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주신 이름이다. 성자께서 이 땅에 성육신하여 오실 때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간의 이름을 취하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름을 취하셨다고 해서 성자의 능력과 권능이 한계를 가진 것이 아니다. 단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기 위해 스스로 낮아진 것이다. 그런데 이 이름 속에 하나님의 자기 백성이라는 제한된 개념이 이미 존재한다. 하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선택하신 자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다.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은 계속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구원 사역에 조금이라도 인간의 공로를 더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절대로 선을 행할 수 없다. 이미 성경은 피조물의 전적 타락을 통해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

렇다면 인간의 구원도 전적으로 하나님 편에서만 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작정하시고 그 구원의 길을 제시하기 위해 삼위께서 논의하셨다는 것이 개혁신학의 핵심이다. 삼위일체 한 분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창세 전에 논의하셨다고 가르친다.

여기에 타락한 인간의 협력은 있을 수 없다. 아담의 죄로 인해 죽음과 영원한 사망이 그 죄 값으로 정해졌는데 이 죄를 속죄하여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간이 되신 것이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이 되신 것이다. 죄인들이 이것을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가?

아르미니우스와 그를 추종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지만 이것을 믿는 것은 인간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다고 한다. 아담이 인류의 대표가 아니라 개인으로 언약을 맺은 것이므로 아담이 죄를 지었고 그 죄는 후손들에게 전가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성경은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 인해 모든 인류가 죄를 지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죽음과 사망의 형벌이 모든 인류에게 내려진 것을 보면서도 이것을 부인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고 미련할 뿐이다. 인류 역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배제하면 그 어떤 인간도 죽지 않은 자가 없다는 것을 다 알면서도 악인들은 계속 인간 안에 선한 것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르미니우스를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실 때 조건을 통해 구원하신다고 주장한다. 즉 어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을 아시고 구원하신다고 하는 것이다. 믿음과 회심 그리고 경건을 미리 아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죄인이 선택받기 위해 어떤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 안에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조건적인 것들이 있어야 구원에 이른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실 때 어떤 조건들이 있어야 구원하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만약 아르미니우스의 주장처럼 인간 안에 어떤 구원의 조건들이 있어야 구원이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실 때 죄인들의 조건과 상태를 미리 아시고 구원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조건 없는 선택, 즉 부르심으로 죄인들에게 믿음이라는 구원의 방편을 제시하셨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이런 아르메니우스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죄인의 구원을 위해 먼저 부르셨고, 그 다음에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는 것을 성경으로 증거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은 이러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을 부인한다. 오늘날 현대신학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구원사역을 인간의 노력과 함께 같이 이루려고 하고 있다. 결국 하나님의 구원이 절대적인 주권이 아니어야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이 결국 구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아주 사악한 사탄의 계책인 것이다.

죄인의 구원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이라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믿어야 구원이 있다는 성경의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인의 구원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구원이 아니라 인간 안에 있는 구원의 조건들로 주어진다면 예수를 믿지 않아도 구원이 일어나는 것이다.

가톨릭의 구원론에 있어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저주스러운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도 불신자들 안에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그러나 이 개념은 이미 죽은 자들에게도 구원의 조건들을 가진 자들이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연옥 사상이 가능한 것이다. WCC에서 주장하는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것, 여기에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있기 때문이다.
 

익명의 그리스도인 개념을 도입한 로마교회 신학자 칼 라아너
익명의 그리스도인 개념을 도입한 로마교회 신학자 칼 라아너

그러나 하나님의 절대적인 구원을 부인하면 성도 안에 구원의 확신과 기쁨은 사라진다. 죄인의 구원이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음을 인정할 때 그 구원의 확신과 기쁨이 온전하게 주어지고 누리게 된다. 이렇게 성도가 구원의 은혜를 바르게 알면 어떤 환경에서도 배도의 길을 가지 않는다. 이것을 위해 부지런히 하나님의 절대적 구원의 은혜를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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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이 있다.