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윤 목사의 '성서적 교회의 모습"(1회)

다음 내용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대한 성서적 정의(定義)와 그 교회가 세상과 핍박에 직면할 때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살펴보고 종말교회로서 장래를 예비하는 신앙을 나누고자하는 뜻에서 준비된 것이다.

성서적 교회의 모습

교회를 묘사하는 표현들이 성경에 적어도 96개의 각기 다른 단어들로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그 중 몇 개를 중심으로 성서적 교회의 정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1. 교회의 신적 존재

신약 교회의 가장 핵심적 요소는 “교회는 신적 존재”라는 사실이다. 교회는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신들”이라는 말로도 표현이 된다(요 10:35). 그러나 이 내용은 뉴 에이지 사상과 철저하게 구별되어야한다. 교회가 신적 존재이기 때문에 “교회가 부패되었다”, “교회가 타락하였다”, “교회가 세속화 되었다”는 등의 표현이나 비판은 성서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교회의 신적 요소에 대해서는 많은 성경 구절이 증거하고 있지만 그 첫 번째 근거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에 있다.

1)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23).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 1:18).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7).
 

당연히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교회는 한 유기체이다. 제일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 열매’라고 했고(고전 15:23), 그리스도인들을 또한 성령의 ‘첫 열매’로 칭한 성경의 표현은 지극히 당연하다. 왜냐하면 머리와 몸은 일체이기 때문이다. 머리와 몸은 불가분의 일체인데, 몸은 부패했고, 타락했으며, 세속적이며, 배도적이나, 반대로 머리는 건전하고 거룩하다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그러므로 몸은 머리가 생각하는 데로 살며, 머리를 따르며, 항상 동행한다. 성경의 방식으로 표현하면, “머리가 그러하면 몸도 그러하다”(잠 23:7)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에서도 유사성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며, 그리스도인들은 중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양자가 된 사람들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점에서 유사성을 가진다. 당연히 어느 정도의 ‘하나님의 신성’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과 교회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히 2:11-12).

물론 이 말씀이 우리의 몸이 죄 없으신 예수님의 몸과 동일하게 되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중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몸에는 구속받아야할 요소들이 남아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신의 성품이’ 우리 안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적 성품’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몸에 죄성을 가지지 아니하였지만, 그의 몸된 교회는 여전히 죄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부활 후에 받을 영체는 죄성을 완전히 벗은 몸이 될 것이다). 교회는 거룩케 되었으므로 그 거룩을 지켜야할 싸움을 마다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싸워야할 싸움의 본을 그의 삶에서, 그리고 그의 말씀에서 보이셨다. 주님께서 우리의 ‘신적 성품’을 위해 본을 보이신 삶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리스도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 5:7).

그가 육체에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린 것은 우리들 곧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신성’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며, ‘성령의 소욕’을 좇아 살기 위하여 싸우는 싸움의 본을 보인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싸워야할 싸움이 있으며, ‘허공을 치는’ 듯한 향방이 없는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성을 지키기 위한 성화의 싸움이다. 베드로는 다음과 기록하였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2:20-21).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본’을 보이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무슨 죄성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가 몸으로만 일체가 아니라, 성품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신의 성품’에 참예하게 하려는 뜻이다. 그가 죄 없으신 분인데도, 고난을 받으신 것은, 우리의 받을 고난을 위한 것이다. 비록 우리가 모든 죄를 용서받아 정결함에도 불구하고, 그 정결함을 지키는 데는 여러 가지 고난과 때로는 심한 핍박이 있을 수도 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마땅히 겪게 되는 고난이 있음을 본으로 보이신 것이다. 머리와 몸이 하나이기 때문에 머리의 고난은 몸의 고난이고, 몸의 고난은 머리의 고난이 되는 것이다.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신성그의 몸된 교회에 없다고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다”(벧후 1:4).

성도들의 싸움 중 하나는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한 것을 지키고 유지하는 싸움이다. 모든 성도들에게는 이 싸움이 있다.

2)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점에서 신성을 가지고 있다.

바울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정신의 말씀을 교회에 적용하고 있다. 곧 하나님의 백성을 “신부”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아내로 표현한 가장 분명한 구절에서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32).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존재하는 ‘정절과 성결’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6-27).

호세아의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의 아내로 취급을 받은 이스라엘이 ‘음행’을 행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부가 ‘음행’을 행한다는 것, 곧 ‘배도’, ‘부패’, ‘세속화’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음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행 14:16)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 17:30)].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음행을 ‘묵인’하시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떠한 종류이던지 간에 음행을 범한 자들은 회개해야한다. ‘거룩함과 화평함’이 없이는 (사람과의 관계이던지,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이던지 간에) 아무도 주의 얼굴을 뵐 수 없다고 성경은 밝히고 있다(히 12:14).

‘화평’이라는 말(샬렘)의 원래 의미는 완전, 자유, 무흠(無欠), 하나님께 헌신, 대가를 지불함, 끝, 평화, 온전(穩全)함(make whole)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록자의 말은 분명하게 교회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3-14).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것은 말할 필요 없이 정결한 처녀라는 뜻이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계 14:4).

‘더렵혀지지 않은 처녀라’라고 번역되어야할 것이다. 헬라어 성경에 ‘처녀’라는 단어로 분명하게 정결한 자들의 신분을 나타내고 있다. 이 말씀 안에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할 수 있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면, 엄청난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 곧 정결한 처녀라는 점에서 신적 성품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음행을 행하고, “털어서 먼지 나지 않을 수람이 누가 있는가?”라고 하면서 계속 목회를 하고 있다면, 이런 사람을 성서적 그리스도인과는 무관한 사람들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태윤 목사는 정태윤 목사는 미국 달라스에 있는 서남침례교회의 목사이다. 정태윤 목사는 현대의 교회들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에서 멀리 벗어났음을 안타까워는 목회자들과 함께 ‘복음주의 형제회’를 조직하여 매년 복음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천주교의 심각한 배도를 설명하는 데이비드 헌트의 책「짐승위에 탄 여자」을 번역하여 국내에 보급하였고, 그 외에도 「진정한 복음」,「참 복음과 거짓복음」, 「로버트 채프만: 사랑의 사도」를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