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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규 목사의 부모의 신앙전수 가정교육 이론은 거짓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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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규 목사의 부모의 신앙전수 가정교육 이론은 거짓사상
  • 정이철
  • 승인 2022.01.2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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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규 목사의 기독교 대안교육 6

 

오늘은 권창규 목사(이후 권창규)의 박사학위 논문의 출판물 <자식농사 주 안에서 마음대로 된다>의 3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 나온 첫 번째 가정의 부모인 아담과 하와는 자식교육에 절반의 성공을 거둔다. 아담의 첫째 아들인 가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고 하나님을 반역하여 불신자의 대표가 된다. 그 부모는 아담과 하와였다 ... 성경은 가인의 계보와 아담의 계보를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가인이 아담의 족보에 들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권창규, 45페이지)

아담의 아들 가인이 천성적으로 죄악되고, 그가 하나님의 구원으로부터 영원히 소외됨의 원인을 그의 부모 아담과 하와의 가정교육의 실패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적 사고가 심각하게 결여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셨던 다른 아들 아벨의 신실함의 원인이 아담과 하와의 가정교육 때문이었다고 할 근거를 우리는 성경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법적으로, 실질적으로 아담의 죄와 연관되어 태어나는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죄인으로, 영원히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악인으로, 언제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범죄자로, 자기의 구원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능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고 성경은 다음과 가르칩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 도다.” (시 14:2-4)

인간의 이러한 상태는 부모의 가정교육, 또는 공동체의 교육, 또는 유대인들의 교육 등 그 무엇으로도 해결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과 선택된 사람에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따라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가인이 동생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고, 하나님께 버려진 인생으로 살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이 그를 자기 백성으로 택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인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는 신앙과 무관한 인생을 살다가 간 것입니다. 구원 받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택하심에 달렸다는 다음의 성경 말씀들은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절대적 진리입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 1:4-6)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엡 3:11)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딤후 1:9)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벧전 1:2)

날 때부터 구원의 가능성이 없는 죄인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섬기는 참 신앙을 가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에 속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유대인 교육을 도입함으로 자녀들이 잘되게 할 수 있다고 홍보하는 권창규는 부모의 가정교육이 그것을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영원히 멸망 받은 가인의 인생이 하나님의 택하심과 은혜로 말미암았음을 모르고 그 부모들의 가정교육의 문제라고 말한다는 정말 성경적 개념이 없는 것입니다.

권창규는 동생을 죽인 가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해 버려진 것이 아담과 하와의 가정교육의 문제였다고 함으로 우리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오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타락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이 다시 구원받고 하나님을 섬기는 참 신앙을 가지는 일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였습니다.

자녀 앞에서 부모의 본이 되는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그들의 자녀들을 중생시키는 과정에서 사용하시는 말씀의 차원에서 좋은 수단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시고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면 아무리 잘 믿는 부모가 본을 보여도 신앙과 구원을 자녀에게 전수할 수는 없습니다. 가정교육으로 될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는데, 신앙과 구원의 문제는 가정 교육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에 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 즉, 믿음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인 불신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아내로 삼았다. 이는 잘못된 결혼, 즉 불신결혼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영을 거두시는 근거가 되었다. 이로 인해 믿음의 아들들은 육에 속한 타락한 불신자가 되었고, 그 결과 사람의 목숨이 120년으로 제한된다.” (권장규, 47 페이지)

하나님이 자기의 영을 고대 인류에게서 거두시기로 결정하신 근본적인 원인은 아담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죄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자기의 임재를 반역한 인류에게서 철거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으로 보아야 맞습니다. 하나님이 몰인정하시어 그러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죄의 종이 된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범죄 후 아담에게서 즉각적으로 하나님을 피해 숨느는 성질이 생겼음을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노아 당시에 하나님께서 사람들로부터 자기의 영을 철거하셨기다기 보다, 하나님이 이미 결정하신 일이 시대의 심각한 타락으로 인해 확실하게 결정된 것으로 해석해야 옳습니다. 부분적으로 남아 있었던 하나님의 임재가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권창규는 하나님의 영이 인류에게서 떠나간 것이 당시 신자들이 외모가 특출난 불신자들과 여성들과 결혼하여 가정의 신앙교육이 실종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때 믿는 여자들은 외모가 특출난 불신 남자들을 골라서 결혼을 했었던 것일까요? 구원 문제와 모든 것을 부모의 가정교육과 연결시키려니 이런 어색한 문제들이 벌어집니다. 

노아의 시대에 인간의 수명이 120년으로 제한되었다는 말도 바르지 않습니다. 종종 120년 넘게 사는 사람이 나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120년을 그런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김기동 귀신론을 통해 크게 유포되었습니다. 그때부터 120년 후에 대홍수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왜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통해 세상이 악해지고 악이 범람하여 전 우주적인 심판이 초래하게 되었을까? 이는 그만큼 가정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가정이 바로 서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딸들을 만나 결혼하여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수하고’ 말씀을 맡은 자로 키우지 않으니, 결국 그 자녀들이 세상의 악에 물들고 그 자식들이 또 자녀를 낳아 더 큰 악과 죄악 속에 버려두니 결국 죄악이 세상 가득해지는 결과까지 온 것이다.” (권장규, 47-48 페이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구원을 누리게 만드는 참 신앙 가지는 것을 가문의 어떤 비법을 전수하는 것처럼 가르치는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다른 것들은 조상이 후손에게 전수할 수 있어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고원 받는 참 신앙을 전수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녀에게 말씀 전하고 신앙의 본을 보이는 것까지는 부모가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성령의 은혜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조상이 후손에게 신앙을 전수한다는 개념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참 신앙은 오직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신실한 부모에게서 최악의 개망나니 자녀가 나오기도 하고, 최악의 개망나니 부모에게서 최고로 신실한 자녀가 나오기도 합니다. 역사 속에서 그러한 사례들이 많은데, 그것은 신앙을 가지는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구원과 참 신앙에 관해서는 사람의 교육과 손이 직접 영향을 미치지 못함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살전 1:6)

사도 바울은 자기의 전도를 통해 구원받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많은 고난 속에서도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기쁨으로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린도 같은 도시에는 그러한 고난이 없었음에도 바울의 전도를 통해 믿는 사람이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의 부모들은 가정교육을 잘했고 고린도의 부모들은 가정교육을 못해서 그랬을까요?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살후 2:13)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하나님이 무조건 택하셨고 복음으로 인해 환난이 일어났어도 성령의 역사로 기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구원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때 구원받은 사람들은 전부 좋은 부모들에게 태어나 가정교육(율법교육)을 잘 받아서 그런 것입니까? 율법 암송, 탈무드 독서, 안식일 개념의 주일성수 등으로 무장된 부모의 가정교육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신앙을 자녀에게 전수된다는 권창규의 사상은 정말 비성경적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 3:5)

성경은 구원과 참신앙이르는 문제가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역사로 말미암는다고 가르칩니다. 신앙과 구원이 부모를 통하여 자녀에게 전수되는 것이 사실이라면, 사이비 오순절-신사도 대장들이 성령을 맘대로 부리는 것처럼 우리 부모에게도 자녀의 구원을 위해 성령을 일하게 하는 권세가 있는 것일까요? 부모의 가정교육을 강조하는 권창규의 사상이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노아(할아버지)는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을 잘 양육하여 신앙을 전수하였고 롯의 가정과는 달리 물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노아의 아들 며느리까지 모두 구원을 받는다. 노아는 아내와 더불어 성공적인 자녀교육을 펼쳤다.” (권장규, 48 페이지)

노아가 아내와 함께 성공적으로 자녀교육을 잘했다는 근거는 성경에 없습니다. 노아가 자녀들과 함께 방주를 지어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된 이유를 성경은 노아의 자질에 돌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 6:8)

권창규는 유대인들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율법교육을 자신의 사업으로 삼아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영혼구원까지도 부모의 가정교육에 연관시킵니다. 이런 식이면 사람들이 국가의 공교육을 불신하고, 기존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도 하찮게 여기게 되는 부작용이 클 것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노아는 앞에서 본 것처럼 머리로서 가정을 이끌고, 자녀들은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으로 그에게 복종했음을 볼 수 있다. 현재, 모든 인류는 노아와 세 아들의 후손들이다. 내 몸에 노아의 피가 흐른다는 생각이 나에게 특별한 감동과 자부심을 갖게 한다. 노아 부부는 자식과 며느리 모두 믿음의 사람으로 복종하는 자녀로 키웠을 뿐 아니라 인류의 새로운 조상이 된다.” (권장규, 49 페이지)

노아가 그리도 가정교육을 잘해서 자녀들이 구원받고 바르게 자랐다면,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의 입으로 한 자녀를 저주하신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부모의 가정교육에 모든 것을 연결시키니 이런 억지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권창규는 자신에게 노아의 피가 흐르고 있음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권창규 자신도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기 아들에게 저주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우리를 죄에서 건지신 그리스도의 보혈을 찬송하는 말은 크게 바람직하지만, 가정 교육을 잘한 노아의 피가 자신에게 흐르고 있음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다는 것은 좀 이상합니다.

“(창세기 18장 18,19절을 말하면서) 현용수 박사는 신약에 지상 명령이 있듯이, 이 말씀을 구약의 지상명령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즉, 구약에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택하셔서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은, 바로 열방이 주께로 돌아오는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함인데, 이것은 자식과 권속에게 신앙을 전수함으로 가능해진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권장규, 50 페이지)

“구약의 지상명령은 아브라함으로 시작해서 예수님을 통해 믿음 안에서 이방인인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신약의 지상명령과 더불어 주님의 나라를 확장해가고 있다. 신앙의 전수는 말씀전파와 더불어 매우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권장규, 50 페이지)

현용수와 권창규는 창세기 18장의 19절,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라는 내용을 부모(아브라함)의 성공적인 자녀교육 개념으로 연결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본문에서 하나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오시게 하는데 사용될 인큐메이터 이스라엘 민족을 만드는 중요한 사명을 위해 아브라함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을 불러 이스라엘 민족을 만드신 것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에 속하는 일입니다. 부모를 통해 자녀에게 말씀, 신앙, 구원이 전수된다는 비성경적인 개념을 강조하려다 보니 성경의 중요한 내용을 억지로 부모의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가정교육이 구약의 지상명령이라는 현용수와 권창규의 사상은 너무 억지스럽습니다.

“이삭은 아담처럼 절반의 성공을 거둔다. 에서는 주님을 버리고 떠났지만, 야곱은 하나님을 섬기고 열두 아들을 낳아 이스라엘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권창규, 50 페이지)

이삭의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의 신앙과 구원의 문제까지도 아버지 이삭의 가정교육의 문제로 돌리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인지, 일부러 악용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을 왜곡하면서 자기의 대안교육 장사를 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롬 9:10-13)

성경은 이와 같이 이삭의 두 아들의 신앙과 구원의 문제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따라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했고 한 사람은 하나님이 택하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신앙과 영혼의 길이 처음부터 갈라졌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런데 권창규는 아버지 이삭의 가정교육으로 인해 두 자녀의 인생이 갈라졌다고 합니다. 

“(요셉이 죽을 때 후손들에게 자기와 아버지 이삭의 유골을 가나안으로 이장하라는 유언을 언급하면서) 요셉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신 여호와의 도의 전수가 얼마나 잘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볼 수있다 ...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자손들에게 어떻게 교육을 했기에 사백 년의 시간을 넘어 여전히 어제 일처럼 복종하는 것인지 감탄이 절로 난다. 이것이 교육의 힘이며, 현재까지 이스라엘을 지탱해 온 근원이다.” (권장규, 50 페이지)

자기의 유골을 훗날 어디로 이장하라는 조상의 유언을 지키는 후손들의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뿐 아니라 다른 여러 민족들에게서 흔하게 발견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만 가정교육을 잘해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았던 한국의 조상들도 그런 일에는 철저했고, 지금 사람들도 묘자리와 장례에 대해 조상이 남긴 말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권창규의 문제는 가정교육으로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신앙과 말씀이 전수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일으키는 말씀과 신앙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성령의 역사로만 이루어집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칠 수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부모가 아무리 잘해도 자녀에게 신앙이 생기거나 구원받는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지 않은 상황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율법)을 암송시키고 신앙생활을 강조하면 결국 성령의 역사가 없는 종교생활에 그칠 뿐입니다. 그것의 실상이 바로 유대인들의 율법교육입니다. 그 교육을 받으면 하나님과 더 멀어지기만 합니다. 신앙의 원리가 성경에서 벗어났으므로 더 열심히 할 수록 귀신이 붙을 뿐입니다. 달라스에 있는 어떤 목사님이 저에게 현용수의 쉐마교육을 따라했던 한인교회들이 결국 망했다고 하더군요. 권창규가 지금 그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맺는 말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됩니다. 마땅히 부모는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자녀의 심령에 뿌려지고 자라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아무 소득이 없습니다. 소득이 없을뿐 아니라 사탄의 쓴뿌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자녀에게 말씀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부모가 자녀에 관하여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증거하는 말씀을 반드시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이 역사하여 자녀에게 신앙이 형성됩니다. 구약의 율법이나 탈무드를 천번 만번 강조해도 성령의 역사는 없고 되려 신앙을 왜곡하는 귀신만 붙습니다. 부모는 마땅히 자녀에게 율법이나 탈무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살리고 죽이시는 하나님의 주권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현재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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