 일이 오직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모든 순종’에 의한 것인가에 있다.” (김병훈)

그리스도가 순종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스도는 율법의 모든 정신과 요구가 완전하게 구현된 사람으로 성육신하셨습니다. 율법의 요구하는 모든 의와 거룩이 그리스도의 정신과 신앙과 인격에 완전하게 실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께서 오죽이나 율법에 순종을 잘하셨을까요? 단지 그 방식이 사람과 달랐을 뿐입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이나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게 사셨다고 보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단지 수동적 순종이니 능동적 순종이니 하는 쓸모 없는 구분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구원을 위한 의가 부족하였거나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전적으로 반대할 뿐입니다.

김병훈은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에 순종하여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자격, 의로움을 획득했다고 합니다. 일종의 부처 그리스도론입니다. 지상에서 노력하고, 수고하고, 훈련받고, 성숙해지심으로 완전한 구세주가 되시었다는 아주 못된 사상입니다.

율법순종이니, 금식이니, 기도이니 ... 하는 것 등으로 그리스도가 무엇을 얻어서 우리를 의롭게 만들었다는 사상은 이단사상입니다.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죄인들을 구원하시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완전하고 흠없는 사람’으로 성육신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의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불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였습니다.

“죄인이 의롭다 함을 받는 일이 오직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모든 순종’에 의한 것인가” (김병훈)

김병훈의 이 말은 그리스도가 십자가로 우리를 지옥에서 건졌고 율법순종으로 천국 영생의 자격(의로움)을 만드셨다는 거짓된 수동적 순종-능동적 순종 교리를 끝까지 주장하는 자세의 증거입니다.

“우리에게 전가되는 의가 그리스도의 ‘모든 순종’이라는 것이며, 마지막 하나는 전가되는 의가 비단 죄의 용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동적 의에 있다는 사항이다.” (김병훈)

여기서 김병훈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모든 순종’은 십자가의 수동적 순종과 율법에 대한 능동적 순종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로는 죄의 용서를 율법순종으로 천국 영생의 자격(의)를 우리에게 주었다고 하니다. 끝까지 성경에 반하는 구원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17세기 초 프랑스 개혁교회는 ... 우리에게 죄 사함과 더불어 영 생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순종은 죽음으로 뿐만 아니라 삶으로도 완벽하게 이루신 순종이라는 점을 확고히 하였다." (김병훈)

그리스도가 완전한 삶을 살았다는 것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무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지켜서 자기에게 없는 것, 죄로 죽은 자기 백성을 살려서 천국 영생을 누리게 하는 능력(의)를 얻었다는 주장을 부정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무죄하고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사람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하신 분이 자기 목숨을 우리의 죗값으로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로 드려서 죄용서와 칭의를 주셨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맺는 말

오늘 김병훈의 논문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의 전가: 역사적 개관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을 살펴보는 첫 번째 시간을 가졌습니다. 약 1/3을 살펴보았는데, 놀랍게도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직접적 인용은 단 한 줄도 없었습니다. 신학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보이신 자기의 뜻과 계획과 목적을 연구하여 교회에게 설명하고 가르쳐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도록 인도하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김병훈의 논문에서 성경이 뭐라고 말하는지에 대한 언급이나 해설은 단 한 줄도 없었습니다. 전부 이전 신학자들과 교회가 했던 일들에 대한 설명과 복습이었습니다. 교회의 신앙의 근거가 이전 교회들의 가르침인가요? 아니면 교황의 가르침인가요? 어찌 신학을 이렇게 전개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 몇 줄만 찾아서 읽고 외우고 생각하면 될 것인데, 성경을 어디에 쓰려고 이러시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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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