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기도 광주에서 좋은가족 교회와 유니스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권창규 목사(이후 권창규)의 위 영상 강의에 대한 소감을 말해 보겠습니다. 세 번 들었는데, 권창규의 핵심적인 강조 사항은 다음의 두 가지, 1)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 2)초대교회 때는 가정 예배가 강조되었고 풍성했는데, 기독교가 로마 중심의 기독교로 변형되면서 이 전통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내용입니다.

권창규가 실제로 말한 내용을 그대로 녹취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저의 신학적 소감을 말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계속 개혁을 해가지고, 어디까지 예수님 당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한 그 초대교회 모습까지 가야되는 거죠. 그럴려면요 우리가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가정에서 교육했는지, 교회에서는 어떻게 교육을 했는지, 구약의 성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지고 있었던 많은 믿음의 유산이 있단 말이예요. 최근에 어떤 한 분이 가정 예배를 제가 얘기하면서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의 가정 예배, 초대교회 성도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가정 예배 이걸 소개했어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아! 이게 유대인들의 가정 예배 아닙니까?’ 공통되어지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왜냐면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다 유대인들이니까.” (권창규)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성도들의 가정 교육의 전통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은 뚱딴지 같은 소리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도 가정 교육 또는 가정 예배가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의 가정 교육에 대해 알 수 있는 내용을 성경에서 그리 많이 찾을 수가 없습니다.

권창규는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나라의 신자들이 유대적 배경의 신앙을 가져야 성공하고 특히 자녀들이 바르게 교육되고 성장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감안하면 이 영상에서 권창규가 강조하려는 것은 유대교적 요소를 중시했던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신앙으로 우리가 돌아가야 한다는 것일 것입니다. 물론 예루살렘 교회 속에 유대교적 요소가 많았다는 권창규의 주장에 대해 우리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할 때, 그 핵심적인 의미는 우리를 죄에서 건지기 위해 자기 몸을 하나님께 속죄의 제물로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목숨까지도 포기하였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의 율법 중심의 가정 예배, 가정 교육을 회복하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권창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더 보도록 하지요.

“유대인들인 초대교회 성도들이 다 유대적 배경에서 가정 예배를 드렸단 말이예요. 근데 그 가정 예배가, 가정 예배 순서가 열 몇 가지가 되는데, 그 대부분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다 맞추어져 있어요. 근데 구약과 초대교회 성도들 빼고, 구약의 유대인들은 이것이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모르고, 구약적인 배경에서만 이걸 했어요. 그런데 이것이 누구를 가르키냐면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키고 있죠. 그러니까 이 가정 예배는 유대인들의 소위 말하는 샤밧(Sabbath) 이런 부분들이 이것이 이제는 탈바꿈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이 됐어요.” (권창규)

권창규가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두 유대적 배경에서 가정 예배를 드렸었다고 하는군요. 유대교적 배경에서 가정 예배를 드렸다는 것은, 그 조상들의 신앙 전통을 계승하면서 가정 예배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율법 교육을 중시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교 선생들의 어록인 탈무드도 중시했을 것이고, 구약의 절기들도 중시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아니라면 “유대적 배경에서 가정 예배를 드렸단 말이예요”라는 권창규의 말은 과연 무슨 뜻일까요?

“근데 그 가정 예배가, 가정 예배 순서가 열 몇 가지가 되는데” (권창규)

권창규는 예루살렘 초대교회 성도들의 가정 예배의 순서가 열 몇 가지였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아마 다른 자료들 속에서 발견되는 내용일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권창규가 자신의 유대교적 신앙회복 사상과 가정 교육을 전파하기 위해 성경을 이용하고 있고, 특히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신앙을 그럴싸하게 말하면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예루살렘과 다른 여러 지역의 교회들은 지금처럼 예배드리는 장소로서 단독 건물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으면 유대인들이 잡아가서 죽이거나 심각한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단독 건물을 장만하여 예배드린다는 것은 미련한 일이었고,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헌신된 신자의 가정에서 예배가 이루어졌습니다. 초대교회 상황과 관련된 성경 말씀들 속의 ‘가정’ 또는 ‘예배’라는 단어들은 지금 우리들이 생각하는 가정 예배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가정 예배, 또는 가정 교육이 없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있었을 것이나, 많은 사람들이 “초대교회의 신앙으로 돌아가자”고 말할 때, 그 핵심적인 의미는 초대교회의 가정 예배, 가정 교육을 회복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의 율법 준수, 탈무드 독서, 안식일과 절기들 준수 등 거짓된 유대교적 종교 전통을 버리고, 우리를 죄에서 건지기 위해 자기의 몸으로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는 신앙을 회복하자는 뜻입니다. 그 차원에서 예루살렘 초대교회 신앙을 회복하자고 말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권창규는 예루살렘의 초대교회 성도들이 유대적교 배경에서 가정 예배를 드렸는데, 그 귀한 전통이 이후 예루살렘에서 로마 중심의 기독교 시대가 전개되면서 다 사라지고 말았다는 엉뚱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권창규의 다음의 말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을(하나님의 유산) 기독교가 로마로 옮겨지면서 많은 것들이 다 사라졌어요. 여러분 대표적으로 4세기, 5세기, 6세기 지나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사제들 외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못하도록 했어요. 법적으로 금지시켰어요. 가정 예배를 없애 버렸어요. 초대교회는 가정 예배가 정말 풍성했는데, 가정 예배는 살아 있었는데, 여러분! 이것은 유대인의 것이 아니고 우리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진정한 유대인들인 우리의 것이예요. 외식주의 율법주의가 문제지,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유대인들에게 주신 모든 것들은 다 우리의 것이예요.” (권창규)

로마교회가 오직 사제들만 성경을 읽고 가르치도록 강제한 것으로 인해 성도들의 가정 예배가 무력화되었다는 권창규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교회가 사제들만 성경을 읽고 가르치게 함으로 초래된 가장 심각한 열매는 모든 신자들의 신앙이 성경에서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교황이 다스리는 로마교회의 비성경적인 사상과 교리들을 맹목적으로 추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로마교회가 모든 성도들의 손에서 성경을 빼앗아 버림으로 나타난 가장 중요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권창규는 로마교회가 오직 사제들만 성경을 읽고 가르치게 함으로 초대교회 성도들의 유대교적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 가정 예배와 가정 교육이 말살되었다는 엉뚱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주장과 논리를 위해 역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초대교회로, 예루살렘 초대교회로 그리고 신구약 성경에 66권에 근거한 믿음의 본질을 추구하는 일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구분이 제대로 안되면 우리는 뿌리가 없는 역사에서 뿌리가 없으면요, 제대로 된 무언가를 할 수가 없어요. 근데 그 뿌리를 절대로 로마로 가져가면 안됩니다. 유럽이 아닙니다. 미국이 아닙니다.” (권창규)

권창규는 우리가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뿌리가 로마의 교회가 아니고 미국의 교회도 아니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의 초대교회가 우리의 신앙의 뿌리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의 초대교회의 신앙이 곧 성경 66권의 신앙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루살렘의 초대교회의 신앙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권창규가 모르거나, 고의로 왜곡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신앙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 2:36-38)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면 의인이 되는 것으로 알고 강조하면서 살았습니다. 율법을 자기에게 적용하는 데에는 게을렀고 남에게 적용하는 데에는 매우 빨랐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새롭게 탄생한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들의 죄를 지적하는 율법의 요구를 대신 받으시고 죽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죄를 지적하는 율법의 요구대로 죽었으므로 그리스도를 믿으면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되고, 죄인의 신분에서 의인의 신분으로 변하고, 성령의 선물을 받아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게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권창규가 진정으로 예루살렘의 초대교회 신앙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의 죄용서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죽게 만든 구약의 율법을 지금도 여전히 구약의 방식으로 교육하고, 다른 유대적 전통들을 가르치는 일을 중단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죄용서 복음,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특징으로 회귀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기독교가 구약의 율법을 절대로 가르쳐서는 안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왜 죄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얻고 누리게 되는지 설명할 때 구약의 율법을 공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율법이 먼저 세상에 와서 죄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을 준비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은 스스로 자기의 죄를 해결할 수없다는 것을 율법을 통해 깨닫게 되었고, 율법의 요구대로 대신 저주 받고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게 만들었습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을 강제하는 율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 구약의 율법도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일 뿐입니다. 예전의 율법을 포함하여 성경의 모든 하나님의 말씀의 최종적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진리에서 벗어나서 여전히 구약의 율법을 영원한 기독교의 율법으로 믿는 차원에서 암송하도록 장려하고, 구약의 방식으로 율법을 준수하게 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동시에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고 ... 이러한 것들은 진정한 기독교 신앙에서 벗어난 것들입니다. 물론 구약의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들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방식이 구약 시대와 다릅니다. 십자가의 죄용서의 권세를 적용하는 성령의 사역으로 이루어집니다. 죄를 법으로 알고 사는 옛사람에서 벗어나 성령으로 변화된 새사람으로 사는 성도의 삶의 열매입니다. 구약 사람들의 방식으로 율법 준수하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거짓 선생들입니다.

하물며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설명하지도 못하는 권창규가 예수 그리스도의 죄용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을까요? 권창규는 첫 사람의 죄를 단지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자기 맘대로 행하는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죄는 자기 중심성을 말한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을 때 그때는 윤리와 도덕적인 범죄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하신 선악과를 따 먹는 문제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다 주셨고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만 따먹지 말라 하셨지만, 아담과 하와는 그 말씀에 불순종하여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한다. 이것을 죄라고 한다.” (권창규, <자식 농사 주 안에서 마음대로 된다>, 65)

피상적으로 맞는 말 같으나 원죄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되어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하나님과 언약한 아담이 하나님 섬김을 내팽개치고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반역한 것이 인간의 원죄입니다. 반역죄인이므로 하나님이 저주하시고 사형에 처하신 것입니다. 영원한 죽음에 처해진 죄인을 다시 살리는 방법은 하나님 자신이 사람이 되어 대신 죗값을 치르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죄용서 복음이 기독교의 핵심 사상이고 신앙입니다.

그러나 권창규에게서 그리스도의 죄용서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원죄를 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니, 그 결과 그리스도의 죄용서 복음에 도달하지를 못하였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사람에게 구원을 주는 수단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대신 죽으셔야만 사람에게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권창규는 이러한 진리를 가르치지 못합니다.

권창규는 예루살렘 초대교회 신앙이 우리의 뿌리라고 강조합니다. 자세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그럴싸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핵심은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고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더 이상 율법의 지배 하에 있지 않고 의인이 되어 자유와 즐거움을 마음대로 누리면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권창규에게서는 이러한 죄용서 복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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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