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30초 정도) 우리가 방언에 대해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방언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누구나 하나님 백성이 되는 새로운 시대의 표적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였고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문을 이방인들에게도 열러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여전히 자신들만 하나님 백성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도 이제부터는 하나님 백성이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표적으로서 나타난 것이 성경의 방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멸시하는 유대인들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이 믿는 사람의 입을 이용하여 이방인의 언어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설명하시는 방언이 나타났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이 언제나 유대인들의 언어(히브리어)로만 말씀하셨는데, 갑자기 이방인들의 언어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설명하시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완악한 유대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한 것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이야기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성경의 방언의 중요한 의미 가운데 하나는 유대인이라도 그리스도를 거부하면 버려지고, 이방인이라도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고 하나님 백성이 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적이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성경의 방언에 대한 바른 가르침이 사라지고 하늘의 언어, 기도의 은어라는 이상한 설을 믿고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기도를 위한 전문적이고 특수한 언어를 내려주신다는 가르침이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신약의 모든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 모두가 자신들의 일상의 언어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불러서 계시를 주실 때, 그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모국어로 계시를 주셨습니다. 사울을 개종시키기 위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다메섹 도상으로 오셔서 사울을 부르셨습니다. 그때 그리스도는 어느 나라 말로 말씀하셨을까요? 사도 바울의 일상 언어인 히브리어였습니다.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는냐” (행 26:14)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계시를 주실 때 계시를 받는 그 사람의 일상 언어로 말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에는 무슨 언어로 기도하셨을까요? 이스라엘 사람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일상의 언어, 히브리어였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가 지상의 사람들이 모르는 이상한 하늘의 언어로 기도하셨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자기의 뜻과 계획과 목적을 계시하시기 위해 성경 66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경 66권의 지식, 정신이 가장 잘 실현되신 완전한 사람으로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 66권을 읽고 해석하는 가장 정확한 랜즈입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해석을 해야 한다는 말이 그 뜻입니다.

우리는 성경이라는 기독교 신앙의 교과서(웨신서가 아님)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인격, 삶이라 랜즈를 통해 읽고 해석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데 필요한 정확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방언기도라는 것이 기독교에 있는지 없는지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방언으로 기도했는지를 보면 됩니다. 그런 것 없습니다. 

성경의 방언은 사도행전 시대에 있었다가 그 목적을 다하고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이후 기독교 역사에서 이단 시비 받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방언이나 예언을 했던 사람이 없습니다. 이상하게 이단시비 받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방언이 나타났습니다.

칼빈이나 중요한 사람들에게 방언이라는 말은 외국어라는 뜻이었지 하늘의 언어라는 뜻이 전혀 없었습니다. 기독교강요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은 전부 당시 로마교회 신부들이 청중들이 모르는 라틴어로 기도하는 행태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방언기도라는 개념은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생소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방언의 99.9%는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방언기도입니다. 이 점에 대해 성도님들은 많이 고민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성경이 전혀 말하지 않는 것이 왜 이렇게 많아졌습니까? 거짓 그리스도의 역사가 이 정도로 많다는 것입니다. 

방언기도라는 말은 성경에 딱 한번, 사도 바울이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고전 14:14)라는 곳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문맥을 가만히 보면 바울 자신은 방언기도와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모르지만 영혼이 알고 유익을 누리를 기도에 대한 이론은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내용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우리의 마음이 모르는 영혼의 기도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방언기도는 우리가 계속 성경에 근거해야 연구해야 할 주제입니다. 1900년대 미국의 이단들에 의해 갑자기 폭발한 방언이라는 것은 이미 확실하게 성경적인 것으로 검증이 끝난 주제가 아닙니다. 올바른 신학자들 중에서 방언기도를 하나님이 만드셨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 하나는, 성경의 방언이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도 하나님 자녀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는 표적의 기능도 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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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