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파의 주장은 영지주와 유사점이 많아

현재 한국에는 1)세월로와 관련된 유병언 계열, 2)유병언 계열에서 분리된 이복칠 계열, 3)처음부터 별도로 시작된 박옥수 계열, 이상의 세 종류의 구원파가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 뿌리는 네덜란드와 미국에서 온 사이비 선교사들에게 연결되어 있고, 더 깊이 들어가면 기독교 속으로 들어온 영지주의 이단사상과 연관되어 있다. 구원파가 가르치는 핵심적인 교리들이 어떻게 영지주의와 연관되었는지 살펴보자.
 

A. ‘깨달음’이 곧 구원이라는 교리

구원파는 신자들에게 구원에 관한 특이한 ‘깨달음’을 강조한다.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그 순간이 곧 구원받은 정확한 시간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기존 신자들에게 접근할 때 “당신은 언제 구원받았습니까?”라고 질문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음이 곧 구원이라는 말씀은 없다. 성경은 오직 죄인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죄인이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영접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죄 사함 받고, 영원한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되어 영생을 누린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음이 곧 구원이라는 구원파의 강조점이 전적으로 틀리다고는 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에게는 그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성도가 얻은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성경적 요건은 아니다.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자의 인격적인 신앙 그 자체가 구원의 근거이다.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고 영접한 신자에게서는 이후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삶의 주인되었음을 의미하는 일들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부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가 높아지고, 증거되고, 주인되시는 새로운 영적인 삶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요 15:26, 16:14).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막을 수 있는 힘은 이 우주에 없으므로, 진실한 믿음으로 구원받는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특징을 보이게 되어 있다. 누가 구원받았는지 정확하게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지만, 사람도 전혀 모른다고는 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입으로 고백하고 동시에 삶을 통해 이러한 증거를 보이는 사람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우리는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에 관한 ‘성경적 확신’에 관해서는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곧 구원이라는 주장은 이상한 말이다. 성경 어디에도 구원에 관한 깨달음을 강조하는 내용이 없다. 구원파의 ‘깨달음 교리’는 사람들을 구원파 이단 세계로 유인하는 매우 고약하고 기발한 코드이다. 여기에 낚이는 사람은 결국 구원파가 가르치는 거짓 믿음의 세계로 끌려들어가게 된다.
 

영지주의의 출현

그렇다면 구원파의 이러한 기발한 ‘깨달음’ 교리는 대체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전문가들은 구원파의 ‘깨달음이 곧 구원’이라는 특이한 코드가 고대에 시작되어 교회에 유입된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와 관련되었다고 본다. 그동안 영지주의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처음에는 영지주의가 초기 기독교 내에서 발생한 하나의 기독교 이단사상이었다고 여겨졌으나, 최근에 진행된 활발한 연구 결과에 의해 영지주의가 영지주의는 기독교 밖에서 시작되어 고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

영지주의가 일어났던 때는 사도들이 이미 세상을 떠나고 사도들의 신앙을 계승한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어렵사리 자리를 잡아가던 상황이었다. 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 사상으로 인하여 초대교회는 크게 몸살을 앓게 되었다. 초대교회 속으로 침투한 영지주의 ‘영지주의 이단’을 형성하여 교회의 참 복음을 심각하게 위협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리멘트(Clement, 150-215)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영지주의의 창시자는 시몬 마구스(Simon Margus)라는 인물이다. 시몬 마구스는 사도행전 8:9-13절에서 등장하는 마술사 시몬과 동일인물이며, 그는 마술을 행하여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하는 재주를 부렸고, 많은 인기를 얻자 자신이 사람의 형태로 나타난 신이라고 주장하며 사람들이 자신을 경배하도록 만들었다. 시몬은 자신이 겉으로는 사람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하나님이라고 가르쳤다.

영지주의 사상이 교회에 침투하여 초기 기독교를 심각하는 이단 세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흔적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버가모에 있는 교회에 보내신 편지의 내용 중에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 2:15)라는 내용이 있다. 이것이 초대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와 관련된 흔적이다. ‘니골라당’(Nicolaitans)이라는 말은 초기 영지주의의 지도자 니콜라스(Nicolas)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니콜라스는 안디옥 출신으로서, 사도들에게서 신앙을 전수받고 집사의 직분을 받았으나 결국 이단의 길로 빠지고 말았다.

성경 외의 문헌에서도 니골라당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있다.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 165년 순교)이 Trailians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 중에 “니골라당을 멀리 하십시오.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쾌락을 사랑하지만 중상적인 혀를 놀립니다”라고 말하는 내용이 나타난다.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변증가 이레니우스(Irenaeus, 125–202)가 저술한 책「Adversus Haereses」에도 다음과 같이 영지주의를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니골라당은 사도들에 의해 집사직을 처음으로 받은 자 니콜라스를 추종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무절제적인 방종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의 특징에 대해서 요한계시록에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소크라테스 (Socrates the historian, 5C.)가 남긴 기록에서도 초대교회가 영지주의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했다는 기술되어 있다. 소크라테스는 사도 요한이 성경에 남김 다음의 말씀이 그 당시 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 이단 사상을 물리치기 위해 했던 말이라고 기술하였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1-3)
 

영지주의의 구원관

교회에 침투된 영지주의와 접목된 이단의 핵심적인 문제는 기독교 신앙의 구원론을 파괴하였다. 성경적인 신앙은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저주를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속주로 마음으로 믿고 행위로 고백하는 인격적인 신앙이 구원의 길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영지주의 이단은 구원이 영적인 진리에 관한 지식을 가지는 것, 즉 ‘앎(gnosis, 그노시스)’을 얻으므로 구원에 이른다고 가르쳤다.

정상적인 기독교 신앙은 인간과 우주가 초월적 존재이며 절대자인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로 지어진 인간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하였다고 믿는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는다. 그러나 영지주의 세계관에는 초월적이며 절대적 존재인 하나님,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우주와 인간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 영지주의 세계관에서는 ‘모나드’라고 하는 우주의 궁극적인 ‘신성’(지고의 신, 최고의 신, 무한한 빛)이 존재하며, 이것으로부터 하위의 신들이 ‘발출’되었다고 본다. 영지주의에서는 우주의 궁극적인 실재인 ‘신성’으로부터 발출되어 나온 하위의 신적인 존재들을 ‘아이온’이라고 하며, 기독교의 하나님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여긴다.

최상위의 궁극적 신성으로부터 발출되어 나타난 하위의 존재들로 이동되어 갈 때마다, 그 존재가 궁극적인 신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따라서 자연히 존재의 불완전성이 초래된다고 한다. 그러나 하위의 발출된 존재들도 궁극적 실재인 모나드와 동일한 신적인 본성을 소유하고 있다. 영지주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 신성이 공유되고 있다고 여기는 현대의 뉴 에이지의 원형이었다.

초대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 이단은 하나님과 인간을 초월적인 창조주와 죄에 빠진 인간으로 보지 않았고, 근본적으로 같은 본성을 소유하고 있는 동일한 영적인 존재로 보았다. 그러므로 영지주의 이단이 가르치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 자기 안에 잠재되어진 신성을 모르고 하나님과 동떨어져 있는 인간에게 그 자신의 영적인 본성과 근원을 깨닫게 만들어 주는 것이 영지주의가 가르치는 구원이었다. 자신이 하나님과 동일한 신성을 소유하고 있는 무한한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깨닫도록 돕는 ‘신비한 지식’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 곧 구원이라고 가르쳤다.
 

영지주의의 예수 그리스도

영지주의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중시되기는 했으나, 죄인을 대신하여 속죄의 고난을 당하심으로 인간을 구속하신 구속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단지 영적인 가르침을 인간에게 주어 인간의 영혼을 깨우침으로, 본래의 신성한 존재의 세계를 향하도록 만들어주는 영적인 지식을 전하는 탁월한 Messenger일 뿐이다.

구원파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인 신앙을 통항 성경적인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고, 특이한 깨달음, 즉 신비한 세계에서 다가오는 ‘순간적인 깨달음’을 가지는 그 순간에 구원이 임한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에게 “언제 구원받았습니까?”라고 질문하면서 포교하는 특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들의 사상의 뿌리가 고대의 영지주의 이단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60년대 초에 한국인 권신찬 씨에게 이러한 사상을 전수한 네덜란드에서 온 자칭 선교사 Case Glass와 유병언 씨에게 이러한 사상을 전한 미국인 자칭 선교사 Dick York의 사상의 뿌리를 조사하면 반드시 영지주의 이단 사상이 나타날 것이다.
 

B. 거듭나면 완전한 의인되고, 육체로 범하는 죄는 죄가 아니라는 교리

구원파가 가르치는 또 다른 거짓 교리는 거듭나는 순간 완전한 의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구원은 영으로 받았고, 이후 육으로 범하는 죄는 영과 관련이 없으며, 죄를 지어도 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가르침은 인간을 영,혼,육으로 구분하는 비성경적인 삼분설에 기초하고 있다. 복음을 파괴하는 이단들 대부분이 이와 같은 입장을 취하면서 성령은 신자의 영혼 속에, 사탄은 신자의 육체 속에 거하면서 서로 대립하고 있다고 가르친다. 구원파도 인간의 구원을 ‘영의 구원’, ‘혼의 구원’, ‘육의 구원’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구원파에서도 이런 가르침이 나타나는 것은 권신찬 씨가 이러한 사상을 가르친 워치만 니(Watchman Nee)의 영향을 받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성경을 종합적으로 보면, 인간은 오직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었고, 혼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혼은 영혼을 이르는 또 다른 표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삼분설은 비합리적인 ‘물질’과 합리적인 ‘영’이 하나의 육체 안에서 상호모순되지 않고 조화되게 만들어 주는 중간자인 ‘혼’을 상정하는 그리이스 철학에서 비롯되어 기독교 속으로 유입되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이 지어질 때 영혼과 육체는 동시에 창조되며, 서로 긴밀하게 결합됨으로 하나의 살아있는 인격이 된다. 어떠한 경우에도 살아있는 동안 영혼과 육체는 분리되지 않는다. 분리되는 순간은 곧 죽음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영혼과 육체가 결합된 ‘인격’으로 말하지 않고, 또한 인격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전 존재의 구원을 말하지 않고, ‘영혼의 구원’, ‘혼의 구원’, ‘육의 구원’을 나누어서 말하는 구원파의 가르침은 그릇되었다.

거듭난 이후 신자가 완전한 의인이 된다는 구원파의 주장도 완전거짓이다. 구원파는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실제로 완전하게 의로워진다고 한다. 로마 천주교도 인간이 스스로 믿음을 준비하고 선행으로 세례받기를 준비하다가, 최종적으로 세례를 받는 순간 원죄와 그때까지의 모든 죄가 다 깨끗하게 사라진 의인이 된다고 가르친다. 구원얻는 방식에 대해서 천주교와 비슷하게 가르치는 감리교회도 신자들이 의지와 행위를 통해 의로워지고, 그것에 기초하여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의롭다하심을 주신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신자들이 실제로 완전하게 의로워진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성경은 구원받은 신자들이 여전히 실제적으로 죄인이며, 타고난 죄악된 성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주신다고 말씀한다. 성경의 가르침은 인간의 ‘실제적 칭의’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신자를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법정적 칭의’이다.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으니라.”(롬 4:2,3)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그러므로 은혜로 구원받은 신자도 이후 지속적으로 죄와 싸워야 한다. 구원받은 신자의 특징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고,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죄를 싫어하게 되고, 죄에 대해서 저항하게 되는 새로은 성향을 보이는 것이다. 구원받은 신자에게서는 죄와 투쟁하는 거룩한 삶의 새 질서가 시작된다. 존 웨슬리가 가르친 것처럼 ‘완전성화’란 신자의 삶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 그 어떤 위대한 그리스도인도 완전하게 자신의 죄를 정복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전처럼 죄를 즐거워하거나, 무방비 상태로 죄에 끌려가거나, 편안한 마음으로 죄를 즐기고 사랑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내주하시면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요 16:8).

영혼이 구원받은 이후 신자들이 육으로 짓는 죄는 더 이상 죄가 아니라는 구원파의 가르침은 비성경적이다. 오히려 성경은 구원받은 신자들이 지속적으로 죄와 싸워야 하고, 죄를 범하면 속히 하나님께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8,9)
 

도덕, 윤리, 죄를 초월하는 영지주의

구원파가 인간의 구원을 ‘영의 구원’, ‘혼의 구원’, ‘육의 구원’으로 나누어서 설명하는 것이나, 구원받은 이후 육신으로 짓는 죄가 더 이상 죄가 아니라고 가르치는 것도 영지주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정통 기독교 신앙은 인간이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었다고 보지만, 영지주의는 인간이 영, 정신(혼), 육체, 세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본다. 구원파도 인간을 ‘영적인 인간’(Pneumatics), ‘정신적인 인간’(Psychics), ‘육체적인 인간’(Hylics)으로 구분하는데, 영지주의 사상과 매우 유사한 부분이다. 영지주의는 자신들이 속하여 있는 영적인 인간 부류가 구원을 얻을 가능성이 가장 높고, ‘영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정신적인 인간’으로 분류하면서 이들도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육체적인 인간’ 부류는 영적인 지식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구원파가 신자들이 ‘구원에 관한 깨달음’을 통해 거듭난 이후 어떤 죄를 범하더라도 영혼과는 무관하고 더 이상 죄가 아니라는 구원파의 가르치는 것도 영지주의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영지주의 사상은 악한 물질세계 속에 속박되어 있는 자신의 신성에 대해 무지, 무감각한 상태에서 살던 사람에게 ‘영적인 깨달음’, 또는 신성을 일깨우는 ‘순간적인 섬광’이 임하면 궁극적 영적 실체와 일치되어 진다고 한다. 기독교 속으로 들어온 영지주의 이단은 ‘영적 안내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인합일’의 길로 들어선다고 가르친다.

인간이 신인합일의 경지에 들어서면 육체와 물질세계로부터 완전하게 초월하고, 악한 물질세계로부터 더 이상 영향 받지 않는다는 이론적인 주장이 성립된다. 그러므로 영지주의에서는 영적인 지식을 얻어 신성의 세계를 향하는 해탈한 인간에게는 더 이상 인간 세계의 도덕과 윤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친다. 영적 지식을 통해 물질세계의 운명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영적 지식을 통하여 구원받은 사람의 영혼은 이미 물질세계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그 사람의 육신이 무슨 일을 할지라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이론도 성립된다.

그래서 영지주의 사상에 빠진 사람들에게서는 각종의 쾌락과 방종이 나타나는 경유가 많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극도의 금욕생활이 나타나기도 했다. 구원받은 후로는 완전해졌고, 육체로 범하는 죄가 더 이상 영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구원파의 가르침은 영지주의에서 유래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세월호가 침몰하여 무고한 승객 수 백 명이 죽게되어도 그들을 걱정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만 빠져나오는 구원파 신자 승무원들의 이상한 행동은 이 세상의 도덕과 윤리에 대해 상관하지 않는 영지주의 사상의 영양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C. 구원받으면 기도가 필요하지 않다는 교리

구원파의 또 다른 그릇된 점은 구원받고 나면 기도와 예배가 필요하지 않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구원파는 구원받고 나면 기도생활이 서서히 없어지고, 결국 필요하지 않게 된다고 가르친다. 기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중요한 사역을 맡은 지도자만이 하는 일이라고 한다. 한국 교회의 새벽기도 운동이 미신적 종교성의 표출이라고 하고, 특히 권신찬 씨는 성도들이 주님의 일을 상의하고 논의하는 것 그 자체가 기도이며, 성도의 교제라고 가르쳤다.

구원파의 기도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잡설이다. 성경은 구원받은 신자들이 언제나 기도에 힘써야 한다는 사실을 수 없이 강조한다. 구원받은 신자들이 기도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기도 그 자체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신앙의 표현이며,

2)기도를 통해 중요한 순간 특별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할 수 있으며,

3)성령충만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것이 기도이기 때문이다.

구원받고 난 후 기도, 예배가 필요하지 않게 된다는 구원파의 가르침에 대해서 더 논의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구원파가 그렇게 가르치는 이유는 신자들이 정상적인 신앙에서 이탈되어 교주가 추진하는 세상 사업에 몸과 돈을 바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실제로 유병언 구원파에서는 “하나님의 사업을 의논하는 것이 기도이며 예배이다.”라고 가르쳤다.
 

영지주의의 신인합일

구원파의 구원받은 신자에게는 기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교리도 영지주의 사상과 연관이 깊다. 기독교 영지주의는 신자들이 ‘영적인 지식’(깨달음)과 ‘영적인 안내자’(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 안에 잠재된 신성이 되 살아나서 우주의 궁극적 신성과 일치됨을 누리는 것을 목표한다. 영지주의 기독교에서는 신자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신인합일’의 경지에 도달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만일 인간이 정말 신인합일의 경지에 이른다면, 더 이상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기도는 땅에 있는 피조물인 인간이 초월자이시며 절대자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도우심을 받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기도를 가르치셨다. 그러나 영지주에서는 신자들이 ‘깨달음’과 영적인 세계에서 내려오는 순간적인 ‘영적인 섬광’(spark)을 통해 자기 안에 내재된 신성이 각성되어 자신도 신성에 참여하게 되었으므로 굳이 다른 신에게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구원파가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더 이상 기도가 필요하지 않다고 가르치는 것은 이러한 영지주의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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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