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창규 목사(이후 권창규)의 박사학위 논문의 출판물 <자식농사 주 안에서 내 마음대로 된다>의 4장 “성경적 교육의 7가지 기초”를 계속 살펴 보겠습니다.

5. 기는 살리고 고집은 꺾어라

“부모는 자녀에게서 고집과 기를 잘 구분해야 한다. 아이의 기를 살린다고 받아준 것이 아이의 고집을 키우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기는 살리되 고집은 반드시 꺾어야 한다. 기는 어떻게 살리는가? 기는 칭찬과 격려로 살릴 수 있다. 대표적인 성경의 말씀이 바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너를 기뻐한다’는 아들 예수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격려와 칭찬이다. 공생애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이 하늘의 음성은 큰 힘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권창규, 75페이지)

권창규는 칭찬으로 자녀들의 기를 살려 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던 날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칭찬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방식 삼위일체의 신비와 그리스도의 신.인성의 신비를 권창규가 이해하고 있다면 이런 유치한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원래 피조물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으로 아들로 삼으신 것이라면,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그리스도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말씀하심으로 용기와 담력을 북돋아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 같은 신적 본질을 공유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성부 하나님과 영원히 떨어지거나 분리되지 않으시는 성자 하나님입니다. 모세와 이사야 등의 구약의 선지자들과 바울과 베드로 등 신약의 선지자와 같은 분이라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하늘에서 들리도록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신성으로 성부 하나님과 언제나 같은 신적 본질을 공유하시고, 권능과 지혜에 동등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영원히 연합되어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기를 살려주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은 망령된 말입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피조물)으로서 하나님께 특별하게 선택되어 그리스도가 되신 분으로 이해하지 않는 한 과연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혹이 생깁니디. 끝까지 기독교를 거부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유대교 신앙과 연관된 개념이 아닌지 의심됩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성부 하나님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너를 기뻐한다’라는 음성이 들리고 또한 성령이 비둘기 모습으로 그곳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지시는 구속사역의 출발을 선포하는 거룩한 예식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법적으로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사역을 시작함을 선포하신 것이었습니다. 권창규가 이런 중요한 부분에 대해 어이없는 말을 한다는 것은 성경을 바르게 알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바디메오와 수로보니게 여인, 백부장 등 수많은 이들을 향해 이만한 믿음을 본적이 없다고 하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이러한 칭찬은 그 사람이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하는데 큰 동기를 부여하며 계속 그 행동을 하도록 이끌어 준다.” (권창규, 76)

권창규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구원을 주시는 구세주이심을 믿고 은혜를 구한 사람들을 칭찬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칭찬으로 인해 그 사람들에게 계속 믿음으로 행동하도록 동기부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들을 칭찬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로 그들에게 자리잡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기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마 8:1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막 10:52)

권창규가 마치 그 사람들이 스스로 믿음을 선택했고, 믿음을 선택한 그들에게 더 큰 신앙의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칭찬하셨던 것처럼 말하는 것은 권창규의 성경 오독이거나 조작입니다.

“그렇다면 고집은 무엇인가? 고집은 신학적으로 볼 때, 죄(Sin)이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기에 고집을 다스리는 방법에 초점을 두겠다. 고집을 꺾고 죄를 다스리기 위해 크게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첫째, 책망이다 ... (중략). 둘째는 벌이다 ... (중략). 셌째는 매이다.” (권창규, 77-78)

권창규가 죄를 고집으로 정의하고 이해하는 것은 과연 그가 기독교 신앙을 아는 사람인지에 대해 의심하게 만듭니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15-17)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1-23)

사도 바울의 설명에 의하면, 죄는 우리 속에서 살아서 역사하는 인격적 실체입니다. 죄는 죽기 전가지 사람이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강력한 능력입니다. 죄는 사람을 하나님의 뜻과 역행하게 만드는 강한 쇠사슬과 같은 힘입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 죄를 범할 수 밖에없는 죄의 종(롬 6:17)으로 태어납니다. 성경은 죄의 종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죄의 열매를 자연스럽게 맺는다고 말합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롬 1:28-32)

권창규는 우리 자녀들을 ‘책망’과 ‘벌’과 ‘매’로 죄에서 해방되게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권창규의 이 말을 보니 “이 사람이 과연 성경을 아는 목사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들의 율법 교육의 영향을 받아서 이런 이상한 설을 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람이 죄에서 해방되어 바르게 성장하는 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고 다시 그리스도와 함께 새 사람으로 부활하는 것 뿐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은 자로 간주하시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게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임하시어 죄를 이기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어지게 이끄십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2)

권창규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 책망과 벌과 매로 자녀들을 죄의 길에서 의의 길로 이끌 수 있다고 말하는 권창규의 이론은 여전히 구약 성경에만 머물러 있음으로 나오는 이론입니다. 고집을 꺾어 줌으로 자녀들을 지옥의 길에서 천국으로 길로 이끌 수 있다는 권창규의 다음의 말을 보십시오.

“성경은 하지 말라는 명령이 훨씬 더 많다.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고집을 꺽어주는 것이 지옥에서 자녀를 천국으로 이끄는 비결이다.” (권창규, 81)

권창규는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어야 한다고 했는데, 무엇이 그 기준일까요? 틀림없이 율법일 것입니다. 또는 인간의 보편적 도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게 한다거나 보편적 도덕성을 가지게 한다고 자녀들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인가요?

권창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는 목사입니다. 자녀들이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고 성령을 받게 함으로 구원 받게 하고 변화되게 하는 것을 모르는 목사입니다. 율법을 어기느냐 율법을 지키느냐가 지옥의 길과 천국의 길을 가르는 기준이라고 보는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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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